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역사의 관계에 대해:
『고대인들은 역사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그것을 ‘사실’(fact)에 대한 보도로 간주하기보다, 그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진실’(truth)에 보다 비중을 두고 이해했습니다. 즉, 고대인들은 실제 사건에 대한 사실적 보도보다 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그 사건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더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역사서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서는 실제 사건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보도라기보다는 각 저자(혹은 편집자)들이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 신학적으로 해석한 일종의 ‘해석된 역사’로 이해해야 하는 것압니다. 따라서 ‘History’가 아니라 ‘Story’라는 관점에서 구약성경 역사서를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한 이해일 수 있겠습니다.
역사서라고 하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차원에서 정확히 기록한 책이라고 여기지만, 그 어떤 역사서도 이러한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있어 역사서란, 인간들의 역사(歷史)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인간 역사(歷史) 안에 역사(役事)하시는 하느님의 역사(歷史)를 기록한 책입니다.
즉, 역사(歷史)는 하느님의 주권이 드러나는 현장이며, 이러한 현장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체험들을 신앙으로 해석하고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구원적 의미는 무엇이었는지를 드러내고자 저술된 책이 구약성경의 역사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서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소개하는 책이며, ‘그분과의 구체적인 관계’를 정리해 전해 주는 신학 보고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성경의 역사서를 공부하는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즉, 우리의 과제는 이스라엘의 과거 사건들을 실제적으로 재구성하여 요약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역사가들이 그들의 역사를 해석한 다양한 ‘신학적 관점’들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 성경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성경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려주려는 의도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곧 계시의 책입니다.
구약은 기원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도 우리처럼 세상 창조나 첫 인간의 탄생을 ‘눈으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성령의 영감에 따라 이 세상이 하느님의 작품이고, 우리 인간 또한 하느님의 사랑으로 탄생되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성경을 썼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과학이 발달된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말하는 식으로 “약 45억년 전에 우주에서 빅뱅이라는 대폭발이 있었고, 그때 지구가 생겨났어….”라는 식으로 말했다면 누가 알아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은 모든 세대를 위한 책이지만 일차적으로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 사고방식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지만 동시에 사람이 쓴 작품이고 사람이 읽기 위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세기에 창조 이야기가 두 번 나온다는 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1장에서는 세상 만물을 모두 창조한 뒤에 인간이 창조됩니다. 그러나 2장에서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이 가장 먼저 창조됩니다.
성경 편집자들은 이 두 가지 창조 이야기가 서로 모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1장과 2장에 나란히 배치해 놓았습니다. 그것이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책을 쓰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두 가지 창조 이야기가 하느님을 계시하는 데 서로 보완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생각하여 거기 나오는 모든 기록을 절대적 사실로 보려는 자세도 잘못이고, 성경 이야기에 과장되고 꾸민 부분이 많다 해서 성경 전체를 허구로 보아 부인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우리는 성경 본문을 대하면서 무엇보다 성경 저자들이 전하고자 고심했던 신앙의 진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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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설명을 이해하셨다면 창조 이야기는 우주 생성의 과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기원과 생명이 있는 만물의 존속 원인에 대한 근원적 진리를 알리려는 목적이 있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가 정말 6일 만에 이루어졌는가?”라고 묻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성경 저자는 이렛날 마무리된 창조의 의미, 안식일의 중요성 등을 설명하고 가르치기 위해 6일 동안의 작업과 7일째 되는 날 하느님의 휴식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사람 8명과 세상의 모든 동물, 온갖 새와 온갖 집짐승을 모두 데리고 들어가서 안전하게 보존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 저자는 여기서 큰 재난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 뿐입니다.
창세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자 쓰였습니다.
창세기는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창조주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합니다. 곧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며 구원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 하느님이 모든 것을 좋게 만드셨습니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느님 안에서 그 존재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에 써드린 참고 도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참고 도서:
<모세오경: 모세와 함께하는 성경 묵상>(김정훈 지음,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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