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행동을 유난히도 부담스러워하는 내가 동료 수녀님들과 함께 가서 영화를 본 것은 벼랑 끝의 삶, 그걸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제목은 ‘마더 데레사’. 대부분의 수녀님들은 성녀의 삶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제일 컸겠지만 나 개인적으로는 유년기의 우상이었던 올리비아 핫세의 변한 모습이 궁금했고, 성녀가 벼랑 끝의 삶을 어떻게 살아내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아마도 사람들이 영화나 책을 통해 간접체험을 시도하는 이유는 이렇듯 그저 단순히 ‘그 사람’을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전해주는 여러 정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자 함일 것이다. 좋은 점을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삶은 상당 부분 호전될 수 있으니까.
여호수아기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쓰여졌다. 땅을 잃고 벼랑 끝에 몰린 이스라엘 대중에게, 그들이 빼앗긴 약속의 땅을 온전히 차지함으로써 선조들에게 약속한 바를 그 옛날 구체적으로 실현했었던 불세출의 영웅 여호수아를 소개함으로써 ‘여호수아처럼 된다면’ 빼앗긴 땅도 다시 찾을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기에 대한 두 가지 다른 이해
신명기 다음에 등장하는 여호수아기를 이해하는 데에는 다음 두 가지 입장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그 첫번째는 이 책을 토라에 속한 여섯번째 책으로 보는 입장이다. 소위 ‘모세육경설’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미 민수기나 신명기에 여호수아가 등장하고 있고, 모세가 시작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킨 인물이 그이기에 모세오경과 동일한 연속성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모세오경을 형성한 자료(야훼계, 엘로힘계, 신명기계, 제관계 문헌)가 여호수아기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 문헌들이 직접적인 저자가 된다. 이와 구별되는 두번째 의견은 여호수아기와 이어지는 책들(판관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을 소위 ‘신명기계 역사서’라는 ‘역사책’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여호수아기에서는 신명기적 관점만이 발견되며 따라서 저자도 신명기계 역사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이 된다. 현재 학계는 대체적으로 후자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신명기계 역사서란?
그렇다면 신명기계 역사서가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신명기계 역사서’란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 열왕기를 통칭하는 표현으로, 원신명기(신명기 12-26장)의 정신, 즉 오직 야훼만을 섬기고, 그가 선택한 장소에서 예배해야 함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으로 이스라엘 전 역사를 조망하는 역사서이다. 이 역사서가 제시하는 내용은 ‘가나안 정착부터 유다 왕조 말기(유배)까지 이스라엘 역사’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은 이 ‘역사서’가 객관적 서술을 연속적 형태로 진행시킨 일반적 의미의 역사서는 아니라는 점이다. 개별적 이야기들이 덩어리로 결합되어 있거나 부분적 시기를 확대하여 편중적으로 묘사한 단위 문학들이 다수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다윗의 계승사,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 등)
신명기계 역사서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파괴되고 처참한 모습으로 유배를 가는 비극적 상황이 도대체 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대한 신명기계 역사학자들은 유배가 그들 ‘죄에 대한 심판’이라는 신학적 입장을 ‘역사’라는 장르를 통해 제시해 준다.
신명기계 역사서와 전기 예언서
그런데 히브리 전통에 의하면 ‘신명기계 역사서’는 ‘전기 예언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앞서 입문 과정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우리는 히브리적 전통을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살펴보고 있기에 구약성경을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 이해하고 있고, 따라서 여호수아기부터 열왕기에 해당되는 책들은 ‘전기 예언서’에 속한다. 이러한 전통은 오래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이미 즈카르야서에서도 전기 예언서라는 용어가 발견된다.(1,4;7,7 참조:우리 성경에는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히브리 본문에는 분명히 제시됨)
신명기계 역사서를 ‘예언서’로 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처럼 신명기계 역사서는 외관적으로 ‘역사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예언문학의 가장 특징적 문체인 ‘신탁’도 발견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 예언서’의 한 부류로 간주된다. 이유는 예언문학의 가장 뚜렷한 주제인 ‘고발’이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 예언서가 근본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주제는 ‘왕정’이다. 왕정은 이스라엘의 정통 노선이 아니며 하느님만이 왕이심을 피력하고, 하느님 없이 스스로 왕 노릇 하려 했던 여러 왕들의 죄로 인해 유배라는 참극이 도래할 수밖에 없었음을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기는 다음에 이어지는 왕정 도입의 이야기(사무엘기부터)가 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전 단계적 상황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편집자들은 이미 여호수아기부터를 전기 예언서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역사란?
그렇다면 역사란 무엇인가? 언제부터인지 ‘사극’이 우리의 문화의 중심에 서고 있다. 대중의 구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 연출자들은 ‘정사(正史)’를 ‘야사(野史)’로 만들어서, 혹은 ‘야사’를 ‘정사’로 만들어서 안방극장에 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계는 야사만 만연한 이 시대를 우려 섞인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지만 ‘역사’라는 장르는 사실 그 어떤 경우에도 정확한 중립성이나 객관성을 유지하며 서술되기는 어렵다. 역사는 언제나 강자에 의해 재구성되고 심지어 왜곡되어 전달되기도 하는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러한 역사의 속성을 매우 분명하게 보고 있었다. 그들은 역사를 사실(fact)에 대한 보도에 집중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진실(truth)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즉 실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보도보다는 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에 더 주목했던 것이고, 따라서 신명기계 역사서 역시 실제 사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보도라기보다는 각 저자들이 자신들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그 사실을 해석한 일종의 ‘해석된 역사서’로 보아야 한다. History가 아니라 Story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다.
이스라엘에게 역사란 인간 역사가 아니라 인간 역사 안에 활동하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즉 역사는 하느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현장이며, 이스라엘이 겪은 역사체험을 신앙으로 해석하여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드러내려는 것이 신명기계 역사서의 주된 목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서를 공부하는 우리에게 부과된 과제는 이스라엘의 과거 사건들을 실제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가들이 역사를 해석한 관점을 신학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라 하겠다.
인물 여호수아
여호수아라는 이름은 ‘야훼께서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이며, 에프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소개되고 있다. 젊은 나이에 에프라임 지파의 수장이 된 그는(민수 13,8)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나이산에 오를 때 동행하였고(탈출 24,13 이하) 가나안에 파견된 열두 정탐꾼에도 속해 있었다.(민수 13,1-30) 모세 임종 때에 하느님의 명으로 후계자로 위탁되면서(민수 27,18-23;신명 34,9) 그 소명을 완성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가 실제적인 역사 보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가 이룬 전승(戰勝)들은 거의 대부분 대적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열세인 상황에서 거두어들인 승리이기에 이러한 보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모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당시 대단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에프라임 지파의 한 영웅이었을 것으로 보이고, 이 인물과 관련된 여러 민담에 수식이 가해져 그가 단순히 한 지파의 영웅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여기에 여러 장수들의 이야기가 여호수아 개인 이름 안에 흡수되어 확산된 것일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기는 우선 ①실존 인물 여호수아에 대한 기록이 전해져 오고 있었고, 이에 ②역사적인 사료로는 볼 수 없지만 저자(혹은 편집자)가 알고 있던 고대 영웅들의 전통(특별히 가나안 정복과 관련된 전승들)을 여호수아라는 이름으로 확장하여 현재와 같은 모습의 책이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과 구성
탈출기에서 신명기까지 이야기가 약속된 땅을 얻기 위한 모세의 ‘준비 과정’을 언급하고 있다면 여호수아기는 그 땅의 ‘정복과 분배’에 대한 내용을 소개한다. 전반부에서는 ①가나안 침입(1-5,12) ②가나안 정복(5,13-12,24)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후반부에서는 정복된 ③가나안 땅의 분배(13-22장) ④부록:여호수아의 송별사(23-24장)가 등장한다.
신학적 메시지
여호수아기에서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주제는 ‘계약을 지키시는 하느님’이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집안에 하신 그 모든 좋은 말씀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이루어졌다”(21,45)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인간과의 계약에 신실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기는 그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이 주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켐에서 집회를 열어 그 땅이 이제 이스라엘의 땅임을 천명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24장) 신실하신 하느님을 명확히 제시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약속의 땅을 잃고 유배라는 비극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만 한다면 약속에 땅에 대한 계약은 여전히 유효함을 그리고 여호수아가 보여준 것같이 계약에 대한 강한 믿음과 신실함만 있다면 당면한 문제들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반복적으로 그의 군중에게 했던 “힘을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라는 격려는 정확히 말하면 유배라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당시의 독자들에게 한 격려였다.
믿음은 기적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이 기적을 이루어 낸다. 여호수아가 이룩한 백전백승의 기적은 흐트러짐 없는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신명기적 의식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러므로 단순하다,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흐트러짐 없는 마음을 일관할 것, 그것만이 벼랑 끝의 삶을 극복하게 하는 힘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두리번거리지 말고 확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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