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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 떠납시다 시의 여행을/ 박석구(문학마을사) 3

깜장보석 2014. 7. 12. 16:28

4. 시적 자아

시적 자아는 대상에 대한 당신의 느낌과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이 창조한 당신의 대리인입니다. 시에서 말하는 존재로 소설의 서술자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시에서 주인공이 될 수도 있고 대상에 대한 관찰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시적 자아의 성격입니다. 그것은 그 성격에 따라 시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성격이란 시적 자아의 정서와 어조와 태도를 말합니다. 정서는 시적 자아의 기분이나 심리 상태, 어조는 시적 자아의 말투, 태도는 시적 자아가 현실을 대응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시적 자아의 성격은 대상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처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당신이 대상을 슬프게 인식하면, 시적 자아는 슬픈 존재가 되어 슬픈 말을 사용하게 되고, 시는 슬픈 시가 된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대상을 기쁘게 인식하면, 시적 자아는 기쁜 존재가 되어 기쁜 말을 사용하게 되고, 시는 기쁨을 드러내는 시가 된다는 말입니다.

당신이 현실을 의지적으로 접근하면, 시적 자아도 의지적 존재가 되어 의지적인 말을 사용하게 되고, 시는 의지적 시가 된다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당신의 맘씨에 따라 시적 자아의 맘씨도 시도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대상을 인식한 후, 시적 자아의 성격을 확정해 놓고, 시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면 시의 성격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럼, 짧은 시 한 편을 함께 쓰며 시적 자아의 태도를 살펴봅시다.


* 돼지와 참새

돼지가 꿀꿀거립니다. 참새가 짹짹거립니다.

어느 날, 시골길을 걷다가 본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저놈들은 지금,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대상에 대한 당신의 태도가 답을 결정하겠지요? 이에 따라 시적 자아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자, 시적 자아의 성격을 결정하기 위해 당신에게 질문해 봅시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불행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슬픈 마음으로 대상을 인식하게 되고 시적 자아도 슬픈 존재가 되겠지요?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저놈들은 지금,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아마, 저놈들은 행복할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에게는 자기가 불행하면, 다른 존재들이 자기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으니까. 지금까지의 질문은 ‘어떻게’를 응용한 질문입니다. 그럼, 인식 내용을 정리해 봅시다.


① 돼지는 꿀꿀거리고, 참새는 짹짹거린다. 아마, 저놈들은 저렇게 행복할 거야.


내용이 슬프게 정리되었지요? 그것은 당신이 대상을 슬프게 인식하였고, 이에 따라 시적 자아도 슬픈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도 약간은 슬픈 시가 되겠지요? 다듬어서 시로 바꿔 봅시다.


돼지는 꿀꿀

참새는 짹짹


저놈들은 저렇게

행복할 거야.


이젠 대상 인식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달리 해봅시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다면 시적 자아는 행복한 존재가 되어 행복한 마음을 드러내겠죠? 그럼, 당신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 질문해 봅시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불행합니까?”

“행복하다.”

“그렇다면 저놈들은 지금, 행복할까요, 불행할까요?”

“아마, 저놈들도 행복할 것이다.”


왜, 그럴까요? 자기가 행복하면 모든 것이 행복하게 보이는 법이니까 그렇겠지요? 정리해 봅시다.


② 돼지는 꿀꿀거리고, 참새는 짹짹거린다. 아마, 저놈들도    저렇게 행복할 거야.


틀을 짜 다듬어 봅시다.


돼지는 꿀꿀

참새는 짹짹


저놈들도 저렇게

행복할 거야.

 

당신처럼 시적 자아도 행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에도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당신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지요?

이제 두 시를 비교하여 봅시다. 겉으로 보기엔 시어에 결합된 조사 하나만 다를 뿐이지요? ①의 ‘저놈들은’에서의 ‘은’과 ②의 ‘저놈들도’에서의 ‘도’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조사 하나의 차이도 시적 자아의 성격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이 시의 분위기를 전혀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①은 서글픈 마음으로 대상을 자신과 대조하여 본 시가 되었고, ②는 즐거운 마음으로 대상을 자신과 같은 입장으로 비교해 본 시가 되었습니다. 

어떤 시를 선택하겠습니까? 당신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시로써 묘미가 있는 것은 ①의 시입니다. 그것은 ‘참새, 돼지’와 그것들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과의 심정적 대조가 주는 맛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②의 시와 같이 서로가 행복하길 빌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 한 편 소개하겠습니다.


배추벌레는 나비를 꿈꾸지 않아도

나비가 되고

씨앗은 꽃을 꿈꾸지 않아도

꽃이 된단다.


그러나 우리는 날마다 꿈을 꾸어도

어떤 것도 되지 못했지.


그것은 우리가 오늘을 살지 않고

내일만을 살기 때문이란다.

     - 배추벌레는 -


답이 됐습니까? 삶은 쌓은 만큼 무너지는 것. 어제를 무너뜨려야 오늘이 쌓입니다. 그러나 오늘을 무너뜨리면 내일이 쌓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오늘을 진실하게 살아야 또 하나의 오늘이 아름답게 눈을 뜨는 것이랍니다.


출처 : 휘수(徽隋)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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