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라기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깜장보석 2012. 9. 7. 10:5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최근 교황청 과학원 위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진화론을 하나의 가설 이상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평화신문 제403호 11월 3 일자 3면 보도). 평화신문은 이에 따라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화론과의 관계 그리고 진화론에 대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교회의 태도변화 등을 알아보는 특집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창조론 : 인간을 비롯한 우주만물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됐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리스도교 신앙핵심 중 하나인 창조신앙은 유일신으로 최고 절대자인 하느님이 무(無)로부터 세계를 창조했다고 본다. 따라서 창조는 하느님의 고유한 행위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떤 내적인 필연성에 따라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피조물, 즉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없어도 그 자체로 완전하고 충만한 분이다. 하느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 은 오로지 당신 자유의 행위이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의 행위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또 만물 가운데서도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됐다고 고백한다. 신학자들은 그 특징이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본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의지를 온전히 행사함으로써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사업이 천지만물의 창조, 즉 태초의 창조로 단 한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하느님의 창조사업은 역사를 통하여 새롭게 계속되고 있고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궁극적으로 완성된다. 역사의 완성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를 신학적인 용어로 '구원경륜(救援經綸) 또 는 '구세경륜'(救世經綸)'이라고 부른다.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역사의 완성 에 이르기까지 창조사업에 동참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는 창세기(1,28)의 말씀은 하느님 창조사업의 협력자로서 인간의 소명 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진화론 : 인간을 비롯한 모든 세상 만물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입장이다. 정신(또는 영혼)과 물질을 포함한 만물은 낮은 차원의 상태에서 높은 차원의 상태로 진화 발전을 한다고 보는 이론으로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최초의 아주 저급한 생명체는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형태와 기능이 복잡하고 정교한 고등생물로 진화해 현재와 같은 다양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17세기 이후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대두된 진화론은 생물학과 고생물학, 유전학 분야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진화이론들이 제시됨에 따라 오늘날에는 단 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이론체계들로 이루어 져 있다. 근대 진화론을 체계화한 영국의 다윈 (1809-1882)은 그의 대표적인 저서 '종의 기원' 에서 '자연적 선택설'(또는 자연도태설)을 통한 생물학적 진화이론을 발표했다. 생물은 무생물에서 발생했다는 전제하에 생물은 종족 유지를 위해 필요한 수보다 많은 자손을 만들고 이들 개체간에는 변이(變異)가 있고, 개체는 생존경쟁을 통해 환경에 적응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하며(적자생존과 자연도태), 개체 변이가 누적되면서 새로운 생물이 생긴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다윈의 진화론 이후 진화는 변이가 오랜 세월 누적되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돌연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돌연변이설,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롭게 획득한 형질이 유전된다는 획득 형질설, 생물은 자체 안에 일정한 방향으로 진화하려는 내적 요인이 존재한다는 정향 진화론 등이 18-19세기의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잇따라 제기됐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고생물학과 유전학, 물리학과 생화학 분야의 발전으로 진화론은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한 이론체계를 갖추게 됐고, 인간 진화도 이러한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진화이론들은 대체로 '생명체 자연발생설'을 토대로 첫째, 최초의 생명체는 무기물들의 화학반응을 통해서 생성됐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에 대해 탄소, 질소, 수소등 물리화학적 구성요소들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생물의 진화는 현재와 같은 다양한 종(種)의 생명체들이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한 종에서 점차 진화했다고 본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화론

 

만물이 무(無)로부터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특히 인간이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되었다는 그리스도교 창조론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이룬다. 이것은 무한하고 전능한 창조주로서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이다. 이것은 만물이 어떤 식으로 창조되었는가 하는 ‘창조의 방법’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하느님께 그 근거를 두고 있음을 천명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진화론은 만물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인다. 진화론은 따라서 하나의 과학적 학문분야이다. 과학은 근원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전제를 토대로 관찰과 분석, 검증 을 통해 과학적 사실들을 규명하고 확인해 나갈 뿐이다. 신앙에 바탕을 둔 종교와 이성의 합리성에 입각해 과학이 서로 대치되지 않고 보완적이라면,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은 과학적 연구 결과 의 결실인 과학적 사실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모순되거나 대치되지 않는다. 교황이 "진리는 진리와 상충하지 않는다"고 천명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가르치고 있듯이, 과학도 신학도 모두가 하느님 안에 근거하고 있으며, 창조주이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이다. 신학은 과학적 사실들을 토대로 삼라만상, 곧 우주를 완성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최종적 인 의미를 추출해 낸다. 이 같은 점에서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현대의 진화론적 사유를 그리스도교 신학과 접목시킨 선구자라 할 수 있다. 비록 일부 신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는 하느님을 시간 안에서 진화하는 우주의 정신이라고 보면서 자신의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신학적 사유를 나름대로 체계화시켰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내 현대 신학계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금세기 최대의 신학자라 불리는 독일의 예수회 신학자 칼 라너도 진화론 세계관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앙의 진리를 설명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우루과이의 해방신학자 후안 루이스 세군도가 생태계의 위기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화론과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의미를 제시하기도 했다. 과학적인 세계관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리를 제시하는 것은 특히 신학자들의 몫이다. 샤르댕과 라너, 그리고 세군도가 시도했듯이 신학자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들을 존중함은 물론 이를 적극 활용하여 하느님과 인간에 관한 진리를 현대인들에게 더욱 적절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진화론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다윈이 '종의 기원'(1859)에서 자연적 선택을 통한 생물학적 진화론을 주장했을 때 그리스도교 세계관에서 살고 있던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창세기 1,2장에서 서술하는 창조 이야기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 다윈이 나중에 저술한 '인간의 유전'(1871)에서 인간 역시 진화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제시하자 사람들은 더욱 경악했다. 이 주장은 성서를 자구적(字句的)으로 받아들이는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비해 가톨릭에서는 비록 다윈의 진화론이 부적절하고 위험하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교황청은 공식적인 단죄나 비난 성명을 발표하지도 않았고, 진화론 에 관한 서적들을 금서목록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1860년 퀼른 공의회에서는 저급한 생물체가 자연적으로 인간 육체로 진화했다는 이론이 성서와 신앙에 위배된다고 선언하기는 했지만 퀼른 공의회는 만국공의 회가 아닌 지역 교회 차원의 공의회였다. 다만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인간의 영혼과 육신이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재확인하면서 "진리는 진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원칙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1909년 교황청 성서위원회는 이 문제와 관련, 창세기 1장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통해 성서 해석에 제한을 두었다. 이 성명 이후 30년 동안 진화론에 관한 가톨릭의 논의는 대부분 '신중하게 대처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졌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북경 원인(猿人)을 발견한 프랑스의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신학자인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신학을 전개하는 글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인류(Humani Generis)'에서 유물론과 범신론을 배격하면서 진화론 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 표명을 한다. 비오 12세 교황은 인간 육체의 진화에 대해서 과학적 가설로서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다고 천명했으나 진화론을 하나의 '가설'로서 연구 조사할 수 있다고 보았지 '입증된 사실'로서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가 죽은 후에 그의 유저들이 출판돼 나오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화론이 부합할 수 있다는 보다 긍정적인 관점들이 가톨릭 신학계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이다. 사목헌장은 "모든 학문 분야의 탐구는, 그것이 참으로 과학적 방법을 따르고 윤리규범을 따라 이루어진다면, 절대로 신앙에 대립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속 사물이나 신앙의 내용은 다 함께 하느님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36항)라고 규정한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번에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론을 가설 이상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밝힌 것은 비오 12세 교황이 회칙 '인류'에서 밝힌 입장보다 진일보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나 교황은 진화론을 하나의 단일한 학설이 아니라 진화론 자체가 여러 이론이 있음을 직시함으로써 모든 진화론을 다 수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특히 "인간 육체의 기원이 그보다 앞서 존재하는 생명체 안에서 찾아진다면, 영혼은 하느님에 의해 직접 창조된다"는 교황의 가르침은 현대의 다양한 진화 이론들이 안고 있는 한계와 함께 ‘만물이 다 하느님 안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교회의 전통적이고 핵심적인 가르침을 재 천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