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묵상하라

베짜타 못가의 병자

깜장보석 2007. 9. 30. 10:10

 

 

이 복음 내용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 마음의 눈으로 다섯 개의 주랑이 있는 베짜타 못가를 천천히 걸어보자. 거닐면서 누워 있는 수많은 병자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신음소리를 들어보자.
핏기 없는 얼굴들,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이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이들, 소경, 절름발이, 중풍병자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여기저기 구토물, 배설물이 지저분하고 쓰고 버린 붕대와 쓰레기도 보인다. 더럽다고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보이는 것들이 모두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음소리를 들어보자. 끙끙대는 소리, 고통을 참지 못해 지르는 악다구니, 쿨럭쿨럭 기침소리, 토하는 소리도 들린다. 결코 귀를 막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 인생이다.
이 많은 병자들이 왜 여기 모여 있는가? 그들은 천사가 내려와 연못 물을 휘저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연못 물이 흔들릴 때 제일 먼저 물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소문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연못 물이 흔들리는 순간 온갖 병자들이 뛰어드는 모습을.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제일 먼저 물속에 뛰어든 오직 한 사람만이 그 소망을 이룰 수 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중환자들에게 베짜타 못은 희망의 자리이기보다는 절망의 자리이다. 생각해 보라. 물이 흔들릴 때 제일 먼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중풍환자, 말기 암환자겠는가? 가벼운 병을 앓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병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물속에 제일 먼저 뛰어들 확률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런 점에서 베짜타 못은 치유의 장소면서도 정작 치유가 필요한 사람은 그 은총을 얻지 못하는 모순을 지닌 은총의 장소이다.
베짜타는 입시경쟁·취직경쟁·승진경쟁 등 무한경쟁에서 일등만을 허락하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오직 일등만을 기억하고 이등은 기억조차 하지 않는 나라, 세계 최초 또는 세계 최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리나라를 생각하게 한다.
몇 년 전 ‘아무도 2등을 기억해 주지 않습니다’라는 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무엇이든지 일류와 최고만을 고집하는 우리 정서를 건드린 광고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온 사람은 영웅으로 기리고 부상과 연금도 나오지만 은메달을 따온 사람은 말 그대로 ‘찬밥’이다. 일등과 외모가 최고인 세상에서 일등도 아니고 외모도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제대로 대접받으며 살아가기가 참 힘들다. 하물며 이등도 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가치가 없는 쓰레기처럼 취급당하는 것은 아닐까?
삼십팔 년 동안 앓던 병자는 일등이 되고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죽어라 노력했지만 결국은 경쟁에서 뒤지고 패배자가 되어 좌절감 속에 살아가는 우리, 그러면서도 베짜타를 떠나지 못하고 막연한 기대로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 우리의 절망적인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성서 본문을 읽어가다 보면 조금씩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예수님 친히 그 병자에게 다가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세상의 베짜타는 일등만을 받아들이지만 예수님의 베짜타는 꼴등부터 챙겨주신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 아닌가!
스승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우리는 세상의 베짜타와 예수님의 베짜타 중 어디에 머물 것인가? 세상의 베짜타에서 일등이 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남을 끌어내리고 헐뜯으면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의 베짜타에서 가장 못나고 보잘것없고 힘없는 이웃을 먼저 챙겨주며 살아갈 것인지 어느 자리에 참된 평화와 행복이 있는지 그 자리를 선택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도울 힘이 없는 자를 돕는다
“그런데 거기 삼십팔 년이나 앓아온 사람이 하나 있었다. 예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또 이미 오랫동안 앓고 있음을 알고 ‘낫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5,5-­6)
이번에는 마음의 눈으로 삼십팔 년간 중풍으로 고생하고 있는 병자를 보자. 삼십팔 년이라면 긴 시간이다. 그동안 이 병자는 베짜타 연못 물이 움직일 때마다 중풍으로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을 끌고 못가로 갔을 테고 그때마다 절망하였을 것이다. 이제 못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늙었고 기력도 없다. 눈도 침침해져서 연못 물이 움직이는지도 보이지 않고 도와줄 친지나 가족도 없다. 기적을 바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런 사람에게 주님이 다가가셨다. 주님은 베짜타 못가의 수많은 병자 중에서 누가 가장 도움이 필요한지 잘 알고 계셨다.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남겨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루가 15,4­-7) 주님께서는 그 병자가 얼마나 오랫동안 누워 있었는지도 알고 계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이 말은 예수님에겐 맞지 않는 말이다. 하늘은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자를 돕지 않는다. 스스로 도울 힘이 없는 자, 절망에 빠져 있는 자, 무력한 자들을 도와주신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나 삼십팔 년 된 병자처럼 희망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도와주신다. 하느님이 스스로 도울 힘이 없는 자를 돕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은총의 하느님이요, 우리가 믿는 이 종교가 은총의 종교임을 알려준다.

삼십팔 년간 병석에 있다는 것
삼십팔 년이 짧지 않은 세월이라는 것은 알지만 진정 그 세월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일 그가 병에 걸린 직후부터 이 못가에 와 있었다면, 그러니까 삼십팔 년 전부터 이 못가에 누워 있었다면 그는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 며칠간 머물러 있었을 때도, 아니 그전 성모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를 성전에 봉헌할 때도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마디로 이 병자는 예수님 나이보다도 훨씬 더 긴 기간을 중풍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병력(病歷) 인생보다도 짧은 생을 산 사람이 와서 “당신은 건강해지기를 원합니까?”라고 묻고 있다. 만일 내가 삼십팔 년간 누워 있던 사람이고, 웬 젊은 사람이 와서 “당신은 건강해지기를 원합니까?”라고 했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중풍환자는 그에게 “당신은 건강해지기를 원합니까?”라고 물어본 젊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이 오랜 세월 기다려 온 메시아란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젊은이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여겨 화를 낼 수도 있었다.
예수회에서는 수련기 때 여러 가지 수련을 받는다. 병원에서 한 달간 간호보조원을 보조하는 ‘오다리’ 수련, 한 주일간 탁발을 해가며 지정된 순례 장소까지 갔다 오는 수련, 사랑의 선교회 수사님들과 함께 한 달간 무의탁 병자들을 돌보는 수련 등등이다. 이러한 수련의 하나로 월요일마다 영등포 시립병원에 가서 행려환자들을 돌보는 것도 있었다. 병원 입구에서부터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병동 안에는 거리에서 쓰러져 죽어가던 행려환자들이 실려와 누워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서 관심을 보이고 면도나 머리를 감아주려고 하면 그들은 고마워하기보다 귀찮아한다. 체념과 냉소 그리고 고생에 찌든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꺼지라고 소리를 지른다. 더이상 살고 싶다는 의욕도 없고 만사가 귀찮은 것이다.
그런데 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호의에 신경질을 부리거나 소리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삼십팔 년을 누워 있었는데도 주님께서 주실 은총을 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이 출렁거릴 때 저를 못속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5,7) 이 대답은 다시 말하면 “주님, 물론이지요. 저는 정말 낫고 싶습니다”가 아닐까?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제가 가는 동안 다른 이가 먼저 내려갑니다”(5,7)라고 말한다. 이것은 낫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교부 크리소스톰은 이 병자가 인내의 덕을 보여주는 모범적 인물이라 칭송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의 큰 게으름에 대하여 통곡해야 한다. 이 병자는 삼십팔 년간 베짜타 못가에 누워 있으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과연 우리도 40년간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였을지라도 주님께서 주실 선물을 여전히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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