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는 사람들 : 사내 (43세)
여인 (1인 9역) - 처
박경숙
의사
간호사
원장수녀
술집여자
검사
변호사
판동 처
때 : 현 대
곳 : 사내의 집
무 대 : 사내의 집안 응접실이 주요 장소이나 면회소, 병원, 술집, 법정 등 다양하게
쓰여져야 하므로 얼개나 소도구를 상징적으로 처리하면 좋겠다.
사내, 의자에 앉아 있다.
그 옆에는 여자옷이 아무렇게나 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마리를 풀어가야 할까.
망설임이 역력하다.
사내 : 글쎄요. 인생이란 3박 4일의 여행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3박 4일의 여행이란 첫날밤은 설레임으로 다음
날은 그 마지막 밤에 대한 기다림으로 마지막
밤은 아쉬움 속에 작별을 고하게 됨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럴 거예요.
설레임 속에 태어나 뭔가가 있겠지 이루어지겠
지 기다리다가 아쉬움 속에 죽음을 맞게 되겠지
요.
3박 4일일 것입니다.
벚꽃 만발한 경주여행에서 전 그걸 느꼈습니다.
짧은 인생이란 걸.신라 소녀의 숨결 또한 그렇
게 짧으리란 걸. 훗날 이런 여행에서도 남는 게
있어 추억을 파먹고 살게 되겠지요.
늘 안녕이라고.
그때 무대 뒤편에서 박 경숙의 목소리가 들려온
다.
목소리 : 선생님.선생니임.
사 내 : 왜? 또 하수구가 막혔냐?
목소리 : 아뇨.수건하고 면도기 좀 갖다 주세요.
사 내 : 목욕하누?
목소리 : 예. 같이 할래요?
사 내 : 아니, 됐어. ......면도기?
목소리 : 예.
사 내 : 왜? 여자가 면도할 데가 어딨다고.
목소리 : 있단 말예요.
사 내 : 알았어. ( 갖다주고 나오다가 ) 경숙아.
목소리 : 예?
사 내 : 물이 뜨겁냐?
목소리 : 예.
사 내 : 아직도 멀었어?
목소리 : 예. 왜요 또 똥 누시게요?
사 내 : 예끼 인석아. 난 뭐 맨날 똥만 싼다던?
목소리 : 헤헤헤. 랄랄라. ( 콧노래 )
사 내 : 맹랑하지? 박경숙이 말이야. 당신도 한 번 본
적이 있을 걸? 밤중에 우리 집 문 틈으로 편지
를 집어넣다가 당신하고 마주쳤다며. 그래서 들
어오게 시켜 요기서 커피도 마셨잖아. 셋이서.
손발 떨며 마른 침 목젖으로 넘기려고 무던히도
애쓰던 것이 박경숙이라니까.
결혼하쟤. 많이컸지. 여보! 변명 같겠지만 안
할 수도 없어. 쟨 아무것도 몰라. 결혼이란 것
이 한 여자와 살면서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
이라고 했더니, 깔깔 웃으면서 그럼 얼마나 멋
지녜. 자기는 남편이 다른 여자들한테 인기가
좋았음 싶대나. 이상적인 것은 말은 쉽고 실제
론 아니잖아. 쟨 그런 것도 몰라.하긴 저라고
고민이 없겠어? 나와 결혼하기 위해 지 부모와
삼년째 투쟁중이야. 수월내기는 아니지. 내 앞
에선 한결같아. 쾌청일로지. 그런 점이 좋아.
속으론 탱탱 곪았으면서도 아랑곳없이 건강한.
그런 건 영락없이 당신이라니까 사랑스럽지. 내
겐 과분하기도 하고. 그런데 내빼고 싶어. 이상
하지?
그때 무대 뒤편에서 박경숙의 목소리 목소리
; 선생님.선생님.
사 내 : 왜?
목소리 : 아직도 속이 안 좋으세요?
사 내 : 응.
목소리 : 언제부터 그랬어요?
사 내 : 늘상 그래.
목소리 : 고민이 많아서 그래요.
사 내 : ( 혼잣말로 ) 고민 없는 사람도 있나.
목소리 : 제가 싹 고쳐 드릴께요.
사 내 : ( 객석을 보며 ) 전 우리 몽짜치기를 죽인 죄
로 2년형을 받습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감옥소에서 보내면서 이런 걸
느꼈습니다. 아주 유치한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
고. 그건 제 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의무감에서 면회를 왔
고, 와서는 별 얘기도 없이 가버렸죠. 성지순례
와 같은 옥살이와 면회도 이처럼 일상으로 변해
갔던 것입니다.
사내, 죄수복으로 갈아입고 의자에 앉는다. 처
가 등장한다.
면회장면. 궁여지책으로 어렵게 대화한다.
처 : 몸은 어때요?
사 내 : 그저 그래. 당신은?
처 : 저도요.
사 내 : 장모님은?
처 : 늘 그렇죠 뭐. 쑤시고 아프고 저리고. 그저 늙
으면 빨리 죽어야 한다고 틈만 나면 푸념이시
죠. 원장수녀님이 위독하시대요.
사 내 : 그래?
처 : 승일씨가 그러더군요. 며칠 전에 다녀갔어요.
사 내 : 뭐한대?
처 : 철공소에서 일한대요. 돈 좀 부쳐드릴까요? 약
값 하시라고. 원장수녀님한테
사 내 : 주소는 알아?
처 : ( 멋적은 웃음으로 ) 아뇨.
사 내 : 옆방에 사기죄로 들어온 친구가 있는데 재밌
어. 과거 얘기가. 과장도 있을거야.
처 : 호영이네가 이사갔어요.
사 내 : 언제?
처 : 3일 전에요. 이삿짐이 얼마나 많은지. 작은 집
에 그 많은 짐들이 다 들어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더라구요.
사 내 : 요새 무슨 책 읽고 있어?
처 : 안 읽어요.
사 내 : 왜?
처 : 안 읽어도 편해요.
사 내 : ( 시계를 본다 )
처 : ( 역시 시계를 보며 ) 3분이나 남았네요.
사 내 : 학교 선생들은 잘들 있고?
처 : 소식도 없어요. 잘들 살겠죠 뭐.
사 내 : 그렇겠지?
처 : 예.
사 내 : 최판동인?
처 : 많이 도와줘요.
사 내 : 시 좀 써보지 그래.
처 : 시는 무슨.
사 내 : 혼자 밥 먹기 싫지?
처 : 예.
사 내 : 다음부턴 안 와도 돼.
처 : 왜요?
사 내 : 오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든지.
처 : 죄송해요, 재재보살이 못 돼서. 아참, 영옥이
가 돈 있음 백만 원만 꿔 달래요. 이부로 쳐 주
겠다고.
사 내 : 아, 그래?
처가 퇴장한다. 사내, 평상복으로 다시 갈아입
는다.
사 내 :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였죠. [ 죄송해요. 재재
보살이 못 돼서. 아참, 영옥이가 돈 있음 백만
원만 꿔달래요. 이부로 쳐 주겠다고.] 아무 관
련도 없는 이 말을 남기고 아내는 자살을 했습
니다.
유서고 유언이고 아무것도 없었죠. 몇 편의시가
유서라면 유서겠죠.
( 빠른 속도로 애기하듯 )
며칠 전에 비로소 깨우쳤습니다.
시작이란, 우리가 무심고 내뱉는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의 소중함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감히 이렇게 말할랍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이 말이 내 운명을 바꿔버릴 겝니다.
사이
그 무렵 아내의 낙서죠. .... 어찌됐든 가장 잔
혹스럽다는 쥐약을 먹고 아내는 죽었습니다.
그때 남자 와이셔츠에 팬티차림인 박경숙이가
이제 막 목욕을 끝낸 양수건을 목에 두르고 등
장한다.
경 숙 : 뭐 잘못 드신 건 없어요?
사 내 : 아니.
경 숙 : 이상하네. (뒤에서 사내의 목과 어깨를 주무른
다. 뒤통수를 쿡쿡 찌르며)
여긴 어때요?
사 내 : 글쎄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경 숙 : 꾀병 아니죠?
사 내 : 아냐.
경 숙 : 손을 따봐요?
사 내 : 그건 한의잖아.
경 숙 : 요즘 세상에 한의, 양의가 어딨어요. 서방님이
맥이 막혀 죽어가는 판국인데.
사 내 : 짜발량이 의사가 어디 한둘이던가.
경 숙 : 아직도 가슴이 답답해요?
사 내 : 응. .... 아니 솔직히 모르겠어. 답답한 건지
메스꺼운 건지.
경 숙 : 네에?
사 내 : 왜?
경 숙 : 이상하잖아요.
사 내 : 뭐가?
경 숙 : 솔직히 모르겠다. 답답한 건지 메스꺼운 건
지.
사 내 : 그게 왜?
경 숙 : 첫째, 답답한 거나 메스꺼운 거나 대충 같은
뜻일 텐데 왜 별나게 구분해서 말했을 거며
둘째, 또 그정도 감정의 얄쌍한 차이에다가 솔
직히라는 말은 어디서 굴러들어온 뚱딴지 같은
소린가. 역사적 선택을 묻는 대목도 아닐진대
너무고지식하고 과격한 사용은 아니었던가.
셋째, 그렇다면 선생님은 지금 건성으로 얘기하
고 있으며 생각은 다른데에 가 있었다는 결론으
로 미루어 내 자신 너무 초라하다 이거죠.
사 내 : 숨 좀 쉬거라.
경 숙 : 같이 있으면서도 시선을 저에게 고정시키지 못
했으니 이 몸이사 매력 빵점일 수밖에. 억울해
요. 여우 두마리가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니까요.
사 내 : 아니야. 여우 하나에 (경숙을 가리키며) 백합
하나지.
경 숙 : (지압을 세게 하며) 지금은 어때요? 솔직히 말
해봐요.
사 내 : 솔직히 말하라 ........ 우리 결혼해선 안돼.
경 숙 : 승자는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보고 패자는 넘
어지면 일어나 뒤를 본다.
사 내 : 그런 생각이 들어. 시나브로.
경 숙 : 승자는 세 번 쓰러져도 또 일어나고 패자는 쓰
러진 세 번을 낱낱이 후회한다.
사 내 : 달리 생각해봐. 건장하고 실한 놈으로.
경 숙 : 후후후. 다시 원점 회귀해 보시자? 황재규.
43세. 전직 고등학교 영어선생. 지금은 학원 강
사. 태생이 별 볼일 없고 결혼해서 상처(喪妻)
한 경험도 있다. 그에 비해 박경숙. 28세. 꽃다
운 나이에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 과정에 있으
며 집안이 넉넉하고 결혼한 경험도 없으시다.
뭇남성들에게 요만큼의 정도 준 적 없는 알짜
처녀다.
사 내 : 난 반쪽이고 시들었어.
경 숙 : 반쪽이고 시든 사과고 일단 씹어나 보자구요.
사 내 : 경숙아.
경 숙 : 네에. 황재규 씨 말씀해 보시지요.
사 내 : 에이 관두자.
경 숙 : 그럼요. 반론을 펴봤자 어제처럼 또 돌돌 말려
종국엔 지고 말 텐데요 뭘.
(뒤편에서 껴안으며) 선생니임.
사 내 : 일 없다 인석아.
경 숙 : 뭐가요?
사 내 : 선생님 소리가 듣기 싫어.
경 숙 : 재규씨.
사 내 : 너하곤 심각한 얘길 할 수가 없어.
경 숙 : 사모님하고는요?
사 내 : 잘 ㄷ지.
경 숙 : 낭군이시여. 이 잔잔한 호수가에 돌팔매질하지
마시와요. 이 소저 아프옵니다.
사 내 : 어떻게 이렇게 변했지?
경 숙 : 볼독이 똥개 봤다 아입니꺼.
사 내 : 고등학생 땐 맨날 질질 짜며 울더니만.
경 숙 : 그땐 말예요. 둘을 쫌맬 수 없다고 늘 비관해
왔었죠.
사 내 : 지금은?
경 숙 : 운명의 실타래가 꽁꽁 동여매져 있다니까요.
사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릴듣는 순간 직감적으
로 그걸 느꼈죠.
사 내 : 넌 아직 날 몰라. 경숙아.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경 숙 : 뭔데요?
사 내 : 돼지가 오토바이 타는 얘기.
경 숙 : 웬 돼지?
사 내 : 옛날엔 접붙이려면 할아버지가 회초리로 씨돼
지 엉둥짝을 때리면서 요리조리 몰고다녔거든?
헌데 요세는 오토바이에 태워 나른대. 오토바이
뒷좌석에 쇠틀 상자를 만들어 거기에 태우고 다
니면서 접붙인다 이거야. 그러니까 이 씨돼지가
오토바이만 탔다 하면 벌써 그건 줄 알고 꿀꿀
꽥꽥 신난다는 거지. 너, 씨돼지가 암퇘지한테
어떻게 접근하는 줄 알어? 주둥이로 암컷 목덜
미 같은 데를 쿡 찔러. 암컷이 놀라면 이쪽으로
와서 아무짓도 안 했다는 듯 앞발로 땅만 파지.
그러다가 쿡 찌르고 쿡 찌르고. 능청부리며 내
숭떨며 슬슬 접근한다고. 서서히 잦게 되지. 그
만큼 가까워지고. 이때다 싶으면 놓치지 않고
저질러버려. 자고로 사람이든 사람이든 짐승이
든 저질러버리지 않고는 정리가 않되나봐. 일이
끝나면 종돈은 지 우리로 돌아가 발라당 누워버
려. 이내 쿨쿨 잠만 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
럼. 암컷은 달라. 다음날부터 수컷 우리를 향해
울부짖어. 얼마나 시끄럽다고. 꽥꽥...꽥꽥. 나
중엔 눈물 흐른 자국에 골이 생겨 자국이 깊게
패일 정도라니까. 사람하고 똑같지. 경숙아 무
슨 뜻인지 알았어?
경 숙 : 내일 두 시에 만나쟤요. 엄마가요.
사 내 : 거 봐.
경 숙 : 식장도 잡고 장롱도 보자구요.
사 내 : 어랍쇼?
경 숙 : 기쁘시죠? 그쵸?
사 내 : 왜 또 마음을 바꾸셨대? 한사코 반대 방향으로
줄달음치시더니.
경 숙 : 그러니까 우리 엄만 개구락지라니까요.
사 내 : 응?
경 숙 : 어디로 뛸지 모른단 말입니다.
사 내 : 잘못 뛰셨군. 뱀 아가리로 뛰었어.
경 숙 : 아빠가 문제긴 문젠데 엄마가 장롱을 보잘 땐
그쪽도 대략 굳히셨다는 뜻이 아니겠어요. 들어
가면 무슨 말인가 있겠죠. 서방님께선 축 개통
식 준비나 하고 있으시라구요. (와이셔츠를 벗
어던지며) 이거 이제 그만 입으세요. 땀냄새가
배었어요.
사 내 : 가려고?
경 숙 : 예. (청바지에 윗도리를 아무렇게나 입는다)
내일 아침에 네 시간짜리 수술이 있어요. 김 박
사님이 날 파트너로 찍었대요. 그 권위에 찬 영
감탱이가 내 실력을 인정했다 이거죠. 교과서
지식만으로 가득찬 쓸모없는 꼬맹이라고 밟아버
릴 때는 언제고. 거 봐요. 역사는 이렇게 잔잔
히 변하는 거예요. 더이상 역사의 변두리에서
낙오자로 머물러 있지 마세요. 역사는 도도히
흐르고 그 역사 따라 선생님도 나이를 먹는다니
까요.
사 내 : 가봐. 나도 혼자서 좀 생각해 봐야겠다.
경 숙 : [여보! 식후에 이 약 두 알 드시고 푹 주무세
요] 잘안돼요. 여보라는 소리가. [여보. 식후에
이 약 두 알...] 자꾸 하다 보면 이력 붙겠죠.
이력 붙음 우리 애기도 생길 테고. ...오늘황홀
했어요. 선생님이 거칠게 나오니깐 나도 이상해
지더라구요.
사 내 : 또 저놈의 는실 난실. ......가봐.
경 숙 : 잠깐만. (전축 있는 데로 가서 음악을 튼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내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
세요.
사 내 : 뭘?
경 숙 : (전축 옆에 있는 액자를 집어들고는) 이것도
좀 그만 보시구요. 제가 가져 가겠어요.
사 내 : 안돼 이건. (뺏는다)
경 숙 : 선생님. 도데체 구겨진 삶이 뭐 어떻다는 거
죠?
경숙, 퇴장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묵묵히 앉아있는 사내.
사방을 둘러보다가 일어나 액자를 책장 뒤켠에
숨겨놓는다.
침대로 가서 누우며
사 내 : 여기서 고것 하고 팔베개하고 있으면 당신이
천정에 큰 대(大)자로 착붙어서 빤히 내려다 보
고 있다니까. 엉겨붙으면 당신이 식칼을 들고
수직낙하할 자세야. 엣다 모르겠다 하고 올라타
면 순간 등작에 묵직한 게 박힌단 말이야. 으
흑!
사이
최판동이한테서 엊그저께 전화왔었어. 미친놈
사냥가쟤. 노루피가 몸보신에 최고 라나? 요새
도 지 마누라시켜 밑반찬을 해보내. 보름에 한
두번은 꼭. 여보! 나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시
도 때도 없이 씨부렁댄다니까. 지금처럼. 이렇
게 씨부렁대고 혼란스러워야 언젠가는 정갈하게
씻기울 것 같거든. 왜 이런 거 있잖아. 내 잇
(利)속을 위해 친구를 배신하고 밀고해서 그 친
굴 옥살이시켜, 그게 두고 두고 죄의식으로 남
아 있을 때, 갑을병정 만나는 사람마다 십수 년
전 과거지사를 털어놓으며 [난 나쁜 놈이다. 난
죽일 놈이다] 소릴 연발하노라면 언젠가는 죄가
가벼워지거나 없어질 것만 같은. ...늘 우리 몽
짜치기 얘기지. 몽짜치기가 누군지 모르지? 내
가지었어. 몽짜치기란 겉으로는 어리석은 체하
면서 속은 딴 생각으로 가득찬 엉큼한 녀석이란
뜻이야.
의사가 흰 가운을 입고 등장한다.
가상의 신생아를 놓고 수련의 학생들에게 설명
하듯
의 사 : 좌우 대뇌 반구를 구분하는 반구간 뇌열이 생
기지 않음으로써 뇌가 호떡 같이 둥글게 되고
따라서 축뇌실도 중앙에 하나로 위치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신경관 결손의 다음 단계 발
생이상으로써 거의 예외없이 얼굴의 기형을 동
반하게 되지요. 즉 얼굴의 중앙부 기형이 특징
으로 두 눈사이의 거리가 짧아지고 코가 작고
위치가 달라지고 입의 기형을 동반하기도 하며
트리조미 13증후군에 합병되기도 합니다.
사 내 : 사람의 대뇌는 땅콩 깍지모양으로 생겨야 된답
니다. 이렇게. (두 손으로 원 두 개를 만들어
붙인다)
의 사 : 본래의 뇌는 두 개의 반구로 되어 있죠.
사 내 : 그런데 우리 몽짜치기는 그게 하나라 이겁니
다. 원통 모양처럼 둥근 것하나.
의 사 : 대뇌 분할이 이루어져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
다.
사 내 : 의사들은 병명을 곧잘 음식에 비유하는데 우리
몽짜치기를 의대 용어로 빈대떡이라 부른다더군
요.
의 사 : 팬 케익이라 부르지요.
사 내 : 우리 몽짜는 외눈박이에 코가 없고 콧구멍만
눈 위로 붙었으며 눈 아래에 입이 있고 그 밑에
귀가 있었습니다. 인중은 없었지요. 그래서 젖
도 못빨지요. 담당 의사 말로는 홀로텔렌세팔리
에다가 아멜리아를 동반했답니다. 무슨 뜻이냐
고 물으니까.... .
의 사 : 전종뇌증 환자인데다가 아멜리아를 수반했습니
다. 전종뇌증이란 얼굴 중간배엽에 이상이 생긴
거고 아멜리아란 팔이 있을 자리에 손이 붙었다
는겁니다.
사 내 : 이러한 기형은 대개 치사적이어서 신생아기의
대부분 사망하거나 사산되지만 그 정도가 약하
면 소아시절까지도 살 수가 있다는 겁니다. 우
리 몽짜는 불행하게도 건강한 편이었죠.
의 사 : 중뇌와 소뇌 및 뇌간은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기 때문에 4-5세까지 살 수 있지 않겠느
냐.... 조심스럽지만 그렇게 추정됩니다.
사 내 : 원인이 뭡니까?
의 사 : 발생 원인은 다른 기형아도 마찬가집니다만 구
체적으로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더 연구해야 될 부분입니다. 우선 산모가 살리
도 마이드라는 수면제를 향용해 왔는 가라는 점
이 의심스럽습니다. 또한 유전자 즉 염색체이상
이 가계에 있지 않았는가. 그 외에도 마약, 감
기, 바이러스, 감염, 풍진 등을 꼽을 수 있습니
다. (퇴장)
사 내 : 의사한테서 미리 소상히 설명을 듣고 각오도
해봤습니다만 그녀석을 처음 보는 순간 ...안되
더라구요. 하느님의 저주였습니다. 오래 살 것
같더라니까요. 너댓 살이 아니라 환갑 진갑까지
도 살 것 같았죠. 못된 것이 오래가고 추한 것
이 질기지 않습니까? 나일롱이 싸구려니까 얼마
나 질깁니까. 검정고무신도 그렇고. 그런 거라
구요.
처가 환자복차림에 병원용 휠체어를 타고 등장
한다. 사내, 처에게로 가 휠체어를 밀어준다.
병원 복도를 가고 있다. 효과음이 들린다.
[권홍길 선생님. 권홍길 선생님. 신경정신과 중
환자실로 급히 가주시기 바랍니다. 송광림 선생
님. 송광림 선생님. 제2병동 712호실로 급히 가
주시기 바랍니다.]
처 : 이뻐요?
사 내 : 그럼 이쁘고 말고. (관객에게) 처한텐 일단 속
이기로 했습니다. 간호사 한테도 그리 일러두었
어요.
처 : 누굴 닮았어요?
사 내 : 날 닮았던데.
처 : 그래요? 그럼... .
사 내 : 늡늡하고 호방형이지.
처 : 거짓말. 무슨 애기가 벌써 그럴라구.
사 내 :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일단 보시라니까.
처 : 어디에요?
사 내 : 저 끄트머리야. 신생아실이.
처 : 학교는요?
사 내 : 까짓거 학교가 문제야. 마나님께서 아드님을
무우뽑듯 쭈욱. 교장께 말씀드렸어. 일주일간
휴가.
처 : 좋은 학교예요.
사 내 : 아암. 평소 열심히 근무한 덕분이지.
처 : 우리집에 역락했어요?
사 내 : 응.
사 내 : 처 근데 왜 엄마가 안 오시죠?
사 내 : 아냐. 왔다 가셨어. 아까 당신 잠잘 적에.
처 : 어어 잠잔 적이 없는데.
사 내 : 아냐. 아까 깜박 했어.
처 : 애기도 보시구요?
사 내 : 응, 이쁘대.
처 : 언제 또 오신대요?
사 내 : 불변하신가봐. 인대가 늘어났대.
처 : 아, 예. 언제 퇴원하래요?
사 내 : 일주일쯤?
처 : 순산인데 왜 그리 길어요?
사 내 : 밑두리 콧두리 캐묻긴. 병원에서 푹 좀 쉬라
구. 산후 조릴 잘해야지. (관객에게) 겨울치곤
청명한 날씨였어요. 대나무 빗자루를 일렬로 거
꾸로 박은 듯한 가로수가 복도 창문을 통해 보
였지요. 창밖은 평화스러웠습니다. (처에게) 저
기 쟤야.
처 : 어머. 막 움직이네.
사 내 : 이쁘지?
처 : 담당 간호사 스타킹 좀 사주세요. 바뀔 적도
있대요. 뒷갈망을 잘 해야 된다구요.
사 내 : 그러지.
처 : 안아보면 안돼요?
사 내 : 체중미달이래. 인큐 베이터 속에서 얼마간 있
어야 된다나봐.
처 : 얼마나요?
사 내 : 글쎄, 보름쯤? ... ...가자고.
처 : 잠깐만요.
사 내 : 왜 또 시(詩)를 쓰게?
사내, 무대 중앙으로 온다.
처는 서서히 퇴장.
사 내 : 처갓집 식구들이 왔을 때가 무척 곤혹스러웠습
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면 복도에 나가 실컷 울
고, 들어와서는 태연한 척 연기를 해야했죠. 처
는 틈만나면 아기보러 가쟤지 저는 그때마다 미
리 찍어둔 뉘집 애기를 보여주며 거짓 웃음을
팔아야지, 몽짜는 집채만한 그물로 투망질해오
고 있는데 전어어어어 하며 그저 뒷걸음질만 칠
뿐. 정공법을 택해 아내에게 사실대로 알려야
할지, 미리 제 선에서 죽인 다음 잘못되어 죽었
노라고 위로조로 나가야 할 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방임조로 끝까지 흘러가는 시간에 맡겨
야 할 지. 그 날도 큰 맘 먹고 병원에 갔었지만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전날처럼 허겁지겁
뛰쳐나왔습니다. 나온 즉시로 포장마차로 달려
가 소주를 콜라잔으로 너댓 잔 퍼댔지요. .....
그때가 우리 몽짜가 태어난 지 삼사일 정도 지
났을 겁니다. 병원 복도에 고주망태가 되어 쭈
그려 앉아 있는데 담당 간호사와 마주치게 되었
습니다.
간호사, 손에 차트를 들고 등장.
사 내 : 안녕하십니까.
간호사 : ( 그냥 지나치려다가 ) 아, 예. 힘드시죠?
사 내 : 예.
간호사 : 어떻게......?
사 내 : 글쎄요.
간호사 : 그럼 이만.
사 내 : 저어... 굉장히 바쁘신가부죠?
간호사 : 말씀하시지요.
사 내 : 병원측에선 어떻게 해주지 않나요?
간호사 : 살리는 것이 병원의 임무입니다.
사 내 : ( 버럭 소리 ) 그야 알죠. 무슨 방법이 없겠습
니까?
가호사 : 글쎄요. 무슨 뜻인지.
사 내 : 솔직히 죽이고 싶습니다. ( 관객에게 ) 그랬더
니 간호사는 암팡스럽게도까 씨익 웃는 것이 아
니겠습니까. 처음엔 댁 혼자 알아서 하라는 식
으로 딱 잡아떼더니 나중엔 제가 안돼 보였던
지.
간호사 : 뭘 망설이세요. 퇴원 시키세요. 당장 오늘이라
도.
사 내 : 그리고선?
간호사 : 아무것도 메이지 말고 이삼 일만 두세요.
사 내 : 아, 예.
간호사 : 특히 그 아인 인큐베이터 속에 있었기 때문에
찬 공기를 쐬게 되면 더욱 빨리 원하시는 대로
될 겁니다. 그럼 이만 ( 돌아서서 걷는다 )
사 내 : ( ㅉ아가며 ) 퇴원은 마음대로 시켜주나요?
간호사 : ( 멈춘 채 ) 그럼요.
사 내 : 고맙습니다. ( 관객에게 ) 아내 곁에 와서 밤
새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도무지 할 짓이 못
되더군요. 생명은 생명 아닙니까? 다음날 간호
사를 봤을 때 못하겠노라고, 그렇게 말했습니
다. 이런 방법을 알려주더군요.
간호사 : 해외 입양건이 있긴 있습니다. 외국엔 기형아
만을 골라 받는 단체가 있거든요
사 내 : 아, 그게 좋겠네요.
간호사 : 다른 방법은 없어요.
사 내 : 하지만 보호자가 원할 경우에 한해 연구 재료
같은 것으로 받아주진 않나요?
간호사 : 병원에서요?
사 내 : 예.
간호사 : 산 사람을 어떻게 재료로 쓰겠어요?
사 내 : 그래도 보호자가 아주 딱한 사정이라면.
간호사 : 물론 인큐베이터에 연결된 게베이직 튜브만 빼
버리면 신생아는 죽지요.
사 내 : 글쎄 글런 방법 말입니다.
간호사 : 안될 거예요. 전에는 그런 적이 가끔있었다고
해요. 아주 딱한 경우에 한해. 그런데 몇 년 전
에 산모가 하두 사정을 해서 그리 처리를 했는
데 나중에 산모가 고소를 해서 그 병원이 망했
답니다.
사 내 : 결국 해외 입양시키는 방법이 제일 상책이겠군
요.
간호사 : 그렇겠죠.
사 내 : 수속이 복잡하진 않나요?
간호사 : 간단해요. 동의서만 작성하면 되니까.
사 내 : 그런 케이스는 더러 있구요?
간호사 : 알아봐야죠.
사 내 : 꼭 좀 어떻게든...
간호사 : 과장님한테 잘 말씀드려 볼께요. 어려울지도
몰라요. 부탁하는 사람이 적잖거든요? ( 퇴장 )
사 내 : 그렇겠죠. ( 관객에게 ) 흐음, 다음날 그 간호
사를 만나 안 받겠다는 걸억지로 삼만 원을 쥐
어 주었습니다. 수고가 많노라고. 그 다음날 알
아보니 아직 자리가 없다는 거예요. 하지만 가
능성은 보인다고. 그날 다시 오만원을 더 주었
습니다. 당시 제 월급이 팔구만 원 할 땝니다.
눈물이 나더군요. 화장터에서도 돈을 줘야 다른
사람의 뼛가루와 섞이지 않고 잘 빠올 수 있다
듯이 죽는 마당에서도 돈이구나 생각하니 몰랐
습니다. 간호사한테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
노라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지요. 그런 흡족한
마음으로 아내 병상에 걸터앉아 어둠 속에 잠들
어 있는 서울 야경을 보았습니다. 휘황찬란한
오색 등불이 사진에서 본 여느 외국 도시 못지
않았습니다. 전 그 이색지대에 혼자 떨쿼진 이
방인 같았구요. 가끔씩 잉오잉오 하는 구급차
소리가 정적을 깨곤 하였습니다. 야경을 보려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막상 입양건이 뜻대로
되고 보니 이젠 그런다고 살인죄가 어디로 가는
줄 아느냐, 니가 받은 벌을 누구에게 미루려 하
느냐, 돈을 주고 자식 목숨 내놓은 놈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생매장시키는것보다 더 무서운
일 같았습니다. 비겁하고 능칼치고 졸렬하고.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 자식을 절대로 남
의 손에 넘길 수는 없다고.
순간, 암전. 어린 시절의 회상 장면이다. 수녀
복차림의 원장에게만 핀 라이트.원장수녀의 손
엔 죽은 닭이 들려져 있다. 축 늘어진 채로.
사 내 : ( 어둠 속에서 어린 목소리로 ) 원장수녀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원 장 : 어서 대답해보아.
사 내 : 제 배고픔만을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했습
니다.
원 장 : 아니다.
사 내 : 친구들을 꼬드겨 나쁜 일에 앞장 선 것이 제일
큰 죄입니다.
원 장 : 아니다.
사 내 : 원장수녀님의 말씀을 어기고 또 규칙을 어겼습
니다.
원 장 : 아니다.
사 내 : 제 배고픔 때문에 한 생명을 죽였습니다.
원 장 : 재규야.
사 내 : 예.
원 장 : 이번이 네 번째다. 그렇지?
사 내 : 예. 잘못했습니다.
원 장 : 너를 이 광 속에 가두어 벌을 주려는 것이 다
른 데에 있지 않다. 닭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이 닭을 팔아 양식을 못 사서도 아니고. 니가
배고프다하여 어찌 닭의 목을 비틀어 모질게 죽
이고 털을 뽑고 속창자를 긁어내서 구워 먹을
수가 있단 말이냐. 너만 할 땐 나비랑 잠자리가
어떻게 신비스럽게 날아다니는지, 나무랑 꽃들
이 얼마나 이쁜지, 그런 마음으로 자라야 된다.
명심해서 들어보아.
사 내 : 예.
원 장 :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 먼
소경을 만나셨다. 제자들이 물었다. [예수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
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
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 자기 죄 탓도 부모
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
의 권능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 재규야. 잘
생각해 보아라. 이때 하느님의 권능이란 무엇이
더냐? 이 광 속에서 눈을 감고 그 답을 생각해
보아라. 바른 답이 나오거든 그때 소릴 질러 내
게 알리거라. ( 퇴장 )
사 내 : 원장수녀님. 원장수녀님.
원래의 조명으로 돌아온다. 사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사 내 : 죄를 짓게 되면 네 번 짓게 된답니다.
죄를 짓고 죄를 반복하고 탄로나면 변명하고
종국엔 남에게 전가하고 ....... 그래도 토를
달게 되는 것은 죄많은 인간이기 때문일 거예
요. 바람이 까닭도 없이 스쳐 지나가듯.
사 이
처한테는 급히 좀 다녀와야 할 데가 있다고, 이
삼 일쯤 걸릴 거라고 일러두고는 퇴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의사가 그러더군요. 지금 퇴원시키
면 죽는다고.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간호사는
어리벙벙해 있구요. 그 안면에 소리치고 싶었습
니다. 이 황재규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더럽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떳떳하고 용감하게 살고 싶
지는 않다고. 품에 안기자 킥킥킥 늘키더군요.
우리 몽짜도 제 손에 들어가면 죽으리란 것을
알았던 모양 이에요. 그날 함박눈이 야나치게
내렸습니다. christmas 전전날쯤 될 거예요
지나는 길목마다 징글벨이 울리고 산타클로스
가 나타났습느다. [ 제길헐이 자식 좀 부활되었
으면 ...] 집에 도착하니 아기가 다시 울기 시
작 하더군요. 되도록 그놈의 얼굴을 안 봤습니
다. 솜이불로 아기를 돌돌 말아 벽장에다 쳐박
았습니다. 가방을 챙겨 가지고 나왔습니다. 장
항선을 타고 대천에서 내렸지요. 겨울바다 ...
삼일 예정으로 갔었지만 하루만에 올라와버리고
말았습니다. 일률적인 파도의 반복이 시간을 더
욱 더디게 하는 것 같아서요. 파도를 보고 있노
라면 시간은 가만히 있고 파도만 부서지는 것이
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 막바로 집으로 가려
고 했습니다.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에 내려 술
집을 찾아갔지요. 종점에는 무슨 술집이고 있게
마련이거든요. 이차로 매미집에 가서 또 한차례
퍼마셨지요.
사내, 술에 취해 홍알거린다. 술집 여자와 하냥
어울려 한바탕 놀아제낀다. 젓가락으로 박자도
맞추며 익살스런 동작으로 춤도 추고 노래도 한
다. 뭔가 잊어보자는 심사다.
사 내 : .....그날이 바로 christmas 였죠. 동창이 밝
자 술집을 빠져 나왔습니다. 집으로 부랴부랴
달려갔지요. 이젠 죽었겠지. 분명히 죽었을 거
야. 숨 막혀 죽었던가 배 곯아 죽었던가 추워서
죽었던가 어떻게든 죽어 있겠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벽장 속에 있어야 할 아기가 아랫목
에 두터운 솜이 불을 깔고 누워 있는 게 아닙니
까. 방도 따끈따끈하고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
습니다. [누가 왔다 갔나? 장모가? 처 조카가?
]
사내가 아이의 목을 조르려는데 처가 사내를 떠
당구친다. 그 바람에 처가 들고 있던 큰 봉투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분유통 등 유아식품이 너절
하게깔린다. 처가 그것을 봉투에 주워 담는다.
사 내 : 어떻게 된 거야.
처 : 다 알아요.
사 내 : 언제 퇴원했어?
처 : 직감이죠. ( 젖병에 분유를 넣어 흔든 다음 다
시 사발에 ㅆ는다 ) 다들 이상했어요. 엄마나
동생도 이상하게 날 외면하고.
사 내 : 병원에서 다 말해줬어?
처 : ( 분유를 숟가락으로 떠서 아기에게 먹이며 )
이녀석은 인중이 없어서 떠멕여야 해요. 그래도
곧잘 받아먹더라구요. 이봐요. 배고팠나봐요.
호호호. 까꿍. 에롱에롱. 곧 놀소리도 할 거예
요. 아침에 병원에 댕겨왔어요.
사 내 : 병원에? 얠 데리고?
처 : 건강하대요. 한번은 친구 딸이 백일이라 대학
동창끼리 우르르 몰려갔었는데, 왜 백일이면 그
아기한테 뭐라고 한 마디씩 칭찬해야되잖아요.
[ 어휴 이쁘다. 공주같다. 크면 남자깨나 홀리
겠는데.]
할 말이 있어야죠. 내가 보기에도 아기치고 그
렇게 못 생긴 앤 처음이었어요. 하다못해 발이
라도 잘 생겼으면 [ 발 좀 봐라 얘. 두툼한 게
복발이다 얘. ] 어떡해요. 서로들 쳐다보며 옹
색해 하길래 내가 친구한테 이랬죠. [ 건강하다
얘. ] 와락 웃음이 터졌죠. 여자 애한테 건강하
다니 ..... 우리 친구들이 오면 뭐라고 말들 할
지 그게궁금해요.백일을 안 쇨 수도 없고 이름
은 뭐라고 짓죠?
사 내 : 키울 작정이야?
처 : 죽일 작정이세요?
사 내 : 응.
처 : ( 울먹이며 ) 저주예요, 저주.
사 내 : 진정하구려.
처 : 하느님이 주신 천벌이라구요.
사 내 : 여보. 죄가 있다면 그건 운명이야. ( 관객에게
) 다른 것은 둘째치고라도 자기 몸에서 이런 흉
칙한 것이 나왔다는 데에대한 몸부림은 정말 무
서운 것이었습니다.
처 : 내 탓이에요, 내탓.
사 내 : 책임지는 건 우리지만 사는 건 얘라니까.키워
놓으면 철학이나 종교를 통해 스스로 지 삶을
개척해 나갈 거라고 반문하고 싶겠지. 얜 달라.
처 : 여보란 듯이 키울 거예요.
사 내 : 키울 수 없어.
처 : 무슨 뜻이죠?
사 내 : 우리가 키울 수 없는 애를 누가 대신 키워줘.
처 : 대단한 용기시군요.
사 내 : 빈정거리지 말어. 나도 이 자식 애비야. 천륜
도 알고 법도 말고 양심도 있다구. 이것 봐. 법
에서 이것을 살인이다 하니까 죄의식도 느끼고
양심적인 가책도 느끼는 거야. 양심을 먼저 느
끼고 법을 생각해 보자구. 별 것도 아니야. 어
디애가 흉직해서 못 키우냐? 젖 주기가 무서워
서 못 키우는 거야? 부모라면 절대로 키울 수
없다고. 왜? 사랑하니까.
처 :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사 내 : 나도 그래. 결론을 냅시다.
처 : 내 보시죠.
사 내 : 끌면 끌수록 아파.
처 : 키울 거예요.
사 내 : 못 키워.
처 : 누구 맘대로.
사 내 : 내 맘대로.
처 : 뭐예요? (소리없는 악다구니. 마치 화면은 나
오고 음량은 없는 TV 모습)
사 내 : (관객에게) 끝까지 맞서기가 싫었습니다. 그런
문제는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기도 하고요. 이틀
이 지났습니다. 서로 아무 말도 없었죠. 아내는
왼종일 성당에 나가 빌었고 전 대가릴 벽에 기
대고 하염없이 우리 몽짜만 지켜보고.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처에게) 얜 지금 병원
에 데려간다해도 얼마 못 살아.
처 : 사는 데까지 살리는 거예요. 멀쩡한 다른 애들
마냥 사랑하면서.
사 내 : 당신은 걸핏하면 이놈이 우리의 천벌에서 왔다
는데 왜 이놈까지 그 천벌에 처박아야 돼. 만약
에 당신 말대로 하느님이 정녕코 우리에게 내린
천벌이라고 한다면 우리 둘만 그것을 걸며져야
할 거야. 이 녀석한테까지 지고 가라 할 순 없
지. 이놈은 아무 죄도 없쟎아 안 그래?
처 : 결과란 늘 나에게 머무는 하느님의 복음이며
명령이에요.
사 내 : 중요한 건 마음이야. 살아가는 자세고.
처 : 당신이 애를 ......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 내 : 아암.
처 : 그런 다음에는요?
사 내 : 나야 어딜 가서 빌겠어. 그렇다고 시침 뚝 떼
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케 살 배짱도 없
고.
처 : 그럼 당신은 자수해서 옥살일 하고 난 여기 남
아 옥바라지 하고요?
사 내 : 같이 하든가.
처 : 옥살일 아무 위안도 안 줘요. 내게는.
사 내 : 그럼 내가 나올 때까지 어디 깊숙한 기도처를
잡아보든가.
처 : 오래 살까요?
사 내 : 누가? 얘? 나?
처 : 당신 말예요. 내가 알아봤어요. 삼사 년쯤 살
거래요.
사 내 : 그렇게나 길어?
처 : 사진까지 찍어뒀어요.
사 내 : 누굴?
처 : ( 턱으로 가리킨다 ) 법정에 제시하면 흉칙한
정도에 따라 정상참작을 해 줄 거래요.잘 하면
일이 년도 가능하구.
사 내 : 당신도 내 식이었군,그래.
처 : 떨어져 있기 싫어요.
사 내 : 그래. 미안해. 일부러 딱딱거려 본 거야. 기다
려줘.
처 : 여보, 날 사랑하죠?
사 내 : 아암.
처 : 죽도록?
사 내 : ( 관객에게 ) 아내는 애초부터 제 말을 수용하
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날 밤 우린 마주 앉
았습니다. 무풍지 떨리는 스산한 방에 아기를
가운데 놓고. 제의는 아내식을 좇기로 했죠.
마주 앉는다. 조명 대신 촛불.
찬송가를 부른다. 효과음으로 처리ㅎ도 좋다.
[하느님이 몸소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리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으리라.
고통도 없으리라
하느님이 몸소 그들의 손에서
모든 환난을 거둬 주시리니
다시는 주림이 없고
피로도 거짓 다툼도 불화도 없으리라.
불화도 없으리라.
하느님이 몸소 그들의 맘에서
모든 번민을 씻어주시리니
다시는 불안이 없고
신음도 아타까움도 절망도 없으리라.
절망도 없으리라.
사내, 성수로 손을 닦는다.
처가 묵주를 성경에 대었다가 자신에 입에 대었
다가 사내의 입에 댄 후 아기의 목에 걸어준다.
처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심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과 아픈 것이 있지 아니하리
다. 그것은 처음 것들이다 지나갔음이라.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
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장차 될일
을 가짐이라.
사내, 목 졸라 죽인다.
처 : 아버지!
사 내 : (관객에게) 촛불이 살랑살랑 바람에 흩날렸습
니다. 몽짜는 그의 고통을 말해 주듯 한 줄기
눈물을 길게 남기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몽짜를
홑이불에 꽁꽁 싸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습니
다. 기슭에 묶어 놓은 나룻배를 타고 강 가운데
로 나갔습니다. 달빛이 강물에 교교히 흘렀습니
다. 우리는 아기를 꽃바구니속에 뉘었습니다.
꽃바구니가 강물을 따라 흐르고 흘러 보이지 않
게 될 때까지 우리의 두 손엔 파문이 일었습니
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죽였다는 사실만 남
는 것이지 그 외의 아름다운 변명 같은 건 있어
주질 않았습니다.
사내와 처가 나란히 걷는다. 길을 가고 있는 게
다.
처 : 날씨가 꽤 쌀쌀하죠? 진짜 겨울이 왔나봐요.
사 내 : 무슨 소리야. 겨울 한복판인데. 만주 바람이
안 보여?
처 : 징글벨 소리도 울리구요.
사 내 : 울렸다 벌써 갔다. 청소차 소리야.
다시 걷는다. 바람소리 쌩쌩.
사 내 : 저기까지 더 갔다 오지.
처 : 저 보초가 이상하게 생각하겠다. 아까부터 왔
다 갔다.
사 내 : 경찰서에 뭐 털러 온 놈인가 하고?
처 : 제일 먼저 무슨 얘길 할 거예요?
사 내 : [이래봬도 이 몸이 자식을 죽인 놈이요.] 형사
들이 놀라겠지. 그러면 또 시시콜콜 다 설명해
야 할 거야.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
처 : 후후후
사 내 : 장모님 말씀이 생각나누만.
처 : 무슨 말?
사 내 : 둘이 결혼하면 삼재에 휘말여 화를 면치 못할
거라고.
처 : 괜한 으름장이었죠.
사 내 : 맞나봐.
처 : 치이. 그런걸 믿으세요?
사 내 : 자꾸 약해져.
처 : 돌아갈까요?
사 내 : 집으로?
처 : 예. 방이 따뜻해요.
사 내 : 별일이야.
처 : ?
사 내 : 옛날 생각이 다 나. 대학시절.
처 : 후회하세요? 나랑 결혼한 거?
사 내 : 당신에게 결혼하자고 했을 때 이런 생각을 했
었지. 하기만 해 봐라. 그못된 고집 단박에 요
절내버릴 테니.
처 : 걸핏하면 동갑내기라고 기어올랐거든?
사 내 : 후후후
처 : 생각나세요?
사 내 : 뭐?
처 : 그때 당신이 잘 하던 말. 항상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죠.
사 내 : 거짓말이었어.
처 : 알아요. 그런 말 하는 사람들 대부분 비범을
꿈꾸거든.
사 내 : 고등학교 선생 직함이 그 비범을 잠재워버렸
지.
처 : 선생이 어때서요.
사 내 : 길 가다가 양놈 지갑 주운 셈이지.
처 : 뭐가요?
사 내 : 당신과의 결혼.
처 : 후후후
사 내 : 참 이상해. 중요한 고비 같아서 멋진 고별사를
하려 했는데.
처 : 기다릴게요. 기다리는 덴 선수잖아요.
서로 울먹이고 있다. 강렬한 포옹. 암전.
어둠 속에 전화벨이 용명되면 사내가 팬티차림
으로 나와 전화를 받는다. 침대쪽에서는 경숙이
가 화장을 하며 수화기를 들고 있다.
경 숙 :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사 내 : 경숙이구나. 밤늦게 웬일이야?
경 숙 : 주무셨어요?
사 내 : 아니.
경 숙 : 내가 틀어준 음악 지금까지 듣고 계셨어요?
사 내 : 아니.
경 숙 : 식사하셨어요?
사 내 : 아니.
경 숙 : 그럼 웬 잡년이 찾아왔어요?
사 내 : 글쎄 왜 그래.
경 숙 : 근데 왜이리 전화를 늦게 받았냐구요.
사 내 : 아참 그걸 왜 물어.
경 숙 : 궁금하잖아요. 얼마나 걱정했다구요.
사 내 : 용건이 뭔데?
경 숙 : 왜 늦게 받았냐니까요?
사 내 : 꼭 대답해야 돼?
경 숙 : 그래요.
사 내 : 똥 눴다 왜?
경 숙 : 얼라. 아까도 한 차례 댕겨오시더니. 세 번 이
상이면 대장염 증세예요.
사 내 : 정확히 세 번째다.
경 숙 : 양은요?
사 내 : 무슨 양?
경 숙 : 똥 양요.
사 내 : 너 맞을래, 죽을래?
경 숙 : 헤헤헤 뭐든 조심하라 이거예요. 봄병아리 조
색 조색거리다가 콕 하면 그로 끝이라니까요.
40대 위기론이 바로 그거예요.
사 내 : 의사양반. 댁한텐 관심거리가 미균 세균 잡균
병균뿐이 없으시구만.
경 숙 : 서방님
사 내 : 왜?
경 숙 : 아빠가 방금 들어 오셨거든요.
사 내 : 그런데?
경 숙 : 뭐라는 줄 아세요?
사 내 : 다음에 만나서 얘기하자고.
경 숙 : "학원 강사랬지?" 예 "마음에 든대? 직장이?"
아뇨 "전공이 영어랬던가?""예. 영어만큼은 최
고예요.아빠 좋은 자리 하나 주라아. 나이도
있는데. [내일 장롱 보기로 했다며?]아빠도 나
오시려고요? [솔직히 섭섭하긴 하다만 니가 어
디 남이가.] 아빠 열심히 살께요.지금은 마음
에 안드실지 몰라도 사노라면 곧 바뀌실꺼예
요.........선생님한테는 사람을 끄는 묘한 매
력이 있거든요.
사 내 : 매력?
경 숙 : 예 그게 뭘까하고 곰곰히 생각해봤는데요....
ㅊ았어요. 연민과 ...힘!
헤헤헤
사 내 : 쯧쯧쯧.
경 숙 : 계소 들어봐요.아무튼 아빠가 방으로 들어 가
려다 말고 대뜸 뭐라고 그러시는줄 아세요? [일
단 그쪽 사표부터 쓰라고 그래.그쪽도 정리할
시간리필요 할 테니까.]헤헤헤헤 거 봐요 여보
세요. 여보세요.
사 내 : 듣고 있어.
경 숙 : 왜 안기쁘세요?
사 내 : 전과자 얘긴 안했지?
경 숙 : 몰라요 아실지도.뒷조사를 다 해봤을거예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생전가도 왜그랬지 하고 묻
는 적이 없어요. 울 엄마 코 밑에 내복 단추구
멍만한 점이 있거든요.아직도 안물어 봤대요.엄
마 마음만 아플거라면서.
사 내 : 나 그냥 학원에 나갈래
경 숙 : 그러실 줄 알았어요.이봐요 황 재규 선생 (신
파쪼로) 비련의 사내는 낡은 아파트 골방에서
ㄱ핵으로 죽어가고 그 여자친구는 부잣집 외동
딸로써 정신적 물질적 성원을 아끼지 않으나 사
내는 끝내 거부하고 외로운 죽음에 기로 들어가
는 것이다..........지금 저하고 영화예기 하자
는거예요?
사 내 : 폐끼치기 싫어서 그래.
경 숙 : 초라해 지는것도 싫으실테고.아까 저한테 종돈
얘기를 했었죠?씨돼지가 오토바이만 탔다하면
그건 줄 알고 좋아한다고.하지만 그건 모르는
거예요.아닐 때도 있을 거 아녜요.오토바이를
타고 가축병원으로 갈 수도 있고 도살장으로 끌
려 갈 소도 있쟎아요.김 아무개 집으로 팔려갈
수도 있고. 아니면 우량돼지 선발 대회에 나갈
수도 있쟎아요.바로 그거예요. 저는 선생님이
운명 따라 골따라 그렇게 청승떨며 사는 게 싫
어요. 유(U)턴 하는거예요.씨돼지가 오토바이를
탔다고 해서 꼭 그짓하러가는 것만은 아니쟎아
요.
사 내 : 뭘 말하려는거야.
경 숙 : 습성대로 살지 말자 이거죠.선생님 과거지사
이쯤되고나면 펼쳐 질 미래가 뭐겠어요.기은 죄
를 밀린 이자갚듯 고갤 떨쿠고 살아갈 거 아녜
요.제가 바라는 건,그럴수록 이 독사 대가릴 하
고 어깨에 힘 팍팍 주고 눈깔에 핏대 세우며,새
인생을 살라 이거죠.여기 미인이 있습니다. 미
인이 멋진 옷을 입고 라라라 지나가는 것도 멋
지지만 교통 사고로 다리한쪽이 절단됐는데도,
찔찔 짜지 않고 목발을 짚고 뙤약볕 속을 쩔뚝
쩔뚝 걷고 있는 미인이 있다면,이것 또한 아름
답지 않은가 말입니다.그겨질 대로 구겨진 삶이
왜 아름답질 않습니까. 이 모진 세파 속에 사는
삶이 어찌 단아하고 정갈하기민 할 수 있겠어
요.
사 내 : 그래. 얘긴 고맙다. 하지만..............
경 숙 : 선생님. 사랑해요.당신의 모든 것을. 언젠가
엄마가 묻더라구요.선생님을 못 잊어 하니까,얼
만큼 좋아 하녜요.쑥스러웠지만 말 했죠.선생님
이 아파하는 것만큼 좋아 한다구요. 선생님을
포기하면 얼만큼 아프겠녜요.선생님을 이만큼
사랑했다면 이만큼 아파 할거라구..요만큼 사랑
했으면 요만큼 아픈거고.
사 내 : 니 말처럼 과거에 묻혀 살아왔을지도 몰라. 그
렇다고 앞으로 과거를 잊고 살 주접도 못돼.
경 숙 : 순진해서 그래요.
사 내 : 너 까불래?
경 숙 : 점점 나아지실 꺼예요. 이 박경숙이가 내버려
두지도 않을 테니까.
사 내 : 그래 그래. 푹 자라 다음에 또 얘기 하고.
경 숙 : 선생님. 호호호호
사 내 : 왜?
경 숙 : 멍이 졌어요.시퍼렇게 .양 허벅지에.....
사 내 : 왜?
경 숙 : 아까 심하게 했나봐요.
사 내 : .........
경 숙 : 벌써 당신이 그리워져요.쪽.
경숙,전화를 끊고 퇴장한다.사내,무대 전면으로
나온다.
사 내 : 기실 니가 고아라면 좋겠다.절름발이라도 좋겠
고.그러면 나와 어울리겠지. 마치 사탕먹는 꼬
마녀석 얼리고 홀려서 단물만 쪽 빨아먹는 버러
지 같아서 싫어.(관객 중 하나를 잡고 )학원에
서 강의하다말고 철학과 얘길 했었죠.내가 다시
너희들 만 해진다면 철학과를 갈거라고.어떤학
생이 묻습디다.철학과 가면 뭘 배우녜요.삶과
죽음을 배운다고 했죠.또 묻습디다. [그럼 거기
가면 삶과 죽음의 문제가 풀리나요] 그래서 이
랬죠. 물론 풀리지 않는다.그러나 죽음이 안 풀
릴 문제라 해서 어찌 잊고 살 수 있겠느
냐......
메부수수한 차림의 최 판동의 처가 보자기를 손
에 들고 등장
판동 처 : 마른 반찬 쪼께 담어왔어라우. 깻닢무침을 봉
께로 재규씨 생각이 나서 고쟁이도 제대로 못
입어불고 (웃으면서치마를 슬쩍올려 증명해 보
인다.)허천나게 달려 왔소안,원체 좋아하싱께
로. 신체건강 하시지라우?
사 내 : 예
판동 처 : 댁내 무고하옵시고?
사 내 : 혼잔데요 뭘. 이거 번번히 폐를 끼쳐 어쩌지
요.
판도 처 : 폐는 무신놈의 폐다요? 허는길에 쪼까 더 혔다
가 날상날상 나르기만 혀면 돼는디.
사 내 : 왜 최 판동이하구 같이 오시지 않구.
판동 처 : 사냥갔어라우.
사 내 : 아 예.
판동 처 : 집에 붙어 있는적이 없어라우. 담벼락에 대못
으로 콱콱 박어분지면 모를까.갑갑증땜시 한시
도 진드감치 머물러 있질 않는단 말이오.하루는
지가 그냥반헌티[당신은 바라이요.]헝께 어뭉일
보다마고 지를 빤히 쳐다본단 말이요.[해불 챔
이면 아그밴 암소눈 꾸벅꺽 뜸시로 나주에 돼새
김질 허들말고 시방 허시쇼] 허고 부에가차서
한마디 혔더니 [쪼금 아까 뭐라고?] 이럭코롬
되 묻느단 말이요[당신이 바람이다 혔소.]그랑
께로 허허 웃음서 허는말이 걸작이지라우.[시적
이군] ㅇ이다? 시적이다라구라구라? 헤헤헤
이 무식헌 년이 뭔누무 시적인 야글 허겄소.다
지를 놀려 묵자는 심산이제
사 내 : 집에 오면 별 얘기 없죠? 최 판동이 말입니다.
판동 처 : 늠들는 신혼도 있고 신방도 있다던디 지는 그
런거 물르고 살았으라.저 산너머에 어떤 미친놈
미친년이 그리 살다 갔는갔다 싶으요.
사 내 : 의외인걸요.
판동 처 : 재규씨헌티만은 끔찍혀지라우. 늘상 우리 재규
씨 재규씨.재규씨 챙기는 것이사 새끼 예수 다
름 없지라우.지헌틴 야박하그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당께라. 최고 야박헌기 뭣인줄 이시쇼야?
사 내 : 뭔데요?
판동 처 : 무관심이지라우.[나 옷샀쏘] [그려?] [나 빠
마 혀부렀쏘] [그려] [나 부에나서 캬바레 가부
렀쏘.] [허허 그려? 누가 거들떠 보든감?] 지가
옆에서 뽀닥뽀닥 혀싸도 어뭉이만 봄시로 주인
없는 미소만 지을 뿐.
사 내 : 어뭉이라니요?
판동 처 : 테레비요.
사 내 : 아 그래요?
판동 처 : 지가 지어부렀쏘. 뭔가 하날 남기고 가얄틴
디,배운건 없고 작가가 안 한께로 에라 썅 지가
명명혀부렀쏘(계면쩍은 웃음)하냥 문예반였담서
라우?
사 내 : 예. 고등학교 때부터.
판동 처 : 죽은 아줌씨도 시를 썼다문서라?
사 내 : 예. 전 옆에서 구경만 하고.
판동 처 : 허문 핵꾜 댕길때부텀 하냥 셋이서 싸돌아 댕
김서 시도 쓰고 노래도 하고 그래분졌쏘?
사 내 : 예
판동 처 : 데모도 혀불고?
사 내 : 예
판동 처 : 그때 난 뭘 혔는지 시도 모르고 그저 한되면
셋이 먹고 두되면 여섯이 먹는다, 장맛은 정성
맛,짠지맛은 젓갈 맛,소금은 요때 넣고 간장은
요때 넣어라.부엌떼기 수업만 죽신나게 받았지
라우.지가 육남매 중 막낸디 나머지는 싹쑤가
다들 좋아 대학까장 마쳤지만 지는 어려서 부텀
달리는 기차에 골통을 받힌년마냥 일 더하기
이...엥? 삼 빼기 삼 엥? 이랬능갑소. 하루는
아부지가 [판도이 헌티 시집 가분져라] [싫어라
우] [왜?] [옆집 귀례씨가 좋아라우] [갸는 점
순이허고 혼사 야그가 오가는디?] [둘이 헌 야
그가 있어라우.] [어허] [싫어라우] [잔솔빼기
허들말고 판동이 헌티 가분져부라 알아들어?]
[그려도 귀례씨가 좋아라우] [어허 저런 싸가지
없는 년 봐라이 앞으로 아부지 헌티 한번만 더
앙알 대면 저 꼬챙이로 마빡을 콱 쪼사부러잉]
[야] [흠흠 징한 것이로고] 마빡을 두서번이고
쪼시는 한이 있더라도 또박뽀박 우겼어야 혔는
디 안쪼사 부릴 양반도 아니시고
사 내 : 친정이 목포 갑부였다지요.
판동 처 : 야 데모 주동자로 몰려 도망 왔소안 우리집 장
끼 만지던 그 일을 살살 꼬득여 쫌매 줬지라우.
넘들도 이상한가부요.사장 남편과 무식쟁이 부
인이 서로 매찌가 잘 안된다 그것이지요이.
사 내 : 살아보니 어때요?
판동 처 : 물과 기름이지라우 왜,배운것들은 한꺼풀 입히
고 한 자락씩들 깔고 야글 허들 ㅇ는갑소안?[똥
쌌냐?] 소리를 [흠흠 손 ㄸ아라], [배고프다]
허면 될 것을 [시방 몇신고?],[사랑하오] 직접
말 허면 될 것을 [자꾸 자꾸 내 인생을 맡기고
싶당께라우]......속으로 속으로 ㅆ을 년 뒈질
년 소릴맨날 듣고 산다요.얼라? 웨메 웨메 이
정신 좀 봐라이. 갈 시간이 폴쎄 넘었고만은
(보따리를 챙긴다)
사 내 : 가시게요?
판동 처 : 예 이 잡것은 그저 어디 않기만 허면 있는 주
접 없는 주접 다 늘어 놓는 당께라우. 이해 허
시쇼야. 그랑께 닭대가리라고 놀려 묵들 않소
안.
사 내 : 무슨 말씀을.
판동 처 : 그나 저나 재규씨도 어여어여 좋은 샥씨 만나
새 장가를 가얄텐디 그저 집에는 훈기가 있어야
된다고들 안 허요. 죽은 아줌씨도 마음이 안 놓
일것이요. 그저 여자들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지
서방 뜨슨밥 잡수는 걸 최고로 삼은께라. 자.가
볼께라우.(가려다 말고)이상허지라우?
사 내 : 뭐가요?
판동 처 : 혀도 되는지 모르겄소만은 지가 지 남편 지갑
을 생전 가도 보는 일이 없는디,하루는 봉께로
죽은 아줌씨 사진이 주민쯩 꽂는 칸에 떡 있더
란 말이요.이사허지라우?
부분 암전. 최 판동의 처,퇴장한다.사내,무대
가운데로 나오며
사 내 : 서막은 끝났더라.
미열로 가슴 졸이던 첫 만남의 아슬함은 가을
둔덕 양지 바른 터에 평온히 잠들고 나는 탐색
기를 마친 권투선수마냥 활기찬 비상을 꿈꿔야
한다.
사이
사 내 : 여보! 내 꿈도 있었지. 나를 닮은 자식을 낳아
좋은 아빠가 되는 거. 그 녀석과 함께 이쪽저쪽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 구경도 시겨
주고. 내가 못받은 사랑을 자식에게 다 주었을
거야. 하지만 그꿈은 포기했지. 당신이 그 엄청
난 고통을 치렀는데 어떻게 또 아기를 낳으라고
할수 있겠어. 그저 출소하면 당신의 응어리들을
풀어주며 당신과 함께 오손도손 살리라 생각했
었지. 도대체 최판동과는 어떻게 된 거야?
처 : (등장하며) 잊어버리세요.
사 내 : 허허 이 사람 참.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가
있나?
처 : 용서하세요.
사 내 : 오늘 방 청소를 깨끗이 했어. 내마음속도 함
께. 예전의 나를 찾고 싶어서. 원상복구가 잘
안돼.
처 : 의지대로 행동하세요.
사 내 : 여기 어떤 사내가 있어. 한 여자를 뒈지게 사
랑했는데 어이없이 실연을 당했지. 몇 년 걸려
그 상처를 씻어냈어. 어느 날 다른 사랑이 찾아
왔다. 냉큼 움켜쥘 수 있겠나? 어렵겠지. 이젠
사랑하기가 두려워지는 거야.
처 : 사랑이 드러내는 그림자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해가 뜨면 자연히 그림자는 생기는 거예요.
사 내 : 당신이 떠나고 난 뒤, 난 이런 결심을 했어.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말자. 내 행복을 위해
이기적인 놈이 되어선 아니 된다.
처 : 자학하지 말아요.
사 내 : 그렇지 않아. 당신을 그토록 원망하고 증오하
지 않았더라도 지금 내가 경숙일 놓고 이렇게
갈팡질팡하진 않을 거야. 난 정말 당신네들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니까.
처 : 모르겠어요. 그 사건이 우릴 멀어지게 했을지
도. 혼자 있기가 무서워요. 불구뎅이든 어디든
그냥 날 내던지고 싶었어요. 아차 싶었을때 임
때가 늦었구요.
사 내 : 몽짜를 죽인 죄값이 옥살이에서 끝나지않고 당
신 한테까지 이렇게 질기게 받아야 되는 건
가...... 이런식으로도 생각해 받어.
처 : 죄송해요. 살다보면 이성이나 상식이 아닌 줄
알면서도 빠져 들때가 있나봐요.
사 내 : 이해는 되지만 용납은 안돼.
처 : 나도 그래요.
사 내 : 쉽게 말하지마. 난 지금까지 그 긴긴 날을 약
오르고 분한 마음에 밤잠을 설쳐왔어. 성이 덜
풀린 싸움꾼마냥 적개심을 불태워 왔다구. 이
놈 배신자고 저 놈은 화냥년이다.
처 : 당신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난 할 말없어
요.
난 죄인이예요
사 내 : 너희들은 인간 쓰레기들이야. 내가 가장 곤경
에 처해 있을때 날 배신한 년놈들이라고.
처 : 알아요 충분히 알아요.
사 내 : 알긴 뭘 알아. 당신이 내게 준 상처가 얼마나
컸고 그걸 이겨내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
요 했는데. 남들이 편한하게 학교를 다닐 때도
난, 신문배달 우유배달 구두닦이 막노동을 해야
했다. 가는 곳마다 얼핏하면 의심받고 쫓겨나고
얻어맞고 도망다니면서도 마음속으로 뭐라고 다
짐했는 줄 알아. [삐뚤어지지 말자.삐뚤어지지
말자] 한 마디였어. 그래서 어렵게 대학공부도
마쳤고 직장도 이 보금자리도 얻었던거야. 이
젠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지. 근데 어떤 미친년
이 나타나 단숨에 날려보낸거야. 바르게 살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건마는 그 미친년은 , 삐뚤게
삐뚤어지게 살라고, 날 사지로 몰았다니까.
처 : 그래요. 당신은 잡초예요. 그동안 무수히 밟혀
왔어요. 나도 짓밟았구요. 지금도 또 밟힐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사 내 : 그래 당신이 날 짓밟았어. 당신들이 날 이렇게
망가뜨려 놓았고. 그런데 지금에 와선 짓밟은
거와 다시 일어서는 것은 별개다?
처 : 아암 별개죠.
사 내 : 밟혔기 때문에 못 일어나는데도?
처 : 여보. 쥐탓이 아니에요.
사 내 : 쥐구멍 탓이다? 쥐구멍을 안 메운 내 탓이다?
결혼을 잘못한 내 탓이다?
처 : 여보. 나를 여기에 불러낸 이유가 뭐예요. 나
를 비난하기위해선가요? 왜 자꾸 가른 구실을
대세요. 당신이 그 결혼을 꺼리는 이유가 뭐예
요. 왜죠? 날 사랑해서? 그건 아니겠죠. 증오
심으로 꽉 차 있으니까. 아니면 나한데 미안해
서? 그럴 수도 있겠죠. 경숙이와 결혼해서 굉
장이 행복하게 살게 된다면 나한테 미안하겠
죠. 오히려 내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할 날
이 올지도 모르겠죠. 히지만 그건 미래의 몫이
니까 언급할 필요도 없을 테고. 그럼 경숙이하
테 또 밟힐까봐? 그것도 아니겠죠.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와 최판동이처럼 살기는
싫다? 왜 당신이 우리처럼 살아요. 다른데. 그
럼 뭘까요? 당신이 가장두려워하는 게. 혹시
경숙이가 또 몽짜를 낳을까봐? 이건가요? 안
하겠다는 이유가 뭐예요? 괜히 증오 운운하면
서 내 핑계대지 말아요. 당신은 당신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이기위해 증오타령 배신타령만
하고 있어요. 일종의 피해의식이죠.
사 내 : *******
처 : (다정하게) 여보, 당신 이런 습관 있는 거 알
아요?
사 내 : ********?
처 : 당신은 대문을 나갈때 꼭 왼발부터 나가더라구
요. 하루도 빠짐없이. 이젠 오른발부터 나가봐
요.당신의 피해의식은 그 차이예요.
처가 퇴장한다.
서성인다.
물도 마시고 음악도 틀었다가 끄고 술을 마실까
하다가 말고 담배를 피워문다.
잠시후
무슨 결심이 선 듯 담배불을 끈다.
죄수복울 입는다.
심호흡을 하면 조명이 바뀐다.
재판 장면.
검 사 : 피고 황재규.
사 내 : 예
검 사 : 피고인이 영아를 살해한 것은 1983년 12월 28
일 새벽 두시였죠?
사 내 : 예
검 사 : 갑작스런 충동우로 죽였나요?
사 내 : 아닙니다.
검 사 : 사전 계획이 있었군요.
사 내 : 예
검 사 : 언제 살해를 계획했죠?
사 내 : 아기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올 때부터였읍니
다.
검 사 : 해외 입양아로 내정되어 있었다는데 왜 퇴원시
켰읍니까?
사 내 : 싫었읍니다.
검 사 : 어떤 점이?
사 내 : 아기를 남에게 넘기기 싫었읍니다.
검 사 : 그래서 스스로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사 내 : 예.
검 사 : 살해하기 전에 의식을 치렀다고 했는데 이유가
뭡니까?
사 내 : 아내가 카톨릭 신자입니다.
검 사 : 아내와 공모했읍니까?
사 내 : 아닙니다. 아내는 친정에 가 있었읍니다.
검 사 : 갓난애를 집에 놓아두고 친정에 갔다. 왜죠/
사 내 : 몸이 아파 쉬라고 제가 보냈읍니다.
검 사 : 어떻게 죽였읍니까?
사 내 : ....목을 졸랐읍니다.
검 사 : 손으로?
사 내 : 예
검 사 : 어떤 기분니었죠?
사 내 : 잘....생각이 안 납니다.
검 사 : 흥분되어 있었겠죠.
사 내 : ...(어떻게 대답해야 몰라 망설인다.)
검 사 : 비정상적인 감정 상태였죠?
사 내 : ......그랬던것 같읍니다.
검 사 : 잔인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읍니까?
사 내 : 아뇨.
검 사 : 그날은 피고의 서른 한 번째 생일이었죠?
사 내 : 예
검 사 : 무슨 이유라도 있었나요?
사 내 : 없었읍니다. 전 그날이 제 생일인 줄 구속된
뒤에 알았읍니다.
검 사 : 꽃바구니는 어디서 장만했읍니까?
사 내 : .....직접 만들었읍니다.
검 사 : 언제 만들었읍니까? 살해하기 전이었나요, 후
였나요?
사 내 : 후였읍니다.
검 사 : 왜 만들었죠?
사 내 : 아기를 위해서였요.
검 사 : 자신의 친자식을 죽이고 나서 그런 여유가 생
기던가요?
사 내 : .........
검 사 : 왜 죽엮읍니까?
사 내 :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검 사 : 사랑이라고 했읍니까?
사 내 : 예.
검 사 : 피고는 충남 부여 출생이죠?
사 내 : 예.
검 사 : 여섯 살 때 화재로 부모형제를 잃고 경남 진해
에 소재한 소망고아원에서 자랐죠?
사 내 : 예
검 사 : 부모 밑에서 사랑을 받고 자란 보통사람과는
다른 비정상적인 삶이었죠?
사 내 : ..그렇 ..다고 할 수 있읍니다.
검 사 : 자신의 운명을 저주래 본적이 있읍니가?
사 내 : 없읍니다. 저는 어떻게든 바르게 살아보려
고.......
검 사 : 됐읍니다. 어찌됐든 피고인 은 보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고아로 자란 사실을 인정하
죠?
사 내 : 예.
검 사 : 자신의 첫 아들인 영아를 자신의 손으로 목을
졸라 살해한게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주
장합니까?
사 내 : ......예.
검 사 : 피고는 천륜이 뭔지 압니까?
사 내 : 압니다.
검 사 : (자리에서 일어난다) ㅍ고인은 천륜을 비웃기
라도 하는 양 영아를 살해하는 끔찍한 상황에
서도 죽음의 제전을 거행하고 시체를 꼿바구니
에 넣어 강물에 듸웠습니다. 살해의 의미를 축
소시키고 자기 합리화를 통해 죽음의 미화를
의도한 자가 당착적 벙행이며, 고아라는 비정
상적 삶속에서 쌓여진 강열한 파괴본능으로 직
계비속의 목을 거침없이 조른 잔인하고 흉악한
살인인 것입니다. 본 검사는 ㅍ고인의 자식이
기형아였다는 점과 자수를 했다는 정상참작에
도 불구하고,
첫째 살인한 의지나 죽여야 된다는 강박관염의
흥분상태가 지속됐다는 점,
둘째 만용과 저주로서 인간세계의 가치질서를
파괴했다는 점,
셋째 생명 경시 풍조가 팽패해가는 세태에 경
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확고한 법의 체계를
세워야 된다는 점에서 주목,
피고 황재규를 형법 251조 영아살해죄 및 형법
161조 사체은닉죄를 적용하여 징역 7년을 구형
합니다. (퇴장)
사 내 : (죄수복을 벗으며) 재판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
갔지요.마치 갑이 을을 총으로 솨서 죽였다면
죽인 이유가 가장 중요할 턴데도 재판은 그렇지
가 않았습니다. 어던 옷을 입고, 쏘기 전에 무
엇을 먹었으며, 한 발을 쏘았는가 두세 발을 쏘
았는가, 쏜 다음의 자세는 어떠했으며 그 후론
어떤 옷으로 갈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짰
는가, 총을 쏜 자는 고아 였는가 아니었는가.
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변호사 : 이 사진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전 이사진을
보면서 변호사가 아닌, 아이를 기르고 있는 한
여자의 입장에서 제가 이런 아이를 낳았을 때
를 상상해 봤읍니다. 저 역시도, 피고인과 같
은 행동을 한 끝에 이 피고인석에 서게되고 말
리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담당 검사는 본 사
건을 인간의 가치체계를 뒤흔든 잔악한 범행이
라 규정지었습니다. 또한 제 삼자가 볼때에는
어찌됐든 기영아의 출생은 피고인의 책임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키워야만 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죽이는 것은 살인이고 살인을 피
하기 위해서라도 죽을 때까지 키워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삼사 년만 꾹
참고 키우다 보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를 왜 성
급하게 죄를 만들었는가도 생각할 수 있습니
다. ㅍ고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건더 잔인
한 예비살인 일 뿐 용서 받을수 없는 죄악 이
라고그렀습니다. 이아이의 입장에서 볼때 그건
더 무서운 죄악입니다. ㅍ고인은 아기의 인생
을 더 걱정했던 것입니다. 하루종일 방안에 틀
어 박혀 거울이라는 거울은 모두 박살내버릴
자식의 처참한 인생이 불쌍했던 것입니다.따라
서 ㅍ고인은 가장 어려운 용단을 시도한 것입
니다. 그래서 ㅍ고인은 성경도 읽었고 찬송가
도 부를수 있었고 곱게 곱게 꽃바구니에 태워
침뱉을 사람이 없는 강 넘어 아득한 곳으로 보
냈던 것입니다.......누구에게나 올바른 길을
가려다가 뜻대로 되지않는 경우가 있습니다.그
때는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피고인이 다시 시
작할 수 있도록 관대한 처벌을 내려주시기 바
랍니다.(퇴장)
사 내 : 살아보면 묘하더라구요. 그땐 그게 아니였는
데.지금 생각하면 그렇구나 하는게 있구요. 또
어떤 건 그땐 그랬었는 지금은 아닌게 있구요.
정인수란 친구가 있엇어요, 제가 학교 선생할
때 같이 근무했던 수학선생이었는데 뇌 종량으
로 죽습니다. 부인이간병이대단했죠 임신한 몸
으로 약해대랴, 수발들랴, ㅅ림하랴, 틈만나면
교회에서 기도하랴.벽제화장터에서 태웁니다 그
때도 얘낳아 잘 기르겠다면서 다짐 다짐하더라
고요. 서너달 쯤지났을겁니다 하루는 학교 선생
들하고 당구를 치고 있는데 체육선생이 들어오
면서 [야! 정인수 처 말이야, 얘 띠고 시집간
데]이래요. 그러니까 이쪽저쪽에서 이년 저년
합쳐소 쌍년,[그러면 그렇지 지가 무슨 열여라
고 얘 낳아 잘길러 애라 이 잡년아, 새 놈씨 만
나거든 바람이나 피말거라]말들이 많이 나왔을
거 아닙니까. 얼마 뒤에 우연히 그 여자와마주
쳤어요 종로 거리를 저는 가고 정인수처는 이리
오고, 잠깐 애기 좀하재요. 다방에 들어갔습니
다.대뜸 [절 미워하시죠] 그래소 르렇다고 했죠
한참을 울먹입띠다 다른 손님들이 쳐다보고 앞
여잘 먹고 차버린 불한당처럼 저를 보았을겁니
다. 비웃지 말래요 당신네들이 뭘아녀요. 남편
이 죽자 시어닌 하나둘씩 남편몫의 재산을 뺏아
갔다. 주위에선 저것이 과연 일생 동안 수절할
수 있을까 호기심으로 지켜보고, 이기적인지 비
약인지 몰라도 난 거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누
가뭐래도 난 죽은 남편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
자신도 사랑하고싶다. 내 결심의 잘못이 있을지
도 모른다 그렇다고 당신들의 편안한 잣대로 재
서야 되겠느냐. 남편없이 두어달을 사는 동안
난 그 잔상들과 싸워야 했다. 두어달이 십년과
도 같았다.밥을 먹다보면 배시식 웃으면서다가
와,이거 먹어 이거먹어 어이 내남편이 죽었는
데... 하고보면 없고 남편품에 안겨 잠을 자다
가 어이 내 남편은 죽었는데...하고 보면 떠 없
고 보이진 않고 잡히진 않고 그래도 잔상은 살
아있어 늘 내곁에 있고,매일마다 남편사랑을확
인하고 정신차려 생각하면 아닌거고 그 괴로움
속에 내가 지금 새 삶을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다.
사이
그때는 그 여자의 말이 별로 와 닿지 않았어
요, 한많은 사람 한 맺힌애 기려니...... 그랬
지요 요쯤들어 그 여자 에길 꼼꼼히 생각해 봅
니다. 이런 게 떠올라요
낙상맵니다.낙상매란 말그대로 낙상한 매라는
것인데 매의 에미는 둥지에 있는 새끼들이 날
아야 할때쯤 되면 먹이를 일부러 공중에서 떨
어뜨린답니다. 둥지가 여기라면 옆으로 이렇게
비켜가게끔.그럼 새끼들 중 용감한 것은 받아
먹으면서 날게 되고 겁먹은 것은 굶어 죽게되
고...... 자연 도태죠. 그런데 문제는 받아 먹
느라고 둥지를 빠져 나왔다가 미쳐 못날아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녀석들이 많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첫 날개짓이니까요. 대부분 죽죠. 그
런데 그렇게 곤두박질친 것들 중에서 기적적으
로 살아남는 녀석이 있답니다. 깨지고 부러지
고 망가지고 도저히 살수가 없는데도 질긴 생
명력으로 다시 비상하는 놈이 있다는 거죠. 이
런 놈을 낙상매라고 부릅니다.에미는 이 낙상
매를 더욱 사랑한 대요. 질기고 사나운 조상의
얼을 물려 받았다 이거죠. 인생을 사노라면 한
번쯤 안 떨어질 순 없거든요. 그래요...... 상
처는 이미 난거야. 그 상처를 스스로 아물게
하고 다시 날아보겠다는데......
이때 처가 등장한다.
처 : 뜨거운 눈물을 길어올리는
나의 어부를 생각합니다.
당신은 섬에서 외쳐 부르나
내 음성은 작아서 그 곳까지 닿을 수가 없어
요.
하염없이
물결치는 방죽에 앉아
당신이 헤엄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함께 흘러갈 그 무엇을 찾기까지
꽃이 지고 눈 내리는 세월마저도
잊으려 해요.
처가 퇴장하면
사 내 : 해운대로 신혼여행을 갓을 때 바다를 보며
처가 슨 거죠.[헤엄쳐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
다......] 지금은 흘러흘러 서낭당 죽은 고목
묻어버린 옛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사내, 전축있는 데로 가서 음악을 튼다.
잔잔한 가락이 갈린다.
서성인다.
그 서성임에 박자가 있다.
이윽고
사 내 : 예수가 길을 가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소
경인 자가 보였다. 제자가 물었다.저건 누구의
죕니까. 자기 죕니까, 부모의 죕니까. 예수가
말했다.누구의 죄도 아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이다.......그때의 권능이란 무엇
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로 일그러지고 찌그러
지고 부패하고 썩어문드러진 것을, 평등하게 보
고 아름답게 보고, 그 안에도 진리가 있음을 보
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가요. 그래요. 우리가
이 험난한 세상 속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암
담함 속에서도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
아닙니까. (전화를 건다) 경숙이냐? 이 음악 좋
다 야.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