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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개관 27, 마음을 다한 노래 시편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라는…. 봉인되고 경직된 현실의 한계를, 오히려 더 아름답고 서정적인 문구로 표현한 이 구절은 모든 이들의 공감을 받으며 지금까지 자주 인용되고 있다. 정말 그렇다. 한 인간의 진실과 삶, 그가 살았던 역사는 논리적 공식과 학술적 업적만으로는 모두 다 담아낼 수 없다. 그를, 그 사건을, 그리고 그 시대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지표는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게 배출된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예를 들어 민담·노래·선율·가락·속담 등)인 경우가 많은데, 노래와 멜로디, 각 예술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인간의 억압되지 않은 정서를 담음으로써 언어와 이론 안에 갇힐 수 없는 인간의 존재를 가장 정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래와 가락, 꾸밈없는 기도로 이루어진 성경의 시편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존재론적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1. 개관 시편은 원래 가락을 지니고 있던 노래였다. 노래가 글보다 쉽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일 것이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라 하더라도 ‘늴리리야’를 완벽하게 부를 수 있고, 한글을 모르는 꼬마지만 만화영화의 주제가가 시작되면 텔레비전 앞에 서서 나름대로의 진지함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니 말이다. 사실 문자가 생기기 이전 인간의 정서는 대부분 노래를 통해 표출되었다. 노래와 가락은 논리와 공식 안에 온전히 담길 수 없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들, 사랑·절망·탄원·고통·환희를 무엇보다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정서적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의 시편은 문자와 신학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이 규범화되기 이전, 그들의 삶과 신앙을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정서로 표현해 주던 민중적 노래였다. 특별히 시편은 유배 중 대부분 집성되는데 조국과 자신의 뿌리를 잃은 유다인들에게 그래도 ‘유다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존재론적 투쟁이 서린, 남의 나라 땅에서 서로가 함께 손을 잡고 부르던 그들만의 노래였다.
2. 성문서의 서론 역할 시편은 구약성경 성문서 파트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책인데, 이는 주목할 만한 의미를 가진다.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가장 선두에 배치하는 의식습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시편이 성문서에서 가장 먼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시편이 성문서의 ‘서론’ 역할, 곧 전체 내용을 대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성문서의 여타 책들 중 가장 먼저 그 정경성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루카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 전체를 율법서·예언서·시편으로 구분하신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루카 24,44). 이는 예수님도 시편을 성문서의 대표격으로 간주하고 계셨음을 암시한다.
3. 신약에서의 위치 시편은 신약성경에 약 100번 이상 인용되고 있는데, 이는 신약시대에 시편이라는 책이 얼마나 사랑받았으며 실생활 안에 구체화되어 있었는지를 암시한다. 마태 26,30에서 만찬을 종결하는 의미로 예수님은 ‘힐렐’을 부르시고, 십자가 위에서 숨지시는 순간에도 시편 22장의 첫 부분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를 외우신다(마태 27,46). 돌아가시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인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역시 시편 31,6의 인용이었다. 이 외에도 시편을 암송하고 노래하는 습관은 1코린 14,26; 에페 5,19; 콜로 3,16; 야고 5,13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 명칭 시편을 히브리어로는 ‘테힐림’이라 하는데, ‘찬양의 노래들’이라는 뜻이다. 시편은 때때로 ‘찬양가들의 책’이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 ‘찬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힐라’는 ‘할렐루야’<할렐루(찬양하여라)+야(야훼를)의 합성어>와 같은 어근(할렐, hallel)을 공유하는 명사이기도 하다. 시편을 희랍어로 번역하면서는 ‘프살모이’, 곧 ‘(현악기)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고 명칭하게 되었다. 히브리어와 희랍어 명칭 모두 시편이 반주에 맞추어 부르던 ‘노래’임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5. 제작 연대와 편집, 저자들 일반적으로 시편은, 구전으로 내려오던 노래들이 기원전 12세기경부터 문서화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3세기 말에 그 부분들이 어느 정도 형성되고, 최종적으로는 마카베오 시대(기원전 2세기)에 이르러 현재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고 본다. 시편의 작가는 통상적으로 다윗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현재 150개의 시편 중에서 73편이 그의 것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외의 저자들로는 코라의 자손들·아삽·솔로몬·헤만·에단·모세·여두툰 등이 있고, 작자 미상의 것들도 여럿 있다. 물론 이들이 작품의 실제 저자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데 거의가 ‘가명성’ 기법을 통한 것이기 때문이다.
6. 구성 150편으로 되어 있는 시편집은 다섯 개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고, 이는 시편을 ‘모세오경’과 상응하는 책으로 격상시키기 위한 일종의 신학적 편집으로 이해된다. 곧 ‘다섯 개의 율법서(모세오경)’에 상응하는 ‘다섯 개의 기도’라는 의미를 시편에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제1그룹:141편(총 41편)/제2그룹:4272편(총 31편)/제3그룹:7389편(총 17편)/제4그룹:90106편(총 17편)/제5그룹:107150편 (총 44편). 이러한 각각의 그룹은 나름의 체계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있어서 각 그룹의 처음에 등장하는 시편들(1; 42; 73; 90; 107편)은 서론의 역할을 하며, 마지막 시편은 ‘종결 찬양’의 역할을 한다. 물론 이들 다섯 그룹 상호간에도 연속성은 있어서 시편 1은 제1그룹의 서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시편 전체의 서문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대찬양가’인 시편 150은 다섯째 그룹의 종결뿐 아니라 시편 전체의 결론 역할을 담당한다.
7. 시편의 번호 시편 연구에 있어 혼란스러운 부분의 하나는 시편의 번호들이다. 최민순 신부의 번역과 새번역 성경, 성무일도에서는 괄호 안에 또 다른 번호가 등장한다. 더욱이 최민순 신부의 번역과 새번역의 번호 매김은 서로 반대로 되어 있어 혼동이 가중된다. 이러한 충돌은 새번역이 히브리 성경(BHS)의 시편 번호를 기본번호로 하고(공동번역처럼) 칠십인역의 것을 괄호 안에 넣은 반면, 최민순 신부의 번역과 성무일도에서는 칠십인역의 번호를 기본으로 하고 히브리 성경의 편수를 괄호 안에 넣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8. 시편과 전례 현재의 시편집은 전례 때 사용하기 위해 편집된 일종의 ‘노래집’ 혹은 ‘기도집’이었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조금 과장일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가톨릭 성가집이나 청소년 성가집 같은 역할을 하였다는 것인데, 가톨릭 성가집을 보면 입당·봉헌·성체 때 부르는 노래들이 구분되어 있고, 각 전례시기에 맞추어 부르는 성가들 역시 구분되어 있다. 곧 대림 때 부르는 성가가 다르고 부활 때 부르는 성가가 다른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시편집 안에는 각각의 전례시기에 적절하게 선정하여 쓸 수 있는 여러 유형들로 편집되어 있다. 시편 양식에 대한 구분은 학자들마다 다른데, 히브리시 연구의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헤르만 궁켈(H. Gunkel)은 시편의 양식을 총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찬양시·탄원시·감사시·군왕시·지혜시가 그것이며, 이는 후학들에 의해 가장 보편적인 구분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그가 제시한 범주들의 구분이 다소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사시와 찬양시 같은 비슷한 내용과 형식의 시들을 어떻게 다른 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고, 아마도 가장 안전하고 분명한 구분은 시편을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 곧 ‘찬양 시편’과 ‘탄원 시편’으로 정리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찬양’과 ‘찬미’가 엄밀한 의미에서 ‘탄식’과 ‘절망’의 그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상반된 둘은 결국에는 하나의 진실을 표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사실 ‘탄원’과 ‘찬양’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하나의 진리를 추구하는 신학적 역동성을 가진다. 곧 탄원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촉발시키고 전개시키는 궁극적 모티브가 되며, ‘탄원’은 곧 ‘찬양’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구약 신학자들은 정직한 탄원이야말로 구원과 해방이 시작되는 신학적 언어요 근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9. 머리글이 가지는 난제들 시편 연구의 또 다른 난제는 ‘머리글’이다. 머리글이란 시편의 본문이 시작되기 전 앞부분에 제시된 짤막한 글을 통칭하는 용어인데, 150편 중 34개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머리글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머리글들의 생성시기와 정확한 의미, 용도에 대하여 밝혀진 부분이 아직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단어나 구절이 명확하지 않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것은 그에 해당하는 다른 번역본들이다. 번역본들을 통해 역으로 그 본문의 본래적 의미를 추정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편의 머리글 문제는 이 방법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각 번역본들이 정확한 번역을 제시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기원전 32세기에 작업했던 칠십인역의 역자에게조차 머리글의 내용은 정확치 않았던 것이다. 머리글들이 주로 담고 있는 내용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다. 우선 그 시편의 작가라고 간주되는 ‘사람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모세(90편), 솔로몬(72; 127편), 아삽(50; 73-83편), 코라의 자손들 등. 각 시편에 대한 ‘문학적 성격’이 언급되어 있다. 88편의 머리글에는 이 시편은 ‘노래 혹은 시(미즈모르)’라고 언급하고 있고, 86; 90; 102; 142편에서는 그 시편들을 ‘기도(테필라)’라고 규정하고, 시편 30번은 ‘노래(쉬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뜻이 불분명한 것도 있다. ‘마스킬’, ‘시까욘’, ‘믹탐’ 등이 그러한 경우인데 아직까지 그 정확한 뜻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한 머리글에는 그 시편에 붙여지던 ‘음악적인 표기’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새벽 암사슴’(22편), ‘나리꽃’(45; 69편) 등의 표기인데, 이들은 그 시편의 가락(멜로디)을 표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마치 현대의 노래들이 자장가풍 혹은 행진곡풍, 왈츠풍, 발라드풍 등 다양한 가락을 가지고 있듯이 히브리 노래들 역시 서로 다른 가락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고 이를 ‘새벽 암사슴’ 혹은 ‘나리꽃’이라는 이름으로 표기했던 것이다. 그 가락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시편의 당시 독자들에게는 아주 친근한 가락이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이 가락들에 대한 특별한 부연 설명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잘 알려진 가락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후배 수녀님이 보내준 편지에는 이런 글이 들어 있었다. “인생의 겨울길을 걸을 때마다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 먼저 치워놓은 눈길을 걸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탄길」이라는 책의 한 구절이라 했다. 이내 반성하는 마음이 되고 말았다. 내가 지금 안전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누군가에 의해 이미 ‘치워진 길’ 때문이라는 진리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편의 아름다운 기도와 노래들은 사실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를 위하여 누군가 ‘먼저 치워놓은 눈길’ 같은 것일 수 있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랫말, 시구절을 보면서 어쩜 저렇게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을까 감탄할 때가 있는 것처럼 시편은 우리를 위해 그런 역할을 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정서와 감정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제 시편과 좀더 친해지고픈 마음이 되었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