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바라기

신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상의 차이점

깜장보석 2012. 9. 10. 14:38

성경이 태어난 곳은 전쟁의 소용돌이가 그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물과 목초지, 비옥한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고대 근동의 민족들은 생사를 건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살던 팔레스티나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열강들의 패권 다툼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들의 삶은 폭력과 전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습니다.
전쟁이 일상의 삶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인들이 하느님을 ‘만군의 주님, 힘센 용사, 임금, 견고한 성채’ 등으로 묘사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자신들의 관계, 그리고 자신들과 주변 민족들의 관계도 전쟁 용어를 빌려 설명하고 이해하였습니다. 전쟁의 배경 안에서 이해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안목으로 볼 때 폭력을 허용, 또는 조장하고 자신에게만 절대복종을 요구하는 다소 부정적인 모습의 신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부정적인 신의 모습과 더불어 한없이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모습도 함께 자리합니다. 특별히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원하시는 보편적이고 긍정적인 신이십니다.
이 두 상반된 하느님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성경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문화적 한계와 약점을 노출시키는 표현과 생각이 곳곳에 나옵니다. 전쟁 문화를 배경으로 그려진 하느님의 모습도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전쟁 문화의 부정적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끝까지 성실한 사랑과 자애를 베푸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성경 전체에 생생히 드러납니다. 어떻게 보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 하나만을 위해서 주변의 모든 민족을 다 쓸어버리시는 잔혹한 신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편협한 국수적 민족주의가 빚어낸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인류를 위한 하나의 표본으로 이해하면, 문제는 쉽게 풀려 나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게 당신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자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택하시어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성경 저자들은 자기네 삶과 문화를 바탕으로 하느님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들이 소개한 하느님은 자기네 조상들에게 한번 약속하신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하시고, 마침내 자신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이끌어 주시는 자애로운 분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전쟁과 폭력의 이야기 한가운데서도 당신 백성에게 성실하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모습은 언제나 변함없이 부각됩니다. 말하자면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야기들은 성경의 본 내용이 아니라 본 내용을 담고 있는 배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 있어서 많은 경우 고문서와 고고학적 발굴이 밝혀낸 바로는 구약성경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가벼운 폭력이 일어났거나 아니면 전혀 폭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흔히 구약의 폭력와 전쟁 이야기들은 ‘주 하느님께서 이처럼 크고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셨다’는 이스라엘의 믿음을 보다 생생하고 강력하게 표현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의 하느님 안에 부정적 모습과 긍정적 모습이 공존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구약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성경 저자들이 결코 제3자의 객관적 입장에서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구약성경은 단순한 역사기록이 아니라 주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 서서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강조하다 보면 역사적 실제와 다른 표현이나 과장이 곁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편협한 민족주의의 안목 때문에 다른 민족들의 생존을 가볍게 다룰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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