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다시 읽기

인셉션

깜장보석 2015. 7. 10. 16:39

보석의 영화평

 

인셉션은 상영관에서 봐야 제맛이겠다 싶게 볼거리가 많다.

그에 못지 않게 생각할 거리도 많은 영화.


예전엔 개연성과 사실성이 떨어지는 영화에 관심이 없었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하고

그래서 내 삶과는 동떨어진 내용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기 때문.

하지만 사실주의적인 내용은 분명 한계가 있다.

어떤 선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과 상상력이 발휘되기 힘들다는 점.

비슷한 작품을 자꾸 접하면 내용이 빤히 보이거나

아니면 파격을 주기 위해 더 잔인해지거나 폭력적이 되거나 비인간적이고 말초적이고

간혹 도식적이 되기도 하는 한계.


인셉션이 엄청난 시각적인 재미를 준다는데는 이견이 없겠기에

여기선 영화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내용면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먼저 디카프리오가 이젠 그의 가장 큰 매력인 어린 광기를 보이기엔 너무 늙어버렸다는 점.

개인적으론 리즈시절의 디카프리오의 해맑음만을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중년의 디카프리오는 영화적인 환타지를 느끼게 하는데 엄청난 장애를 갖게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작품 중에 심리적인 바탕이 깔리지 않은 것이 있을까 싶다.

거기에 적절한 액션과 영화적인 환상 따위가 그의 감독적인 역량을 규정짓는 큰 요소.


꿈이라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구체적으로 정의되지도 않은 공간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그만큼 헛점도 많지만 범죄와 스릴러에 감성과 꿈 속의 환상 등이 어우러져

매우 그럴듯한 스토리라인의 얼개를 만들어 냈다.



꿈 이야기에 프로이드 이론이 안나올 수 없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무의식이니 죄책감이니 림보니 킥이니...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관념적인 담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란 감독은 이것을 영화적으로 형상화했다.

아마도 이것이 이 영화를 시작하는 가장 큰 모험이고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특수기법이나 촬영에 따르는 기술적인 과정까지를 생각한다면

놀란 감독은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아리아드네와 코브가 들어갔던 꿈 속의 이 놀라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꿈 속 공간을 설계하는 설계자라든가

표적이나 침입자 추출자의 개념이라든가

꿈과 현실에서의 시간 차이라든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나

우리가 공간적인 제약 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제약으로 얼마나 위축되고 단절되고 갇힐 수 있는지

코브의 죄책감과 아픈 기억, 상처와 회한 등등의 감정을 바닥에 깔고

모든 스토리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었다는 점이 놀랍다.


추억과 기억에 영향받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의 성공과 자유와 평화 앞에서

망설이게 하고 의심하게 하는 불안정한 감성.

방아쇠를 당기면 끝나는 것을 알면서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늘 한발 늦거나 놓치게 되는 찬스들.

그 기회는 무궁무진하게 우리 안에 있고

우리는 가려지고 흐려지고 얼룩진 기억과 관습과 습관과 법과 무의식과 양심과 딱지들로

머뭇거리고 뒷걸음치며 주저앉곤 한다.


그것이 극복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고 한계라는 생각.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한없이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

기계가 아닌 이상 그런 크고 작은 흔들림의 영향 아래서 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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