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감하기

자화상

깜장보석 2006. 2. 18. 21:12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인은 우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미워하는데 그 이유는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이 이상적인 모습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물 안의 사나이가 가엾어지는 것은 그가 시인 자신에 의하여 버림받고 있기 때문이며, 이 버림받고 있다는 것이 특히 애절한 것은 그가 홀로 우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물은 자연과 자아를 비추어 그것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이다. 우물 안은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전통적 연상을 가진 말로서 좁은 공간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시인이 보는 시인 자신의 이미지는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것이 그가 불쌍한 이유가 되며 또 그 다음 연에서도 되풀이하여 이야기 하듯이 미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뒤집어 이 우물 안의 존재가 그리운 존재라고 말한다. 아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시인 자신의 삶의 일관성을 위하여 빼어놓을 수 없는 자아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화상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 작용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를 드러낸다.《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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