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정동욱 // 남. 40세. 중학교 음악교사
정동현 // 남. 31세. 일용직 기술자
유미리 // 여. 25세. 웨딩센타 아르바이트생.
(막이 오르기 전에 들리는 빗소리와 음악)
((M1- OPENING- 빗소리와 함께 들리는 실내악. 맑은 피아노 소리))
(막이 올라가면서 빗소리 점점 작아지고 음악도 점점 작아진다. 조명 서서히 밝아진다. 소박한 거실의 풍경. 현관문이 있고 화장실로 통하는 문이 있다. 부엌으로 통하는 출입구엔 가리개가 쳐져 있다. 커다란 창가로 빗물이 흐른다. 창 밑에 놓인 낡은 오디오. 벽면에 걸린 사진 액자 두개. 첫 번째 액자는 고등학교 교복차림의 여고생 두 명과 중학교 교복을 입은 남중생 그리고 뒤쪽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 두 번째 액자는 신문사 콩쿨대회라는 플랜카드 붙어 있는 무대에서 상장과 트로피를 든 교복을 입은 남 고생과 함께 찍은 남자의 모습- 첫 번째 액자 속의 그 남자와 동일인임. 거실과는 어울리지 않게 놓여있는 낡은 피아노 두 대 낡은 피아노 의자 위에 빨래 거리가 개켜져 있다. 작은 티 테이블과 이 인용 소파가 놓여있다. 앞치마를 두른 동욱 사진 속의 남자, 테이블 보와 촛대를 들고 등장한다. 동욱,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밑으로 내려놓고 그 위에 테이블 보를 깔고 촛대를 놓아둔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부엌으로 가려다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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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모두 모이는 거야 - 동욱의 독창- 즐겁고 밝은 분위기)
[동욱] 하루종일 준비했지 너희들이 먹을 음식을
그래도 힘든지 몰라 행복한 너희 모습 본다면
올망졸망 조카들 까르르 웃음 짓고
서로서로 살아가는 얘기에 술잔 기울이며
고스톱 피바가지 쓰리고도 부르면서
모처럼 웃음소리 창문 넘어 가겠지
바쁜 서울 살이 만날 일 드물지만
그래 모두 모이는 거야. 바로 오늘.
(동욱 현관문 닫고 현관으로 간다. 실내악 음악 계속 깔리면서 울리는 전화벨. 동욱. 국자 든 채 잽싸게 부엌에서 뛰어 나와 이 인용 소파를 휙 뛰어 넘어가서 전화를 찾는다.)
[동욱] 참!
(동욱 테이블 밑에 있는 전화를 들고 받는다)
[동욱] 여보세요. 아, 영희구나. 잠깐만---
(동욱 일어나 리모콘으로 음악 끄고 소파에 앉아 전화 받는다. 전화 받는 중에도 연신 밀가루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는다.)
[동욱] 응, 뭘 좀 만드느라고. 넌 어때? 그래, 장마철 이라더니--- 지겹게 오는구나. 오늘? 방학 식이라 일찍 끝났지 뭐. 참 은지하고 미지도 방학 식 했겠구나. --- 같이 와 오랜만에 조카들 얼굴 보게, 엉--- 못 오겠다고?
(실망한 표정을 애써 감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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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오신다는 데 하는 수 없지 뭐, 별일은 아니고. 그냥 같이 모여서 밥이나 한끼 먹자는 거지. 신경 쓰지마. 그래, 시어머님 음식은 좀 장만했니? 저런, 전화 끊고 음식 장만이나 해라, 그럼 끊자.
(동욱 전화 끊을 여다 저쪽 편에서 무슨 소리가 있었는지 다시 수화기를 댄다)
[동욱] 응? 어- 소라조림? 그거 하게? 어른들에겐 연세도 있고 해서 괜찮은 반찬이지. 지금, 우선 소라하구 장조림 간장, 사골국물, 고춧가루, 다진 마늘, 사과와 양파를 함께 간 것 물엿, 설탕, 청주, 잣을 준비하고--- 좀 빨랐지 오빠가 또박또박 불러줄게
M3- 요리노래 - 동욱의 독창
제일먼저 사과랑 양파랑 함께 간 것 준비해 (그렇지)
설탕과 물엿과 청주랑 다진 마늘 준비해 (그럼)
장조림 간장과 사골국물에 다진 마늘과 청주를 넣고서
사과 양파 고춧가루 물엿을 넣고 한번쯤 끓여 봐- (물론이지)
이때쯤에 물엿을 넉넉히 넣어야만 윤기나 (그렇지)
양년간장 끓을 때쯤에 소라 넣고 기다려 (삼분정도만)
소라는 너무 졸이면 질겨져 살짝만 넣고 끓여봐. (그러고 나서)
곱게 다진 잣을 뿌려 놔 참! 홍합 말린 것도 넣어봐
물엿은 넉넉히 넣어야만 해 그래야만 윤기가 나지
양념 간장은 3분의 1정도 걸쭉해질 때까지 졸인 다음
다시 한번 소라를 넣는 거야.
물엿은 넉넉히 넣어야만 해 잣은 곱게 다져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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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녀석 급하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해.
(부엌으로 들어 갈려는데 다시 울리는 전화벨 동욱 얼른 다시 받는다.
[동욱]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또 뭘 잊었--- 아, 정희니, 난 여흰줄 알고, 그래, 방금 전에 니 언니하고 통화했어. 시어른이 오셨다고 뭐야? 너희들도 못 와 아냐, 신경 쓸 것 없어, 직장상사 집들이라는데--- 갈 땐 빈손으로 가지말고--- 그래, 공연한 노파심에서 해본 말이야 민서방은 잘 있지? 어이, 민서방--- 아니 뭐 신경 쓸건 없어 그저 다 함께 모여서 한끼 먹자고 그런건데 부장초대라면 거길 가야지. 최서방도 오늘은 힘들다는 군. 오늘만 날이 아니니 다음에 하지 뭐. 음 그래, 운전 조심하게 비도 오는데 요즘도 운전하면서 잘 졸아. 아. 정희냐? 왜? 그래, 월요일 퇴근길에 들려 다 다려놨다. 그래, 내 실력으론 아직 주름치만 힘들다- 괜찮아, 어차피 내 옷 빨면서 하는 건데 뭐. 오늘 용석인 안 봐줘도 되니? 그래--- 알았다 참 용석이가---
(하는데 이미 전화가 끊긴 듯 "뚜우" 소리가 난다. 수화기 놓으려다 다시 전화기 든다. 그러나 신호음만 들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동욱. 전화 끊고 천천히 일어나 벽에 걸린 액자를 들여다보며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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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 아무도 오지 않는 밤- 동욱 독창- 허전하고 공허한 심정의 곡
소리 없이 다가오는 빗소리 하염없이 다가와 내 마음을 적시네
오늘도 나만 홀로 남아서 서 있네
흘러내린 빗물 따라 내 맘도 따라 흐르네
이제는 모두 지난 일처럼 떠올라 멀게만 느껴지네
언젠가는 내 곁을 속절없이 떠나 갈 거야
마음마저도 허나 외롭지 않아 너희들이 내 맘속에 있기에
지금 이 순간 한없이 행복하네
창문으로 스며드는 빗소리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맘을 두드리네
누구라도 내게 다가 올 것만 같아 오늘밤도 나만 홀로 창가에 서있네
그 언제인가 해 맑은 사랑노래가 비를 타고 와줄까
멀지 않은 너희모습 떠올라 빗물 따라 흘러가면 만날 수 있을까
영롱한 별빛처럼 고요한 강물처럼 흘러 만날 수 있어
눈부신 햇살처럼 반짝이는 이슬처럼 해맑은 너희모습이
눈앞에 보이네
(동욱 액자를 쓰다듬던 손가락이 부루루 떨린다. 동욱, 얼른 손가락 마디마디를 누른다. 이내 낮은 한숨 내쉬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M5- 동현 등장-
(이어 조심히 문 열리고 비에 흠뻑 젖은 한 남자 주위를 살피며 들어온다 남자의 옷차림새는 낡은 야전잠바와 청바지를 입고 있다. 그의 손에 들려진 연장 가방 마치 도둑처럼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며 거실의 물건을 이것저것 만져본다. 그러다 사진 액자 앞에서 뒷모습을 한 채 사진을 바라본다. 동욱, 부엌에서 나오다가 낯선 남자의 뒷모습에 놀라 멈춰 선다. 동욱,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촛대를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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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꼼짝 마!
(순간 뒷모습의 남자 놀란 듯 고개를 숙인다)
[동욱] 난 지금 가스총을 들고 있으니깐 섣불리 행동하면 당장 쏠 거야! 손들어.
(남자 천천히 두 손을 든다)
[동욱]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밖으로 나가!
(남자 천천히 돈다)
[동욱] 허튼 짓 하면 당장 쏠 거야
(남자 완전히 돌아서면서0
[남자] 이게 가스총이야?
[동욱] 아니!
[남자] (웃으면서) 이 손 내려도 되지?
[동욱] 너!
[남자] 요즘이 어떤 세상이라고 문을 열어 놓고 있어. 강도라도 들어오면 어쩔려구!
[동욱] 도대체!
[동현] (두 손 으쓱해 보이면서 손 내민다) 잘 지냈어?
[동욱] 동현아!
[동현] 언제까지 그거 들고 있을 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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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그제사 계속 촛대 들고 있다는 걸 알고 촛대를 놓고 동현에게 다가간다.)
[동욱] 동현아!
[동현] 이름 닳겠수. 그만 불러, 여기 있는 사람 동현인거 세상 사람이 다 알아. 형 막내 동생 정동현.
[동욱] 이 자식 야!
(때릴 듯 다가가더니 서로 익숙하고 요란한 손 사인을 나눈다 그러나 마지막 손 사인에서 동욱이 강하게 동현의 손뼉을 치자 동현, 갑자기 어깨가 아픈 듯 인상을 쓴다)
[동현] (어깨 감싸안고) 윽!
[동욱] (놀라서)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동현] (이내 웃으며) 속았지.
[동욱] (안심하며) 여전하군.
[동현] 형이야말로
[동욱] 저런 온통 다 젖었구나. 우산은?
[동현] 깜빡했어.
[동욱] 옛날에도 맨 날 우산 없이 다니더니--- , 감기 들라 잠깐 기다려
(동욱, 화장실로 들어간다)
[동현] 어떻게 지냈어?
[동욱] 맨날 맨날 그랬지 뭐 너는 어땠어?
[동현] 나? 맨날 맨날 그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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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피아노 앞에서 바라본다. 동욱, 수건 가지고 나오다 본다)
[동욱] 쳐볼래?
[동현] (돌아보며) 형이나 쳐! 이제 이런 건 나한테 어울리지 않으니까.
[동욱] (수건 던져주며) 알았다 임마. 몇 년 만이지. 무작정 가출 한 게?
[동현] 오 년 왜 너무 빨리 돌아왔어? (수건으로 몸 닦으며) 이런 제기랄 이런 속옷까지 다 버렸는걸 정말 지독한 비야.
[동욱] 지독한 놈--- 그럴게 아니라 옷 좀 갈아입어라.
[동현] 괜찮아!
[동욱] 장마철일수록 몸을 마르게 해야돼. 빨리
[동현] 그 잔소린 여전하군.
M6-여전하군- 동욱과 동현의 이중창
어릴 적 그 잔소리 아직도 그 잔소리 여전해
일어나 세수해라 밥 먹고 학교 가라 잔소리
난 그 잔소리가 언제나 귀찮기만 해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흐르면
조금은 나아 질줄 알았지
하지만 아직도 잔소린 여전해 이제는 그만
여전한 그 소리 언제나 그칠까 제발 좀 그만해 잔소리
아직도 거친 말투 어릴 적 거친 모습 여전해
언제나 너를 보면 물가에 어린아이 같았어
난 너의 그 모습 언제나 불안했었지
시간이 지나면 세월이 흐르면
조금은 나아 질줄 알았지
하지만 아직도 그 모습 여전해 이제는 그만
여전한 그 말투 언제나 그칠까 나에겐 소중해 내 동생
잔소린 여전해 그 말투 여전해 그 모습 아직도 여전해
(두 사람 다시 포옹한다 동현, 그러나 약간 어깨가 아픈 듯 어색하게 몸을 뺀다)
[동욱] 오 년 동안 뭘 하고 지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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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이것 저것.
(동현 빨래 감들을 이리저리 본다 속옷 겉옷 다 있다 그리고 기저귀도 있다)
[동현] (기저귀 보며) 형꺼유?
[동욱] 네 눈엔 그게 내 것으로 보이니?
[동현] (바라보며 고개 끄덕이다 동욱에게 기저귀 던진다)
[동욱] (기저귀 받아개며) 짜식, 용석이꺼야!
[동현] 용석이?
[동욱] 정희 아들.
[동현] 둘째 누나? 독신주의자라고 큰소리 떵떵 치더니 언제 애까지 낳았어?
[동욱] 그래 감기 기운이 있는 애를 데리고 외출한다니. 걱정이구나.
[동현] 그리고 형도 그 좀생원 모양 사서 걱정하지 말아. 자기 아들이니깐 잘 알아서 하겠지.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는 누나잖아.
[동욱] 그래, 얼른 옷이나 갈아입어.
(동현,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옷 갈아입는다 동욱, 지켜보며 서있다)
[동현] 형은 조카 보모 노릇까지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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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나야 주말엔 시간이 있으니깐--- 혼자 있는 것도 그렇고. 용석이 그녀석이 워낙 순해서--- 우유도 잘 먹고--- 영희야 그냥 집에서 살림만 하지만 정희야 맞벌인데다 주말엔 아이 봐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내가 좀 봐주고 있어. 녀석 내 자장갈 아주 좋아한다고.
[동현] (웃옷을 벗으려다가) 순 둥인지 미련 둥인지 형 자장가를 듣고 면 둘 중에 하나지 뭐.
[동욱] 자식! 밥 아직 안 먹었지?
(동욱, 대답 기다릴 것도 없이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현, 웃옷 벗는데 무척 고통스러운 듯 조심히 벗고 티를 입는다. 티는 여성용 티셔츠로 마릴린 먼로의 윙크하는 모습이 프리트가 되어있다 동현, 개져있는 빨래 감들을 하나 하나 들어본다 부라자에다 여성용 속옷까지 있다 뭔가 짐작이 간 듯 고개를 젖는 동현)
[동현] 빨래방도 차렸어?
[동욱] (나오며-) 국 앉혀놨다. 미역국인데---
[동현] 누나 빨래까지 해주는 거야?
[동욱] 그냥 세탁기가 해.
[동현] 젠장 (소파에 와서 앉는다) 그 좀생원 같은 소릴 그만둘 수 없어
[동욱] 그러지 말고 밖에서 지낸 얘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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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제발 이런 구질구질한 일 좀 그만해
[동욱]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동현] 형이 그런 식으로 하니까 영희누나나 정희누나가 자꾸 그러는 거야
[동욱] --- ,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와야지.
(동욱, 다시 부엌으로 갈려다가 피아노 의자 위에 걸쳐진 젖은 동현은 옷을 들려고 한다. 동현, 얼른 가서 옷 나꿔채며)
[동현] 왜?
[동옥] 뭘 그렇게 놀래니? 세탁기 안에 넣으면 돼,
[동현] 네, 내가 할게
[동욱] 무슨 비밀스런 귀중품이라도 들었니?
[동현] 세탁기 안에 넣고 돌리기만 하면 되는 거지?
[동욱] 그래. 세탁기가 해.
(동욱, 부엌으로 들어간다. 동현, 얼른 자기의 젖은 야전잠바에서 비닐봉투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그 비닐봉투를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피아노 의자 속에 넣어둔다)
[동욱] 마침 니가 놓아하는 조기찜도 올려놨어. 그거 빨리 세탁기 안에 넣어 안 그러면 냄새 배.
[동현] 알았어.
(동현, 옷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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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테이블 보 구겨진걸 펴며) 모두 모여 저녁이나 했으면 했는데--- 생각지 않게 너만 왔구나--- 네가 올지 알았으면 영희나 정희도 왔을 텐데--- 다음 주말에 꼭 그러자. 이번 주는 일들이 바쁘니깐.
[동현] (소리) 일은 무슨--- 얌체처럼 비도 오고 하니깐 나오기 싫어서 그런거겠지. 뻔하잖아. 젠장! 화장실 물이 새잖아. (얼굴만 내밀고) 언제부터 센 거야?
[동욱] 글쎄 한참 될 걸.
[동현] 내 가방 이리 줘봐.
(동욱, 그제사 동현이 가져온 연장가방을 본다.)
[동현] 얼른!
(동욱, 가방 드는데 손가락 때문에 놓친다. 가방이 열려 연장들이 흩어진다. 동현, 얼른 나와서 연장을 닫는다. 동욱, 손가락 주무르다가 문득 연장을 담는 동현 본다)
[동현] 형도, 몸보신 좀 해야겠어. 이런 연장가방 하나 못 들고---
(하다가 문득 생각이 미쳐서 연장 넣다가 멈춘다)
[동욱] (엄숙하게) 우선 좀 앉아라.
[동현] (몽키스페너만 꺼내고 연장가방 닫으며) 수도요금 그 동안 꽤 냈겠어.
[동욱] (좀 더 굳어진 얼굴로) 좀 앉아.
[동현] 알았어. 그렇게 인상 쓰지 말라고 (소파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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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욱] --- 어떻게 된 일이야?
[동현] 그냥 지방 공사가 좀 있었어
[동욱] 피아노 치는걸 포기하고 겨우 그런 일이야?
[동현] 그래도 맘은 편해
[동욱] 이 장마철에도 공사하니?
[동현] 꼬치구일 드셨어? 왜 그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동욱] 동현아!
[동현] 여기저기 쏘다녔지 뭐. 젊은 놈이 그렇잖아.
[동욱] 밥은 제때 챙겨 먹고 다니나?
[동현] 그럼, 공사판 노가다라고 끼니도 못 때우는 줄 알아?
[동욱] 장마철엔 공사도 없는데 어떻게 살았니?
[동현] 무슨 냄새야?
[동욱] (그제사) 미역국!
(동욱, 황급히 부엌으로 간다. M8- 동현, 소파에 편안하게 눕다가 어깨의 통증을 느끼고 얼굴 찌푸리다. 동욱, 비감한 표정으로 다시 들어온다. 동현, 얼른 얼굴 표정을 여유롭게 바꾸며)
[동현] 다 쫄았겠다?
[동욱] 얘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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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그래 (담배 꺼내 피려는데)
[동욱] 폐에도 안 좋다는 담배를---
[동현] (담배 피며) 또 그 잔소리 본론만 얘기해.
[동욱] 알았어--- 집 나간 후 쭉 이렇게 살았니?
[동현] 군대보단 나았어.
[동욱] 언제까지 이럴꺼냐?
[동현] 뭘?
[동욱] 공사판 쫓아다니는 거.
[동현] 그게 어때서 그래?
[동욱] 니가 다시 공부를 하겠다면---
[동현] 공부하고 담쌓은 놈이란 거 형이 더 잘 알잖아.
[동욱] ---, 다시 피아노를 치면 안되겠니?
[동현] (일어나며) 갈게.
[동욱] 난 네가 왜 이러는 지 모르겠다. 그 이유나 알자.
[동현] 무슨 이유?
[동욱] 가출 한 거.
[동현] 그냥 답답해서
[동욱]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음대 다니다 군대가고 군대 갔다오자마자 가출 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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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딴데 바라보며) --- 그래.
[동욱] 날 똑바로 보고 얘기해!
[동현] (일어나며) 갈게!
[동욱] 앉아!
[동현] 이런 얘기들을 줄 알았으면 안 왔어
M9 쾅!
(동욱, 나갈려는 동현의 손을 잡아끈다. 동현, 그 바람에 어깨를 감싸쥐고 주저앉는다. 고통을 참는 듯한 표정. 동욱, 놀라며)
[동욱] 왜 그래? 어디 아파? 무슨 일이야?
[동현] 한가지씩만 물어.
[동욱] 뭐야?
[동현] 좀 삐었어. 그것 뿐이야. 공사판에선 다반사야
[동욱] (버럭) 공사판 일은 그만 둬! 그러다 다리병신이라도 되면 어쩔려고 그래! 장가도 안 간 자식이!
[동현] (키득거리며) 총각귀신 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를 못 칠까봐 걱정하는 거 아냐.
[동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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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오히려 잘 됐지. 그럼 형이 포기할거 아냐?
[동욱] 동현아!
[동현] 오년만에 돌아왔는데 환영인사가 너무 거친 것 같지 않아?
[동욱] ---
[동현] 술 좀 줄래.
(동욱, 깜짝 놀라며 술 준다.)
[동욱] 왜 이유나 알고 있자
[동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노가다야.
[동욱] 다시 피아노를 해. 넌 할 수 있어.
[동현] 코메디 해? 나 서른 하나라고 서른 하나에 피아니스티가 되라고? 형, 말이 되는 소릴 해
[동욱] 넌 콩클에서 1등까지 한 놈이야
[동현] 형 때문에 그런 거야. 억지로. (동형 애써 아픔을 참는다.)
[동욱] 병원에 안가도 되겠니?
[동현] 괜찮아.
[동욱] 공사판 일은 너 적성에 맞고?
[동현] 그런대로.
[동욱] 넌 소질이 있어.
[동현] 제발 그만 좀 해!
[동욱] 어쩌다 이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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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신경 꺼.
[동욱] 난---
[동현] 내 걱정말고 형이나 걱정해.
[동욱] 내 걱정?
[동현] 나이 사십에 아직도 노총각이라고. 그 인생으로 계속 그렇게 썩을 꺼야?
[동욱] 그런 문제라면 이미 포기했다.
[동현] 남자이길 포기한 거야? 그래?
[동욱] 밥 차려 올께
[동현] (잡으며) 형이야말로 결정적인 순간에 피하려고 하지마.
[동욱] 난 피하는 거 아니야.
[동현] 형은 늘 그런 식 이였어! 그래서 결혼할 뻔한 조선생도!
[동욱] 뭐야!
M10- 형은 늘 그런 식이야 - 동현의 독창
이제는 내 얘길 좀 들어봐 언제나 똑같애
형의 그 맘속을 난 알고 있어 그, 누구보다도
세상 아무도 모를 줄 알지만 할 말이 있으면 다 해봐
이제는 다 알아 형의 맘을
제 갈길 알아서 다 가는데 언제나 똑같애
차라리 할 말을 다 털어놔 봐 우리는 알고있어
형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거야 세상을 똑바로 쳐다봐
무슨 생각하고 있는
이제 와선 더 못 참아 제발 더 이상은 숨기자 마
형의 웃음 속엔 그림자 뿐 늘 괜찮다고 둘러대지마 왜!
제갈 길 갈 수 있어 사랑도 할 수 있어 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잖아 이제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아 제갈 길 가야만 해
난 도무지 이해 할 수가 없어 알 수 없어
나도 이제 지쳐 버렸어 제발 더 이상은 숨기자 마
형의 웃음 속엔 그림자뿐 늘 괜찮다고 둘러대지마 왜!
제갈 길 갈 수 있어 사랑도 할 수 있어 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잖아 말해봐. 말해봐-
[동욱] 조선생 일은 어떻게 알았니?
[동현] 그 일이 그렇게 궁금해?
[페이지] 018
[동욱] --- 조 선생은 그냥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일 뿐이야.
[동현] 조선생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동욱] 뭐야!
M11- 쟌!- 초인종
(한바탕 주먹이 오갈 듯한 기세인데 울리는 초인종소리. 그 덕분에 두 사람의 험악한 기세가 순간적으로 풀린다.)
[동현] 누구지?
[동욱] (냉담하게) 정희일꺼야. 지나는 길에 들린 걸 꺼야. 문 열렸어.
(그래도 초인종소리만 들린다. 동욱, 가서 문 연다. 그러자마자 갑자기 축포가 울리고 뛰어들어와 동욱의 주위를 돌면서 가면을 쓰고 나타나 축하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유미리. 유미리의 옷을 짧은치마에 섹시한 옷차림)
M12 -유미리 성격묘사
(결혼 축하해요 - 유미리의 독창과 춤- 발랄하고 코믹하게)
결혼 축하해요. 결혼 축하해요 결혼 축하해요 결혼 축하해요
황홀한 오늘밤 어색한 첫날밤 맡겨봐요 나에게
그토록 기다린 꿈의 보금자리 잊지 못할 추억 바로 오늘이야
이제 시작이야 두 사람의 인생 맡겨봐요 웨딩 센타에
불러만 줘요 언제든 달려와서 멋진 결혼 파티
첫날밤의 무드 새콤한 레몬 향기를 드릴게요
말씀만 하세요 결혼파티
신비한 이 밤을 거룩한 이 밤을 야릇한 이 밤을 모두 맡겨요
짜릿한 이 밤을 잊지 못할 밤을 즐거운 밤을 모두 맡겨요
황홀한 이 밤 다시는 오지 않아 이 밤이 새도록
함께 춤을 춰요. 노래불러요
새벽이 올 때까지 마음을 열어요 오늘밤에
(미리, 다시 축포 터뜨린다)
[페이지] 019
[미리] 결혼 축하해요! (하다가 팬티차림에 티만 입고 있는 동현을 보자 갑자기 비명을 지르고 나간다.)
[동현] 형!
[동욱] 동현이 너 혹시!
[두사람] (동시에) 결혼했니?
(그리고 두 사람 현관 쪽을 보다가 다시 마주보며)
[두사람] (동시에) 아니! (적극적 부인)
(하는데 미리 다시 얼굴을 돌린 채로 들어온다)
[미리] 죄송하지만--- 여기다 싸인을---
(하고 종이를 동욱에게 내민다. 동욱, 왜 이러나 하다가 갑자기 동현에게 시선 간다.)
[동현] 왜?
[동욱] (차마 말못하고 아래 가리킨다)
[동현] (그제사 자신의 차림새를 알고 얼른 피아노 옆으로 숨어 의자에 놓인 옷을 아무거나 주어 입는데 하필이면 치마다)
[동욱] 누구시죠?
[미리] (얼굴가면 쓴 채) 웨딩센타에서 왔어요. 어색한 신혼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무드를 만들어주는 죽인다 웨딩센타요.
[동현] 쥑인다 웨딩센타? 이름한번 죽이네!
(동현과 동욱 서로 마주보고 고개 젓는다.)
[페이지] 020
[미리] 하지만 이런 건 계약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저 저--- 동성 결혼은 우리 법엔 나와있지 않거든요.
[동욱] 응?
[동현] 동성결혼이라니?
[미리] (치마 가리키며) 거기가 와이프고, 여기가 남편이죠?
[동욱] 우린---
[미리] 괘, 괜찮아요. 동성을 희구한다는 것은 그 뭐냐--- 사회가 갖는 관습에 대한 반항의 심리나 일탈 같은 거니까요.
[동현] 뭐야!
[동욱] 아가씨. 뭔가 잘못 생각한 것 같은데---
[미리] (아주 빠른 어조로) 잘못 된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연습이 없었다는 거예요. 우린 신혼이 될 수 있는 여러 예비자들을 상대로 서로 다른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이런 분위긴 첨이거든요. 잠시 생각할 여유를 주시겠어요. 학문적으론 이해를 했는데 직업적으론 아직 잘 정리는 못했거든요, 잠깐만요 정리할 시간을 주시면 알맞은 분위기를 연출해 드리죠.
[동욱] 말할 기회를 좀 주겠소.
[미리] 물론요. 하지만 다 이해해요. 그럼요. 단지 전---
[페이지] 021
[동현] 이봐요. 어딜 찾아온 거요?
[미리] 넷?
[동욱] 삼백 삼호 맞아요?
[미리] 그럼요. 삼두 아파트 삼백삼호
[동현] 젠장! 그럼 그렇지
[미리] 왜요?
[동욱] 여긴 삼영 아파트 삼백삼호예요. 삼두 아파트는 한 블록 더 가야하는데 아무래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요
[두사람] (고개 끄덕인다.) 삼두APT가 아니라고요
[미리] 나한다씨 집 아녜요?
[동현] 나한다?
[미리] 네. 나한다!
[동욱] (포즈 취해주며) 아가씨! 하긴 뭘 해.
[동현] 거 이름한번 끝내주는군. 나한다
[미리] 젠장!
(유미리. 가면을 벗어 던지고 소파에 풀썩 주저앉는다.)
M13- 코믹 Multi리듬 - "실수투성이" - 미 리의 독창
난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야
이래 저래 엉망진창이야
이거야 정말 사람 미치게 하네
갈수록 태산이라니까
학창시절 똑똑하고 야무졌던 내 모습
어디론가 사라지고 멍청한 모습만
누구라도 나를 보면 잘 될 거라 했는데
산전수전 풍지박산 엉망진창이야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멍청한 내 모습은 실수투성이야
이게 바로 내 모습인가 봐
난 이제 어쩌면 좋아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이야
이제 나는 어쩌면 좋아 이럴 순 없어
말도 안 돼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이래저래 엉망진창이야
남들은 다 잘하는데 나만 왜 이럴까
나만이 멍청인 걸까
학창시절 똑똑하고 야무졌던 내 모습
바람처럼 날아가고 두려움만 남아
누구라도 나를 보면 잘 될 거라 했는데
오합지졸 풍전등화 오리무중이야
왜 이렇게 하는 일마다 멍청한 내 모습은 실수투성이야
이게 바로 내 모습인가 봐
난 이제 어쩌면 좋아
어디로 가야할지 갈팡질팡이야
이제 나는 어쩌면 좋아 이건 말도 안 돼
실수투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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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이 모양 실수투성이
내 앞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네.
[동욱] 괜찮아요?
[미리] (코 요란하게 풀고) 물 좀 주시겠어요?
(동욱, 부엌으로 간다.)
[미리] 어쩐지 길을 쉽게 찾았다고 했는데--
[동현] (피아노 의자에 기대앉아) 집 찾는 덴 잼뱅인 모양이지?
(동욱, 부엌에서 물 가져다준다.)
[유미리] 웃지 마세요. 벌써 여섯 집 째 허탕이에요. 하루종일 집 찾느라 빗속을 걸었다고요 전화 좀 빌려쓸게요.
[동욱] (전화 건네준다)
[유미리] (콧물 닦아가며 전화 건다) 죽인다 웨딩센타죠? 아 주 선생님. 저 유미리인데요. (하자마자 얼른 수화기에서 귀를 뗀다) 죄송합니다. 그게 저여--- 첫 번째 집에선 시간이 약간 늦어서--- 서울 교통이 지옥 통인데다 비까지--- 두 번째는 신혼부부를 잘못 알아서--- 누가 그 집 할아버지가 신혼부부인지 알았나요? 손자들 쪽이 훨씬 더 그런 분위기라서--- 세 번째는--- (하다가 고함 지르며) 젠장 알았어. 그만 두면 될꺼 아냐! 나 참 더러워서. 정말 그래, 더럽다고 했다 왜? 그래 거기서 관두라고 하기 전에 내가 관둬! 그래! 붙잡지나 말아!
[페이지] 023
(수화기 거칠게 놓고 한참을 씩씩거리다 울음을 터뜨린다. 멍해서 바라보던 동고가 동현, 어찌할 바를 몰라 서로 어떻게 해보라고 눈짓한다.)
[동욱] 저어--- (동현에게 살짝) 야 어떻게 좀 해봐.
[동현] 왜 나보고 하래.
[동욱] 난--- , 여자 앞에선 말을 못하잖니
[동현] 난 잘하고?
[동욱] 나보단 낫잖아
[동현] 젠장! 이상한 여자 아니야.
(하는데 미리 벌떡 일어선다)
M14-
[동현] 이봐, 아가씨 무슨 일인지는 모르---
[미리] 무슨 냄새죠?
[동욱] (동시에 마주보며) 조기 찜!
[동현] (동시에 마주보며) 조기 찜!
(동욱, 바삐 부엌으로 뛰어간다.)
[동현] 괜찮아?
[미리] 괜찮지 않으면요. 이런 기분 이해해요? 어렵게 구한 첫 직장인데 구한지 여덟 시간만에 그만둔 기분요.
[동현] 알지. 난 두 시간만에 그만뒀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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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두시간만예요?
[동현] 응!
[미리] 무슨 일인데요?
[동현] 노가다!
[미리] 노가다요?
[동현] 그래요. 스물 두 살 때였죠. 지금은 그래도 기술자 소린 들어요.
[미리] 제 나이 때네요
[동현] 언제나 그 나이 땐 실수를 하지요. 나도 그 나이엔 그랬는걸.
[미리] 정말 그럴까요? 위로의 말은 아니죠? 전 혼자만 멍청한 것 같아 두려워요.
[동현] 언제나 그 나이 땐 두렵기만 하지요
M15 - "언제나 그 나이 땐" - 동현과 미리의 이중창
[동현] 언제나 그땐 누구든지 실수를 하지
지나고 나면 누구든 후회하지
뒤돌아 볼 때면 두려웠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시절
[미리] 그 모든 것이 마냥 두렵기만 하던 시절
실수 투성이 비참한 내 모습이
세월이 지나면 나의 모습 변할까?
나만이 그럴까? 두려움 사라질까?
[동현] 눈감고 저 빗소리를 들어봐 언젠 간 일곱 빛깔 무지개
눈부시게 네 앞에 나타날 꺼야 한숨을 거두고 눈을 떠봐
창밖엔 빗소리만 흐느끼네 허전한 내 맘을 두드리네
학창시절 마냥 좋은 줄 알았죠 이제 알 것 같아 알 것 같아
[미리] 나도 모르게 두려움에 어쩔 줄 몰라
그 어딘 가로 달아나고 싶었죠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길 바랬죠
하지만 이제는 알 것만 같아
[동현] 뒤돌아보면 두려움에 가득 찬 시절
생각해 보면 마냥 즐겁던 시절
귀를 기울여봐 저 빗소릴 들어봐
언젠 간 눈앞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동현] 나타나 네 갈길 알려 줄 거야 찬란한 무지개를 바라봐
이제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마음을 활짝 열고 시작해봐
[미리] 멀고 긴 어둠 속의 장막처럼 내 앞길 보이지 않았지만
나 이제는 처음부터 시작이야 마음 활짝 열고 시작이야
(동현, 미리의 어깨를 다독거리려다 괜히 어색해서 헛기침을 하는데.)
[미리] 그렇게 안 보이는데--- 노가다에요?
[동현] 정확히 일용직 근로자라고나 할까
[미리] 믿어지지가 않는데요. 어쨌든 고마워요. (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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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천만에 가게?
[미리] 그래야죠. 비도 퍼붓는데 공연히 집에 늦게 들어 갔다간 집에서도 잔소릴 들어요. 이젠 백수가 됐으니 집에서라도 잘보여야죠.
(미리, 일어나 가려는데 동현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부엌 쪽을 보다가 미리 붙잡는다.)
[동현] 잠깐! 잠깐만.
[미리] 넷?
[동현] 오늘이 첫 출근이라고 했죠?
[미리] 첫 출근이자 아시다시피 마지막이죠!
[동현] 그 출근을 성공적인 퇴근으로 마치고 싶지 않아요?
[미리] 그러고야 싶지만 이미 잘렸고. 고객도 없는 걸요.
[동현] 이리 와서 잠깐 앉아봐요 이런 행사해주는데 얼마요?
[미리] 뭘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꽃과 케이크가 곁 드리면 7만원 선이고 노래까지 곁 드리면 한 장 정돈 줘야 해죠. 그리고 이십 만원 이상이면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해 드리죠.
[동현] 그런걸 다 준비해 가지고 다녀?
[미리] 그럼요.
[동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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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현. 피아노 의자 안에서 검은 비닐봉투를 꺼낸다. 슬쩍 보는 미리.)
[미리] 와? 노가다 아저씨 돈 많다
[동현] 쉿! (동현, 검은 비닐 속에서 십만 원 권 세 장을 꺼내고 비닐봉투 다시 넣어둔다. 동현, 미리에게 돈주며) 이십 만원 이상이면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그랬지 자! 30만원
[동현] 실은 오늘이 형 생일이야. 결혼은 아니지만 생일축하 쇼도 물론 하겠지?
[미리] 생일 요?
[동현] 늘 속만 썩힌 동생이라--- 오늘만큼은 좀 즐겁게 해주고 싶어
[미리] 글쎄요. 근본적으로 결혼과 생일은 다르지만 철학적으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죠.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는 거 좋아요
[동현] 꽤 어려운 말을 하는군
[미리] 이래봬도 불란서 철학을 전공했거든요.
[동현] 불란서 철학?
[미리] 비록 땡땡이 좀 쳤지만
[동현] 철학을 했다니 부탁인데 우리형은 좀 보수적이거든. 그래서 말인데--- 내게서 돈 받은건 비밀로 하고 아가씨가 개인적으로 축하하는 걸로 하면 어떻겠소?
[미리] 제가요? 개인적으로요?
[동현] 철학적으로 다 비밀로 해야하거든. 우린 서로 소 닭 보는 사이라서.
[미리] 형하고 사이가 그렇게 나빠요?
[동현] 곤란하다면 그냥 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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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곤란하진 않지만 어떻게 생일을 알았다고 하죠?
[동현]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다고 하지 뭐---
[미리] (손에 놓은 돈 보며) 좋아요. 하지만 치사한 짓은 안 하기예요.
[동현] 물론이지.
[미리] 좋아요 (손 내민다.)
(두 사람. 악수한다.)
[미리] 가죠.
[동현] 어딜?
[미리] 형님집요.
[동현] 여기가 형님 집이야.
[미리] 어머. 형님이 이해심이 참 많으신가봐요. 동성연애를---
[동현] 응?
[미리] 아. 아녜요. 그럼 형님은 언제 오세요?
[동현] 무슨 소리야?
[미리] 형님이 오셔야 일을 하죠.
[동현] 아까 그 사람이 우리형이에요.
[미리] 저어 (치마 훑어보며) 그게 저어. 동성애인 아니에요?
[동현] 동성? (그제사 짐작하고) 젠장! 내가 그렇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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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의상이---
[동현] 그렇게 됐어. 준비하자고
[미리] 좋아요. 자아. 노가다 아저씨도 도와줘요
[동현] 도와줘? 그쪽이 다 하는 거 아니고?
[미리] 무슨 소리예요. 아저씨도 쇼 의상을 갈아입어야 한다구요
[동현] 난--- 그런 낯간지런 일은 못해!
[미리] 어서요!
[동현] 못해!
M16- "형을 위해서" -미리와 동현의 이중창과 춤
[미리] 서둘러 봐요 시작해봐요 형님을 위해 준비해요
어서요 빨리 꼬깔모자 쓰고 삐에로면 어때요
[동현] 난 정말 못해 (싫어) 삐에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어
제발 그만해 못해 어울리지 않아 난 이대로가 좋아
[미리] 천만의 말씀 어쩔 수 없죠 시키는 대로 해봐요
[동현] 이거야 정말 쑥쓰럽고만 시키는 대로 할 밖에
[미리,동현] 형님을 위해 하는 거야 즐거운 파티를 시작해
걱정근심 모두 다 떨쳐버려 생일 파티를 시작해
[미리] 헛튼짓 말고 딴 생각말고 시키는 대로 해봐요
[동현] 이거야 정말 하는 수밖에 독 안에 든 쥐 꼴이야
[미리,동현] 보세요 내 꼴! 끝내주죠
개봉박두 기대하시라 누구를 위해서 종을 울리나
모든 것이 형을 위해 쑈쑈쑈! 쑈쑈쑈!
쑈쑈쑈1 파티를 열깝쑈!
(동현과 미리의 실랑이가 가벼운 춤으로 처리된다. 동현, 마지못해 하늘보고 투덜거리며)
[동현] 이게 다야, 형을 위해서 입는 거라고! 젠장 형을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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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수선떠는 모습을 묘사한 음악- 가볍고 경쾌하게 조금은 코믹스럽게))
(동현과 미리 의상을 입고 축포를 준비하는 듯 수선을 떤다. 온 집안을 장식한다. 이어 장식이 끝나자 불을 끈다. 침묵)
[동욱] (나오며) 어떻게 그렇게 타도록 몰랐을까? 아니? 여기는 왜 이렇게 또 시커매? (하는 순간 축포 터진다)
[미리] 생일 축하합니다
[동현] (무척 놀랐다는 듯) 형 생일 이였어? 그랬으면 진작 얘길 하지! 이리 와봐.
[동욱] 아니 어떻게---
[미리] 별자리에 다 나와 있어요.
[동욱] (동현보며) 설마? 니가---
[동현] 내가 알리 가 있어. 갑자기 이 아가씨가 형 관상을 보더니 생일이라 잖아. 그래서 나도 엉겁결에 광대가 되어버렸다고. 하여튼 낯간지럽지만 축하해.
[미리] (동현 꼬집으며) 그런 축하가 어딨어요!
(동욱, 놀라운 표정, 동현과 미리 서로 윙크하며 고개 끄덕인다)
[미리] 아마 제가 여기 온 게 알 수 없는 운명 같은 일인 것 같아요.
[동욱] 운명?
[미리] 네. 축복 받을 운명 말이에요.
[동욱] 그건 너무 거창하군요.
[페이지] 030
[동현] (동욱에게 귀속 말로) 더구나 낯모르는 아가씨에게 말이야.
[미리] 자아, 즐거운 파티를 시작하죠.
M18- 즐거운 파티- 동욱, 동현, 미리의 삼중창과 춤.
[동현] 즐거운 파티 준비는 다 됐어
생일 축하파티야
형님을 위해 생일 축하파티
우리 모두 시작하는 거야
오랜만에 생일 축하파티 지금부터 시작이야. (Let's go)
걱정근심은 다 떨쳐버리고 이 밤을 즐겨봐요
오늘 이 시간 축복하기 위해 사람은 비를 타고 오네
창밖에는 빗소리 흐르네 이 밤을 축복하네 밤새워
[미리] 아무생각 말고 아무 말도 말고 두 눈감아 봐요
눈을 감아요 생각해보세요 오늘밤의 파티
생각해요 눈떠봐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생일 축하해요
신비한 이 밤을 잊지 못할 밤을 즐거운 밤을 모두 즐겨요
[동욱] 이런 밤은 처음이야 이런 생일 파틴 처음야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이 시간에 모두들 한자리에 모였다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밤 지나가면 다시는 만나기 힘들텐데
언젠 간 함께 모여 웃음꽃을 피울 거야
모처럼 웃음소리 창문을 넘어가겠지.
[모두] 신비한 오늘밤 즐거운 오늘밤
일생의 단 하번 추억 만들어
그건 바로 오늘
(미리에 의해 동욱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생일 모자를 쓴다. 세 사람의 즐거운 춤과 노래. 미리 노래가 끝날 무렵 웨딩 케이크를 내 놓는다.)
[미리] (케이크 가져가 테이블에 놓으며) 자야. 몇 살이죠?
[동현] 연세. 연세.
[동욱] 저- 서른--- 만 이로.
[동현] 만으로 말고 똑바로
[동욱] --- 40요
[미리] (케이크에 초 꽂으며) 어머. 어쩌죠? 초가 모자라는데---
[동욱] (일어서며) 부엌에 있을 거예요.
[동현] (형을 앉히며) 가만있어. 내가 가져올게
[동욱] 어디 있는지---
[동현]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깐. 주인공은 기다리고 있어.
[동욱] 나 혼자? 안 돼
(동현, 부엌으로 들어가면서 미리에게 뭔가 눈짓을 준다.)
[미리] 축하해요.
[동욱] 고마워요! 이런 생일날은 첨이에요---
[미리] 뭘요---
(어색한 침묵. 동욱, 미리의 짧은치마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간다. 미리, 시선 느끼고)
[미리] 좀 짧죠.
[동욱] 아, 네--- 좀 짧군요.
[페이지] 031
[미리] (치마 억지로 당겨서 앉는다)
[동욱] (어색해서) 얘가 아마 초를 못 찾나봐요
[미리] (어색하게) 그런가봐요
[동욱] (부엌에 대고) 싱크대 위를 봐,
[동현] (소리) 알았어. 걱정말고 얘기나 하고 있어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난다.)
[동욱] 좀 거친 녀석이죠.
[미리] 좀 그런네요
[동욱] 막내라 그런 면도 있어요. 위로 누나가 둘 있거든요 다들 결혼했어요.
[미리] 네에--- 하지만 맘씬 꽤 좋아 보여요.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난다.)
[동욱] 그랬었죠.
(어색한 침묵)
[미리] --- 준비가 좀 덜 됐죠?
[동욱] 넷?
[미리] 결혼 40주년 되는 분들은 별로 없거든요. 초는 두개나 세 개 정도만 준비하면 된데요. 죽인다 웨딩센타에서 그랬거든요.
[동욱]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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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어른들은 이혼을 많이 한다나요. 그래서 웨딩센타 산업도 전망이 매우 밝대요. 한 사람을 고객으로 하고 있으면 서너번 고객이 될 수 있으니깐---
[동욱] 듣고 보니 말되네요
(어색한 침묵. 동욱, 이마의 땀을 닦으며 좀 떨어져 앉는다. 미라, 그런 동욱의 기색을 알아차리고 더 어색해진다.)
[미리] (동시에) 결혼했어?
[동욱] (동시에) 결혼했어?
(미리, 동욱 동시에)
[두앗람] 아뇨!
[미리] 이제 겨울 졸업했는걸요. 대학 땐 땡땡이만 쳤어요.
[동욱] 좋을때군요.
(동현, 초 가지고 나오다 두 사람 다정히 얘기 나누는 것 보자 초만 두고 부엌으로 다시 들어간다0
[미리] 좋긴요. 취직은 안돼죠. 집에선 닥달하죠. 친구들을 보면 벌써 직장 잡아서 제 갈 길을 가는데 전 뭘 해야할지도 모르죠 (한숨 내쉬며) 빨리 나일 먹었으면 좋겠어요.
[동욱] 그렇지도 않아요. 전 할 일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은 걸요
[미리] 그래도 직장이 있잖아요. 직업이---?
[동욱] 중학교 선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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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무슨 과목이요?
[동현] 음악 선생이요
[미리] 와! 너무 멋있다
[동욱] 멋있긴요. 생각만큼 그렇지도 않아요. 담임도 맡지 않으니깐 늘 음악실에서 혼자 지내죠. 더구나 남학교라서 애들은 음악시간을 시험 공부하는 시간이거나 부족한 잠을 때우는 시간정도로 생각하죠
[미리] 전 음악 시간이 제일 좋았는데 저 학교 다닐 때 저희학교 음악 선생님이 노총각 있었는데 인기가 제일 좋았어요.
[동욱] 그래요? 전 나름대로 이 음악 저 음악 다 들려주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사간 정도뿐인데다 다들 영수밖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깐--- 자꾸 힘이 빠져요
[미리] 제 나이 땐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동욱] 피아니스트였는데--- 이젠---
[미리] 지금도 피아놀 치시잖아요. 그런데 피아노가 2대나 돼요?
[동욱] 하나는 동현이 거예요. 저 보단 동현이가 훨씬 잘 쳤죠. 고등학교 때 콩클에서 1등한 걸요.
[미리] 노가다 아저씨가요?
[동욱] 슈만을 칠때면--- 너무나 행복했어요.
M19- 아무도 오지 않는 밤Ⅱ -동현 독창-
변해 버린 차가운 내 모습엔
빗물만이 흐르고 마음마저 떠나네
오늘밤도 내 눈앞에 형의 모습만 아련하게 떠오르네
이제야 알 수가 있어 모든 것을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그 마음 알 수 있어
지난 세월 돌아보면 보일까
이제 다시 돌아가면 만날 수 있을까?
영롱한 별빛처럼 고요한 강물처럼 흘러 만날 수 있어
눈부신 햇살처럼 반짝이는 이슬처럼
해맑은 형의 마음이 눈앞에 보이네.
[미리] 아- 슈만? 근데 왜 노가다가 됐어요?
[동욱] 글쎄--- 그건---
(동현, 얼굴 굳어져서 나온다)
[동욱] 왜 초 못 찾았니? 그럼 내가 찾아올게
[동현] 계속 숨길 생각이었어?
[페이지] 034
[동욱] 응?
[동현] 왜 그 모양이야!
[동욱] 그게 무슨 말이야
[동현] (동욱 앞에 진단서 한 장 꺼내 보인다) 이게 뭐야?
[동욱] 어디서 찾았니?
[鑁오현] 싱크대 서랍에 있더군.
[동욱] (혼잣말로) 혹시나 해서 그쪽으로 치워 둔 건데--- 별거 아냐.
[동현] 말초신경이 마비되는 데도 별거 아니고--- 형은 음악선생이야. 손가락이 마비되는 데도 아무 상관 없다고!
[미리] 세상에---
[동욱] 나중에 얘기하자.
[동현] 형!
[동욱] 그런 얘길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손님도 계시잖아
[동현] 온몸이 다 굳은 뒤에.
[동욱] 동현아!
[미리] (일어나며) 초--- 초 가져올게요.
(미리, 일어나 부엌 쪽으로 가다 초 발견하고 가져다 케이크 위에 꽂는다. 그러면서도 두 형제의 행동을 주시한다.)
[동욱] 네가 할게요---
[동현] (막으며) 형!
[페이지] 035
[동욱] --- 대단한 건 아냐
[동현] 누나들도 알아?
[동욱] 뭐 좋은 일이라고---
[동현] (미리) 늘 그런 식이야! 그런 식으로 혼자 잘났다고
[미리] 물 좀 마시고 올게요.
(미리, 부엌으로 가지만 아무도 미리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다. 동욱, 다가가 동현의 어깨를 잡으려는데 뿌리치는 동현)
[동현] 도대체 슈퍼맨이라도 되는 거야? 그런 식으로 형 인생을 허비해서 어쩌자는 거야?
[동욱] 허비라니? 난 한번도 그런 생각 해 본적 없다
M20- 그런 바램이 나를 지치게 해 + 나의 꿈은 -동욱, 동현
[동욱] 아직도 후회는 하지 않아
그 누가 뭐라도
할 말은 많지만 다 할 수 없어
언젠 간 알 거야
지난 세월은 생각할게 없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내 맘을 너는 다 알고 있어
[동현] 이제 와선 더 못 참아 제발 더 이상은 숨기지마
그건 말로 할 순 없는 거야
[동욱, 동현] 왜! 이다지도 힘든 걸까 왜!
[동욱] 아무도 알 수 없어 누구도 알 수 없어
그 무엇도 내게는 필요 없어 그 무엇도
내게도 꿈이 있어 할 말도 없진 않아
단 한가지 바라는 게 있지만 묻지마
내 꿈은 바로 너 뿐 야
[동현] 더 이상 숨기지마 웃음 속엔 그림자 뿐
제발 둘러대지마 이젠 지쳐 버렸어.
더 이상 숨기지마 웃음 속엔 그림자 뿐
나도 이젠 지쳐 버렸어. 지쳤어. 그만해
[동현] 형의 생각이 날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알아? 형의 꿈을 내게 강요하지 말라구
[동욱] (불끈) 그래 나라고 늘 이런 식으로 살고 싶은 줄 아니? 그래 너희들만 없었다면 나도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을 거야!
[동현] 그런데 왜 조 선생을 그냥 보냈지
[동욱] 조 선생은 그냥 동료교사일 뿐이라고 했잖아
[동현] 조 선생이 형하고 결혼 할 뻔한 거 알아. 나 때문에 깨진 거지. 그때 형은 날 피아니스트를 만들려고 했으니깐. 내 뒷바라질 해야했고
[페이지] 036
조 선생이 원한 건 피아니스트 시동생이 아니라 형의 사랑이었어! 그냥 동료교사일 뿐이라고 말 하지만 조 선생이 날 찾아와서 한 얘기가 있어. 형을 설득해 달라고. 하지만 난 형을 알아. 내가 말한다고 들을 형이 아니란 걸. 형은 날 통해 형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했던 거니깐
[동욱] 그럼 네가 그때 집을 나간 건---
[동현] 형의 기대가 무거웠어--- 모래 짐을 나르는 것보다 더 무거웠다고
[동욱] 그래서--- 그래서 날 떠나 이렇게 사는 거니?
[동현] 형 희생 위에 집을 짓는 건 더 이상 하기 싫다고!
M20-
(동욱, 동현에게 주먹 한대 날린다. 나가떨어지는 동현. 그 소리에 뛰어나오는 미리)
[미리] 왜들 이러세요?
[동현] 형은 바보라고. 형이 우리들한테 쏟는 생각들은 다 형의 자격지심이야. 뭘 바라는 거지? 우리들 땜에 형 인생을 포기했다는 위안을 얻고 싶은 거야?
[동욱] 나가!
[페이지] 037
[동현] 흥, 누나나 우리들이 얼마나 형을 부담스러워 하는 줄 알아?
[동욱] --- (뒤돌아 선다)
(동현, 일어나 피아노 의자 속에서 비닐봉투를 꺼내 동욱에게 던진다.)
[동현] 형에게 진 빚이야!
(비닐 봉투에서 떨어지는 돈 다발들. 미리 놀란다.)
[동욱] (말없이 바라만 보고있다.)
[동현] 형이 허비한 인생에 대한 빚이야. 하지만 이 돈이 지금 와서 형에게 어떤 도움이 되지? 형은 지금 축하해줄 사람도 병실에 들어갈 때 옆에 있어줄 사람도 없다고!
[동욱] ---
[미리] (동현에게) 그만하세요!
[동현] 그게 마흔 생일날 보는 형의 인생이라고.
[미리] 동현씨!
[동현] 형의 인생이라고.
[미리] 이러지 말아요. 오늘은 주인공을 기쁘게 해주는 날이잖아요
[동현] 그저 우연히 찾아 들어온 여자에게 축하나 받고 괜히 헤헤거리는 형꼴이 어떤지 알아!
[미리] 그만요!
(미리, 주머니에서 아까 준 돈 동현에게 던져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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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그만둬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전 적어도 마흔이나 서른이 되면 이것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죠? 서로에게 상처 주고 할퀴면서 형제라는 건가요? 이러지 말아요. 형은 환자고 오늘은 생일이라구요--- , 그리고 동생은 형님을 무척 사랑해요. 생일이란 걸 알려준 것도 동생분이에요. 근데 뭐죠? 이게 형제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인가요?
[동욱] ---
[동현] ---
[미리] (짐싸 들고) 계속들 싸우고 할퀴고 사세요! 젠장!
(미리. 나간다. 침묵)
[동욱] --- 미안하다
[동현] 만약 지금이라도 조 선생이 결혼하자면 할거야?
[동욱] (고개 흔든다)
[동현] (뭐라고 말할려다 지긋이 눈감는다.)
[동욱] 무슨 돈이냐?
[동현] 노가다판에서 모은 돈과 보상금
[동욱] 보상금?
[동현] 어깨 빠진 것에 대한.
[동욱] (뭐라고 말할려다 지긋이 눈감는다.)
[페이지] 039
[동현] --- 형
[동욱] 왜?
[동현] 이젠 뭘 하지? 내 어깨도 이 모양이고, 음악선생이 손가락이 마비됐으니---
[동욱] 밥이나 먹을까?
[동현] (힘없이) 젠장!
[동욱] (피아노를 어루만지며) 이젠 정말 영희하고 정희네 줘야겠다. 치는 사람도 없으니---
M22- 피아노 음악
(동욱. 천천히 다가와 피아노 의자에 앉아 피아노 뚜껑을 연다. 그리고 천천히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다. 그 음악을 듣는 동현. 점점 동욱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치다가 손가락이 마비된 듯 점점 거칠어지는데 동현 와서 앉아서 동욱 옆에서 그 음악을 계속해서 연주한다. 놀라는 동욱. 이네 동욱 손가락을 몇 번 주무른 후 두 사람의 이중주가 연주된다. 나직이 흐르는 피아노 음악. 피아노는 연주되고 두 사람 마주본다. 아주 호흡이 잘 맞는 듯 말하지 않고 빠른 곡 느린 곡 서로의 눈빛에 따라 그 곡조가 빨랐다 느렸다 한다. 열정적이고 하나가 되는 두 사람,)
[미리] (문으로 들어오며) 피아노 소리가---
(하다가 두 사람의 연주를 들으며 조용히 케이크의 불을 붙여 피아노 곁으로 가져온다. 방안의 불을 끄는 미리. 연주 끝나고 두 사람 마주보다 뜨겁게 포옹한다.)
[페이지] 040
[미리] 소원을 말해 야죠.
(동욱, 동현을 바라본다.)
[동욱] 이미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는데---
[미리] 그래도 그 소원이 지속 되도록 비세요.
(세 사람 촛불을 둘러싼다. 서로 얼굴 바라보며 미소 띠다 촛불을 끄는 동욱. 동현과 미리 옆에서 도와준다.)
(잠시의 어둠과 침묵. 어이 바람처럼 환상적인 조명 빛이 들어오며 한사람씩 마법처럼 나타나 노래하며 하나로 모아진다.)
M23- 사랑- 세 사람의 합창
[동욱] 밤은 깊어만 가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허전한 빈 가슴속엔 촛불만 타올라
[동현] 지난날 내 모습에 흔들리던 내 그림자
이제와 돌이켜보면 철없던 그 시절
[미리] 두려움만 가득 찬 알 수 없던 나의 모습
언젠 간 알게 될 거야 아무도 모르게
[모두] 어느덧 세월만이 흘러 알 수 없던 나의 모습을
지난날 그 자리 철없던 시절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제야 알 것만 같아 그게 바로 사랑이야
일곱 빛깔 무지개가 눈앞에 보이네
[동욱] 밤은 깊어만 가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이제와 돌이켜보네 허전한 내 모습
[미리] 이제야 알 것 같아 뭔지 몰라도
언젠 간 알게 되지 아무도 모르게
[도욱] 소리 없이 흐르는 빗물처럼 내 마음도
함께 따라 흘러가네 어딘지 몰라도
[동현] 소리 없이 흐르는 빗물 눈감고 귀를 기울여봐
눈앞에 찬란한 무지개 언젠 간 보일 꺼야
[미리] 이제야 알 것 같아 알 것만 같아
찬란한 무지개 눈앞에 보이네
[모두] 나라고 사랑을 모를까? 바라만 봐도 사랑일까?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야
이제야 알 것만 같아 그게 바로 사랑이야
일곱 빛깔 무지개가 눈앞에 보이네
사랑이-
(천천히 어두워지는 무대)
M24 - OVERTUYE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