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묵상하라

하느님, 우리의 신분증

깜장보석 2007. 9. 30. 10:19

  


유일신
과거의 그리스도교는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 17-­19세기에 유럽의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은 가톨릭·개신교 할 것 없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세계만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현지 사정은 별로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조치였다. 그런 까닭에 현지 종교나 사회·정치·문화와 필연적으로 마찰을 일으켰고 선교사들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순교자들이 양산된 것이다. 하지만 순교는 언제나 개인적인 순교로 끝나지 않았다. 순교자들이 발생하면 자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군대가 출동했다. 막강한 군대를 보유한 유럽 열강에 비해 보잘것없는 군사력을 지닌 아프리카·아시아 약소국들은 그런 방법을 통해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시절의 이야기다.
제국주의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갖고 있었던 자부심은 그뒤로도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고 많은 불행을 낳았다. 강력한 자부심 덕분에 무모한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에 비하면 타종교는 열등하다. 아니, 타종교란 존재할 수도 없다. 모조리 개종시켜야 한다. 하느님 이해(신론)는 서구에서 잉태되었고 발전했다. 제3세계의 신론이란 그저 서구에서 꽃피운 전통적인 신론의 변두리일 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연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하셨다.(창세 1,28) 자연은 인간에게 이롭게 사용되면 그뿐이다.
요즘 한창 탄력을 받기 시작한 생태신학·여성신학·해방신학·아시아 신학 등은 50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렇게 된 근본 원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필자의 견해로는 십계명의 첫번째 계명인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못한다”(출애 20,3;신명 5,7-­10)가 지난 2천 년 동안 그리스도교의 중추신경을 장악한 때문으로 보인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도 바뀌었으니 제1계명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보자.

제1계명
십계명의 설립 근거는 출애 20,2에 나온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 하느님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우선 정체를 밝히고 난 뒤 유일신 계명을 모세에게 주었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
그리스도교·유다교·이슬람교 등 중동 사막에서 일어난 세 종교는 전통적으로 이 구절을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식으로 그 뜻을 확장시켜 해석해 왔다. 하지만 역사적인 정황을 보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이 계명이 처음 주어졌던 시절, 그러니까 대략 기원전 13세기 경 근동지역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있었다. 이집트, 고대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가나안에서 제각각 신을 섬겼고 심지어 지난달에 살펴본 ‘야훼’라는 호칭도 지역에 따라 여러 발음으로 불렸다. 이를테면 에블라에서는 ‘야-우’, 마리 지역에서는 ‘야-위’ 그리고 이집트에서는 ‘샤슈 야훼’라는 발음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당시 근동지역은 수많은 신들이 공존하던 시절이었다.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기 왕정시대 때까지만 해도 범신론(汎神論)적 사고가 발견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신 신앙을 보여주는 제1계명은 우선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신들’(엘로힘 아헤림)이 아니라 하느님만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유일성). 하지만 다음 본문을 읽어보면 제1계명에 또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야훼를 경외하며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시오. 여러분의 조상들이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도 섬겼고 이집트에서도 섬겼던 다른 신들을 버리고 야훼를 섬기시오.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유프라테스강 건너편에서 여러분의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택하든지, 여러분이 들어와서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인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야훼를 섬기겠소.” 백성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야훼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다니 될 법이나 한 말입니까?”(여호 24,14­-16)
여호수아서는 잘 알다시피 이집트 땅을 빠져 나온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다. 여기에 보면 백성들에게 원하는 신을 선택하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무언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구절이다. 어찌 이스라엘 야훼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신에게 갈 수 있다는 말인가?
원래부터 구약성서의 하느님 체험은 철저히 가족 중심이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수호신이었고, 이사악과 야곱과 요셉을 개인적으로 보살피신 분이다. 그러다가 이집트 탈출 때 비로소 민족신의 위상을 갖추었고 다윗 이후로 국가신으로 격상되었다. 곧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연과 함께 주변 신들을 물리치고 바야흐로 온전히 이스라엘의 신이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과거 청동기 시대의 이스라엘에서는 ‘야훼’가 오늘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었을 법하다.
초기 야훼 종교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근동지방에서도 가장 연약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주변 강대국의 종교에 도전을 하거나 얕잡아 볼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그들에게 야훼신과 관련해 선행되었던 인식은 야훼와 이스라엘이 맺었던 질긴 인연이었을 테고, 그를 통해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성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분의 스타일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해본다. 누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까? 우선 이름을 말할 것이고, 이어서 직업·고향·학교·가족관계 등등으로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나를 결정적으로 규정짓는 조건일까? 나는 왜 같은 질문에 ‘나는 예수쟁이요!’라는 단순한 말로 나의 정체를 알릴 수 없을까?
십계명의 제1계명인 유일신 계명은 하느님 외에 다른 모든 신들을 부정하는 배타성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정체성에 그 무게 중심이 있다. 편하게 말해 ‘우리는 야훼의 것이며 야훼 없이는 우리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요즘 식으로 개인의 정체를 알려주는 신분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유일신 야훼는 약한 자와 억눌린 자를 돌보시는 분이며 자비의 손길을 펼치시어 이스라엘을 노예 상태에서 건져주신 분이다.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이나 타민족에 대한 공격성은 야훼 종교의 원래 특징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야훼 종교의 진정한 계승자로 자처하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보면 제1계명을 바탕으로 타민족이나 타종교를 멸시하고 정복했던 예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이나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정복에도 이 계명은 힘을 한껏 발휘해 전쟁을 합리화시켜 주곤 했다. 그러나 앞의 분석을 따르면 유일신 계명에서 배타성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나의 신분증으로 남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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