오지생활 맛들이기

아미쉬 공동체

깜장보석 2011. 8. 31. 19:18

펜실바니아의 랑카스터에서 필라델피아로 가는 30번 도로와 340번 도로를 사이에 두면서 아미쉬 공동체 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1만5천여명의 아미쉬 사람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에 낙원(Paradise)라는 지명도 있다.

남자는 짙은 색의 헐렁한 옷을 입고 턱수염을 기르며, 여자는 간편한 앞치마를 두르고 보네트나 쇼울을 하고 있다. 모두들 검소하고 부지런하며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에 비해 이곳에 아미쉬 사람들이 정착하기까지는 매우 어려운 시기를 거쳐야 했다. 미노나이트(Minnonite)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1683년부터 펜실바니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펜실바니아 지역은 유달리 유럽 민족이 많다. 지금의 주지사도 독일계이다. 미노나이트 정보센터(Minnonite Information Center)에 가면 Terbanacle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꿀물이 흐르는 낙원을 눈앞에 두고 광야에서 자신의 종교를 담금질하기 위해 방황하는 모습이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청학동과 같은 곳이라고 소개하면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는 있다. 여기에는 관광과 쇼핑이 있기 때문이다. 정신은 현재와 격리되어 있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물리적인 공간은 지극히 평범한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아미쉬 마을에는 Dutch Haven, Amish Country Craft, Paradise Candle, Clock Shop, Hex Place 등과 같은 많은 쇼핑 센터가 있다. 그 상품은 대체로 수작업에 의한 물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는데, 특히 퀼트가 시선을 끈다.

아미쉬 마을에도 사실은 변화가 오고 있다. 1970년대 중반까지 70%의 아미쉬 남자가 농사에 종사하다가 도시화의 침범과 관광업의 발달로 이제는 50% 미만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더군다나 토지 가격의 상승과 농산품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많은 아미쉬 남자들이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한다. 유기 농업으로 소득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종교적 신념에는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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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휘발유나, 전화, 전기, 상업적인 화학제품들을 거부하며, 차나 비행기등을 타지 않고 오직 마차를 이용한다.

암만의 윤리는 무저항주의로서 군사력 혹은 무력사용을 거부하고, 형제애를 중요시하여 필요한 것들을 나누며, 흙에서의 노동을 중시하고[농자천하지대본], 성서를 문자적으로 따른다.

이들은 비록 조직은 거부하지만, 병원이나 기타의 봉사활동은 반대하지 않는다.

구전전승(Ordnung)은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문자화 되지않은 규례로서 그들 모두 이에 익숙하고 충실하게 따른다.

아미쉬 문화의 기본은 독일어 Gelassenheit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절제, 겸손, 고요, 및 정숙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이 하나님과 갖는 관계와, 하나님의 권위에 전적으로 의지함을 뜻한다. 또한, 공동체 내에서 서로를 존중하고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그들은 이런 내면의 생각을 행동, 언어, 의복, 걸음걸이 등을 통해 겸손의 표현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중요한 특징은 세속과의 구별, 자연과의 친화, 그리고 절대적 복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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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미쉬는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이름이다. 물론 켈리 맥길리스와 해리슨 포드가 금지된 사랑에 빠지는 <위트니스>[1980년대의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담백하고 평화로운 아미쉬 마을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1년 2월에 소개된 KBS 수요스페셜 <최초공개, 아미쉬 마을을 가다>와 SBS 다큐시리즈 <뉴욕에서 아미쉬 마을로의 시간여행>을 본 사람은 그 인상적인 풍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미쉬 마을에는 전기나 자동차가 없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전화도 없다. 밤에는 등불을 켜고 여전히 말과 쟁기로 밭을 갈고 마차를 타고 다닌다. 그것도 최첨단을 달린다는 미국 땅에서 말이다. 그들은 대통령 선거에 투표도 하지 않고 클린턴이 누군지 부시가 누군지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대부분 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3대가 한 집에 살고, 연방정부의 의무교육을 마다한 채 스스로 학교를 세워 8학년까지만 가르친다. 그들은 현대문명을 '인간성을 파괴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빠르고 새롭고 편리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리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통해 보여준다. 기차도 전기도 라디오도 영화도 없었지만 마냥 즐겁기만 한 국어 교과서의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더욱 더 편안하게 해줄 것이라고 배웠다. 그리고 기술은 인간에게 많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우리를 목적지에 더 빨리 데려다 주는 것도 사실이고, 전기제품들이 가사노동을 훨씬 줄여 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차나 달구지를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우리가 더 여유롭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빠른 것이 반드시 여유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가 「느림」에서 '기묘한 결합 - 테크닉의 싸늘한 몰개인성과 엑스터시의 불꽃'이라고 표현한 속도로 대변되는 기술이 어쩌면 우리를 더 분주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교통을 마비시키고, 생명공학이 만들어낸 유전자 변형 식품이 우리의 식단을 위협하고… 심지어는 테러에 이용된 비행기가 수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세계를 전쟁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지 않았는가. 「아미쉬」는 최첨단을 달리는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작은 여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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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연구자들은 기분 장애에 대한 유전적 기전을 찾으려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한 가지 단서가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랭카스터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시대의 조류와는 동떨어져서 살고 있는 아미쉬 구교 Old Order Amish 중 메논파교도 Mennonite sect들에게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으며 전기, 상·하수도 설비,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마치 18세기초에 처음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30명의 그들의 조상처럼 살고 있다. 그들은 대가족 제도 하에서 농사와 종교 생활만 하면서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고 결혼도 엄격히 자신들끼리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이 아미쉬 교도들은 유전과 행동 사이의 연관을 연구하는 데 독특한 실험 자료를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자세한 가족의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서 알코올, 약물, 난잡한 성행위로 인한 연구상의 복잡한 문제가 전혀 없는, 거대한 순혈통 인구 집단이기 때문이다.

1959년 젊은 대학원 학생이던 제니스 이글랜드는 아미쉬 교도들에게서 문화적 신념과 보건 문제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려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녀가 주제를 '조울증의 빈도 문제'로 바꿔 예일대학의 연구팀과 합류할 수 있었고, 아미쉬 교도들도 기꺼이 도움을 주었다. 조울증이 전체는 아니지만 일부 가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미쉬 교도들도 알고 있음을 이글랜드는 인식했다. 그녀는 〈나는 이 질병의 원인이 피 속에 있음을 아미쉬 교도들을 통해 배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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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들도 학교에 다닌다. 이들은 교실이 하나 밖에 없는 사립학교에서 주로 젊고 미혼이며 기독교 신앙을 지닌 여자 선생님으로부터 8학년까지의 교육을 받는다. 현재, 랭캐스터군의 아미쉬 마을은 인구증가로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넘쳐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1년에 약 5개 정도의 학교를 설립하고 있다.

학교 수업내용은 근대문명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교육은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며, 읽기와 쓰기 및 산수에 중점을 두고 수업한다. 아미쉬 사회의 공동체 의식과 협동심의 중요성 역시 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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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가라"…우린 옛날처럼 산다
TV컴퓨터 등 거부하며 18세기 생활 고집…중학교 졸업 뒤엔 농사

현재 미국에는 10만여명에 달하는 아미쉬 사람들이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주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들은 네덜란드 방언이 섞인 독특한 독일어를 사용하고 미국으로 이주해온 당시인 18세기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현대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를 거부한다. 한 마디로 과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최첨단 문명의 집산지와도 같은 미국 땅에서.

펜실베이니아 랭커스터 카운티의 아미쉬 마을은 뉴욕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 반이면 닿는 거리에 있지만 지척에 있는 대도시와는 다른 세상이다. 자동차 세 대에 한 대 꼴로 말이 끄는 마차가 달리고, 검은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아미쉬 남자들과 케이프를 쓴 여자들이 삼삼오오 걸어간다.

아미쉬 사람들은 관광객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 없다. ‘위트니스’ 이후 이들의 폐쇄된 생활방식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낯선 방문객을 반가이 맞아준 마크(41)와 멜로디(41) 슈토크푸츠 부부의 집에는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여섯 명이다. 열세살인 큰아들과 열살인 둘째아들은 이미 젖소를 키우는 아버지를 돕는 훌륭한 목부이자 사냥꾼이다. 큰아들 조슈아는 지난 겨울에 사냥총으로 사슴을 잡아오기도 했다. 아미쉬 사람들은 산아제한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 가구당 평균 자녀 수가 8.5명이나 된다.

아미쉬 사람들의 생활은 검소와 근면 그 자체다. 남자는 누구나 동이 트기 전부터 일을 시작한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대식구의 식사, 빨래, 옷만들기, 청소 등을 하느라 잠시도 손을 쉬지 않는다. 아미쉬 남자는 검은 옷에 모자, 여자는 케이프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전형적인 과거의 차림새를 하는데 옷에 단추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단추 달린 재킷은 군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아미쉬들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전쟁을 합리화시킬 수 없다고 믿으며 징병을 거부한다.

아미쉬들 사이에도 세대 차이는 존재하는 것일까? 80여 마리의 젖소를 키우는 마크와 전직 간호사인 멜로디는 문명의 이기에 대해 ‘필요한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농장에는 차는 물론이고 트랙터와 세탁기, 식기세척기까지 있다. 그러나 TV와 컴퓨터는 없다. 아이들은 ‘이메일’이 무언지, 요즈음 미국을 휩쓰는 포켓몬이 어떤 만화인지도 모른다.


자녀교육에 대한 아미쉬들의 가치관은 보통의 미국 사람들과 판이하다. 학교 교육을 통해 성경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공부, 예를 들면 집짓기나 농사, 양재 등을 배우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미쉬들의 학교는 중학교 졸업반인 8학년이 최고 학년이다. 8학년을 마치면 대부분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결혼 연령이 상당히 빠른 것도 특이한 점이다. 남자는 19세에서 25세, 여자는 17세에서 23세 사이에 대개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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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을 거부하고 3백년 전 삶을 고집하며 사는
미국의 ‘아미쉬 사람들’

“신혼부부를 위해 주민 전체가 나서서 집을 지어주는 공동체 문화가 특징”
미국에도 우리나라 청학동처럼 현대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3백년 전의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 충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영화 <위트니스>로 잘 알려진 아미쉬 마을이 그 주인공. 느림과 무소유를 실현하며 사는 아미쉬 마을로의 타임머신 여행기.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 빌딩숲과 최첨단의 기기, 전국 어디든 뻗어 있는 초고속 인터넷망, 숨가쁘게 질주하는 차량들, 그리고 일분 일초를 쪼개며 생활하는 뉴요커들. 할리우드 상업 영화의 세뇌 덕에 미국, 미국인에 대한 대체적인 이미지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몇달 전 뉴욕 맨해튼을 찾았을 때 필자가 사는 시골 사람들과 달리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제 갈 길만 재촉하는 뉴욕커들 틈바구니에서 한동안 정신적 미아가 된 듯한 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점심시간조차 아까워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들고 걸어가며(거의 뛰며) 먹는 사람들은 그곳에선 더이상 색다른 풍경도 아니었다.

전기도 전화도 자동차도 없는 ‘미국판 청학동’ 아미쉬 마을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모습도 미국의 단면일 뿐이다. 바쁘기로는 맨해튼 다음가라면 서러울 우리나라 역시 정신없이 빠른 서울이 있는가 하면 한없이 느린 지리산 청학동이 있듯이 미국 역시 느리면서 고집까지 센 ‘아미쉬’(Amish)라는 독특한 공동체가 있다.

아미쉬는 외양부터 다르다. 아미쉬가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대번에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검정 모자에 검정 양복, 그리고 길게 늘어뜨린 턱수염. 남자들은 모두 이런 모습이다. 여자들 역시 검정색 아니면 짙은 자주색 긴 원피스에 쪽진 듯한 머리를 하고 그 위에 작은 하얀색 두건을 두르고 있다. 아이들 역시 어른들과 거의 같은 차림새다. 그러니 보통의 미국인들 틈새에서 아미쉬는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차림새만 특별하다면 워낙 개성이 강한 미국인 사이에서도 그저 튀는 개성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런데 아미쉬는 차림새만큼이나 사는 방식도 아주 독특하다.

불과 10년 전도 구석기로 느껴질 만큼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들은 무려 3백년 전의 17세기 삶을 지켜오고 있다. 17세기? 그 시대 생활을 상상하기 어렵다면 답은 간단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전기도, 전화도, 컴퓨터도, 텔레비전, 라디오, 냉장고, 가스레인지도 없다. 24시간 손만 대면 나오는 따뜻한 물은커녕 수도꼭지도 없다. 난방이 안 되는 건 물론이다. 커다란 무쇠 스토브에 나무를 넣어 때는 것이 유일한 난방이다. 미국의 모든 가정이나 건물에 깔려 있는 카펫이 없는 건 당연지사며 마을 전체가 아스팔트 없는 흙길이다. 자동차는 물론 일체의 기름을 쓰는 농기계도 없다. 대신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닌다. 이 대목에서 ‘그래도 휴대폰은 있겠지?’하고 엉뚱한 생각을 하는 신세대가 없길 바랄 뿐이다.

이쯤 되면 아미쉬를 이상한 종교 집단으로 성급히 결론내릴 이들도 있을 법하다. 종교 집단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상한 사교집단이나 이단 집단은 전혀 아니다. 이들 역시 일반 미국인과 다름없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미쉬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종교적 내력을 잠시나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16세기 마틴 루터의 깃발 아래 유럽이 피비린내나는 종교개혁의 소용돌이를 겪었던 것은 세계사를 조금이나마 공부했던 이들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이때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고 영유아 세례를 반대했던 집단으로 재세례파(Anabaptist)가 있었다. 이들은 급진적인 개혁 운동에 의해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된 개신교 집단 중 하나였다.

이후 유럽에서 개신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아미쉬 사람들 역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었다. 이들 종교의 뿌리인 유럽의 경우 1937년 아미쉬 집단이 해체되어 사라진 반면 미국 내 아미쉬 집단은 점점 늘어나 미국 25개 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에 걸쳐 18만명이 여전히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아미쉬 집단이 많은 곳으론 최초의 이민자들이 정착한 펜실베이니아주 랭카스터가 가장 유명하며 이외에도 인디애나주와 오하이오주 역시 수많은 아미쉬 마을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아미쉬 사람들은 신자들끼리 서로 돕는 게 기독교인의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개인 재산을 소유하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 공유하며 살고 철저히 자신들의 종교지침서(The Ordnung이라고 함)에 의거한 생활을 고집한다.

이 종교지침서는 신자들의 옷색깔과 스타일, 언어, 유일한 교통 수단인 말이 끄는 마차의 색깔까지 원칙을 정해두고 있다. 신자들의 생활 전반에 관한 세세한 원칙을 정해둔 셈이다.

의복의 경우 남자들은 검정 모자를 쓰고 검정 양복을 입는다. 결혼한 남자는 무조건 턱수염을 기르는데 콧수염은 허용이 안 된다. 종교 박해 당시 이들을 탄압했던 군인들이 콧수염을 길렀던 탓에 이에 대한 침묵 시위 차원에서 콧수염 없는 턱수염을 고집한다는 얘기다.

여자들의 경우 17세기 당시 수녀들의 복장과 비슷하다. 특이한 것은 여자들 옷엔 단추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앞치마가 붙은 짙은 색의 긴 원피스는 핀으로 고정되어 있다. 당시 가톨릭 수녀들의 복장이 단추 대신 핀을 사용했던 풍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안 한 여자아이들은 하늘색이나 노란색 등 밝은 색상 옷을 입지만 결혼한 여자는 금물이다.

머리에 하얀색 두건을 쓰는 것도 아미쉬 여자들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간혹 미국의 유명한 박물관을 구경하다 보면 긴 원피스에 하얀 두건을 두른 화장기 없는 여자들과 그 가족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이 아미쉬 사람들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을 찾는 아미쉬 사람들을 보면 이들이 세상과 완전히 담을 쌓고 사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간혹 짓궂은 사람들은 차를 안 타는 아미쉬 사람들이 대도시에 있는 박물관을 오가는 것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경우도 있다. 아미쉬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마을 안에서 생활을 한다. 하지만 여행을 할 경우 마차를 타고 기차역까지 가서 기차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다른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차량을 소유하지 않을 뿐 필요하면 기꺼이 이용할 만큼 탄력적이다.

가족을 중요시하는 아미쉬는 마을 공동체가 ‘보험’ 그 자체

아미쉬 사람들이 차를 거부하는 데엔 그들만의 단순하고 명쾌한 철학이 담겨 있다. 빠르고 편리한 자동차의 이용은 결과적으로 가족의 해체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나라와 달리 워낙 땅덩이가 큰 미국은 직계 가족이라고 해도 학교, 직장에 따라 이곳 저곳에 떨어져 사는 일이 허다하다. 주변에서 만나본 노인들 중엔 자식들이 독립한 후 기껏해야 일년에 한번 추수감사절에나 볼 수 있다고 한숨을 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아미쉬의 생활 중심엔 물론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다. 그다음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가족이다. 그 가족은 물론 혈육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넓게는 공동체 전체가 가족과도 같다. 아미쉬는 보험이 없기로 유명하다. 궂은 일이 생기면 마을 전체가 아니면 다른 마을에서 원정을 와서 도와주기 때문에 보험이 필요없다.

몇년 전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한 아미쉬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다. 쌍둥이 아기가 조산으로 오랫동안 입원을 한 일이 있다. 의료 보험이 없는 이 가정의 병원비는 자그마치 60만 달러(7억8천만원)나 나왔다. 결국 교회가 중심이 되어 마을 전체 주민들이 매달 돈을 모아 병원비를 해결했다는 훈훈한 미담이 전해진다. 각박하기 이를 데 없는 요즘 세상살이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결혼해서 독립하는 신혼부부를 위해 온 주민이 모여 집을 지어주는 것은 물론 화재로 집이 불타면 모두들 팔을 걷어 붙이고 새로 집을 지어준다. 품삯을 전혀 받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고 필요한 물건을 모아 도와준다. 이들은 상부상조가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끈끈한 관계는 사실 불과 몇십 년 전 우리 조부모세대에선 아주 흔한 일이다. 온갖 경조사에 온 동네 주민이 다 나서서 도와주고 기뻐해주던 그런 기억을 우리 역시 가지고 있다. 이제는 사라져버린 그런 풍경을 아미쉬 사람들은 아직도 지키고 있는 셈이며 그건 아마도 그들이 세속적인 편리함을 기꺼이 반납한 대가인지도 모른다.

아미쉬 사람들은 ‘오래된 것이 최고의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갖가지 생활의 편리한 물건들을 거부한 채 옛것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다. 수도 대신 펌프식 우물을, 가스레인지 대신 화덕을, 냉장고 대신 흙으로 지은 창고를, 환한 전깃불 대신 아직도 등유를 쓰는 램프를 이용한다.

음식은 모두 손으로 만든 ‘어머니표’. 직접 키운 밀과 옥수수, 감자가 주식이고 텃밭에서 키운 야채를 먹는다. 요즘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무공해, 무농약 자연식인 셈이다. 통밀빵에 기름기 적은 이들의 식사는 현대인들의 고단백, 고지방, 패스트푸드와는 맛과 질에서 아주 딴판이다. 대다수가 전통적인 농경 사회의 생활 방식 그대로 살아가는 만큼 가족은 함께 일을 나가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하루 24시간을 함께 지낸다. 자식은 생기는 대로 다 거두는 만큼 한 집에 많게는 8~10명까지 자녀를 둔 경우도 적지 않다.

중학교만 마치면 공교육은 끝, 대신 가정교육 중요시

아미쉬 마을 아이들은 그들만의 학교에 다닌다. 이른바 ‘한 교실’학교. 학년 전체가 한 교실에 모여 교육을 받는 아주 작은 학교다. 그나마 1학년에서 8학년까지가 전부다. 미국의 교육이 12학년까지 있는 것과 비교하면 고등학교 교육이 없는 셈이다. 아미쉬 사람들은 대체로 농경에 종사하는 만큼 그이상의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때 이들의 고등학교 교육 거부는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이므로 때문에 정부의 교육 정책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아미쉬는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지만 1972년 결국 미 대법원이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종교의 자유와 교육의 의무 사이에서 대법원은 종교의 자유가 우선이라고 판결을 내렸고 이후 아미쉬는 이 문제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교육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한다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아미쉬 사람들은 누구보다 독서를 즐기는 집단이라고 한다. 각 가정마다 신문을 1~2개 이상 구독하고 많은 양의 독서를 한다. 아미쉬 사람들은 학교 교육은 아이들에게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교육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가정 교육과 마을 웃어른들에게서 배우는 일상 교육, 그리고 이를 통한 올바른 인성이라고 여긴다.

8학년을 마치면 대개 남자들은 농사일을 하고 여자들은 어머니로부터 살림살이를 배운다. 어떤 아미쉬 마을에서는 아들이 19세가 되면 1년간 바깥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 문화적 충격을 받은 아이들 중에 아예 삶의 터전인 아미쉬를 떠나는 경우가 최근 점점 늘어 이곳 공동체에 적잖은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아미쉬를 외부 세계에 알리게 된 것 중 하나가 이곳 여자들이 즐겨 하는 바느질, 즉 퀼트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높은데 이곳 마을 여자들은 짬이 날 때마다 삼삼오오 모여 이불이나 베개, 쿠션 등을 만든다. 이들이 손으로 일일이 한 땀씩 떠서 만든 퀼트 물건은 미국인들 사이에서 고가에 팔려 중요한 수입원이기도 하다.

퀼트 외에 또 한가지 유명한 것이 바로 목공예 가구. 아미쉬 가구는 못을 박지 않고 짜 맞춰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재질 역시 단단해 미국 곳곳에선 이들이 만든 수공예 가구가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아미쉬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위트니스>를 통해 미국 전체는 물론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후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 수는 나날이 늘어 바쁜 현대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쉼터가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아미쉬 사람들은 생업인 농사 대신에 관광 상품을 파는 가게 주인으로, 혹은 관광객을 위한 식당, 호텔 등에 취직해 색다른 생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극소수. 대부분은 여전히 3백년 전의 삶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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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시자 야콥 암만의 지침대로 그들은 인간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문명을 '피하고' 살아가기를 택했습니다. 그것이 현대 문명을 마음껏 누리는 우리에게는 이상해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무시합니다. 마치 동물원 구경하듯 돌아보고 지나쳐 버립니다.


하지만 저는 이들이 단순한 구경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비록 너무 극단적인 면은 인정하더라도, 현대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삶의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알고 보니 성경이 제시하는 대안과 일치합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저 자신과 그들의 삶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성경의 진리에 더 가까이 있는가? 불행하게도, 저는 '나다'라고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저보다 더 진리에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문명은 인간의 삶에 이로운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되어 왔음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문명 발전의 원동력은 인간의 욕망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정도의 문명만 해도 충분한 것 같은데, 인류는 여기서 만족하지 못합니다. 끝까지 인류는 문명을 발전시켜 갈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인간의 삶에 이로운 만큼만 문명을 발전시키려고 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깨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현대 문명이 인류를 파멸시킬 지점까지 와 있다고 경고합니다. 영국 시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인류는 분명히 문명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왜 문명이 여기까지 왔습니까? 욕망 충족을 위해 문명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 문명은 잘 사용하면 이로울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목적이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경계해야 마땅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할 수 있는 한 일을 적게 하고 편하고 만족스럽게 살기 원합니다.

...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아들 아이가 "나도 아미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 줄 알고 기대감을 가지고 되물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더니 "아미쉬는 8학년까지밖에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아이는 이번 9월에 8학년이 됩니다.


그 여행 이후에 제 아이의 그 말이 저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저도 아미쉬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미쉬는 그 종족 안에서만 유지되고 있습니다. 제가 아미쉬가 될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아미쉬의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아미쉬가 모든 점에서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명에 대한 아미쉬의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미쉬처럼 모든 문명을 거부하겠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럴 자신도 없고,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확신도 없습니다. 다만, 문명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때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으로 떨어지기 쉬우며, 그 욕심은 나를 파멸로 이끌어 들인다는 점을 기억하고 살겠다는 뜻입니다. 그 정신으로 문명을 지켜보고, 문명의 이기들을 분별력 있게 대함으로 건강하고 바른 삶에 더 가까이 가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과 바울 사도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 삶의 방법은 마땅히 배우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의 삶을 통해 참된 행복에 이르고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인간답게, 사람답게 만드는 한 가지 중요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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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비영리단체인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이 몇 년 전 창간한 잡지 '플레인'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주제별로 다시 엮어낸 것이다.
누군가 현대기술 문명을 일컬어 진흙으로 빚은 배에 비유하면서 결국은 부서져 가라앉을 진흙배에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또한 곧 가라앉을 타이타닉호에서 좀더 좋은 방을 잡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통해 현대 문명의 허구와 폐단을 경고한 바 있다.
이 책은 현대문명에 찌들려 하루하루를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삶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안적 삶의 방식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아예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테크놀로지 사회가 좀더 편안해지기 위해 죽을 때까지 일해야만 하는 사회이며,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종교적 신념 때문에 소박한 삶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들의 자립적인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몸을 움직여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전원 플러그를 뽑는 일, 그것은 극히 사소한 행위일 수 있지만 단순히 자신의 여유로운 삶만을 위한 것이 아닌, 끊임없이 우리를 구속하고 조작하는 기술문명에 저항하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이며 시작이라고 본다. 아미쉬 공동체의 사람들처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단번에 변화시킬 수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심히 지나쳤던 우리의 일상생활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개선해 나간다면 반드시 좋은 변화와 더불어 행복한 삶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문할지 모르겠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만으로 대안적 사회를 만들 수 있겠냐고. 그러나 자립적인 삶의 방식을 택해 남과 더불어 삶을 나누고 가난함 속에서도 마음이 부유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가꾸어가는 사회는 분명 '희망은 있다'라고 말하고 싶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더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소박하게 살겠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와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나 장소, 물건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들까지 다시 배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다른 이들과 연결되지 않는 소박한 삶이란 우리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 본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