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감하기

참회록

깜장보석 2006. 2. 18. 21:16

 

 

 

 

 

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시인은 낡은 역사의 유물로 살아온 자기를 욕된 존재로 보고 있다. 그동안의 자기 삶이 기쁨 없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래에는 역사가 밝게 이루어져 오늘의 욕된 삶을 뉘우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의 시대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 자기의 의식을 갈고 닦아 맑고 깨끗하게 가꾸어 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신의 맑은 의식에 투영된 자기의 미래상은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인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자기 성찰에 의한 실존적 성실성과 일종의 비극적 세계관을 보인다.

 

거울의 의미는 자기 성찰에의 깊이에로 향하는 의식인데, 참회록의 구리거울은 어느 왕조의 유물인 나의 참회와 자기 성찰을 통해 고향으로의 역사의식을, 혹은 고향으로의 민족의식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시 공감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픔에게 안부를 묻다  (0) 2006.03.02
서시  (0) 2006.02.18
  (0) 2006.02.18
자화상  (0) 2006.02.18
십자가  (0) 200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