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교회 공동체
사도행전을 읽으며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마도 인류가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2천년도 훨씬 전에 짧게나마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교의 발생은 충분히 그 의미를 갖는다.
일부 학자들은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초기 교회 모습에서
공산주의의 근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므로 무슨 사상이나 이념은 칼로 두부 자르듯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라기 보다는
예수의 말대로 진리는 하나고 그것은 지극한 선이며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것을 믿는다.
교회는 그것이 성령이 함께 하셔서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무신론자는 또 다른 표현을 할 수 있겠지만 뭐라고 명명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집단이기주의가 첨가된 주관적인 의미부여일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겠다.
다만 팩트만을 가지고 역사적인 기술 속에서 볼때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꽤 오랫동안 가진 것을 내놓고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며
더 많이 갖으려고도 또 가진 것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똑같이 나누며 기도하고 찬미하고 예수의 가르침 즉 서로 사랑하라고 했던
말씀을 듣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며 또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자고 전하며 살았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일 것이다.
그것은 세월이 지날수록 윤색되고 굳어져서 성령의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점점 조직화되고 형식화되고 인간적인 욕심이 더해지면서
그토록 욕을 먹는 중세 교회의 권력과 타락과 탐욕의 온상이 되긴 했지만...
언제나 첫마음을 잃지 않고 소박하게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며 산다면
지상의 천국과 같았을 -그래서 더욱 빠르게 그리스도교가 퍼져나갔던 것이지만-
초대 교회 공동체의 삶의 패턴이 지금까지도 이어졌을 것이다.
사도행전의 첫부분을 읽을 때마다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순수한 한 공동체가 존재 이유를 잃어가며
변색되어가는 과정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고있는 것같아서.
그리고 또 다른 시각에서 해석한다면 공의회문헌이 가르쳐주는 것처럼
그 모든 윤색의 과정도 밀밭의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하시는 것과 같이
두고 보시면서 그 안에서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느끼도록하고
그것 또한 악에서 선을 끌어내시는 하느님의 뜻이라는 해석도
충분히 신앙인으로서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