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묵상하라

누가 목마르거든

깜장보석 2007. 9. 30. 10:23

 

 

 

여기서 말하는 축제는 초막절 축제이다.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가을 추수를 기념하는 축제로 우리로 치면 추석에 해당되는 명절이다. 함께 모여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고 노래하고 춤추는 축제다.
이 명절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의 예식이다. 초막절 동안 사제단과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행렬을 한 후 주례사제는 금으로 된 병에 실로암 연못물을 담아 돌아와 그 물을 성전 제단에 뿌린다. 이때 사제를 둘러싼 순례자들은 이사야 12장 3절의 찬미가를 번갈아 부른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주례사제는 제단에 물을 다 부은 다음 하느님께 비를 풍성히 내려줄 것을 기도한다.
이스라엘의 가을은 건조기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샘은 마르고, 초목은 시들고, 도로는 흙먼지를 낸다. 그래서 주례사제는 내년 농사를 위해서는 물론이요, 이 가을에도 비를 내려주시기를 기원한다. 그래서 어쩌다 초막절 행사 동안에 비가 내리면 다음해엔 비가 풍부하게 내린다는 징표로 보았다.
이런 초막절 축제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큰소리로 “누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시오. 나를 믿는 이는 마시시오. 성경이 말한 대로 ‘생수의 강이 그의 배에서 흘러 나올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얼마나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7장 37절 말씀, “누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시오”를 살펴보자.
먼저, ‘누가 목마르거든’에서 ‘누가’는 모든 인간을 가리킨다. 어떤 사람은 목마르고 어떤 사람은 목마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모두가 목마르다. 타락한 인간 본성으로 인간은 누구나 삶의 무의미성과 그로 인한 목적론적 불투명으로 목말라한다. 그뿐 아니라 생명에 대한 목마름도 있다. 이런 인간에게 예수님이 초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원하면 생명의 물을 마실 수 있다. 누구는 구원받고 누구는 구원 못 받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구원의 문은 열려 있다. ‘누가 목마르거든’ 예수님은 목마름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를 말하지 않는다. 이는 목마름이 영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현실적인 것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마름이 어떤 것이든 예수님이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내게로 와서’는 예수님만이 모든 목마름을 채워주시는 분이시기에 예수님께 와야 된다는 말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했듯이 “우리 마음은 당신 안에서 쉼을 얻기까지는 안식이 없나이다”. 갈증이 날 때는 반드시 물을 마셔야 한다. 그렇다면 영혼의 갈증에는?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마셔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이 갈증을 해소시키는 생수이심을 밝히신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마시시오’이다. 두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첫번째, 생명의 물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지만, 그것을 마셔야 할 주체는 우리란 점이다. 마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생명수가 흘러 넘친다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유비적으로 설명해 보자. 우리는 전화가 울리지 않으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누가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 생명의 물을 청하지 않는 한 주님은 그 물을 줄 수 없다. 두번째로 주목할 점은 ‘마시시오’란 단어가 계속적인 행위를 가리키는 현재시제(pinevtw)로 쓰였다는 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풀어 표현하면 “누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고 또 마시시오. 계속해서 마시시오”이다. 무슨 뜻인가? 우리가 이 세상을 순례하는 동안 계속 목마를 것이기에 지속적으로 주님께 와서 생명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목마름으로 가득차 있다.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때, 승진에서 탈락했을 때, 시험에 떨어졌을 때, 회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받는 갖가지 사건과 부닥칠 때,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이 계속될 때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주님의 우물로 달려가서 생명의 물을 마셔야 한다.

성령님과 신앙생활
7장 38절 예수님의 말씀 “나를 믿는 이는 성경이 말한 대로 생수의 강이 그의 배에서 흘러 나올 것입니다”를 살펴보자.
우선 흘러 나오는 생수의 강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7장 39절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영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으시지 않아서 영이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수의 강은 성령을 가리킨다. 우리 마음속에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친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내재하여 강력하게 역사한다는 뜻이다.
7장 38절 ‘나를 믿는 이’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가리킨다. 과연 우리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고 있는가? 기도회에서 ‘내게 강 같은 평화 넘치네’를 부르다 보면 때로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것 같다. 그런데 평소에는 어떠한가? 어떤 사람은 자기 몸 안에 성령의 강이 흐른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만 알아듣는다. 실제로 성령이 자기 안에 강물처럼 흐른다고 믿지 않는다. 믿기에는 삶이 너무 무기력하고 무의미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를 믿는 이’ 다음에 예수님은 ‘성경이 말한 대로’라고 하신다. 성경이 말한 대로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서 흐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신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은 진실되며 사실이다. 주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은 천지가 없어져도 변치 않는다. 주님께서 믿는 이들 안에 성령의 강물이 흐른다면 흐르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도 말하지 않던가? 우리 몸은 주님의 지체이고, 우리 몸 안에는 성령이 거하고 계신다고.(1고린 6,15.19)
느낌은 진실되고 사실적인 많은 것을 감지케 한다. 하지만 내 안전은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나의 안전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달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시편 저자는 “야훼께 의지하는 자는 시온산과 같으니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든든하리라”(시편 125,1)고 노래한 것이다. 또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 놓을 자 누구입니까? 환난입니까? 궁핍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이 모든 일에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에 힘입어 이기고도 남습니다”(로마 8,35­-37)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우리의 영은 메마른 땅과 같고 시든 나무 같은 때가 얼마나 많은가. 주님의 제자로서 기쁘고 보람있게 살아가지 못하고 무기력과 무질서한 애착 속에 낙심하며 살아간다. 주님은 우리 안에 성령의 불을 지르러 오셨는데 우리는 연기만 피우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탄식하시고 속삭이시는 성령께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그분께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긴 가뭄 속에 메마른 풀처럼 맥없이 살아가고 있다면 즉시 성령께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한다. 지금 무기력과 낙심으로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즉시 성령께 순종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저지르고 있다면 즉시 성령께 순종해야 한다.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지금 즉시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를 청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미사도 성무일도도 기도도 찬양도 다 귀찮게 느껴진다면 즉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간절히 구하자. 지금 우리가 봉사할 힘도 없고 의미도 못 느낀다면 즉시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자. 어느 사목자는 이렇게 말한다. “추운 겨울밤에 갑자기 난방이 꺼졌다고 하자. 그때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 다시 난방이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난방이 들어올 때까지 그 추운 밤을 오들오들 떨고 앉아 있는 식구들에게는 난방이 들어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오늘날 우리 사목 현장을 보면 성령님의 임재 속에 있는 것 이상으로 절실한 문제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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