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공감하기

밑바닥에서

깜장보석 2006. 3. 22. 13:25

[제목] 밑바닥에서

등장인물

1. 미하일. 이바노비치. 꼬스뜨일로프:룸벤굴의 주인 54살

2. 바실리사. 까로프브나:그의 아내 26살

3. 나타샤:그의 처제 20살

4. 떼드베떼쯔:그들의 숙부 순경 50살

5. 바시카. 빼빼로:도둑 28살

6. 끌레시치. 안드레이. 미트리치:자물쇠 장사 40살

7. 안나:그의 아내 30살

8. 나스짜:창녀출신처녀 24살

9. 싸친:거친 밑바닥 인생

10. 배우:위와 동일 둘다 40살 가량

11. 보부노프:모자장사 45살

12. 끄바쉬냐:고기만두장사 40살쯤

13. 남작:33살

14. 루까:순례자--- 60살

15. 알로쉬까:신기려 장사 20살

16. 크리브이. 죠프, 따따루:둘다 인부

그밖에 이름도 대사도 없는 부랑인 몇사람---

 

[막] 1막

동굴 같은 지하실. 천정은 답답하게 돌로 된 둥근 천정. 칠이 벗겨지고 그을음 투성이다. 광선은 관객석으로부터, 그리고 오른편 각 창을 통해 위에서 아래로 비치고 있다. 오른쪽 구석은 엷은 널빤지로 칸을 막아 페페르의 방이 되어 있고 그 방문 옆에 브부노프의 나무 침대, 왼쪽 구석에 러시아식 큰 페치카, 왼쪽 돌벽에 부엌으로 통하는 문이 있고 거기에는 끄바쉬냐, 남작, 나스쨔가 살고 있다. 페치카와 방문 사이 벽가에는 널다란 침대가 놓여 있고 더러운 새틴 카텐을 쳐놓았다. 벽마다 나무침대가 붙어져 있다. 무대 앞쪽 왼편 벽가에 바이스와 작은 모루를 장치한 나무등걸이 있고 또 하나의 조금 낮은 등걸이 있다. 거기에 끌레시치가 걸터앉아 모루를 앞에 놓고 이것 저것 열쇠를 헌 자물쇠에 맞쳐보고 있다. 그의 발 앞에는 온갖 열쇠를 철사에 꿴 큼직한 열쇠 꾸러미가 둘, 찌그러진 양철 사모바르, 쇠망치, 크고 작은 줄이 흩어져 있다. 이 방 중앙에는 큰 테이블이 하나, 벤치가 둘, 걸상이 하나, 모두 칠을 하지 않은 것이라 더러워져 있다. 남작은 혹빵을 먹고 있고 나스짜는 걸상에 앉아 테이블에 팔꿈치를 짚고 다 떨어진 헌 책을 읽고 있다. 커튼이 쳐진 침대 위에서는 안나가 기침을 하고 있다. 브부노프는 침대에 앉아서 모자의 목형을 무릎 사이에 끼워 놓고 헌바지 뜯은 천은 거기다 대어보며 어떻게 짜를까 궁리하고 있다. 그 옆에는 차양을 만들려고, 한 모자에서 뜯은 판지와 유포와 헝겊조각이 어질러져 있다. 싸친은 지금 막 잠이 깨어 침대에 누운 채, 신음하고 있다. 페치카 위에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배우가 뒤척거리면서 기침을 하고 있다.

이른 봄, 어느 날 아침.

[1남작] 그래, 다음은 어떻게 됐단 말야.

[2끄바쉬냐] 왜 이 수작이야? 이런--- 제발 비켜요! 미안하지만 이래도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야. 떡시루를 쪄놓구 빌어 봐, 다신 서방을 얻나!

[페이지] 003

[1브부노프] (싸친에게) 이 자식, 뭘 꿍꿍대고 있어-. (싸친, 신음한다)

[2끄바쉬냐] 미안하지만 이래봬도 난 상팔자거든--- . 이런 팔자를 버리고 또 서방을 얻어? 아이고, 맙소사. 꿈엔들 그런 생각을 해--- . 아메리카에서 임금님이 모시러 온 대두 어림없지--- .

[3끌레시치] 거짓말 말어. (남작, 웃는다)

[4끄바쉬냐] 뭐라구?

[5끌레시치] 거짓말 작작 하란 말야--- . 아브람과 붙어살 작정이 아니구 뭐야?

[6남작] (나스짜의 책을 뺏어서 표제를 읽는다) '시들은 사랑' 이라!

[7나스짜] (손을 내밀고) 이리 줘! 달라니까--- . 싱겁긴---

[8남작] (나스쨔를 본다. 책을 공중으로 휘두른다)

[9끄바쉬냐] (끌레시치에게) 요, 염소 같은 놈아! 누구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야--- 어쩌면 그런 뻔뻔한 수작을 한담!

[10남작] (나스짜의 머리를 때리며) 너도 걱정거리다!

[11나스쨔] (책을 뺏으며) 글쎄, 달라니깐 왜 이래!

[12끌레시치] 흥, 아브람과 같이 살질 못해서 밤낮 가슴을 태우고 있지 않어?

[13끄바쉬냐] 그야 물론이지, 그러니 어쩌란 말야--- . 전 뭔데--- 제 계집을 죽게 만들어 놓구.

[14끌레시치] 듣기 싫어--- . 이 늙어빠진 개 같은 년--- . 넌 상관할 일이 아냐--- .

[15끄바쉬냐] 하하하--- . 어때? 바른 말은 듣기 싫지?

[16남작] 또 시작했군--- . 얘, 나스쨔!

[17나스쨔] (머리를 들지 않고) 왜 그래! 귀찮게!

[18안나] (침상에서 머리를 내밀고) 또 날이 샛군. 아이, 떠들지들 말아요. 제발요, 떠들지들 말아요.

[페이지] 004

[1끌레시치] 또 바가지 긁는구나.

[2안나] 허구헌날 쌈들만 허니--- 제발 눈감을 때나 조용히 해줘요.

[3브부노프] 떠든다구 죽는 걸 못 죽나?

[4끄바쉬냐] (안나에게 가까이 와서) 아이 참, 당신두--- 저런 웬수놈하구 어쩌면 여태껏 같이 살아왔담--- . 참 용하게 참았지.

[5안나] 그만둬--- . 암말말구 저리루 가 주구려--- .

[6끄바쉬냐] 아이 참, 가엾어라--- . 그런데 가슴 아픈건 좀 어떻소?

[7남작] 끄바쉬냐! 장에 갈 때가 됐지?

[8끄바쉬냐] 곧 가죠! (안나에게) 따뜻한 고기만두나 하나 자셔 보려우---

[9안나] 아이, 그만둬요--- . 고맙소--- 하지만 먹으면 뭘 허우---

[10끄바쉬냐] 그래두 맛이나 봐요--- . 따뜻한 것을 먹으면 몸에 좋다니깐 말이지--- . 접시에 담아 놀 테니 먹고 싶거던 먹어요--- . 갑시다, 남작! (끌레시치에게) 흥, 악마! (부엌으로 퇴장)

[11안나] (기침을 하며) 아이구--- .

[12남작] (나스쨔의 뒤통수를 콕 찌른다) 그런 책은 집어치워! 이 못난아--- .

[13나스쨔] (중얼거리며) 귀찮대두--- . 나 때문에 뭐 안되는 일이 있나? (남작, 혀를 차며 끄바쉬냐의 뒤를 따라간다)

[14싸친] (침상에서 일어나며) 어저께 잘 친놈은 어느 놈이야?

[15브부노프] 그건 알아 뭘 해, 응--- . 아무면 어때?

[16싸친] 그두 그래--- . 허지만 왜 날 쳤담--- . 영문을 알수가 있어야지--- .

[17브부노프] 투전을 했지?

[18싸친] 했다면?

[페이지] 005

[1브부노프] 그따위 짓을 하니깐 얻어터졌지--- .

[2싸친] 망할 자식들--- .

[3베우] (페치카위에서 머리를 내밀고) 두구봐라--- . 그러다간 제 명에 못 죽을 테니--- .

[4싸친] 미친놈--- .

[5베우] 미친놈? 왜?

[6싸친] 왜냐구? 한번 죽지 두 번 죽어?

[7베우] (잠시 있다가) 무슨 소리야--- . 어째서 그래?

[8끌레시치] 야, 임마. 그만 내려와! 방이나 좀 치워--- . (衁) 뭘 어물어물 하고 있어?

[9베우] 무슨 참견이야.

[10끌레시치] 주인 마누라만 와 봐라--- . 이게 쓸데없는 참견인지 알게 될거야--- .

[11베우] 흥--- . 주인 마누라가 다 뭐야--- . 오늘은 남작 차례야.

[12남작] (부엌에서 나오며) 방 치울 새가 어딨어--- . 난 끄바쉬냐하구 장에 가야지.

[13베우] 그런 건 내 알바가 아니야--- . 장 아니라 징역을 가든--- 허지만 오늘은 니 차례야--- . 뭐 먹을 거 있다구 남의 일까지 해--- .

[14남작] 흥, 맘대루 해--- . 나스쨔가 쓸어 줄 테니까--- . 여, 시들은 사랑의 아가씨--- . 정신 좀 차려! 응? (나스쨔의 책을 뺏는다)

[15나스쨔] (일어서면서) 왜 이리 야단아야. 이리 줘요--- . 아이, 뻔뻔스럽긴--- . 그래두 제 딴엔 귀족이라고, 기가 차서.

[16남작] (책을 주면서) 자, 나스쨔--- . 내 대신 방 좀 치워 줘--- . 알았지?

[17나스쨔] (부엌으로 가며) 흥, 천만에--- . 사람을 어떻게 보는 거야--- .

[페이지] 006

[1끄바쉬냐] (부엌에서 문쪽으로 오며 남작에게) 자, 어서 갑시다. 당신 없다구 방 못 치겠소? --- 여보, 베우 나리! 해 주구려--- . 저렇게 부탁하고 있지 않소--- . 허리 부러질 일도 아닌데--- . (남작 부엌으로 퇴장)

[2베우] 흥, 밤낮 나야--- 제기럴.

[3남작] (부엌에서 바구니를 메고 나온다. 그 속에는 배가 부른 항아리가 헝겊에 싸여 있다) 오늘따라 경치게 무거운데--- .

[4싸친] 남작 같은 것으로 태어난 천벌이지.

[5끄바쉬냐] (베우에게) 여봐, 잊지 말구 방 좀 치워요. (남작을 앞세우고 현관으로 나간다)

[6베우] (페치카에서 기어 내려오며) 난 먼지하곤 상극인데--- (과장적으로) 내 올가니즘은 알콜 중독이 됐으니깐--- (생각에 빠진 듯이 침상에 앉는다)

[7싸친] 올가니즘--- 올가논--- .

[8안나] 여보--- .

[9끌레시치] 왜 그래--- 귀찮게--- .

[10안나] 끄바쉬냐가 나 먹으라고 고기만두를 저기 두었을 테니 가서드쇼--- .

[11끌레시치] (안나에게 가까이 가며) 좀 안 먹을 테야?

[12안나] 먹기 싫어요. 먹으면 뭘 해--- . 당신은 일하는 사람이니깐 먹어야 되지 않겠소?

[13끌레시치] 걱정되는 모양이군--- . 걱정할 게 뭐 있나--- . 곧 나을거야--- .

[14안나] 가서 잡수세요--- . 아이 답답해--- . 아마 이렇게 아픈 것두--- 이젠--- .

[15끌레시치] (안나 옆을 떠나며) 뭘, 이제 곧 날텐데--- . (부엌으로 퇴장)

[페이지] 007

[1베우] (꿈을 깬 듯이 고성으로) 어제 병원에서 의사놈이 '당신의 올가니즘은 완전히 알콜 종독이 됐다'고 하겠지--- .

[2싸친] (웃으면서) 올가논이--- .

[3베우] (고집하듯) 올가논이 아니야--- . 올가니즘이야.

[4싸친] 거지같은 자식!

[5베우] (손을 들어 막으며) 자식은, 누가 장난인 줄 알어? 그래 내 올가니즘에는 독이 흐르고 있으니까--- 방을 쓸다가 먼지를 먹으면 몸에 해롭단 말야

[6싸친] 위생 장수법인가? 하하하.

[7브부노프] 뭘 중얼대고 있어!

[8싸친] 학자님이 쓰는 문자야. 그뿐인가--- 또 알지--- . 초자연적이란 건 어때?

[9브부노프] 그게 무슨 소리야.

[10싸친] 몰라--- . 까 먹었어--- .

[11브부노프] 그럼, 그런 소리를 왜 하냔 말야--- .

[12싸친] 난 인간들이 쓰는 말에 싫증이 났어--- . 우리들 말이 모두 싫어졌단 말야--- . 어느 말 치고 천번 이상 안 들은게 있어야지.

[13베우] 햄릿이란 연극에 '말--- 말--- 말뿐이다'란 대사가 있지. 참 걸작이거든--- . 나는 이 연극에서 산역군을 했었다네--- .

[14끌레시치] (부엌에서 등장) 그리구 이번엔 빗자루를 들구 방 치는 연극이란 말이지?

[15베우] 쓸데없는 소리 말어--- . (자기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오필리아님, 오--- 이 몸의 속죄됨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소서. (무대 배후 먼 곳에서 음침한 소음, 부르짖는 소리, 경찰의 호각소리 들린다. 끄바쉬냐는 일자리에 앉아서 줄질 소리를 내고 있다)

[16싸친] 난 뜻도 모르는 진기한 말이 좋아--- . 어릴 때 전신국에 다녔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었거든.

[페이지] 008

[1브부노프] 아니,그럼, 너 같은 위인도 전신기사 노릇을 다 했어?

[2싸친] 아무렴--- . 참 좋은 책이 많았지--- . 근사한 말두 많이 있었지. 이래봬두 난 글 깨나 배운 사람이야--- .

[3브부노프] 그놈의 소린 백 번도 더 들었어--- . 무얼 했다는 것이 뭐 중요한 거야? 어르신네두 따지고 보면 한참쩍엔 가죽장사였어--- . 뻐젓이 제 공장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 그래, 내 팔을 싯누랬어--- . 이팔루 가죽에 물을 드렸으니까--- . 팔꿈치까지 누른 빛이 물들었어--- . 누런 손으로 땅속에 파묻히겠지 했는데--- 그게 인제 요꼴이야--- . 지저분하지거, 참---

[4싸친] 그래 그게 어쨌단 말이야.

[5브부노프] 그저 그렇단 말이지---

[6싸친] 그럼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꺼내는 거야--- .

[7브부노프] 그저 뭐랄까, 이를테면--- 아무리 껍질만 번드리 해도 금방 벗겨져 버리거든--- . 홀랑 벗겨져 버린단 말아야--- . 세상만사가 다 그렇단 말이야.

[8싸친] (무릎을 껴안고 앉아 있다) 아- 아--- . 왜 이리 뼛골이 쑤신담.

[9베우] 교육이란 쓸데없는 거야--- . 가장 중요한 것은 천재라는 것이거든--- . 내가 잘아는베우 얘긴데, 그 친구는 배역의 대사나 겨우 읽을까 말까 하는 그런 무식쟁이였는데--- 그런데, 무대에 나타나기만 하는 날이면 주역을 훌륭히 해내고--- 관중의 박수 갈채로 극장이 떠나 갈 지경이었던 말이야--- .

[10싸친] 여보게, 브부노프, 5까베이까만 줘--- .

[11브부노프] 톡톡 털어야 2까베이까 밖에 없어--- .

[12베우] 말하자면 주역에게 필요한 것은 천재야--- . 아무렴--- 그런데 그 천재란--- 자기를 믿는 것이야--- . 자기의 힘을 믿는 것이야--- .

[페이지] 009

[1싸친] 5까베이까만 줘. 그런다면 너를 천재고 영웅이고 대장이고, 또 경찰 서장님으로 떠받들어 줄 테니--- . 여보게, 끌레시치, 5까베이까만 줘.

[2끄바쉬냐] 개수작 말어--- . 네놈에게 주면 딴 놈들이 덤벼들 테니.

[3싸친] 말 하나는 잘 하는군--- . 네놈도 한 푼 없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

[4안나] 여보--- 숨이 말혀요--- . 답답해 죽겠어--- .

[5끌레시치] 그러니 낸들 어떠란 말이야--- .

[6브부노프] 문을 열어 주렴.

[7끌레시치] 수작 잘한다--- . 그래 네놈은 침대위에 앉아 있고, 난 마루바닥에 앉아 있지 않는가--- . 위에서 자리나 바꿔 주고서 문을 열라고 좀 그래--- . 그렇지 않아도 난 으쓱한데--- .

[8브부노프] (조용히) 나는 아무래도 좋지만 자네 마누라가 부탁하고 있지 않나.

[9끌레시치] (음울하게) 계집년 말을 듣다간 한이 없게--- .

[10싸친] 아- 골이 쑤시는 구먼--- . 그런데 어쩨서 사람들은 서로 골통을 쥐어박느냐 말이야.

[11브부노프] 골통뿐인가--- . 전신을 그저 닥치는 대로--- (일어난다) 에라, 실이나 사러 나가 볼까--- . 그런데 주인 녀석, 오늘은 아직 코빼기두 보이지 않으니 뒈져--- 버렸나.(퇴장)

안나는 기침을 하고 있다. 싸친은 두 손으로 목을 끼고 누워서 움직이지 않는다.

[12베우] (우울하게 주위를 돌아보면서 안나에게 가까이 온다) 좀 어떻소. 그저 그렇소?

[13안나] 이 방엔 답답해 못 있겠어요.

[페이지] 010

[1베우] 그럼, 문 밖으로 데려다 줄 테니 일어나요--- . (그녀를 부축해 일으킨다. 낡은 모피를 어깨에 얹어 주고 여자를 문 있는 것으로 데리고 간다) 자, 정신 차려요. 나도 병자야. 알콜 중독자거든--- .

[2꼬스뜨일로프] (문턱에서) 허― 산보들 나가시는군--- 잘 어울리는데, 수캐와 암캐라---

[3베우] 비켜, 비켜--- 환자가 나가지 않니, 응---

[4꼬스뜨일로프] 염려말구 나가. (찬송가를 부르면서 불안스럽게 지하실을 돌아보고, 페페르 방의 기세를 살핀다. 끌레시치는 성난 듯이 자물쇠를 떼걱거리고 줄질을 하면서 꼬스뜨일로프를 노려본다) 돈벌이 좋은가?--- .

[5끌레시치] 뭐야--- .

[6꼬스뜨일로프] 벌이가 좋냔 말이야. (사이) --- 아이, 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려 했던가--- . (성급하게 그리고 나즈막하게) 우리 마누라, 안 왔나?

[7끌레시치] 못 봤는 걸--- .

[8꼬스뜨일로프] (페페르의 방문을 들여다보면서) 한 달에 2루블 내고, 이 방을 독차지 하고 있단 말이야. 마누라는 침대를 차지하고, 넌 너대로 떡 앉아 죽치고 있으니 정말 5루블 값은 차지하고 있단 말야--- . 응, 50까베이까는 더 집셀 올려야 할 걸--- .

[9끌레시치] 그럴 바에야 차라리 노끈으로 내 목을 졸라 죽여 버려--- . 죽을 날이 머지 않은 녀석이--- 그래도 50까베이다,5루블이다, 밤낮 돈만 받아 처먹을 생각만 한담--- .

[10꼬스뜨일로프] 네놈을 졸라 죽인들 뭐 신통한 게 있단 말이야--- . 그저 두 눈깔이 말똥말똥할 동안이나 재미보라니까 그래--- . 난 말이야, 네 집세 50까베이까를 올려서 성(聖) 불 기름이나 사겠다, 그 말씀이야--- . 그렇게 해서 내가 바친 기름이 성상 앞에서 타게 되면 자네나 우리나 모두 죄가 없어질 것일세--- . 네놈은

[페이지] 011

자기 죄를 생각해 본 일도 없지? 어때--- (衁) 네놈도 죄 많은 인간이야--- . 네 계집이 저런 병에 걸린 것두 모두 네 전생의 죄야--- . 널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어--- . 거들떠보는 사람두 하나도 없을 것이야--- . (遁) 우선 네놈하고 있는 일부터 틀렸어--- . 시끄러워 견딜 수가 있어야지--- .

[1끌레시치] (소리를 지른다) 이놈이 나를 내쫓으려고 왔구나. (싸친, 큰 소리로 앓는다)

[2꼬스뜨일로프] (불불떤다) 아- 니, 이 사람들이 왜 이래--- .

[3베우] (들어온다) 문 앞까지 겨우 데려다 줬지--- . 추워하길래 잘 덮어 주었어--- .

[4꼬스뜨일로프] 허, 대단히 친절하신데--- . 좋은 일 했으니 보답이 반드시 있겠지.

[5베우] 언제 있단 말야?

[6꼬스뜨일로프] 저승에서 말일세--- . 저승에 가면 우리가 한 일에 대해서 일일이 보답이 있다네.

[7베우] 어때? --- 이왕이면 그 보답을 자네가 이 세상에서 좀 주어보시지--- .

[8꼬스뜨일로프] 대체, 어떻게 허란 말이야?

[9베우] 빚을 반만 탕감해 주지?--- .

[10꼬스뜨일로프] 헤헤--- 농담을 하시는군--- 대체 친절이란걸 돈으로 살 수 있는줄 알어? --- 친절이란 어떠한 보배보다도 귀중한 것이야--- . 그러니까 네 빚은 어디까지나 빚이야--- . 그 빚은 빚대로 갚아야 옳지--- . 그게 나 같은 늙은이에겐 그저 친절을 다하는 것이야.

[11베우] 에이, 불한당 같은 놈--- . (부엌으로 퇴장, 끌레시치는 일어서서 문으로 간다)

[12꼬스뜨일로프] (싸친에게) 누구야--- 자물쇠장이지, 지금 나간건? 저놈은 나하고 상극이지.

[페이지] 012

[1싸친] 귀신 아닌 다음에야 누가 자네를 좋아한단 말이야?

[2꼬스뜨일로프] (냉소하며) 허, 하시는 말씀 들어봐--- . 허지만 난 너희들이 모두 좋아. 집두 없구 의지할 곳두 없는 가엾은 인간들이거든--- . (갑자기) 근데, 페페르는 집에 있나?

[3싸친] 들여다보게나--- .

[4꼬스뜨일로프] (문에 와서 노크를 한다) 페페르! (베우가 부엌에서 문턱으로 나타난다. 그는 무엇을 먹고 있다)

[5페페르] (안에서) 누구야?

[6꼬스뜨일로프] 날세--- . 나야, 페페르.

[7페페르] 무슨 일이야?

[8꼬스뜨일로프] (뒤를 물러서면서) 문을 좀 열어.

[9싸친] (일부러 꼬스뜨일로프를 보지도 않고) 문을 열면, 아가씨가 뛰어나올걸--- .

베우의 기침소리와 코웃음.

[10꼬스뜨일로프] (불안하여 크지 않은 소리로) 뭐, 누가 있다구? --- . 뭐라구 그랬지?

[11싸친] 뭐야?--- 나 말야?

[12꼬스뜨일로프] 지금 뭐하고 그러지 않았어?

[13싸친] 아무것도 아냐--- . 혼자 말야.

[14 꼬스뜨일로프] 정신 채려! 농담두 분수가 있지. (힘차게 문을 두드린다) 페페르--- .

[15페페르] (문을 열고) 뭐야? 왜 이리 떠들어--- .

[16꼬스뜨일로프] (방안을 들여다보면서) 저 --- 말야--- 저---

[17페페르] 돈 가져왔어?

[페이지] 013

[1꼬스뜨일로프]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2페페르] 아, 돈 가져왔냐니까?

[3꼬스뜨일로프] 돈? 무슨 돈 말야?

[4페페르] 7루블 말야--- 시계값 떨어진 게 있지 않어?

[5꼬스뜨일로프] 무슨 시계 말야? 페페르--- 이 사람이--- .

[6페페르] 시치미 떼지 말어--- 어제 모두 보는데서 너에게 10루블에 팔지 않았어? 3구블은 받았으니까 나머지 7루블을 내란 말야--- . 왜 눈만 뻔둥뻔둥하고 섰어? 공연히 빈둥빈둥 돌아다니면서 남의 잠두 못 자게 지랄이야--- . 정작 할 일을 제쳐놓구---

[7꼬스뜨일로프] 그렇게 성낼 건 없잖나? 페페르, (衁) 그런데 시곈--- 대체---

[8싸친] 훔친거야.

[9꼬스뜨일로프] (엄격하게) 난 도둑놈의 물건은 안 사--- . 잘도 그따위 짓을--- .

[10페페르] (그의 어깨를 붙잡고) 이 자식아--- . 그럼 왜 날 깨웠어--- . 내게 무슨 볼 일이 있니?

[11꼬스뜨일로프] 응, 응, 별루 뭐 볼 일은 없어--- . 그럼--- . 난 갈 테야. 그렇게 화낼 거까지야--- .

[12페페르] 가--- . 가서 돈이나 가져와!---

[13꼬스뜨일로프] (나가면서) 에이, 경칠 자식들 --- 아아.

[14베우] 희극인데.

[15싸친] 멋진데--- . 그참, 볼만한 걸--- .

[16페페르] 대체 그 자식이 뭣하러 왔어?

[17싸친] (웃으면서) 뻔하지 뭐--- . 계집을 찾으러 온 거야--- . 여보게, 페페르 자네 왜 그놈을 일찌감치 처치해 버리지 않나?

[18페페르] 그까진놈 때문에 일생을 망친단 말야?

[페이지] 014

[1싸친] 암- 감쪽같이 잘 해야지--- . 머지않아 바실리사를 얻어 가지고 이 집주인 양반이 되시겠다--- .

[2페페르] 쓸데없는 소리 말어--- . 그래가지고 자네들은 나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거지! 원체 난 사람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침대에 앉는다) 옘병헐 자식, 남의 단잠을 깨놓구--- 마침 난 좋은 꿈을 꾸고 있었어--- . 아마 낚시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 그러자 굉장히 큰 도미가 걸렸단 말야--- - 도미가, 응--- 꿈이 아니면 볼 수도 없는 그렇게 큰 도미야--- . 이크, 됐다, 하구 낚싯대를 끌레시치어 올리려고 하자, 낚시줄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더군--- . 그래 그물을 들어 막 칠려고 하는데---

[3싸친] 그건 도미가 아니라 바실리사겠지--- .

[4베우] 이 집 주인 마누라 같으면 벌써 그물안에 들어 있는걸--- .

[5페페르] (성을 내고) 집어쳐--- . 또 주인 마누라야?

[6끌레시치] (현관에서 들어온다) 어, 추워. 우라지게 춥다---

[7베우] 왜, 안나를 데리고 오지 않나? 얼어 죽으면 어쩔려구--- .

[8끌레시치] 나따샤가 부엌으로 데리고 갔어!

[9베우] 그럼, 이 집 늙은 놈팽이가 내쫓을 걸--- .

[10끌레시치] (앉아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따샤가 곧 데리고 올거야--- .

[11싸친] 페페르, 5까베이까만 주게.

[12베우] (싸친에게) 겨우 5까베이까야?--- . 페페르, 20까베이까만 줘!

[13페페르] 얼른 줘 버리지 않으면--- 인제 1루블을 또 달라고 할 테지--- . 자 엇따--- .

[14싸친] 이 세상에는 도둑놈처럼 훌륭한 사람은 없을거야.

[15끌레시치] 도둑놈들은 힘 안들이고 쉽게 돈을 벌지--- . 도둑놈이 무슨 일을 하나.

[16싸친] 힘 안 들이고 쉽게 돈을 버는 놈은 얼마든지 있지만--- ,

[페이지] 015

쉽게 그 돈을 쓰는 놈은 적단 말야--- . 일? 일이 재미만 있다면 나두 일을 하지--- . 일이 편하게 되면 인생은 극락이야--- . 허지만 일이 의무로 되면, 인생은 생지옥이란 말야. (배우에게) 자, 가세.

[1베우] 가세, 가. 맘껏 술이나 마시세. (퇴장)

[2페페르] (하품을 한다) 자네 마누라는 좀 어떤가?

[3끌레시치] 아마 얼마 못 갈 것 같어--- .

[4페페르] 자네가 그렇게 일하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어--- . 그런 일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말야.

[5끌레시치] 그럼 뭘 하란 말인가?

[6페페르] 아무 것도 하지 말어--- .

[7끌레시치] 그러면 뭘 먹구?

[8페페르] 다른 사람들을 보게? 그럭저럭 살아 가지 않어?

[9끌레시치] 다른 사람이라니--- 여기 있는 놈들 말야? 그것들이 사람축에 끼나? --- 주정꾼, 망난이, 좀도둑--- , 흥, 하긴 훌륭한 사람이지. 보기만 해두 구역이 나--- . 난 이래봬두 노동자야. 어렸을 때부터 쭉 일을 해왔어--- . 그럼 넌--- 날 이 더러운 굴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으로만 여기는 거야? --- 내 두구봐. 기어코 이 굴을 빠져나갈 테니--- 이 껍질이 조각조각 찢어지면 어때? 꼭 빠져나가 버릴 테다--- . 허지만 우선 계집이 뒈져야 할텐데--- . 내가 이놈의 곳에 들어온 지 겨우 여섯달 밖에 안 됐지만 벌써 여섯 해나 된 것 같애.

[10페페르] 이곳에서 너보다 나쁜 놈은 한 사람도 없어--- . 잘난 체 말어!

[11끌레시치] 나쁘지 않다구?--- 그래 여기 있는 놈들이 명예를 가졌단 말인가? 양심을 가졌단 말인가?

[12페페르] 흥, 그런게--- 명예심이나 양심이 무슨 소용이 있어? 먹을 수가 있어--- 입을 수가 있어--- . 명예심이나 양심이란 건 권세나 돈 가진 놈들에게나 필요한 거야.

[페이지] 016

[1브부노프] (드러눕는다) 어, 춥다. 어이 추워.

[2페페르] 임마, 브부노프! 넌 양심이란 걸 가졌어?

[3브부노프] 뭐라구--- , 양심?

[4페페르] 음, 그래.

[5브부노프] 양심이 다 뭐야? 난 부르죠아가 아니야.

[6페페르] 암, 그렇구말구. 나두 지금 막 그렇게 이야기 하던 참이야--- . 양심이나 명예심은 돈 많은 놈들에게나 소용 있는 거라구--- . 그런데 끌레시치 녀석이 나한테 덤벼들면서--- 나더러 양심이 없다구 씨부린단 말야.

[7브부노프] 그럼, 뭐야. 그 자식은 우리들의 양심을 좀 꾸어 가겠단 말야?

[8페페르] 천만에, 제 것두 너무 많아서 주체를 못하는데--- .

[9브부노프] 그럼 뭐야? 팔아먹겠다는 거지--- . 하하하, 누가 그런 걸 살 줄 알구--- . 허다못해 다 떨어진 판지 상자라두 가져와! 그러면 내가 살 테니. 그것두 맛돈이면 일없어--- .

[10페페르] (끌레시치에게 교훈하는 태도로) 네놈도 경치게 알량하다--- . 싸친이나 남작에게 양심이란 게 뭔가 한번 물어 봐--- .

[11끌레시치] 그까진 놈들한테 뭘 물어 보란 말야?

[12페페르] 그놈들은 모두 망난이지만 그래두 너보다는 똑똑해--- .

[13브부노프] 똑똑하고 술 잘 먹고, 문무겸비(文武兼備) 란 말이지.

[14페페르] 싸친 녀석이 그러던데--- 세상놈들은 남이 양심을 안 가진 걸 탓하지만 자기의 양심이 있는건 불편하다나? --- (衁) 정말 그래, 그럴거야.

나따샤 등장. 그 뒤에 루까가 지팡이를 짚고 바랑을 메고 허리에 조그마한 냄비와 주전자를 차고 등장

[페이지] 017

[1루까] 나리들! 안녕하- 슈.

[2페페르] (수염을 쓰다듬으며) 여--- 나따샤--- .

[3브부노프] (루까에게) 나두 한때는 나리님 소리를 들었건만 재작년부터는--- .

[4나따샤] 새 손님이 왔어요.

[5루까] (브부노프에게) 그런 건 아무려면 어때? 나는 어떤 협잡꾼이라도 존경하는 사람이요--- . 내 생각에는 어떤 벼룩이라도 다 마찬가지야. 다 검구 톡톡 튀거든--- . 그렇지 않소? 근데 아가씨, 자린 어디다 잡을까?

[6나따샤] (부엌으로 향한 문을 가리키며) 저리로 가시죠, 영감님.

[7루까] 예, 어디든지 좋지요--- . 늙은이는 그저 따뜻하면 그만이거든--- . 정든 고향처럼 그리운 곳이야.

[8페페르] 아주 재미있는 늙은이를 데려왔군, 나따샤.

[9나따샤] 그야, 당신네들 보담 재미있죠--- . 이보요, 끌레시치, 마나님이 부엌에 와 있으니 이따 데리러 와요.

[10끌레시치] 가구말구요.

[11나따샤] 좀 더 친절하면 어때요? --- 살면은 얼마나 더 살겠고.

[12끌레시치] 네, 압니다.

[13나따샤] 그야 알고는 있겠지만, 알고만 있으면 뭘 해--- . 글쎄 생각 좀 해봐요. 죽는다는 건 여간--- 무서운게 아냐--- .

[14페페르] 그까짓 거--- 난 조금도 무섭지 않어--- .

[15나따샤] 어머, 참 훌륭한데--- .

[16브부노프] (혀를 차며) 이런 망할 놈의 실같으니--- .

[17페페르] 정말 난 무섭지 않어--- . (衁) 정 뭣하면 당장에라도 죽어 보일테야--- . 믿지 못하거던 식칼을 가져와서 어디 한번 내 심장을 푹 찔러봐--- 찍 소리도 없이 삐쭉 웃으면서 죽을 테니까--- 그뿐인가, 기쁨에 넘쳐서 용감히 죽어 버릴 테야--- . (遁) 그야 뭐 이렇게 아름답고 귀여운 손에 쓰러지는 데야--- .

[페이지] 018

[1나따샤] 흥, 별 소릴 다 듣겠네--- .

[2브부노프] (지친 듯이) 제기랄, 실까지 말썽이네--- .

[3나따샤] (현관 문턱에서) 마나님을 잊지 말아요.

[4끌레시치] 네, 네

[5페페르] 근사한 계집앤데.

[6브부노프] 참 얌전하지.

[7페페르] 저놈의 계집애는 나만 보면 저런단 말이야. 내 말에 언제든지 샐쭉하거든--- . 허지마 이러나 저러라 매일반이야--- . 여기 있으면 응당 신세를 망쳐버리고 말 걸--- .

[8브부노프] 에이, 임마. 네 놈이 망칠려는 게 아니냐?

[9페페르] 내가 왜? 나는 그 애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10브부노프] 이건,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격이군.

[11페페르] 듣기 싫어. 난 정말 진심으로 그 애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이런 곳에 두는건 그 애에게 확실히 좋지 못해--- . 난 잘 알구 있어--- .

[12끌레시치] 만약, 네가 그 애하구 말이라두 하는 것을 주인 아씨께 들킨다면 큰 야단날 걸.

[13브부노프] 바실리사 말이야? 여부 있나! 제 샛서방을 뺏기구 그저 가만히 있진 않을 테니까, 어떤 여자인데.

[14페페르] (침대에 누워서) 에이, 이친 놈들! 두 놈 다 썩 꺼져버려--- .

[15끌레시치] 어디 두구봐, 내 말이 맞을 테니--- .

[16루까] (부엌에서 노래한다) 밤은 깊어가고 갈길은 아득한데,

[17끌레시치] (현관으로 나가며) 아아. 저것두 또 짖어대는구나.

[페이지] 019

[1페페르] 아이구, 지긋지긋해, 어째 이렇게 골치가 지끈지끈할까--- . 보통땐 아무렇지두 않건만--- 어째 벼랑간 마치 소름이 끼치듯이 마음이 울적해진단 말야!

[2브부노프] 울적해? 네가?

[3페페르] 이 자식이 누굴 놀리나?

[4루까] (노래한다) 그 갈 길은 아득하네--- .

[5페페르] 야이, 영감쟁이--- .

[6루까] (문에서 돌아오며) 나 말인가?

[7페페르] 그래. 노랠 집어쳐!

[8루까] (방 안으로 들어온다) 노래를 즐기시지 않는가?

[9페페르] 잘만 부르면야 왜 싫어.

[10루까] 그러면 결국 내가 노래를 잘못 부른단 말이지?

[11페페르] 아마--- 그쯤 될 걸.

[12루까] 허허허, 난 그래도 꽤 하거니 생각했는데--- 세상일은 모두 그런 거야. 누구든지 자기 하는 일은 항상 다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이 딴 사람 마음엔 들지 않거든.

[13페페르] (웃는다) 그야 그럴 테지.

[14브부노프] 웃긴--- 골치가 쑤신다면서--- .

[15페페르] 그게 어쨌단 말야? 이 방정맞은 늙은이 같으니.

[16루까] 누군가? 골치가 쑤신다는건.

[17페페르] 나야! (남작 등장)

[18루까] 그래. 나 좀 봐! 저쪽 부엌에선 어떤 처녀가 책을 읽으면서 울고 있단 말야--- .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요. 그래, 아가씨 왜 울고 계시요 하고 물었더니--- 아가씨 대답인즉, '너무 가여워 못 견디겠어요!' 하질 않겠소. 그래서 누가 그렇게 가엾냐고 물으니까, 하! 이것 봐, 이 책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가엾다고 그러지 않아? 다 큰 계집애가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말야--- . 아마--- 뭐 또 침울증 때문이겠지--- .

[페이지] 020

[1남작] 그 계집앤 밥통이야.

[2페페르] 남작! 너 차 마셨니?

[3남작] 마셨네--- 근데 왜 그래?

[4페페르] 어때? 보드카 한 잔 사구 싶은데.

[5남작] 여부 있나--- . 그래서?

[6페페르] 네발로 기어다니며 개처럼 짖어봐.

[7남작] 에이 망할 자식! 아니 네놈, 장사꾼이 됐냐, 그렇지 않으면 술주정이냐?

[8페페르] 잔말 말고 짖어라, 짖어--- . 내겐 그게 재미다--- . 네놈이 나리 소릴 들을 때는 우리들을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겠지? 그리구---

[9남작] 그래, 그래서?

[10페페르]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네놈을 개처럼 짖게 만들어 보려는 거지. 자, 짖을 테니? 짖겠지?

[11남작] 그래, 짖을 테야, 개자식 같으니--- (衁) 뭐가 그렇게 재미있단 말야? 내가 너보다 웃계급에 있을 때엔 네 발로 기게 하는게--- 그야 재미있었을런지도 모르지만 인제 내가 오히려 네놈들보다 비렁뱅이가 되고 말았으니--- .

[12브부노프] 말은 맞지.

[13루까] 그야 그렇지.

[14브부노프] 그런 건 다 옛날 얘기구--- . 이제와서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 여긴 양반도 쌍놈도 없는 세상이야--- . 너, 나, 할것없이 똑같은 알거지들이야.

[15루까] 모두가 평등하다는 말이로군. 그건 그렇구, 당신은 정말 남작이었소?

[16남작] 뭐라구? 넌 어디서 나온 도깨비야?

[페이지] 021

[1루까] (웃는다) 난 백작도 만나고 공작도 만났지만 남작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것도 알거지가 된 남작말이요.

[2페페르] (껄걸 웃는다) 여, 네놈덕에 챙피당헌다.

[3남작] 임마! 인젠 나이값을 좀 해라.

[4루까] 허허허, 난 아까부터 당신들을 보구 있지만 당신들 생활은 암만해두 이래선--- .

[5브부노프] 눈만 뜨면 욕하구 싸우고--- 이게 우리들의 생활야.

[6남작] 이래봬두 한땐 남부럽지 않게 산 적두 있어--- . 암, 있다마다! 나만해두--- 아침에 잠을 깨면 침대에 눈 채로 커피를 마셨어--- . 커피야--- . 게다가 크림을 넌 거야--- . 암, 그렇구말구.

[7루까] 사람이란 죄다 그런 거야--- . 아무리 잘난 체 뽐내봐두, 아무리 악착같이 애써봐두 그래두 결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으로 죽어가거든--- . 내가 지금 보니까 인간은 점점 약아지고, 점점 재미있어 진단 말야--- . 그러나 생활이 나빠질수록 점점 좋은 생활을 동경하게 된단 말야--- . 인간이란 할 수 없어--- .

[8남작] 여, 늙은이, 대체 당신은 누군데 어디서 왔소?

[9루까] 누구? 나 말씀이요?

[10남작] 전도사지?

[11루까] 지구에 살고--- 우리들은 모두 다 나그네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덩어리도 둥굴둥굴 우주(宇宙) 를 굴러 다니는 한갓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러지 않나?

[12남작] (야무지게) 그야 그렇지--- . 허지만 넌 여권을 가지고 있어?

[13루까] (성이 나서) 댁이 뭐요? 경찰의 앞잡이요?

[14페페르] (쾌할하게) 근사하다, 영감, 어때 남작, 한 대 먹었지?

[15브부노프] 맛이 어때? 나리!

[16남작] (당황하여) 뭐--- 뭐, 아무것두 아냐. 그저 농담삼아 한마디 해본거야--- . 나도 사실은 그런 증명서는 없어.

[페이지] 022

[1브부노프] 거짓말 말어.

[2남작] 그야 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면 뭘 해. 그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어--- .

[3루까] 증명서란 원래 모두 그런 것이야. 모두 아무 짝에도 못 쓴다니까--- .

[4페페르] 남작, 한잔 하러 가자!

[5남작] 암 가야지--- . 또 봅시다 영감, 이 늙은이 보통이 아닌데---

[6루까] 넓은 세상에는 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7페페르] (현관문에서) 빨리 나와! (퇴장, 남작 그 뒤를 따라간다)

[8루까] 저잔 정말로 남작이었나?

[9브부노프] 알게 뭐야--- . 하여간 귀족 나부랑이었던 건 사실인 모양이야--- . 지금도 가끔 귀족티를 내니까. 아직도 옛날 버릇이 남아 있는 모양이야.

[10루까] 귀족이란 천연두 같아서 병이 나았더라도 그 자국은 한 평생 남지.

[11브부노프] 저래두 사람은 꽤 괜찮은 놈인데 가끔가다 아까 같이 심통을 부려서 탈이지. 지금 그 여권 얘기도 그 버릇이지요.

[12알료쉬까] (손풍금을 가지고 취해서 등장. 휘파람을 분다) 아, 이놈들아!

[13브부노프] 뭘 떠들어?

[14알료쉬까] 미안하이--- . 나는 이래봬도 예의범절은 알아 보는 사람야.

[15브부노프] 또 술독에 빠졌다 왔구나?

[16알료쉬까] 맘대루 지껄여--- 난 지금 막 부서장(部署長) 메쨔칭헌테--- . 경찰에 끌려갔다 오는 길이다. 아, 그 자식 날더러 '금후 일체 거리에서 네놈 냄새만 풍겨도 용서 않겠다--- . 알아 들었어--- ' 아, 이러구 나불대지 않어? 경찰자식. 흥, 난

[페이지] 023

바지저고리만 남은 줄 아나. 이 집 쥔 놈은 날 싫어하지만 제까진 놈이 다 뭐야? 흥, 개 같은 자식! 전 나보다 더한 주정뱅이 아냐?--- . (衁) 난 아무 욕심도 없는 사람이다--- 아무것두 일없어--- . 자, 어디든지 날 데려갈테면 데려가--- . (遁) 백만 루블을 준 대두 내겐 소용없다. (나스쨔, 부엌에서 등장, 문턱에 서서 알료쉬까를 보고 머리를 흔든다) 뻐젓한 사람을 다 같은 주정뱅이들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이 아니꼽구 괘씸하단 말야.

[1루까] (부드럽게) 여보, 젊은이! 왜 이러는가?

[2브부노프] 저런! 자식.

[3알료쉬까] (마루바닥에 앉아서) 자, 날 잡아먹어라. 난 아무것두 일없다. 일없다면 일없는 줄 알어--- . 난 원래 이런 놈이다. 내가 어디가 나빠, 응?--- . 나쁜 델 말해 봐, 어디가 남보다 못하냐 말야--- . 자식! 뭐 거리에 냄새도 풍기지 말라구? 어물거리면 목아지를 빼겠다구? 어림없지, 어리없어--- . (衁) 난 나갈 테야, 나가서 네거리 한복판에 큰 대자로 눌테야--- . 모가지를 뺄래면 빼 봐, 난 아무것두 일없어. (일어선다)

[4나스쨔] (크게 말한다) 주인 마누라 와!

[5바실리사] (급작스럽게 문을 열고 알료쉬까에게) 요놈의 자식, 또 왔구나.

[6알료쉬까] 안녕합쇼--- 이리 들어오시죠.

[7바실리사] 요, 강아지 새끼 같으니, 다시는 여기 그림자도 얼씬 말라고 그렇게 일렀는데--- . 또 왔니? 뻔뻔스럽게--- .

[8알료쉬까] 바실리사! 캄프브나 장송곡이나 한 곡조 어떻습니까?

[9바실리사] (알료쉬까의 등을 떼민다) 요런, 냉큼 나가지 못해!

[페이지] 024

[1알료쉬까] (문쪽으로 몸을 슬슬 빼며) 그러지 말고 들어 봐요, 장송곡이야--- . 요즈음 배운 아주 신성한 거야--- . (衁) 글쎄, 이러지 말라니깐, 그러면 안돼!

[2바실리사] 되나 안 되나 두고 봐! 집집마다 귓밥을 치고--- . 대가리에 쇠똥도 안 떨어진 녀석이 내 흉을 보구 댕겼어, 건방지게--- .

[3알료쉬까] (달어나면서) 갈 테야--- . 가--- 간다니깐--- .

[4바실리사] (브부노프에게) 그 녀석을 다신 이 집 문지방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해--- . 알았어? 응? 알아들었어?

[5브부노프] 뭐 내가 이 집 문지기여?

[6바실리사] 문지기건 말건 내가 알게 뭐야--- . 그러나 누구 덕으로 이 집에 붙어있는 줄 알어? 나한테 빚이 얼마나 있는 줄 알구나 있어?

[7브부노프] (태연하게) 그건 계산해 봐야 알지.

[8바실리사] 그럼, 내가 해줄까, 응?

[9알료쉬까] (문을 열고 큰 소리로) 여이! 물귀신! 네까짓게 무서워서 도망친 줄 알어? --- 무섭지 않다, 무섭지 않어. (도망간다. 루까, 웃는다)

[10바실리사] 이건 또 누구야?

[11루까] 길가던 사람이요--- . 나그네요--- .

[12바실리사] 하룻밤만 쉴 테요? 오래 묵을 테요?

[13루까] 그건 형편을 봐야지.

[14바실리사] 여행증명은?

[15루까] 있소.

[16바실리사] 이리 내 봐요,

[17루까] 이따 가져가지요--- . 방에 갖다 드리죠.

[18바실리사] 길가는 나그네라--- (衁) 참 그럴 듯한 걸, 그래도 이제부턴 방랑객이라 하는게 좋을 걸--- (遁) 그 편이 더 나을걸 같은데.

[페이지] 025

[1루까] (한숨쉰다) 아― 당신은 암만 봐두 친절한 사람은 아닌 게로군.

(1―衁) 바실리사는 페페르의 방 있는 데로 간다. 알료쉬까는 부엌에서 바라보면서 '여봐'하고 속삭인다.

[2바실리사] (돌아보고) 아직도 거기 있어? (알료쉬까, 휘파람을 불면서 숨는다. 나스쨔와 루까는 웃는다)

[3브부노프] (바실리사에게) 없어.

[4바실리사] 누가 없단 말이야?

[5브부노프] 뻔하지. 페페르말이야.

[6바실리사] 누가 너한테 페페르 물었어? 주제넘게.

[7브부노프] 다― 알어--- . 봐, 그럼 뭘 기웃기웃 찾는 거야?

[8바실리사] 난 방 청소를 했나, 안했나 그걸 보는 거야, 알겠어? 여태껏 왜 청소도 안하구 자빠졌어 집안을 말끔히 치우라고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타이르지 않았어?

[9브부노프] 오늘은 베우 차례인 걸--- .

[10바실리사] 누구 차롄지 내가 알게 뭐야--- . 만일 위생계 관리가 와서 벌금처분이나 당하면 어떡할 테야? 그렇게 되기만 해봐--- 모―두 내쫓고 말 테니.

[11브부노프] (태연하게) 흥, 우리가 다― 쫓겨나가면 너흰 누가 먹여살리구?

[12바실리사] 잔말말구 먼지 하나 없이 말끔히 치워 놔! (부엌에 가서 들여다보며 나에게) (衁) 넌 왜 장성같이 버티고 서있니? 잔뜩 부어 갖고서. 나와서 방이나 쓸어--- . (遁) 너 나따샤--- 못 봤니? 여기 오지 않았어?

[13나스쨔] 난 몰라, 못 봤어.

[페이지] 026

[1바실리사] 브부노프, 내 동생 여기 안왔수?

[2브부노프] 조금 아까 저 늙은일 데리고 왔었는데--- .

[3바실리사] 그리고, 그인 집에 있었수?

[4브부노프] 페페르말이지? 있었지--- . 그앤--- 나따샤 말야--- 끌레시치와 이야기하구--- .

[5바실리사] 내가 언제 누구하고 얘기했냐고 물었어? 아이, 더러워! 이 먼지봐--- . 온통 먼지 투성이야. 아유, 어쩌면--- 너흰 꼭 돼지야, 돼지--- . 제발 좀 깨끗이 해 놔! 알았어? (급히 퇴장)

[6브부노프] 계집년, 더럽게 고약하지--- .

[7루까] 거, 상당한 걸--- .

[8나스쨔] 이런 생활을 하면 누구나 다- 짐승같이 되고 말아요--- . 더구나 저 사람같이 그런 서방하고 딱 드거붙어 살면 누구나---

[9브부노프] 그렇게 딱 드러붙어 있지도 않은 걸--- .

[10루까] 밤낮 저렇게--- 까깍거리고 있나?

[11브부노프] 밤낮이--- 망할 년, 샛서방이 찾아왔다가 녀석이 없으니까 저 모양야--- .

[12루까] 하--- 그래서 짜증이시로군, 하--- . 이 세상엔 별별 놈들이 다 권세를 쥐고 있어--- . 그리구 모― 두들 남을 내려 누를려고 기를 쓰고 있지만 세상을 바로 잡을 놈은 없어!

[13브부노프] 바로 잡을려고 해도 머리가 모자라거든--- . 그런데--- 여길 쓸어내야겠는 걸--- . (衁) 나스쨔, 좀 안 치워 줄 테야?

[14나스쨔] 흥, 싫어! 누가 종인 줄 알어? (잠시 침묵) 오늘 술이나 실컷 마셔야지. 곤드레가 되도록 취해야지.

[15브부노프] 그것도 좋지.

[16루까] 아가씨, 그건 뙈 왜 그래? 술을 마시다니--- . 아, 여태껏 울구 있더니 갑자기 취하구 싶다구?

[페이지] 027

[1나스쨔] (대들 듯이) 휘하면 또 울걸--- . 그저 그런 거야!

[2브부노프] 어째 좀---

[3루까] 하지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걸 얘기해 봐--- .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리 있나. (나스쨔, 잠자코 머리를 쥐며 있다)

[4루까] 할 수 없군--- . 인간이란 모―두 이 모양이야. 이러다가 앞으로 당신들은 또 어떻게 돼 갈런지?--- 자, 그러면 방을 내가 쓸어 내지--- . (衁) 비는 어디 있나?

[5브부노프] 문 뒤에 있어--- . (루까 현관으로 퇴장) 얘, 나스쨔.

[6나스쨔] 뭐야?

[7브부노프] 바실리사는 아까 왜 알료쉬까를 못살게 굴었을까?

[8나스쨔] 그걸 몰라? 페페르가 주인 마누라를 차버릴 작정이라는 둥, 나를 손에 넣을려고 하고 있다는 둥, 하고 떠들어 돌아 다니는 탓이지--- . (衁) 난 인제 그만 여길 떠나서 어딘가 딴 집으로 가야겠어.

[9브부노프] 근데 왜 그래--- 어디루?

[10나스쨔] 이젠 그만 다 싫어졌어. 게다가 난 여기서는 (衁) 무용지물인걸.

[11브부노프] (엄격히) 어디로 가나 네 따위는 무용지물야--- . 이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 쓸데없는 것들야. (나스쨔, 머리를 흔들며 일어서서 조용히 문간으로 나간다. 경찰인 메드베제프, 들어온다. 그 뒤에 빗자루를 들은 루까 등장)

[12메드베제프] (루까에게) 어째 좀, 넌 보지 못하던 쌍통 같은데.

[13루까] 그렇다면 다른 놈들은 다 아신단 말씀이죠.

[14메드베제프] 관할 내에 있는 자는 응당 알아야 하겠지만--- 넌, 모르겠느데--- .

[15루가] 그런 이렇죠. 온 세상이 나리 관할이 아닌 까닭이죠--- . 이 관할 외에도 다른 곳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

[페이지] 028

[1메드베제프] (브부노프 곁으로 온다} 암, 그렇지, 물론 내 관할이 넓지는 않지--- . 그런데두 넓은 곳보단도 훨씬 힘이 든단 말야--- . 지금도 막 교대로 나올려고 하는데 구둣방 알료쉬까를 잡아들일 일이 생겼단 말이야--- . (衁) 아, 이것 좀 봐, 글쎄 그 자식이 길거리 한복판에 번듯이 나자빠져서 손풍금을 풍팡풍팡하면서--- . '아무것도 일없다. 아무것도 바랄게 없다' 라구 떠들고 지랄을 하고 있지. 마차는 달려오지, 사람은 많지, 까딱하면 마차에 칠런지도 모를 판이었어--- . 처치곤란한 망난이야--- .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붙들어서--- 서에 보내고 왔단 말이야--- . (遁) 허, 참, 경치게도 말썽 많은 놈이야.

[2브부노프] 오늘밤에 장기나 두러 오지 않겠나--- .

[3메드베제프] 와두 좋지--- . 그런데--- 저, 어떻게 됐지? 페페르는 여전하지.

[4브부노프] 그저 그렇지 뭐.

[5메드베제프] 말하자면 아직도 살았단 말이지.

[6브부노프] 아, 살아 있지 않구! 그럼 어떻단 말야. 그놈은 살아도 사는 보람이 있게 살아---

[7메드베제프] (괴상스럽게) 허, 사는 보람이 있다구? (루까,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오며 들통을 들고 현관으로 퇴장) 흥--- . (衁) 퍽 소문이 자자한데, 페페르의 일말이야--- . (遁) 너 아무것도 듣지 못하였니?

[8브부노프] 아무 말도 듣지 못했는데.

[9메드베제프] 바실리사에 대해서 뭐 눈치챈 건 없는가?

[10브부노프] 뭘 말이야?

[11메드베제프] 그리 저거한 건 아니지만--- 넌 다― 알고 있으면서 호박씨를 까는 거 아냐? 벌써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 거짓말하면 재미없어.

[12브부노프] 뭣때문에 내가 거짓말을 한단 말이야.

[페이지] 029

[1메드베제프] 그 말을 잊지 말어, 개 같은 것들--- . 그놈들은 이런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이야. 페페르와 바실리사가 뭐 어쩌구저쩌구--- . 하지만, 내게 무슨 상관이 있나? 난 그년의 애비는 아니거든--- . 다만, 아저씨가 될 뿐이지. 뭣 때문에 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야--- . 세상에는 남을 욕하는 것을 직업같이 알고 있는 자식이 많단 말야. (만두장수 들어온다) (衁) 저잡년이 오는군.

[2끄바쉬냐] 아이구, 참, 나리 오셨소--- . 이것 봐요, 브부노프, 저 양반이 지금도 또 장터에서 나를 보구 자꾸 마누라가 되어 달라구 조릅디다.

[3브부노프] 되면 좋지 않어? 이 사람은 돈도 있겠다, 또 사람도 잘났겠다.

[4메드베제프] 나 말인가? 허--- .

[5끄바쉬냐] 뭐야, 쉰 대가리에--- . 인제는 다 싫증이 났다--- . 그런 지랄은 일생에 한번 치르면 고만이지--- 여자에겐 결혼이란 마치 겨울에 얼음 구녁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야--- . 한번 그렇게 혼인하면 일생을 두고 잊혀지지 않는 거야.

[6메드베제프] 그렇지만 사내라고 다― 같을라구!

[7끄바쉬냐] 허지만, 내가 변하지 않는 이상 별 수 없지. 그 원수 놈이 뒈졌을 땐 난 어떻게나 기뻤던지, 온종일 집안에 꼭 붙어 있었지. 혼자 집에 앉아 있으니까 어찌 기쁘던지 꿈만 같았어.

[8메드베제프] 남편에게 얻어 맞았다면 왜 가만 있었어, 파출소에라도 끌고 오지.

[9끄바쉬냐] 파출소? 나는 팔년 동안이나 하나님에게 호소했지만--- 하나님도 역시 별 수가 없었는 걸 뭐.

[10메드베제프] 허지만, 오늘날 자기 아내를 때리는 것은 금지가 되어 있어--- . 법률과 질서가 정돈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사람에게 폭행은 못하는 세상이야. 법률이나 질서를 위하여서는 별 문제이지만.

[페이지] 030

[1루까] (안나를 데리고 등장) 자― 다 됐다--- . 참 가엽군--- 왜 이런 몸으로 그런 델 나가 있었단 말이야--- . 당신 자리는 어디요?

[2안나] (침대를 가리키며) 고마워요, 영감님.

[3끄바쉬냐] 봐, 저기 남편가진 사람이 왔어, 똑똑히 보라니깐.

[4루까] 이렇게 쇠약해진 병자가 혼자서 문간턱을 엉금엉금 기면서 헤매고 있지 않겠소. 붙어 서서--- 쉴 새 없이 끙끙거리고 있었단 말요--- . 왜 혼자 내보냈어.

[5끄바쉬냐] 깜박 잊었어요,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영감님--- . 아마, 간호하던 시종이 잠깐 산보라도 나간 게죠--- .

[6루까] 당신은 그렇게 웃고 있지만, 도대체 한 사람의 인간을 잃게 내버려 두어도 좋단 말이요? 사람이란--- 설사 그것이 하챦은 놈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나 (衁) 그만한 값어치는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

[7메드베제프] 지키는 것이 좋아. 갑자기 죽기나 해봐라, 귀찮지 않은가. 잘 돌보아야 해.

[8루까] 암, 그렇구 말구요, 서장님.

[9메드베제프] 음, 그래, 그렇게 불러도 상관없지--- 나는 아직 서장까진 안되지만.

[10루까] 허― 정말입니까? 그렇지만 겉모양만은 아주 훌륭하신 걸요.

(10―衁) 현관쪽에서 떠드는 소리, 마룻바닥을 구르는 소리, 괴로운 부르짖음이 들려온다.

[11메드베제프] 뭐야, 싸움인가?

[12브부노프] 아마, 그런가 본데.

[13끄바쉬냐] 가 봐요.

[14메드베제프] 나도 가봐야겠는걸--- .체, 이것도 직업이니까. 대체 싸움은 왜 말리는 거야, 그대로 내버려두면 실컷 싸우다가 고만

[페이지] 031

둘걸--- . 어떤 놈이든지 깨지든 죽든 해서 저절로 끝이 날 것을--- . 그래야 싸움도 차차 적어질 것 아니야.

[1브부노프]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걸 한 번 상관에게 제의를 해보지 그래.

[2꼬스뜨일로프] (문을 차며 소리친다) 아브람! 얼른 나와--- . 바실리사가 나따샤를 죽인다! 빨리 나와, 빨리!

(2-衁) 끄바쉬냐, 미드베제프, 브부노프, 현관으로 뛰어나간다. 루까, 머리를 흔들면서 그들의 뒷 모습을 보고 있다.

[3안나] 오호, 하나님―. 불쌍한 나따샤.

[4루까] 누가 싸움을 하는 거야?

[5안나] 이 집 여자들예요, 그 형제들예요.

[6루까] (안나 곁으로 다가가며) 무슨 까닭인가?

[7안나] 둘이 다― 너무 먹을 것이 푼푼한 탓이지--- . 배가 불러서 그래요.

[8루까] 그래, 당신은 누구요.

[9안나] 안나랍니다--- 난 이렇게 당신을 보고 있으니까, 우리 아버지를 만난 것 같아요--- . 정말 당신은 우리 아버지와 똑같아요--- . 당신도 우리 아버지처럼 인정이 퍽 있어 봬요--- . 상냥하시고--- .

[10루까] 산전수전 겪다 보니 친절해진 거지. (쉬인 목소리로 웃는다)

[페이지] 032

같은 무대, 초저녁. 난로 옆 침대 위에서는 싸친, 남작, 애꾸눈 죠프, 타타르인, 네 사람이 트럼프를 하고 있다. 끌레시치와 배우는 그것을 구경하고 있다. 브부노프는 자기 침대 위에서 메드베제프와 장기를 두고 있다. 루까는 안의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다. 방안엔 램프 두 개, 하나는 트럼프를 하는 사람들 옆 벽에 걸려 있고, 또 하나는 브부노프 침대 위에 걸려 있다.

[1타타르인] 한 판 더 해, 그리고 그만두자--- .

[2브부노프] 죠프! 한마디 불러! (노래 부른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3죠프] (따라 부른다) 감옥 속은 어둡네---

[4타타르인] (싸친에게) 트럼프 잘 섞어! 잘 섞어! 너 엉터리란걸 우리들 다 알아--- .

[5브부노프] 아귀놈의 저 눈깔이

[6죠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철창으로 엿보네---

[7안나] 학대받고 모지게 매맞고--- 병으로 고생하고--- 나는 그것을 모― 두 참어 왔어요--- . 그게 모― 두 내 팔자였어요--- . 여태껏!

[8루까] 아, 안나! 너무 상심하지 않는 게 좋아!

[9메드베제프] 이건 어디다 두는 거야? 정신차려--- .

[10브부노프] 아참, 그놈이 그렇군 그래--- .

[11타타르인] (싸친에게 주먹을 내밀고) 어째서 감춰? 나 봤다, 개 자식!

[12죠프] 고만둬 하싼! 아무래도 우린 속고 말걸--- . 브부노프, 노래 시작해!

[페이지] 033

[1안나] 난 한번도 배불리 실컷 먹어 본 일이 없어요--- . 빵 한 조각을 먹는데도 늘 남의 눈치만 보고--- 난 일생동안 가슴을 조이고 벌벌 떨고만 있었어요--- . 혹시나 남보다 더 먹으면 어쩌나 하구--- 밤낮 이런 것만 걱정하였어요. 한평생 누덕옷만 입어 왔어--- . 비참한 일생을--- 전생에 무슨 죄를 타고 났기---

[2루까] 원 저런, 가엾게! 피곤하지? 인제 곧 편해질 거야!

[3배우] (죠프에게) 잭을 내 놔--- 잭, 망할 자식!

[4남작] 여기 킹 나가신다.

[5메드베제프] 퀸이다.

[6브부노프] 나도 있어--- 자― 뎀벼!

[7안나] 아, 인제 죽나부다.

[8끌레시치] 그래 그래, 그거야. 공작(孔雀) 얼른 던져 버려! 얼른 던져 버리래니깐!

[9배우] 가만 둬, 제 멋대루 하게---

[10남작] 아가리 닥쳐, 내쫓기 전에!

[11끌레시치] 제― 기 밤낮 이렇게 지기만 해야 옳은가---

[12싸친] 으레 그런 거야--- .

[13타타르인] 에― 라, 또 한번 하자,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 있다--- . 각오됐다! (끌레시치는 머리를 흔들며 브부노프쪽으로 간다)

[14안나] 난 늘 생각해요―. 주님이시여! 설마 저생(生) 에서는 이렇게 괴롭진 않겠죠? 설마 저생에서까지는 이렇게!

[15루까] 그럴 리가 있자! 근심 말고 누워 있어! 염려 없어! 저생에 가면 편히 쉴 수 있어! 조금만 더 참아. 모두들 참고 지내는 거야--- . 누구나 다― 제각기 참고 살아가는 것이야. (일어서서 재빨리 부엌으로 간다)

[16브부노프] (노래 부른다) 멋대로 넘겨다 보렴---

[페이지] 034

[1죠프] 어찌 넘나 저 담을

(두 사람 합창) 자유가 그리우나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쇠사슬을 못 끊어

[2타타르인] (소리 지른다) 아! 트럼프 소맷속에 집어 넣었다.

[3남작] (낭패한 태도로) 흥,--- 그럼 네 콧구멍에라도 집어 넣으란 말이냐?

[4배우] (증명하듯이) 공작! 그건 오해야--- 아무도 그런 짓을--- .

[5타타르인] 봤어 봤어! 나 봤어! 협잡꾼! 나 인제 안헌다!

[6싸친] (트럼프 짝을 모으면서) 미친 자식, 고만둘 테면 고만둬--- . 알면서 템비긴 왜 템볐어? 협잡꾼인 줄 네놈두 잘 알지 않어. 그런 걸 왜 했어?

[7남작] 자식, 20까베이까 은전 두 개 뺏기구 30루블이나 잃은 것같이 야단 법석이야. 그리구두 공작이냐?

[8타타르인] (화가 나서) 속이는 건 안 돼.

[9싸친] 왜?

[10타타르인] 왜가 뭐야?

[11싸친] 그러니깐--- 왜 그러냔 말야.

[12타타르인] 당신 몰라?

[13싸친] 난 모르는 걸, 넌? (타타르인인 화가 나서 침을 뱉는다. 일동 조소한다)

[14죠프] (부드럽게) 이봐 하싼, 너두 굉장한 놈이다. 생각해 봐. 만일 이 친구들이 정직한 생활을 시작한다면 그야말로 사흘도 못 가서 굶어 죽을 게 아냐.

[15타타르인] 내가 알게 뭐야. 사람은 정직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야!

[페이지] 035

[1죠프] 아유 자식, 또 그 소리냐. 그런 소린 집어치고 차나 마시러 가--- 여! 브부노프, 불러, 아― 이 쇠사슬 나의 쇠사슬.

[2브부노프] 아귀놈의 저 눈깔이

아― 아― 아― 아

노려보고 섰구나

[3죠프] 하싼, 가세. (퇴장하면서 노래 부른다) 아― 어찌 할 수 없는 농속에 갖힌 새요.

(3―衁) 타타르인 남작에게 주먹으로 얼르고 같이 퇴장한다.

[4싸친] (남을 향해 웃으면서) 자식, 또 보기 좋게 틀렸구나. 암만 교육을 받어도 트럼프만은 맘대로 안되나 보지--- .

[5남작] (두 손을 벌리면서) 빌러먹을! 어쩌다가 그렇게.

[6배우] 천재적 소질이 없는 거야. 그게 없으면 자신이 없어. 그리구 백날 가두 허탕이야.

[7메드베제프] 내 수에는 퀸이 한 개, 네 수에는 두 개라--- 흐― 음---

[8브부노프] 한 개라두 상관없지. 잘만 두면야. 자, 어서 둬.

[9끌레시치] 꼼짝 못 하고 졌고나, 아브람 이바노비치.

[9메드베제프] 참견 말어, 알었니? 알었거든 아가리 닥쳐!

[10싸친] 50까베이까 땄다.

[12배우] 3까베이까 내 꺼다--- 고만둬, 3까베이까 가지고 뭘 해!

[13루까] (부엌으로부터 들어오면서) 또 타타르인 골려 먹었군. 그리고 한잔 걸치러 들 나가는 셈인가?

[14남작] 따라와.

[15싸친] 늙은이 취한 꼴이 보고 싶은 걸.

[페이지] 036

[1루까] 그야 안 취한 것보다 못한 건 뻔하지--- .

[2배우] 같이 가, 영감--- 영감한테 아리아를 들려줄 테니--- .

[3루까] 아리아란?

[4배우] 시야, 몰라?

[5루까] 시? 시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어--- .

[6배우] 우스운 것이야. 그러나 가끔은 슬프기도 하지--- .

[7싸친] 자, 가 보지, 아리아 가수. (남작과 같이 나간다)

[8배우] 먼저 가, 곧 따라갈 테니! 이것 봐 영감, 이를테면 이런 시가 있단 말이야. 으--- 음, 첫 머리가 뭐더라--- 잊어 버렸는 걸. (이마를 비빈다)

[9브부노프] 이크 됐다! 네 퀸은 죽었다--- 자― 뎀벼!

[10메드베제프] 우라질 것. 잘못됐군!

[11배우] 내 오르가니즘이 알콜 중독에 걸리기 전엔 난 아주 기억이 좋았는데 지금은--- 영감, 이렇게 --- 아주 틀려먹었어. 난 아주 신셀 망쳐 버렸어. 내가 시를 낭독허면 언제든지 대성공이었지--- . 극장이 떠나갈 듯한 박수갈채였어--- . 영감 따위는 갈채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말하자면 보드까같은 것이야--- . (衁) 우선 이렇게 걸어나가서 척 선단 말야--- . (자세를 갖추고) (遁) 그리고--- 그 다음에--- (갑자기 침묵) 죄다 잊어버렸어--- . 한 마디도 --- 생각이 안나! 내가 즐기던 노래였었는데--- 인젠 다 틀렸지, 영감?(공중을 헛잡는다)

[12루까] 제일 즐기던 것마저 잊어버렸다면 인제 마지막이군. 사람의 영혼이란 즐기는 것 속에 있으니깐.

[13배우] 난 그 영혼마저 마시어 버렸어. 영감, 난 인제 고만이야--- . 그런데 왜 나는 요꼴이 되었을까? (衁) 내게는 신념이 없었던 때문이야--- . 난 인제 막다른 골목이다--- .

[14루까] 저런, 뭘 그러구 있어? 그보다 고치면 될 것 아니야? 지금은 알콜 중독자도 고칠 수가 있대니까! 그것도 공짜로 고쳐준다더군,

[페이지] 037

친구. 알콜 중독자를 위해 그런 병원이 생겼단 말이야. 공짜루 고쳐주기 위한 병원 말이야--- . 말하자면 술주정뱅이도 역시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셈일까--- . 그래서 사람들이 치료하러 찾아가면 환영한다더군! 그러니 친구도 빨리 가보는게 좋아! 빨리 가도록 해--- .

[1배우] (우울히) 어디 말이야. 대체 그건 어디 있어?

[2루까] 응, 그건 말이야--- . 어떤 거린데--- 뭐라더라! 하여간 이상한 이름이야--- . 그래 그래, 그건 곧 가르쳐 줄 테니--- 그건 염려말구 친구는 저--- 우선 그 준비를 하란 말이야. 우선 술을 삼가야 하거든--- . 꾹 참고 자기를 눌러. 그리구 치료를 하구--- 또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좋지.자, 결심해. 꾸물거릴 것 없어.

[3배우] (미소를 지으며) 새로! 맨처음부터--- 참 좋은 걸--- 음--- 새로운 생활! (웃으며) 음--- 그래! 나두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구말구!

[4루까] 되구말구. 사람을 뭐든지 할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5배우] (갑자기 꿈을 깬 듯이, (衁) 루까의 얼굴에 키스한다) 영감두 보통이 아닌걸! 좋아, 이따 보세. (휘파람을 분다) (遁) 영감, 아듀--- .

[6안나] 영감님!

[7루까] 왜 그래, 안나?

[8안나] 저 말동무 좀 돼줘요.

[9루까] (안나 옆에 가까이 와서) 그래 그래, 자, 이야기 하지--- .

(9-衁) 끌레시치는 주위를 돌아보고 처에게 가까이 와서 무슨 이야긴가 하고 싶은 태도이다.

[페이지] 038

[1루까] 뭔가 친구?

[2끌레시치] (낮은 목소리로) 아무것도 아니야. (비틀비틀 현관으로 통하는 입구에 가서 잠깐 섰다가 이어 퇴장)

[3루까] (끌레시치의 뒤를 보고 있다가) 주인도 아주 괴로운 모양이군.

[4안나] 이젠 저이의 일이라면 생각도 하기 싫어요.

[5루까] 남편은 당신을 몹시 때렸소?

[6안나] 때리다 뿐이겠어요--- .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그이 때문이예요--- .

[7브부노프] 내 계집에게 샛서방이 있었는데 말야. 그놈 자식이 장기를 잘 두었지. 우라질 자식--- .

[8메드베제프] 응, 그래?

[9안나] 영감님, 얘기나 좀 해줘요. 괴로워서 못 견디겠어요--- .

[10루까] 뭘, 고까짓 괴로움쯤 예사일이지! 죽기 전에는 그러기 마련이오--- . 죽으면 편해지지--- . 인제 아무것도 근심할 것 없어--- 염려말어.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누워 있어--- . 죽음은 우리들에게 부드러운 것이야. 죽으면--- 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이야! 뭐니 뭐니해도 이 세상에는 어딜 가 봐도 사람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은 없으니깐.

페페르 등장, 부엌 출입문 옆 침대에 걸터앉아 침묵부동.

[11안나] 그렇지만--- 만일 저승에서도--- 역시 괴로움이 있으면 어떡해요.

[12루까] 아무것두 없어! 아무것도! 안나, 그걸 믿어. 안식 이외엔 아무것도 없어! 다― 들 당신을 하나님 앞에 데리고 가서 이렇게 말할 거야. '주여! 보십시요, 당신의 종 안나가 왔습니다'하구

[페이지] 039

[1메드베제프] (강한 어조로) 여, 영감. 저승일을 어떻게 알어, 응?

페페르, 메드베제프가 하는 말에 놀라서 얼굴을 들고 귀를 기울인다.

[2루까] 그야 알구말구요, 서장나리.

[3메드베제프] 응--- 그래--- 내가 알 일이 아니지--- . 그렇지만--- 난 아직 서장은 아냐.

[4브부노프] 자, 두개 먹는다.

[5메드베제프] 응--- 이런 제기--- 이 자식--- .

[6루까] 그러면 하나님이 안나를 보시고 인자하게 '네가 안나냐. 나는 너를 안다. 이 여자를 천당으로 데려다 주어라. 그리고 편히 쉬게 하여라--- . 나는 다― 안다--- . 이 여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가진 고생을 다― 겪고--- 지금 몹시 피곤해 있으니 편안히 쉬게 하여 주어라' 이렇게 말씀하신단 말이야.

[7안나] (헐떡이며) 영감님--- 정말 그렇게 될까요?

[8루까] 암, 그렇게 되구말구. 아― 무 괴로움도 없어--- . 이것 봐--- 믿으란 말이야! 그리고 기쁨으로 즐겁게 눈을 감으란 말야. 조금도 걱정할 것 없어--- . 죽음이란 어린애를 잠재우는 어머니와 같은 것이야.

[9안나] 네--- 그렇지만--- 이러다가도 혹시나 내가 다시 나아서 일어날지 누가 아오?

[10루까] (웃으면서) 뭘 할려고? 고생이 모자라서?

[11안나] 그래두--- 조금만 더--- 전 더 살고 싶어요--- . 조그만 더! 만일 저생에 고생이 없다면 --- 조금 더--- 이 세상에서 고생을 해도--- 괜찮어요!

[12루까] 그야 저승에는 아무것도 없지! --- 아주 거뜬한 곳이야.

[13페페르] (일어서면서) 사실이야--- . 허지만 자칫하면 거짓말일지도 모르지!

[페이지] 040

[1안나] (몸을 옴짝하면서) 아! 하나님--- .

[2루까] 아니 젊은이---

[3메드베제프] 누구야, 거기서 짖는 놈이?

[4페페르] (메드베제프에게 가까이 가서) 나다! 그래 어쩌란 말야.

[5메드베제프] 쓸데없이 짖지 말란 말야! 사람은 온순해야 하는 법이야.

[6페페르] 개소리 말아! 그래도 삼촌이라고---

[7루까] (페페르에게 낮은 목소리로) 이봐, 이봐, 너무 큰 소리 지르지 말어. 여기서--- 여자 한 사람이 조용히 숨을 거두는 중이야--- .벌써 입술이 흙빛이 됐어. 좀 조용히 해주게.

[8페페르] 그래, 영감말이니 그만두지--- . 영감은 제법 그럴 듯해, 거짓말두 괜찮게 하고, 이야기도 그만하면 재미있어--- . 얼마든지 거짓말을 해. 상관있어? 이놈의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없으니까.

[9브부노프] 정말--- 죽어가?

[10루까] 누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아슈--- .

[11브부노프] 그럼 그 기침 소리도 인제 고만이군--- . 기침소리 정떨어지더니--- 자, 또 먹는다.

[12메드베제프] 아, 빌어먹을--- .

[13페페르] 야, 아브람.

[14메드베제프] 네놈이 뭔데 나를 아브람이라고 함부로 부르는 거야

[15페페르] 그럼, 아브람 영감--- 나따샤 어때, 누워 있어?

[16메드베제프] 그건 알어 뭘해.

[17페페르]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 그래 바실리사가 정말 나따샤를 몹시 때렸어?

[18메드베제프] 그것도 너는 알 일이 아냐! 그건 집안일이다--- . 대관절 넌 뭐야?

[페이지] 041

[1페페르] 내가 뭐든지 간에--- 맘만 먹으면 너희들이 두 번 다시 나따샤 얼굴을 보지도 못하게 할수 있어.

[2메드베제프] 뭐 어째! 너 말 다 했니? 누굴 어쩌겠다구--- 내 조카를 어떻게 한다구? 이 도둑놈의 자식아.

[3페페르] 도둑놈이면 어때. 네 자식들한테 붙잡힐 그런 얼간이는 아니다.

[4메드베제프] 두고봐--- 내가 붙잡을 테니--- . 내가--- 이제---

[5페페르] 흥, 날 붙들어? 그 대신 네놈들의 소굴은 파멸이야--- . 이 자식아, 내가 검사앞에 가서 잠자코 있을 줄 아니? 이런 어리석은 자식--- 누가 너에게 도둑질을 시키고 장소를 일러 주었냐고 물으면 난 말할 테다. 꼬스뜨일로프 부부라구--- 그러구 또--- . '도둑질 한 물건은 누가 넘겨 받었니?' '네, 꼬스뜨일로프 부부입니다.'

[6메드베제프] (열중해서) 거짓말 말어! 누가 네깐 놈 말을 곧이 들을 줄 아나!

[7페페르] 천만에, 그렇지만 믿을 걸. 어쨌든--- 사실이니깐! 그리고 너두 같이 걸고 넘어갈 테다. 히히--- 너희들을 죄― 다 파멸시켜 줄 테니 그런 줄 알어.

[8베드베제프] (불안해져서) 거짓말 말어--- 그짓말! 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단 말이냐? 이 미친개야--- .

[9페페르] 그래, 잘해 준 건 뭐냐?

[10루까] 그럴 듯한 걸.

[11메드베제프] (루까에게) 이 자식아. 넌 뭘 아는 척하는 거야? 왠 참견이야. 남의 집안일에.

[12브부노프] (루까에게) 잠자코 있어, 우리가 알 일이 아냐.

[13루까] (부두럽게) 내가 뭐라고 했어? 그저 난 남에게 좋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은 나쁜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을 뿐이야.

[14메드베제프] (루까의 말을 이해 못하고) 사실 우리들은 모두--- 서로를 잘아는 사이야. 허지만 넌--- 대체 누구냐? (노해서 흥분된 태도로 급히 퇴장)

[페이지] 042

[1루까] 노하셨군, 대장이--- 허--- 가만 보니까 이집도 꽤 복잡한 모양이군.

[2페페르] 자식, 바실리사에게 일러 바치러 가는군--- .

[3브부노프] 이봐 페페르, 너무 깔보지 말어--- . 넌 툭하면 성미를 부린단 말야--- . 그따위 성미는 산에 버섯이나 따러 가서나 실컷 부려--- . 여기서 부렸자 별 수 없어--- . 그러다가 괜히 산 채로 목매지 말고.

[4페페르] 염려말어! 이래봬도 야로스타프 태생이야. 그렇게 호락호락 걸려들 줄 아나--- . 닥치는 대로 덤비라고 해.

[5루까] 그렇지만 친구--- 빨리 이 집을 떠나는 게 좋을 것 같군.

[6페페르] 어디로 말이야! 말해 봐--- .

[7루까] 시베리아로 가지!

[8페페르] 해--- 맙쇼. 시베리아라면 관비(官費) 로 보내줄 때까지 기다려야겠는 걸.

[9루까] 아니 내 말대로 어서 가는 게 좋아--- . 가기만 하면 살 길이 있을거요--- . 거기선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니까!

[10페페르] 내 갈길은 뻔해--- . 아버지란 작자가 일평생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내게도 그렇게 주문돼 있어--- . 내가 그 운명을 물려받았지--- . 어릴 때부터 나는 도둑놈이니, 도둑놈의 자식이니 하는 그런 소리만 듣고 자라났어.

[11루까] 허지만 좋은 곳이야--- . 시베리아는--- 황금의 나라야. 힘있고 머리 좋은 사람에게는 마치 온실 속의 오이처럼 얼마든지 무럭무럭 자랄 수 잇단 말야.

[12페페르] 여봐 영감, 뭐 먹겠다구 그렇게 거짓말만 탕탕 하구 있어?

[13루까] 뭣이라구?

[페이지] 043

[1페페르] 왜 딴청이야--- . 왜 거짓말만 하느냐 말이야.

[2루까] 내가 대체 무슨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3페페르] 전부 다야! 그렇지 뭐야--- . 영감같이--- 여기도 좋다, 저기도 좋다--- 그게 거짓말이지 뭐야--- . 뭣 때문에 그따위 헛소릴 하는 거야!

[4루까] 아니 아니, 그러지 말고 내말을 믿어. 그리고--- . 가 보는 게 좋지 않겠나, 알게 될 테니. 반드시 내가 고맙다고 생각될 때가 올거야--- . 아니--- 자넨 글쎄 왜 이런 곳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단 말이야? 그리고 자넨 뭐가 좋다구 진실이라는 것을 그렇게 중대하게 여긴단 말인가--- . 그러지 말구 잘 생각헤 봐--- . 진실이란 자네에게 함정에 빠지게 하는 거나 다를 것 없지 않나--- .

[5페페르] 함정이라두 좋아--- 내겐 뭐든지 다― 마찬가지야.

[6루까] 자네도 참 이상한 위인이로군--- . 그렇게 자포자기할 건 무어란 말인가.

[7브부노프] (衁) 뭘 둘이서 수근거리고 있어? 난 도무지 모르겠군--- (遁) 도대체 네게 무슨 진실이 필요하다는 말이냐, 응? 페페르--- 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 네 자신에 대한 진실이라면 넌 뻔히 알고 있을 테고--- 세상 놈팽이들도 다― 알고 있단 말이야.

[8페페르] 시끄러! 여하간 이 영감 얘기를 들어 봐--- . 영감, 대체 하느님이란 정말 있단 말인가?

[9루까] (웃으면서 대답을 안한다)

[10브부노프] 사람이란 누구다 다― 그렇지--- . 나뭇잎이 냇물을 따라 흘러 가는 듯한 생활을 하고 있단 말야--- . 녀석들은 집을 지으려고 애쓰지만--- 나뭇잎은 정처없이 흘러 떠나가 흘러 떠나가 버린단 말이야--- .

[11루까] (나직이) 그야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는 것이지. 뭐든지 믿기만 하면 반드시 있는 법이야. (페페르, 잠자코 놀란 듯이 루까를 쳐다본다)

[페이지] 044

[1브부노프] 어디, 나도 차나 한 잔 마시러 나가 볼까--- . 여봐, 안 갈테야?

[2루까] (페페르에게) 왜 그렇게 날 뚫어지게 보고 있어?

[3페페르] 아무것두 아니야--- . 잠깐--- 그렇다면 결국---

[4브부노프] 그럼 나 혼자 갈까. (출입문으로 나가다가 들어오는 바실리사를 만난다)

[5페페르] 그렇다면--- 영감은---

[6바실리사] (브부노프에게) 나따샤는--- 여기 있어?

[7브부노프] 없어 (퇴장)

[8페페르] 빌어먹을, 또 왔구나--- .

[9바실리사] (안나 옆으로 가까이 가서) 아직 뒈지지 않았어?

[10루까] 가만 내버려 둬!

[11바실리사] 영감, 여기서 왜 우물쭈물 하구 있어?

[12루까] 내가 있어 일이 안된다면 언제든지 물러가지--- .

[13바실리사] (페페르 방문 앞에 가며) 페페르, 난 당신에게 할 말이 좀 있는데---

(13― 衁) 루까 출입문으로 가서 문을 열고 또다시 소리를 내며 꼭 닫고는 살짝 자기는 침대 위로 올라가서 다시 페치카 위로 올라간다. 바실리사는 페페르의 방으로 들어간다.

[14바실리사] (페페르 방에서) 페페르, 들어와요.

[15페페르] 일 없어--- 안 갈 테야.

[16바실리사] (다시 나오며) 어머나, 왜 그래--- 화가 나셨구먼.

[17페페르] 모―두가 다 귀찮어. 쓸데없는 수작은 인제는 듣기두 싫어.

[18바실리사] 그럼 나두 싫어졌단 말예요?

[페이지] 045

[1페페르] 아무렴. (바실리사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안나 침대 옆에 가서 커튼 안을 살짝 들여다본 뒤에 다시 페페르에게로 온다) 뭐야? 할 말이--- .

[2바실리사] 새삼그럽게 무슨 말요--- . 아무리 당신이래두 억지로 사랑하라고는 할 수 없구--- 나 역시--- ' 제발 사랑해 줍시오.' 하고 매여 달릴 수는 없지 않어요--- . 하여간 진심을 말해 주어서 고마워요.

[3페페르] 진심이라니?

[4바실리사] 내게 싫증이 났다는 거 말예요--- 그렇지 않으면--- 그건 거짓말이니까? (페페르, 아무 말없이 바실리사를 노려 본다. 페페르에게 바실리사 가까이 가서) 왜 그렇게 봐요? 내 얼굴을 잊으셨나?

[5페페르] (한숨을 내쉬며) 바실리사, 과연 미인이군--- (衁) (바실리사 팔을 사내의 목에다 감는다. 사내는 어깨를 흔들어 그 손을 뿌리친다) 허지만 난 오늘까지도 한번도 널 그리워한 적은 없었다--- . 관계는 해 왔지만--- 너를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 .

[6바실리사] (가는 목소리로) 흐흥--- 그래?

[7페페르] 그러니깐 피차에 이제는 할 말 없어. 아무것두 없단 말이야--- . 저리 비켜!

[8바실리사] 어데 또 딴 계집년을 꼬신 모양이군?

[9페페르] 네가 상관할 게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치더라도 너보고 중매서라곤 안할 테니--- .

[10바실리사] (의미 있듯이) 매우 섭섭한 걸--- .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줄런 지도 모르지 않어?

[11페페르] (이상을 말을 한다는 듯이) 대체 누구 말이야?

[12바실리사] 이런, 시치미를 딱 떼네--- 페페르, 난 노골적인 사람이야--- . (나직이) 터놓구 얘기하겠지만, 당신은 나를 못살게 만들었어--- . 아무 까닭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페이지] 046

일에--- 나를 때리고 차고--- 그러면서두 입만은 사랑한다고 주절거리더니--- 인제 와선--- 갑자기---

[1페페르] 뭐가 갑자기란 말이야--- . 난 벌써부터 그랬어--- . 우선 너는 정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 계집애에게는 정이 없으면 안돼. 우리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이니까--- 우리들에게는 따뜻한 정이 필요해--- . 그런데 너는 나에게 무슨 따뜻한 정을 보여 주었어?

[2바실리사] 지난 일을 말하면 뭘 해. 나도 잘 알아. 이 세상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야--- . 나 보기가 역겹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단념할 수 밖에.

[3페페르] 그럼 헤어지잔 말이지--- 아무 지저분한 말씀없이--- 잘 됐구나--- .

[4바실리사] 잠깐만! 하여간 저--- (衁) 그렇게 조급히 굴지 않아도 좋지 않아요? 난 당신과 이런 사이가 된 후로는 당신이 언제든 나를 이런 밑바닥에서 구해 주리라고--- 저 남편이나 아저씨나--- 또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자유롭게 해줄 줄 알고 그것만을 고대하고 있었어--- . 어쩌면--- 응, 페페르, 난 당신에게 반한 게 아니라 당신 때문에 생긴 나의 이런 막연한 꿈에 반했을런지도 몰라--- . 여봐, 알겠소? (遁) 나는 당신이 나를 구해주기만을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었어.

[5페페르] 네가 못이고 내가 장도리가 아닌 다음에야--- . 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 넌 약은 계집애니까--- 그렇지, 넌 약지. 아니--- 넌 어지간히 짓궂은 계집이니까.

[6바실리사] (사내에게 바짝 달라붙어) 페페르, 그럼, 이제부터는 서로 돕고 살아나가 봐.

[7페페르] 어떡하란 말이야.

[8바실리사] (낮은 목소리로 힘있게) 내 동생--- 당신 좋아하지? (衁) 다 알어.

[페이지] 047

[1페페르] 그래? 그래서 넌 그 애를 몹시 때렸구나. 이년아, 조심해! 인제부턴 그 애 머리칼 하나 다쳐도 빽다구 하나 못 추릴 줄 알어--- .

[2바실리사] 왜 이래, 그렇게 화낼 게 뭐야! 조용히 이야기 해도 다 알거 아냐--- (衁) 어때, 그 애하고 살어두 좋아! 그뿐 아니라 난 당신에게 부조도 해줄 테야--- 300루블쯤, 여유가 생기면 더 줄 수도 있고--- .

[3페페르] (펄쩍뛰며) 요― 잠깐, 그건 뭐때문이야. 무슨 이유야?

[4바실리사] 그 대신 나를 남편 손아귀에서 빼내 줘. 이 쇠줄을 끊어 줘요--- 자유롭게 해줘요!

[5페페르] (조용히) 그랬구나--- 아주 묘한--- 기막힌 수단인 걸. (衁) 남편은 관 속에 처넣고 정부는 감옥에 처넣고, 그리고 너만---

[6바실리사] (衁) 왜 징역을 살아? 뭐 당신이 손을 대지 않더래도 딴 친구를 시키면 되지 않어. 설사 당신이 처치한다 하더래두 누가 안단 말야--- . 잘 생각해 봐. 나따샤는 네것이 되고 돈도 수중에 들어오면 어디로든지 맘대로 갈 수 있지 않어? 그렇게 된다면 나도 자유로운 몸이 되고--- 동생도 내 곁을 떠나게 되니까 그 애에게도 좋을거구--- . (遁) 난 걔를 보면 심사가 뒤집혀서 못 견디겠어--- . 그래서 걔를 차구 때려서 못살게 괴롭혔어--- . 때리고 두들기지만 나중엔 그만 그 애가 측은해서--- 때리던 내가 울어버려--- . 그러면서도 난--- 역시 때리거든--- 앞으로두 계속 때릴거야--- .

[7페페르] 에이! 짐승 같은 년. 악독한 걸 자랑하는 셈이냐--- .

[8바실리사] 자랑하는 게 아냐--- . 내 진심을 말할 뿐이야--- . 이봐, 페페르. 생각해봐요--- . 당신만해도 우리 남편 때문에, 그 도둑놈 때문에 두 번이나 콩밥을 먹지 않았어? 정말 그놈은 찰거머리 같이 내게 달라붙어서 사년동안이나 내 피를 빨아먹고

[페이지] 048

있어--- . 그까짓 자식이 내게 무슨 남편이야--- . 더구나 나따샤를 못살게 괴롭히고--- 지긋지긋하게 학대하고 있어--- . 정말 그놈은 누구에게나 해충이야--- .

[1페페르] 너두 꽤 그럴 듯하게 말을 하는구나.

[2바실리사] 내 얘긴 모― 두 사실이야--- . 이애두 내 애정을 모른다면 사람이 아냐--- . (꼬스뜨일로프가 발소리를 죽이며 살짝 들어온다)

[3페페르] (바실리사에게) 귀찮어, 저리 가!

[4바실리사] 그러지 말구 좀 생각해 봐요. (衁) (남편이 온 줄 알고 ) 여보! 뭘 하러 왔어--- . 또 내 귀를 따라왔구면, (遁) 흥!

페페르 뛰어 일어서서 무서운 얼굴로 주인을 본다.

[5꼬스뜨일로프] 아, (衁) 나다, 나야. 그런데 너희들은 여기--- 단 둘이만 있었구나? 옳지, 단 둘이 속삭이고 있었단 말이지? (갑자기 발을 구르면서 분한 듯이) 바실리사, 예이 갈보! 더러운 년! 개새끼 같은 년! 이 간악한 년! (대답하는 것은 반항 없는 침묵뿐. 꼬스뜨일로프 자기 소리에 떨면서) (遁) 아, 하느님, 용서해 주십쇼--- . 바실리사 너는 또 내게 죄를 짓게 하였구나--- . 난 너를 이곳저곳으로 찾아 돌아다녔어. (고함치며) 벌써 잘 때가 됐는데 성등(聖燈) 의 기름도 넣지 않고 이런 곳에 와 있단 말이야--- . (鑁) 예이, 음탕한 년! 이 돼지 같은 년아. (아내에게 떨리는 주먹을 들어 겨눈다. 바실리사는 페페르의 얼굴을 돌아다보면서 출입구로 나간다)

[6페페르] (음산한 목소리로) 이 자식아, 나가라, 썩 나가!

[7꼬스뜨일로프] 안 나갈 테야--- . 난 이 집 주인이야. 네놈이나 나가 없어져--- 도둑놈--- .

[8페페르] (가만히) 어서 나가!

[페이지] 049

[1꼬스뜨일로프] 잔말 말어, 난 안 나간다--- 내가 네놈을---

(1―衁) 페페르, 주인의 목을 잡고 흔든다. 그때에 페치가 위에서 쿵탕쿵탕 소리가 야단이고 짐승이 우는 듯한 하품소리 들린다. 페페르 주인을 놓아주자 (遁) 주인은 떠들어대면서 현관으로 달음질치며 나간다.

[2페페르] (중앙 침대 위에 뛰어 오르면서) 누구냐--- 누구야, 거기 있는게,

[3루까] (머리를 내밀면서) 왜 그래.

[4페페르] 영감이야?

[5루까] (침착하게) 나다, 나야. 아--- 주(主) 예수 그리스도시여!

[6페페르] (출입구의 문들 닫고 문빗장을 찾다가 못 찾는다) 빌어먹을--- 에이, 망할 영감쟁이 내려와.

[7루까] 지금 곧 내려갈 테야.

[8페페르] (격렬한 어조로) 말할 영감, 왜 그런 델 올라갔어?

[9루까] 어디 갈 데가 있어야지.

[10페페르] 왜, 문밖에 나가 있으면 어때서?

[11루까] 문밖은 나 같은 늙은 놈이 추워서 갈 수가 있나.

[12페페르] 영감, 죄― 다 들었지?

[13루까] 그럼, 들었지. 귀머거리가 아닌 담에야 그걸 못들어--- . 아무튼 자넨 참 운 좋은 사람일세, 정말 운 좋은 사람이야.

[14페페르] (이상한 듯이) 운이 좋아? 왜!

[15루까] 내가 페치카 위에 기어올라가 있었다는게 말이야.

[16페페르]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질렀어.

[17루까] 말하자면--- 자네 같은 젊은이의 행복을 듣자, 고만--- 뜨거워져서 그랬어. 그것이 자네에게는 잘 된 게야. 그때 난 자네가 흥분된 끝에 늙은 몸의 목이라도 눌러대면 어찌할까 하고 걱정했어.

[페이지] 050

[1페페르] 그래, 처치했을런지도 모르지. 난 그놈이 보기 싫어 죽겠으니까.

[2루까] 뭐 그런건 흔히 있는 일이야. 또 어려운 일도 아니지--- . 흔히 생기는 사건이니까

[3페페르] (미소 지으며) 그럼 영감도 그런 짓 해 본 일이 있는 모양인걸.

[4루까] 젊은 친구, 자! 내 말을 좀 들어봐--- . 우선, 이제부턴 그 계집년과 상종을 말란 말이야--- .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가까이 하면 안돼. 그 여자는 머지않아 제 남편을 처치해 버릴 거구. 그것두 자네 보다 몇 배 손쉽게 해칠거야--- . 암, 그렇구 말구. 그러니 여보게, 자넨 그런 몹쓸년의 말을 들어선 못써--- . 내 머리를 좀봐. 이렇게 대머리가 까지지 않았나. 그것두 무슨 까닭인 줄 알아? 모― 두 저런 계집 때문이야--- . 난 저런 계집을 어쩌면 이 머리카락보다도 더 많이 대해 왔을는지도 모르지만, 저 바실리사 같은 악독한 계집은 처음이야. 그년은 염병보다 더 무서운 년이야--- .

[5페페르] 난 통 영문을 모르겠어--- . 영감에게 고맙다구 해야 좋을런지, 그렇잖으면 영감도 역시--- .

[6루까] 이봐, 더 말할 것도 없어--- 나보다 세상 물정을 알겠소 잠자코 내 말대로 하는게 좋아--- 맘에 드는 색시가 있으면 손을 마주잡고 둘이서 여길 떠나는게 좋아. 도망하는게 좋아. 어디 멀리 떠나버리는게 좋아--- .

[7페페르] (음울하게) 사람이라는 것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누가 착한 사람이구 누가 악한 사람인지 아무도 알 수가 없어.

[8루까] 그런건 몰라도 괜찮지 않어? 사람이란 이렇게도 되구 저렇게도 되구--- 그때 그때에 바람부는대로 살아가는 것이야--- . 오늘 착한 사람두 내일은 악한 사람이 되거든--- . 자네가 만약 그 색시에게 정말 반했다면 같이 데리고 가는 게야. 그렇잖으면 혼자서 가는 게지--- . 아직 자넨 젊으니까 계집은 얼마든지 있지 않나--- .

[페이지] 051

[1페페르] (노인의 어깨를 줘어 잡고) 그만둬. 그것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영감은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 그 이유를 대!

[2루까] 아―니 이 사람, 좀 놔주게--- 안나에게 좀 가봐야겠어. 몹시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렸으니까. (衁) (안나에게 가까이 가서 커튼을 열고, 누워 있는 안나를 들여다보고 흔든다. 페페르는 힘없이 노인의 거동을 보고 있다) (遁) 오― 전지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시여! 지금 아버지의 나라로 간 당신의 종, 안나의 영혼을 평안히 받아 주옵소서.

[3페페르] (낮은 목소리로) 죽었나? (멀리서 상체를 뻗쳐서 안나 침대를 바라본다)

[4루까] (낮은 목소리로) 겨우 고생이 끝났군--- . 근데 이 여자의 남편은 대체 어디로 갔어?

[5페페르] 보나마나 술집에 갔겠지.

[6루까] 알려 줘야지.

[7페페르] (몸을 움추리고 ) 난 죽은 사람이 제일 싫어.

[8루까] (출입구로 나가면서) 죽을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야--- 살아 있는 사람이야.

[9페페르] 나도 같이 갈 테야.

[10루까] 무서워?

[11페페르] 아― 난 죽은 사람은 싫어.

두사람 급히 퇴장. 텅 빈 무대에는 정적이 흐른다. 출입구 밖에서 음울하고 혼잡한 이상한 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뒤이어서 배우 등장

[페이지] 052

[1배우] (衁) (문을 닫지 않고 문턱에 서서 기둥을 두 손으로 붙들고 고함친다) 여― 영감, 루까 영감! 어디 가 숨어 있어--- . 이제야 겨우 생각 났어, (遁) 자, 들어봐. (두 서너 발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와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노래를 부른다)

모―든 자여 성스러운

진실의 길을 찾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황금의 꿈을 불어 넣는

어리석은 자만이 번성하리라. (나따샤 등장)

(鑁) 영감, 들어봐!

만일 내일이라도, 태양이

사람의 나갈 길을 비치지 않는다면

세상을 온통 어리석은 자들의 어리석은

꿈으로 넘쳐나리라---

[2나따샤] (웃으며) 에그, 주정뱅이, 또 잔뜩 취했군---

[3배우] (돌아보며) 뭐? 난 또 누구라고. 근데 그놈의 영감을 어디로 갔어? 길잃은 영감장이야! 여긴 어째 아무도 없는 모양인데. (衁) 나따샤, 또 봅시다, 또 봐---

[4나따샤] (들어오면서) 아직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작별인사예요?

[5배우] (나따샤 앞을 막아 서서) 난 이곳을 떠나. 나그네의 길을 떠날 테야. 멀리멀리 봄이 되면 난 가버린단 말야.

[6나따샤] 비켜요! 그런데 대체 당신은 어디로 간단 말이예요.

[7배우] 어떤 마을을 찾아 가. 이 병을 고치러--- . 너도 이곳을 떠나는게 좋다. (衁) 오필리아의 수도원으로 갑시다--- . 거기만 가면 올가니즘을 고치는 병원이 있어. 알콜 중독자를 고쳐주는 병원이 있지. 훌륭한 병원이야. 대리석야. 대리석으로 깔린 마루바닥, 밝고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고 거기다 이것두 저것두 다― 공짜거든. 난 기어이 그곳을 찾아가서 이 병을 씻은

[페이지] 053

듯이 고칠 테야--- . 그리고서 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단 말이야, 리어왕이 말한 것같이. (遁) 나따샤, 그런데 이봐, 재 예명은 말이야, 스벨치코프자볼시스키라고 해. 아무도 이것을 몰라. 아는 놈은 한 놈도 없어. 여기 있으면 나도 이름 없는 허깨비야. (鑁) 이 이름을 잊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넌 아마 모를 게다--- . 개도 이름이 있는데--- .

나따샤 배우 뒤를 살짝 돌아, 안나의 침대 가까이 가서 내려다 보고 있다.

[1배우] 이름 없는 놈은 사람이 아니야.

[2나따샤] 이것 봐요, 어쩌면 좋아요! 가엾게--- 그만 죽고 말었구려.

[3배우] (목을 흔들면서) 그럴 리가 있나.

[4나따샤] 정말이예요, 와 봐요.

[5브부노프] (출입구에 나타나서) 뭘 보고 있어?

[6나따샤] 안나가 --- 죽었어요.

[7브부노프] 그래? (衁) 그럼 인제 그 기침 소리도 끝난 셈이로군. (안나의 침대에 가서 잠시 본 뒤에 다시 자기 자리에 들어와서) (遁) 끌레시치에게 알려 줘야지, 이건 그 자식이 감당해야 할 일이니까.

[8배우] 내가 가서 알려 주지. (衁) 안나도 결국은 이름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 (퇴장)

[9나따샤] (방 중앙에서) 아― 나도 언젠가는 안나와 같이 여기서 이렇게 죽고 말거야.

[10브부노프] (남루한 담요를 침대 위에 깔면서) 응, 뭐야? 넌 거기서 뭘 혼자 군소리하구 있어?

[11나따샤] 아무것도 아니예요--- 혼자말예요.

[12브부노프] 페페르를 기다리고 있겠지? 조심해라, 그 자식에게 모가지가 부러질 테니.

[페이지] 054

[1나따샤] 누구한테 얻어터지든 마찬가지 아냐? 이왕이면 그 사람한테 얻어맞구 싶어--- .

[2브부노프] (누우면서) 그야 얻어맞구 싶은건 네 자유지. 네 맘대로 아무렇게나 하려무나.

[3나따샤] 안나는 잘 죽었어요--- 그레도 가여워요--- . 아― 하나님이시여!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아 있을까요.

[4브부노프] 누구든지 다― 그래--- . 사람은 나서 잠시 살다간 죽어 버려. 나도 죽을 것이고 너도 죽을 텐데--- 뭐가 가엾단 말이냐? (루까, 타타르인, 애꾸눈 죠프. 끌레시치 등장, 끌레시치는 여러 사람 뒤에 조용조용히 몸을 구부리고 따라온다)

[5나따샤] 쉿- 쉿- 안나가---

[6죠프] 벌써 들었어. 부디 천국에서 편히 쉬게 해주소서.

[7타타르인] (끌레시치에게) 문 밖으로 메어내야지, 여긴 죽을 사람을 두는 데가 아니야. 산 놈들이 사는 데니깐.

[8끌레시치] (나지막하게) 메어내세. (다― 들 침대로 돌아선다. 끌레시치는 여러 사람의 어깨 너머로 죽은 처의 얼굴을 바라본다)

[9죠프] (타타르인에게) 넌 또, 무슨 냄새나 날 줄 알고 그러냐? 괜찮아, 안난단 말야! 이 여자에게선 냄새가 다- 날라 가구 없어--- . 살아 있을 때 벌써 북어같이 빼빼 말렀는 걸.

[10나따샤] (衁) 아이구 어쩌면, 좀 불쌍히 여겨주면 어떻소--- . 가엾다고 한마디 말이나마 해 줘요. (遁) 정말 당신들은---

[11루까] 아가씨, 화는 내 뭘 허우. 이까짓것 보통이지. 이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쓸데가 있나--- . 죽은 사람을 누가 불쌍하게 여긴단 말야, 응? 아가씨. 살아 있는 사람까지도 불쌍하게 여기지들 않어--- . 제 몸뚱이 하나도 가엾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페이지] 055

[1브부노프] (하품을 하며) 죽은 담에야 말해서 소용 있나--- 앓아 누었을 때는 말도 하겠지만 죽은 뒤에 해 본들 무슨 소용이야--- .

[2타타르인] (물러서면서) 경찰서에 말해야지.

[3죠프] 경찰? 거긴 숨길 수 없지--- . 이봐, 끌레시치, 경찰서에 말했어?

[4끌레시치] 아직 말 안했어, 여하간 묻어 놓고 보지--- . 그런데 내겐 톡톡 털어서 40까베이까 밖에 없는 걸.

[5죠프] 그럼 별 수 있나. 꾸어야지--- . 그렇지 않으면 우리끼리 5까베이까고 10까베이까고 형편대로 모아 내지--- . 허지만 경찰서에 빨리 말해 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네가 때려 죽였다고 그러면 어떡하게--- (衁) 또 무슨 트집을 잡으면 성가시니깐. (자기 침대에 가서 (遁) 타타르인과 나란히 잠잘 준비를 한다)

[6나따샤] (브부노프 침대에 가까이 가서) 아― 난 오늘밤 꼭 안나를 꿈에 볼꺼야. 언제나 죽은 사람 꿈을 꾸니까--- (衁) 아― 혼자 가긴 무서워, 문밖이 컴컴한 걸 뭐--- .

[7루까] (나따샤 뒤를 이어서) 아가씨는 오히려 산 사람을 무서워해야 해--- . 난 틀린 말은 하지 않어.

[8나다샤] 영감님, 날 좀 바래다줘요.

[9루까] 그래 그래, 바래다주지. (두사람 퇴장)

[10죠프] (하품하며) 머지않어 봄이 올걸세--- . 그럼 우리 모두 따뜻하게 살게 되겠지. 시골선 지금쯤 벌써 농꾼들이 쟁기나 싸래의 손질을 하고 들일 준비를 하고 있겠지--- . 암, 그럴 꺼야. 안 그래 하싼? (衁) 뭐야, 자식, 벌써 잠이 푹 들어버렸어? 제기럴 자식.

[11브부노프] 타타르 놈들은 잠꾸러기야--- .

[12끌레시치] (방 중앙에 서서 자기 앞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아―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야.

[13죠프] 누워서 잠이나 자, 별 수 있나.

[페이지] 056

[1끌레시치] (조용히) 허지만 저 죽은 건--- 어떡하면 좋아---

아무도 대답이 없다. 싸친과 배우 들어온다.

[2배우] (소리친다) 아― 영감, 충성스런 캔토여! 가까이 오라---

[3싸친] 미트루― 하 마트라이씨 왕림이시다. 하---

[4배우] 자― 일은 결정됐다--- . 단단히 결심을 했다--- . 이봐, 영감, 그 마을은 어디 있어? 영감은 어디 있어?

[5싸친] 이 공중누각을 꿈꾸는 놈아! 그놈의 영감쟁이가 널 감쪽같이 속인거야. 아무것도 없어. 그런 마을도 없구 사람두 없어. 아무것도 없다니까.

[6배우] 거짓말 말어.

[7타타르인] (벌떡 일어나서) 주인놈은 어디 있어. 주인을 좀 만나 봐야지--- 잠을 잘 수 있어야지. 이러구 돈을 받어? 안되지. 시체, 주정꾼---

급히 퇴장. 싸친 그 뒷모습에 대고 휘파람을 분다.

[8브부노프] (잠꼬대 비슷하게) 자라, 이 새끼들아! 시끄러워! 밤엔 자는 법이야!

[9배우] 암, 그렇구 말구--- 여기 시체가 잇어. '내 그물은 시체를 낚았도다'--- 베란제의 시(詩) 지.

[10싸친] (고함친다) 시체가 알긴 뭘 알어. 외쳐라! 짖어라! 짖어라! 죽은 사람에겐 아- 무것두 안 들린단 말이야!

(10―衁) 루까 또 출입구에 나타난다.

[페이지] 057

[막] 3막

잡초가 무성한 집 뒤뜰. 여러 가지 파편이 잔뜩 쌓여있는 공지. 그 안쪽에 벽돌로 쌓은 높은 방화벽이 가로막고 있고, 담 밑에 말오줌나무가 몇 그루, 오른편에는 창고인지 마구간인지 분간못 할 건물의 검은 통나무 벽이 보인다. 왼편에는 꼬스뜨일로프가 경영하는 싸구려 합숙소의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회색벽, 그 벽이 비스듬히 서 있기 때문에 그 뒤쪽 모서리는 거의 빈터의 중앙에 튀어나와 있다. 그 벽과 벽돌 방화벽 사이에 좁은 길이 있다. 회색 벽에는 창문이 둘 있다. 하나는 거의 땅에 닿을 정도이고 또 하나는 다섯 자 거량의 높이로 방화벽 가까이에 있다. 이 벽가에 거꾸로 엎어 놓은 짐 썰매와 길이 아홉자 가량 되는 통나무가 있다. 오른편 벽가에는 헌 판자와 각재가 쌓여 있다. 해질 무렵, 불그레한 석양빛이 방화벽에 비치고 있다. 이른 봄, 겨우 눈이 녹았을 무렵, 말오줌나루의 검은 가지에는 아직 봉오리가 맺지 않았다. 통나무에는 나따샤와 나스쨔가 나란히 앉아 있고, 짐썰매에는 루까와 남작이 걸터앉아 있다. 끌레시치는 오른편 벽가의 재목위에 누워 있다. 땅에 닿을 정도의 낮은 창문에는 브부노프의 얼굴이 보인다.--- 공장의 기적 소리.(E)

[1남작] (웃음소리)

[2나스쨔] (눈을 감고, 머리로 이야기의 박자를 맞추면서 노래하듯이 말한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약속한 대로 그날 밤 공원 정자로 와 주었어--- . 나는 미리 가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그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어. 그 동안 나는 혼자서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벌벌 떨고 있었어. 그 사람도 역시 몸을 부들부들 떨고 그 얼굴 빛이란 정말 창백했었어.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려 그의 손을 보니깐, 글쎄 어쩌면 피스톨을 쥐고 있지 않겠어.

[페이지] 058

[1나따샤]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어쩌면 대학생은 철부지라는게 정말인가봐--- .

[2나스쨔] 그리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 아 거룩한 내 사랑이여!' 하고 속삭이겠지.

[3브부노프] 허― 거룩한 사랑이라고?

[4남작] 닥쳐. 듣기 싫거든 듣지 말려무나. 거짓말 실컷 해 보라구 놔두지 않고 왜 그래.

[5나스쨔] '아― 그리운 내 사랑이여!' 그이는 그러겠지? 그리고 또 이런 말을 다 해요. '우리 부모는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습니다--- . 만일 당신과 헤어지지 않는다면 평생 부자(父子) 의 인연을 끊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래서 나는 자살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들고 있는 권총은 유난히도 크겠지. 탄환이 열 개씩이나 재여 있었어--- .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내 사랑하는 마음의 벗이여! 내 결심은 이제 변할 수 없습니다--- . 당신 없이는 한 시도 살 수가 없습니다.' 라는 거야. 그래서 난 이렇게 대답했지. '잊을 수 없는 친구--- 파울이여--- '

[6브부노프] (놀란 목소리로) 뭐라고? 파울이라고? 크라우프가 아니고?

[7남작] (껄껄 웃으며) 나스쨔! 언제는 또 '가스통'이라고 하더니?

[8나스쨔] (벌떡 일어나며) 듣기 싫어요--- . 부랑자, 개망나니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이 사랑을 알기나 해요? 진정한 사랑을 말이예요. 난 이래봬두 참다운 사랑을 맛보았단 말이예요! (남작에게) 지지리도 못난 주제에! 그 꼴에 공부를 했다니, 기가 차서--- 뭐, 침대에서 커피를 마셨다구?

[9루까] 자네들 다 잠자코 있게나. 남의 이야기를 뒤범벅으로 만들어 놓는게 아니야. (衁) 문제는 그 이야기가 아니라,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것이 문제이거든. 자- 나스쨔, 상관 말고 이야기 해.

[페이지] 059

[브부노프] 맘대로 꾸며대 봐.

[2남작] 그래서?

[3나따샤] 그까짓 것, 귀담아 들을 것 없어. 저 따위들이 뭐 아냐, 샘이 나니까 그렇지. 자기들 할 이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저런 욕먹을 소리만 하는 게야.

[4나스쨔] (다시 앉아서) 더 이야기 안 할 테야. 내 이야기는 믿지 않고 비웃기만 하니깐. (갑자기 말소리를 끊고 잠깐 침묵속으로, 다시 또 눈을 감고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주악소리(E) 에 정신이 빠진 것처럼 손으로 이야기 박자를 맞춰가며 열심히 큰 소리로 이야기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어. 당신은 나의 일생의 행복입니다. 당신은 나의 깨끗한 달빛입니다. 나도 당신 없이는 살아 있을 수 없어요. 이렇게 미칠 듯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내 심장의 고동이 멈출 때까지 나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젊은 몸입니다. 함부로 몸을 망쳐서는 안됩니다. 당신의 부모에게 있어서도 당신은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배입니다. 그러니까 차라리 이 몸을 버려주세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생명을 버리겠습니다. 그 생명을--- . 나는 다만 외로운 몸입니다. 나는 이런 처지의 여자입니다. 나를 그냥 내버려두세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위해서는 죽는 편이 차라리 행복이예요. 이것으로 만족해요. 나 같은 년이야 아무런들 어때요. 나는 아무 쓸모 없는 여자예요. 아무것도--- 아무것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쳐 울음에 묻힌다) (E) SNEAK OUT

[5나따샤] (옆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울지말어--- . 울 것까지야 없잖아?

루까는 미소지으며 나스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6브부노프] (큰 소리로 웃으며) 흥, 웃기지 마라.

[페이지] 060

[1남작] (따라 웃으며) 영감, 당신 그 소릴 다 곧이 듣다니, 그건 다 시들은 사랑이란 소설이야--- . 쓸데없는 엉터리 수작이야. 내버려두어.

[2나따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참견이예요! 벼락맞을 인간 같으니.

[3나스쨔] (화가 나서) 이 지옥의 도깨비야!

[4루까] (나스쨔의 손을 잡으며) 자, 나스쨔, 저리 갑시다. 아무것도 아니야. 화낼 것도 없는 거야. 나는 잘 알지. 나는 믿을 수 있어. 나스쨔가 하는 말은 다 옳고 저 사람들이 하는 소리는 다 거짓말 이야. 만일 나스쨔가 그걸 정말이라고 믿는다면 그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분명하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나 사람들에게 성낼 건 없어. 한 집안 식구가 아냐? 저 사람들은 필연코--- 샘이 나서 저렇게 웃는 게지--- . 저 사람들은 아마 진실이라는 것을 터득한 일이 없는 게지--- . 정말 그런 거야--- . (衁) 자, 저리로 가요.

[5나스쨔] (두 손으로 가슴을 꽉 누르며) 할아버지, 그건 참말이예요, 정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대학생이란 사람은 프랑스인인데 가스통이라고 해요. 언제나 새파랗게 아래턱에 면도 자욱이 있고 늘 번쩍번쩍하는 에나멜 구두를 신구 있었어요. 만일 이것이 거짓말이라면 나는 여기서 벼락을 맞아 죽어도 좋아요. 정말 그 사람은 나를 몹시 사랑해 줬답니다.

[6루까] 그랬을 거야. 인제 그만해 둬, 나는 믿으니까. 에나멜 구두를 신었다고? 하하 그래서 나스쨔도 그 사람을 사랑했구만. (두사람 길 모퉁이로 가 버린다)

[7남작] 아이. 멍청한 여자다. 사람은 한없이 좋은데 바보가 되서 틀렸단 말야.

[8브부노프] 도대체 사람이란 동물은 왜 이렇게도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항상 재판관 앞에서 나간 것처럼--- 정말---

[9나따샤] 그거야 진짜 이야기보다 거짓말이 더 재미있으니까 그렇지--- 나도

[페이지] 061

[1남작] 뭐? 나도라고? 그래서?

[2나따샤]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가지 것을 생각해요. 항상 여러가지 것을 생각해내 가지고는 그것이 오기를 기다리는 때도 있어.

[3남작] 뭘?

[4나따샤] (웃으면서) 별 것은 아니지만--- 이를테면, 내일이 오면 어떤 특별한 사람이 찾아올 거야. 그렇잖으면, 무슨 이때까지 좀처럼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 이렇게 공상을 하면서 나는 매일 매일을 기다려요, 항상 마음속으로 기다려요. 그러나 사실은 아무것도 기다릴 일이라곤 없으면서. (사이)

[5남작] (미소지으며)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난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아. 다 벌써 옛날 일이야. 모든게 과거가 됐어. 다 끝나 버렸어--- . 그래서?

[6나따샤] 그리고 또--- 이런 것도 생각하죠. 내일이면 내가 별안간 죽어 버릴거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져요--- . 특히 여름에는 더 죽음을 연상하게 되요--- . 천둥이 자주 치니깐--- 언제 벼락을 맞아 죽을지 알 수가 없거든요.

[7남작] 하긴, 나따샤의 생활도 편치는 못할거야--- . 언니라는 것이 저런 독종이니!

[8나따샤] 누구는 어디 행복하게 살아요? 내가 보기엔 누구나 다 고통을 받고 있는 거예요.

[9끌레시치] (이때까지 잠자코 있다가 벌떡 일어나며) 다 고통을 받는다고? 거짓말 말아! 똑같이 불행하다면 뭣 때문에 군소리들을 해? 군소리할 필요가 없잖아--- . 안 그래?

[10브부노프] 이 자식이 어떻게 되었나? 아닌 밤중에 홍두깨 모양으로 난데없이 떠들긴!

[페이지] 062

[1남작] 어디--- 나스쨔와 화해나 하고 올까--- . 그렇잖고는 --- 술값이 안 나온단 말야.

[2브부노프] 정말 인간이란 왜 그리 거짓말을 하기 좋아할까--- . 그것도 나스쨔의 경우라면 또 몰라! 늘 낯짝에 분칠을 하던 애가 돼서 마음까지 칠을 하려는 거니까--- . 말하자면 마음까지 연지를 찍으려는 거거든. 그런데 다른 놈들은 대체 왜 그래? 우선 저 루까 말야--- 저놈의 영감은 노다지 거짓말만 한단 말야--- (衁) 아무 득도 없는 거짓말을--- 나이께나 처먹어 가지고 말야--- . 도대체 왜 그럴까?

[3남작] (웃으면서 귀퉁이로 간다) 우리들 인간의 붉은 영혼은 이젠 모두 잿빛으로 퇴색하고 말았어. 누구나 잠깐 연지를 칠하고 싶을 걸세.

[4루까] (모퉁이에서 나온다) 남작 양반, 왜 그렇게 그 애를 골리는 게야. 저 여자 말을 방해해서 뭣해? 그 애는 낙으로 우는 건데. 제 맘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제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게. 그게 자네들에게 손해갈 것도 없잖아?

[5남작]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오, 영감! 인제 그 계집애한텐 지쳤어요. 오늘은 라울, 내일은 가스통, 이렇게 매일같이 이름만 바꾸지만 말은 어제나 똑같단 말야. 그런데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화해는 하고 와야겠어. (퇴장)

[6루까] 옳지 옳지, 가서 위로해 주게. 남에게 친절히 해주는 게 손해될 건 없지.

[7나스쨔] 할아버진 좋은 어른이세요. 어쩌면 그렇게도 친절하세요?

[8루까] 내가 사람이 좋다고? 그래, 그렇다면 그래도 좋지. (붉은 벽돌담 너머에서 (E) 부드러운 노래와 손풍금 곡조가 들린다) 나따샤, 저기도 좋은 사람들이 있네. 우리는 누구한테든지 선량한 사람이 돼야 해. 사랑하지 않으면 안돼.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페이지] 063

(1-衁) 끌레시치는 다시 제 자리에 드러누워 무어라고 중얼거린다. 사랑하고 동정하라 하시었고 그리고 우리들에게까지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어. 그래서 난 말하지만, 사랑하고 동정하지 않으면 안 될 때는 언제든지 그 사람을 동정해야 해. 그건 참 좋은 일이야--- . (衁) 내가 언젠가 별장지기 노릇을 할 때 한번 그런 적이 있었지. 시베리아 통스크 교외의 어떤 기사의 별장이었지만--- (遁) 그건 아무래도 좋고, 하여튼 그 별장은 숲속에 있었어. 겨울이 왔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쓸쓸한 별장에 나만 혼자 남아 있었어. 아! (감탄 한다) 참 좋았었지--- . 그런데 어느날 밤 어떤 놈이 밖에서 기어 올라오는 기척이 있었어.

[1나따샤] 도둑놈?

[2루까] 그래, 남 몰래 가만히 기어드는 놈이니까 도둑놈이 틀림없지. 그래서 나는 총을 쥐고 밖으로 나갔지. 보니까 두 놈인데 창문을 여느라고 정신이 팔려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있지 않겠어, (衁) 그래서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지. '이 도둑놈아! 썩 꺼지지 못해!'하고 말이야. 아, 그랬더니 두 놈이 도끼를 휘두르며 덤비질 않겠어. 어찌나 화가 나던지 냅다 소릴 지르며 '꼼짝마라! 움직이면 쏜다.'하고 엄포를 놓고는 총뿌리를 두 놈 가슴에다 번갈아 겨누었지. 그랬더니 두 놈은 금새 기가 죽어서 '제발 목숨만 살려줍쇼'하고 애걸복걸을 하는 거야. 하지만 그놈들의 소행이 너무 괘씸해서 이렇게 말해줬지. '이 산도둑놈들 같으니라고. 냉큼 꺼져 없어지라는데 왜 말을 안 듣나. 이젠 할 수 없다. 한 놈이 가서 나뭇가지를 꺾어 와!하고 말이야. 그래 나뭇가지를 꺾어 왔길래 나는 새로 명령을 내렸지. '자, 한놈이 한 놈을 때려!' 이렇게 두 놈을 번갈아 가며 저희들끼리 때리게 했지. 한데, 매질이 끝났을 때 그놈들이 나더러 뭐랬는 줄 알아? '영감님, 제발 부탁이니 빵 한 조각만 적선해 주십시오.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습니다.'하지 않겠어. 나 원, 기가 차서, 아,

[페이지] 064

글쎄 이게 도둑놈이었단 말이오--- .(웃는다) 도끼를 휘두르며 대든 놈이었다 말이오!(遁) 사실 두 놈 다 알고 보니까 선량한 농부였어. 그래서 나는 두 농부에게 말해 줬지. '이놈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했더니 그 대답이 '우리들은 간 곳마다 목이 터지도록 애원했지만 누구 한사람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에이, 아무렇게나 될 대로 되어라. 그 끝에 이렇게 되었습니다!하지 않겠어. 그 후로 두 농부는 어영부영 그대로 한겨울을 같이 지내게 됐는데 한 사람은 스테판이란 자로 총을 메고 숲속으로 사냥을 갔었고, 또 한사람은 야곱이었는데 병신이어서 늘 쿨록쿨록 기침만 하고 있었지. 그후로는 쭉 나와 둘 다 별장지기를 했지. 그리곤 봄이 오니까 '영감님, 안녕히 계십시요!하고 돌아갔어. 러시아 본토로 돌아갔겠지.

[1나따샤] 둘 다 탈옥한 사람이겠지요? 죄수들이죠?

[2루까] 물론 그야 도망한 놈이겠지. 자기들을 처박아 둔 유형지에서 도망해온 거지. 그러나 참 좋은 농군이었어--- 정말 내가 불쌍히 여겨주지 않았더라면 놈들은 나를 죽였거나 해서 또 재판소에 끌려가고 감옥 속에 들어가, 결국 시베리아로 귀양을 가게 됐을 거야. 그런다고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지. 감옥이나 시베리아는결코 좋은 걸 가르쳐 줄 수 없으니까. 무엇이든지 가르쳐 주는 것은 사람뿐이야. 사람만이 좋은 일을 가르쳐 주지--- . 아무렴, 가르쳐 주고말고 (한참 침묵)

[3브부노프] 그 말도 옳아! 그러나 난 아무래도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언제든지 진실을 드러내는 것, 이것이 내 생각이니까. 진실을 폭로하는 데 무슨 꺼릴 것이 있나?

[4끌레시치] (무엇이 찔린 듯이 돌연히 뛰어 일어나 소리친다) 진실이라는게 무엇이야? (누더기가 된 옷을 두손으로 쥐어뜯으며) 진실은 여기 있다! 이것이야! 일거리가 없다, 힘이 없어, 이것이

[페이지] 065

진실이라는 것이야. 갈 곳이 없어 개죽음을 할 수 밖에는 없어,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이야. 빌어먹을! 진실이라는 게 다 무슨 소용이 있어. 내버려 두어--- 숨이나 돌리게 해 줘. 도대체 내가 어디가 나빠? 아무리 살려고 해도 빌어먹을! 살 수가 있어야지. 이게 진실이라는 거야!

[1브부노프] 허―또 흥분했군.

[2루까] 정말 딱두 하우--- . 내 말좀 들어 보구려! 말하자면---

[3끌레시치] (흥분이 되어 몸을 떤다) 여기 있는 놈들은 입만 뻥긋하면 진실, 진실이야!(衁) 여보 영감, 당신은 아무나 다 위해 주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난 전부다 밉단 말요! 그놈의 진실이라는 것까지 미워 죽겠소--- .더러운 것들, 깡그리 뒈지기나 하지! 모조리 뒈져 버리란 말야! (遁) (뒤돌아 보며 모퉁이를 돌아 달려간다)

[4루까] 나 원! 정말 돈 모양이야--- 어디로 저렇게 뛰어가는 거지?

[5나스쨔] 정말 미친 사람 같아요.

[6브부노프] 무슨 연극 구경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이 아직 순진해서 저러는 거야!

[7페페르] (천천히 집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여어―밥들 먹었나? 루까라는 너구리 첨지도 여기 있구만. 여전히 설교판인가?

[8루까] 자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 . 지금 여기서 떠들던 사람을 말이오!

[9페페르] 끌레시치 말인가? 대관절 어떻게 된 거야? 끓는 물이라도 뒤집어 쓴것처럼 뛰어 가던데---

[10루까] 당신인들 별 수 있겠소? 골똘히 생각하면 다 그렇게 되는 법이라오

[11페페르] (앉는다) 난 그 녀석은 암만해도 싫단 말야. 심보가 비뚤어진 데다가 거만하기까지 하단 말야. (끌레시치의 흉내를 낸다) '나는 노동자다! 제 밖에 다른 놈은 다 저만 못하다는

[페이지] 066

것같이 말하지--- . 일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라지. 일한다고 별로 자랑될 것도 없어. 일하고 안 하는데 사람의 값이 정해진다면 사람이란 전부 말(馬) 보다 못한 게 된단 말야. 죽도록 짐을 끌어도 군소리 한 마디 안하거든! 그런데 나따샤, 네 언니랑 형부랑은 집에 있나?

[1나따샤] 성묘 갔어요. 오는 길에 교회에 들려서 저녁 기도를 드리고 오겠대요--- .

[2페페르] 그래서 이렇게 태평스레 놀고 있구나!

[3루까] (깊이 생각하는 듯이, 브부노프에게서) 여보게 자네는 곧잘 진실,진실하지만 진실이란 것이 어떤 병이라도 낫게 하는 약은 아니야. 진실만 가지만 언제든지 영혼이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세. 이런 일이 있었어. 내 아는 사람인데--- 정의의 나라를 믿는 사람이 있었다네.

[4브부노프] 무슨 나라라고요?

[5루까] 정의(正義) 의 나라 말이야.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보면 어딘지 꼭 정의의 나라가 있다는 거야. 그 나라에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살고 있어서--- 서로 존경을 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사이좋게 도와주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잘 되어 간다는 거지. 그 나라에 가면 무엇이든지 다 좋고 무엇이든지 다 아름답대. 그래서 그 사람은 정의의 나라를 찾으려고 밤낮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네. 그러나 그 사람은 어찌나 가난하던지 늘 쪼들리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누워서 죽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렀지. 이 사람은 그러면서도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언제나 싱글벙글하며 이런 말을 하고 있었어. '이까짓 것쯤은 문제없어! 조금만 더 참자!그러면 이따위 생활을 내던지고 정의의 나라로 갈 수 있을거야!하고 말이지. 이것이 그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었다네.그 정의의 나라로 가는 것이 ---

[6페페르] 그래서? 결국 가게 됐나?

[페이지] 067

[1브부노프] 어디로 말야? 하하하!

[2루까] 그런데 마침 그때, 그곳으로--- 이것은 시베리아에서 있었던 얘길세--- . 그곳으로 어떤 학자 한 사람이 추방을 당해서 오게 됐어. 학자니까 책이니 지도니 잔뜩 짊어지고 온 거지--- . 그래서 그 사람은 학자를 붙잡고 애걸을 했어. '제발 부탁입니다, 정의의 나라가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어디로 가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이야. 학자선생님은 곧 책과 지도를 펴놓고 아무리 찾아봐도 정의의 나라는 아무데도 없잖겠나--- 다른 것은 자세히 씌여있고 다른 나라 이름은 다 있지만 정의의 나라만은 암만해도 없었던 거지---

[3페페르] (나지막한 목소리로) 허! 없었단 말이지?

(3―衁) 브부노프 큰 소리로 웃는다.

[4나따샤] 잠자코 들어 봐요. 할아버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5루까] 그러나 그 사람은 학자의 말을 믿지 않았어. 반드시 있을테니, 좀 자세히 찾아 봐 달라고 했어. 만일 정의의 나라가 씌여 있지 않으면 당신 책과 지도는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 이러는 데는 학자 선생도 화가 났단 말이야. 말하자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격이지. 그래 학자가 하는 말이 내 지도나 책은 절대 정확한 것이고 정의의 나라란 원래 아무데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어. 자, 이러니 그 사람이 어떻게 됐겠어?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서 씨근덕거리고, '뭐야? 나는 오늘날까지 가진 풍상을 다 겪으면서도 참고 살아왔다. 그것은 오직 정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었어. 그런데 네놈의 지도는 그것이 없단 말이지. 이 도둑놈아, 이 강도! 네까짓게 학자가 다 뭐야, 순 사기꾼이로구나! 정말 학자가 드르르 웃겠다. 망할 놈의 자식'하며 귀싸대귀를 한 대 철썩, 또 한 대 철썩--- 그리고---

[페이지] 068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와서 목을 메고 죽어 버렸어. (모두 침묵, 루까는 미소지으며 페페르와 나따샤를 본다)

[1페페르] (낮은 목소리로) 제, 제기랄--- 아무 재미도 없잖아!

[2나따샤] 거짓말 투성이인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더 참을 수 없었던 게지--- 그 사람은.

[3브부노프] (음울하게) 다―지어낸 이야기야--- .

[4페페르] 하긴 그래, 흥--- 그게 정의의 나라란 말이야? 결국 이 세상에서 찾아 보지도 못한 그게---

[5나따샤] 그렇지만 불쌍한데--- 그 사람은---

[6브부노프] 모두 거짓말야, 지어낸 이야기야. 하하하! 정의의 나라라? 거기로 가겠단 말이지. 하하하! (창문으로 나간다)

[7루까] (창쪽을 보고 턱을 끄덕거린다) 웃네 그려, 아아--- (한참 사이) 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난 곧 여기를 떠나야겠소--- .

[8페페르] 어디로 갈 테오? 이번엔.

[9루까] 우크라이나 방면으로 갈까 해. 거긴 요즈음 새로운 종교가 생겼다고 하더군--- .어떤지 좀 가보고 싶어. 인간이란 언제나 좀 더 나은 생활을 찾고 있거든. 늘 그것을 원하고 있지--- . 주여! 그들에게 인내심을 내려 주소서!

[10페페르] 근데 영감은 어떻게 생각하오? 더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을까?

[11루까] 사람이 말야? 찾을 수 있고 말고--- .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찾아지는 게야. 굳세게 믿는 사람에겐 꼭 찾아지지!

[12나따샤] 어떻게라도 그런 사람에겐 찾게 해 주셨으면--- 무슨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13루까] 아무렴, 생각해내고 말고--- 그러나 나따샤,그런 사람을 도와 주지 않으면 안돼--- .존경해 주지 않으면 안돼.

[페이지] 069

[1나따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남을 도와 줄 수가 있어요? 정말 나 자신이 남한테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인데---

[2페페르] (단호한 태도로) 나따샤, 난 또 한번 너하고 상의하고 싶었어. 마침 영감님도 여기 계시니까--- 영감님은 뭐든지 다 알고 있어. 어때, 나따샤, 안 갈 테야--- 나하고 같이 말야!

[3나따샤] 어디로? 감옥으로?

[4페페르] 난 도둑질은 그만두겠다고 벌써부터 말하지 않았어--- .맹세코 그만두겠어! 한번 말한 이상 난 반드시 하고 마는 놈이야. 이래봬도 글자 나부랑이나 배웠으니까--- . 인제부터 일을 할거야--- . 저 영감님은 자원이라도 해서 시베리아로 가라는데--- 어때, 같아 안 갈 테야? 너는 내가 이런 생활을 좋아서 하는 줄 알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나따샤! 난 두 눈으로 보고 똑똑히 알고 있어--- . 세상에서 나보다 더 큰 도둑질을 하면서도 호의호식하는 놈이 얼마나 많은데 이제까지는 그런 일을 생각하고 난 자위를 해왔어--- . 그렇지만 그런건 아무 소용도 없어 난 별로 후회도 안해. 양심? 흥! 양심 같은 것도 믿을 수 없어. 그러나 다만, 한가지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일이 있어. 좀 더 다른 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야. 좀 더 나은 생활을 해야 해. 내가 나를 존경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하고 싶어.

[5루까] 허- 좋은 말이야. 정말 옳은 말했어. 주여! 힘을 주소서. 당신의 아들을 구원하옵소서! 참 옳은 말이야. 사람은 자신을 존경할 수 있게 되어야 해.

[6페페르] 난 애새끼때부터 도둑질을 해왔어 모두들 나보고 ' 이놈아, 이 도둑놈의 새끼야!'했지. 그래서 난 ' 그러냐- 그렇다면 정말 도둑놈이 되어주마' 이것이 도둑질의 시초였고 이젠 이 모양이 되었단 말야! 내가 도둑놈이 된 것은 이 세상에 대한 발악이며, 반항이었어. 세상이 미웠어, 미웠어, 미웠어! 미칠 만치 미웠어! 어느놈 하나 날 도둑놈 아닌 딴 이름으로 부르는 놈이 없는

[페이지] 070

세상이 미웠어! 그래서 난 결국 도둑놈이 되고 말았지. 나따샤, 너는 내 본 이름을 불러 주겠지, 나따샤.

[1나따샤] (마음이 뭉클해져서) 난 어쩐지 당신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모두--- 그리고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울적하고 가슴이 설레어요--- .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아요--- . 페페르, 그런 얘기 따위 꼭 오늘 안해도 되잖아요.

[2페페르] 그럼 언제 해야 하나? 지금 처음 하는 얘기도 아닌데---

[3나따샤] 그리고 또, 왜 내가 당신과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된단 말야. 당신도 알다시피, 나도 당신이 좋긴 하지만 죽자사자 할 만한 사이도 아니거든--- (衁) 하기야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어. 하지만 어떤 때는 당신 얼굴만 봐도 진절머리가 나는 때도 있어. 그러니까 결국 나는 당신을 속속들이 좋아하는 건 아냐. (遁) 정말 좋아하면 흠이 보이지 않는다던데--- 그런데 내게 그게 뵈거든--- .

[4페페르] 뭘, 곧 내가 좋아질 텐데. 조금도 걱정할 것 없어. 네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될 거 아냐. 너는 그저 ‘응’하고 대답만 하면 돼! 난 널 일년 이상이나 봐 왔지만 넌 아주 똑똑한 여자야--- . 정직하고 믿음직한 사람인 걸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난 지금 너한테 홀딱 반해 버리고 말았어--- .

바실리사 외출 차림으로 창문에 나타나 창가에 기대서서 엿듣는다.

[5나따샤] 그래요? 그렇게 당신은 날 사랑하고 있어? 그렇지만 우리 언니는---

[6페페르] (당황하여) 흥, 그런 계집애! 아무래도 좋아--- 아무것도 아냐, 그까짓 계집애---

[7루까] 그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 나따샤, 빵이 없을 땐 사람이란 나무뿌리라도 먹는 거야.

[페이지] 071

[1페페르] (우울하게) 뭐라고 할까? 날 불쌍하게 생각해 줘--- . 이렇게 쓰리고 캄캄한 생활을 해 오고 말야--- . 정말 개돼지 만도 못한 생활을 해가면서--- . 행복과 낙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어. 수렁속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아--- . 게다가 지푸라기 하나 잡을 게 없게 됐단 말야--- . 다 썩어 빠진 것들 뿐이라--- 무엇하나 힘이 되질 않아--- . '네 언니면!' 하고 생각해 봤지만 그 여자도 결국 틀리고 말았어. 정말 그 여자가--- 그런 구두쇠같이 돈만 아는 여자가 아니었든들--- 나는 그년 때문에 무슨 일이든지 했을지 몰라! 정말 내것이 돼주었으면--- 그러나 그년에겐 따로 필요한 것이 있었어--- . 그년은 돈과 자유가 필요했었어--- , 맘대로 바람이 나서 싸댕기구 싶은 거야--- . 그런 여자는 내겐 도움이 될 수는 없는 여자야. 거기다 비하면 넌 말하자면 갓 돋아난 장미넝쿨과 같이 가시는 있지만 꼼꼼하고 믿음직하거든--- .

[2루까] 나도 중매장이 노릇을 하지만--- 나따샤, 이 사람과 부부가 되지--- . 이 사람의 아내가 되는 거야. 페페르는 정말 좋은 청년이야! 다만 나따샤는 이후로 페페르에게 너는 좋은 인간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서 페페르가 그걸 잊어먹지만 않게 하면 돼! 나따샤가 말하는 것은 이 페페르는 뭐든지 옳은 말로 알거든--- . 그러니까 나따샤는 '페페르 당신은 착한 사람이야, 이걸 잊어버리지 말아--- ' 이렇게만 말하면 되는 거야. 나따샤, 생각해보라고, 이 페페르를 빼놓고 또 딴곳에 갈 곳이 있나? 언니는 언니대로 저렇게 악독하지, 형부되는 영감은 영감대고 능구렁이 뺨치게 교활하지--- 게다가 이 굴속에서의 생활은 또 어떻고--- 어디에 나따샤가 갈 곳이 있어? 하지만 이 젊은이는 마음 든든하지--- .

[3나따샤] 도망할 길이 없다는 것은- 나도 잘 알아요. 벌써부터 생각했어요--- . 그래도--- 나는- 아무도 믿어지지가 않는 걸요, 도망할 길은 없지만--- .

[페이지] 072

[1페페르] 도망할 길은 꼭 하나 있어--- . 나는 그 길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따샤만은 버리지 않을 테야--- . (衁) 버릴 지경이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고 말 테야--- .

[2나따샤] (웃으면서) 저것 봐요--- . 아직 결혼도 하기 전에 벌써 죽이느니 어쩌니---

[3페페르] (나따샤를 껴안는다) 왜 그래, 나따샤! 인젠 내 아내나 다름 없잖아.

[4나따샤] (매달리며) 그럼, 꼭 한 마디만! 페페르--- 맹세코 말해두지만- 한번이라도 나를 때리든지, 무슨 다른 일로 날 천대하든지 하면 그땐 마지막이야--- . 그뿐이야--- . 목숨은 아깝지 않어! 목은 매든지 그렇지 않으면--- .

[5페페르] 무슨 소리야, 나따샤. 네 몸에 손끝하나 댄다면 손모가지가 썩어 버릴 게야--- .

[6루까] 걱정할 건 없어, 나따샤. 의심할 것 없어. 이 사람에게는 아가씨가 둘도 없는 사람이거든. 아가씨가 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야--- .

[7바실리사] (창에서) 인넨 정말 년놈이 붙었군, 붙어 버렸어! 맘대로 지랄들 해보라지--- .

[8나따샤] 어머, 벌써 돌아와 있었어--- . 어떡하면 좋아. 다 봤나 봐, 페페르!

[9페페르] 겁낼 것 없어! 이렇게 된 바엔 아무놈도 손 하나 못 대게 만들테니!

[10바실리사] 걱정말어, 나따샤. 그 사람은 결코 때리진 않을 테니--- . 그 사람은 때리지도 못하지만 사랑하지도 못할 거야--- . 난 다 알고 있어.

[11루까] (낮은 소리로) 원 참, 뭐 저 따위가 있어--- . 꼭 독사 같구먼--- .

[12바실리사] 그 사람은 주둥이만 살아있지.

[페이지] 073

[1꼬스뜨일로프] (들어오며) 나따샤! 너 거기서 뭘 하고 있어, 이 밥통 같은 것아! 또 남의 흉이냐? 집안 사람 욕이야? 사모바르는 어떻게 됐어? 저녁준비는 했나?

[2나따샤] (안으로 들어가면서) 교회에 들러온다고 했잖아요--- .

[3꼬스뜨일로프] 우리가 어딜 가든지 네가 참견할게 뭐야. 너는 네가 할 일이나 하면 그만이지---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만이야.

[4페페르] 야, 이 자식아! 이 여잔 인젠 네 집 종이 아니야. 나따샤, 가지 말아, 갈 것 없어--- .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할 것 없어.

[5나따샤] 페페르--- (하지 말라는 눈짓) 그런 큰 소린 말아요. 아직 너무 일러요. (퇴장)

[6페페르] (꼬스뜨일로프에게) 더 이상 건드리지 말라. 그만큼 부려먹었으면 됐지, 얼마나 더! 저 여자는 이제 내 꺼야!

[7꼬스뜨일로프] 네것이라구? 언제 샀냐? 얼마를 냈어?

바실리사 큰 소리로 웃는다.

[8루까] 페페르, 저리 가지--- .

[9페페르] 야, 이 년놈들아! 핼쭉핼쭉 웃고서--- 두고 봐라. 그놈의 얼굴에다 작대기찜을 댈 테니--- .

[10바실리사] 아이구 무서워라! 벌벌 떨리는데! (웃는다)

[11루까] 이봐, 페페르, 저리가, 저리 가라니까. 저 여자는 지금 너를 약올리는 거야. 그 눈치도 못채?

[12페페르] 아하 참, 그러고 보니까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군. 이놈의 계집년! 어림도 없어! 네 마음대로 될 줄 알아?

[13바실리사] 안될 것도 없지. 흥, 두고 보라지!

[14페페르] (주먹으로 여자를 위협한다) 어디 두고 보자! (퇴장)

[15바실리사] (창에서 사라지며) 훌륭한 결혼식이나 올려 드리지!

[페이지] 074

[1꼬스뜨일로프] (루까 옆으로 가며) 요즘은 어때, 영감.

[2루까] 나야 항상 그렇지--- . 쥔 양반.

[3꼬스뜨일로프] 흥, 그런데--- 영감은 또 떠난다지?

[4루까] 아, 정말 떠나야겠오.

[5꼬스뜨일로프] 어디로 가나?

[6루까] 발길 닿는 대로 가는 거지--- .

[7꼬스뜨일로프] 말하자면 이곳 저곳 흘러 다니겠단 말이지--- . 암만해도 한 군데에 붙어 있지는 못하는 모양이로군.

[8루까] 돌이 누워 있으면 물이 흐르지 못한다고 하지 않나--- .

[9꼬스뜨일로프] 그건 돌의 얘기지. 사람이란 한 곳에서 살아야 하는 게야. 다람쥐같이 가벼운 살림은 할 수 없는 거야. 바람부는 대로 아무데나 떠돌아 다닐 수는 없는 거란 말야. 인간이란 일정한 장소에 집을 짓고 살아야 되는 거야--- . 덮어놓고 떠돌아다니면 못써--- .

[10루까] 그렇지만 어디고 살 집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쩐담?

[11꼬스뜨일로프] 그렇다면 그건 부랑배지. 인간이라면 무언가 쓸모가 있어야지--- . 직업이 있어야지--- .

[12루까] 거 참, 훌륭한 말씀을 하시는구만.

[13꼬스뜨일로프] 그럼 그렇잖구--- . 도대체 순례라는 것은 뭣이냐 말야? 순례자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해--- . 만일에 그것이 정말 순례라면 뭣을 알든지간에 --- 뭐라 그럴까--- 아무 소용없는 것을 안다고 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진실이란 것은 모두가 필요하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그것은 제 뱃속에 넣어두고--- 잠자코 있는 거야. 만약 진정한 순례자라면 반드시 잠자코 있어. 그렇지 않으면 남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법으로 말하든가--- 그리고 아무 욕심도 없고 딴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덮어 놓고

[페이지] 075

떠들어대지도 않고--- 사람이 어떤 생활을 하든지 간에--- 그런건 상관할 바 없는--- 그러한 순례자는 조금도 꺼림없는 정직한 생활을 하고--- 숲속에서--- 동굴에서 숨어사는 거야. 누구에게든지 걱정거리가 되지 않고,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그저 여러 사람을 위해서 기도 하는 거야--- . 모든 뜬 세상의 죄업을 위해 나와 당신과--- 그리고 모두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순례자들은 이 세상의 근심, 걱정을 잊을 수 있는 거야. 기도에 전념하기 때문이지--- (사이) 그런데 당신은 어떤 순례자란 말야--- . 여행권도 없지--- 당당한 사람이면 여행권을 가졌을 거 아냐--- . 그렇지, 똑똑한 사람이면 여행권이 있구말구, 어때?

[1루까] 그거야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 .

[2꼬스뜨일로프] 하--- . 그런 그럴듯한 수작은 닥쳐--- . 그런 꿍꿍이 수작을 모르는 줄 아나? 이래봬도 내가 너보다 미련한 놈은 아냐. 대관절 무슨 말야. 보통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란게--- .

[3루까] 천만에, 내 말은 씨를 뿌릴 수 없는 땅도 있고 무엇을 뿌리든 지 훌륭하게 열매를 맺는 기름진 땅도 있다--- 이 말이오--- .

[4꼬스뜨일로프] 흐흥, 그래서 대체 어쨌단 말야?

[5루까] 즉 다시 말하자면--- 당신이란 사람은, 가령 하느님께서 ' 미하일! 사람다운 사람이 되거라!'고 그래 본들--- 어쩔 수가 없어. 지금 이 모양대로 조금도 변함이 없을 걸세.

[6꼬스뜨일로프] 뭐, 뭐라구--- 아직도 모르는구나, 내 처삼촌은 경찰관이야. 만일 내가---

[7바실리사] (들어온다) 여보, 차 드세요.

[8꼬스뜨일로프] (루까에게) 썩 나가지 못해! 더 이상 재워 줄 수는 없어!

[페이지] 076

[1바실리사] 썩 나가요, 나가! 더러운 영감쟁이! 보자보자하니 말이 너무 많단 말야--- . 보나마나 빤하지--- 감방을 뛰쳐나온 탈옥수겠지--- .

[2꼬스뜨일로프] 오늘중으로 냉큼 나가! 만약 안나갔다만 봐라!

[3루까] 처삼촌을 부를 텐가? 부를 테면 불러보지, 탈옥수를 잡았다고 말야. 아마 그러면 그자에게 3까베이까쯤 상금이 나올 걸--- .

[4브부노프] (창문 안에서) 무슨 흥정인가? 그 3까베이까란 건?

[5루까] 나를 팔겠다고 협박하고 있다네--- .

[6바실리사] (남편에게) 그만 갑시다.

[7브부노프] 3까베이까로? 조심하슈, 영감님--- . 까딱하다간 1까베이까에 팔릴지도 몰라.

[8꼬스뜨일로프] (브부노프에게) 뭘 멀뚱멀뚱 내다보고 있어, 염병할 놈 같으니! (아내와 함께 걸어간다)

[9바실리사] 대체, 이 놈의 세상엔 거지와 거짓말쟁이가 얼마나 될까, 이놈의 세상이란 뒤가 켕기는 놈도 많고 오장이 다 썩어빠진 놈도 많지--- .

[10루까] 잡아 잡수시구료!

[11바실리사] (돌아보며) 주둥아릴 빼 놀까 보다--- 이놈의 영감쟁이.

꼬스뜨일로프와 함께 퇴장

[12루까] 오늘밤 난 이곳을 떠나야겠어--- .

[13브부노프] 그게 좋을 거요. 달아나는 데도 때가 있는 법이니까.

[14루까] 하긴 그래--- .

[15브부노프] 나도 경험이 있어서 하는 소리죠. 나도 한번 용하게 도망친 일이었어요, 덕분에 콩밥 신세는 면했지.

[페이지] 077

[1루까] 정말이야?

[2브부노프] 정말이지 말구요. 사실은, 여편네가 우리집 직공놈하고 붙어버렸거든요. 그 녀석이 직공중에서는 꽤 솜씨가 있는 녀석이었지--- . 개가죽을 감쪽같이 곰가죽으로 물들이고--- 괭이가죽을 염색해서 캥거루우나 사향뒤주로 만들기 일쑤고--- 뭐든지 척척 만들어내는 그런 놈이었단 말요. 그래 그놈과 여편네가 붙었는데--- 이게 또 얼마나 열렬한지, 혹시 나를 독약이나 먹이지 않을까, 그렇잖으면 아주 없애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걱정이 돼서 한 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지요. (衁) 그래서 내가 여편네를 늘씬하게 패줬더니, 이놈이 또 날 패지 않겠소--- . (遁) 정말 그놈은 쌈도 잘 하더군. 한 번은 그 놈이 내 수염을 반이나 쥐어뜯고 갈빗대까지 한 대 부러뜨려 놓질 않았겠소. 그쯤되니 난들 가만 있을 수가 있어야지. 여편네 대가리를 두 자짜리 쇠몽둥이로 죽으라고 갈겨 주었지--- 이러니 난장판이 될 수 밖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더군. 그래서 여편네를 죽여 버릴 생각을 했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문득 생각하니 안되겠더군. 그래서 달아나 버렸지.

[3루까] 그건 잘한 일일세. 두 년놈에게는 언제나 개를 가지고 곰으로 만드는 일이나 시키면 돼.

[4브부노프] 안될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공장이 여편네 명의로 돼있으니--- 내 신세는 요꼴이 되고 만거죠! 사실 하기야, 공장을 갖고 있어봤자 다 마셔버렸겠지만--- 이런 고주망태니 말이오--- .

[5루까] 고주망태? 술을 많이 먹나?

[6브부노프] 밑빠진 독이라니까! 한 번 먹었다 하면 마지막이지. 게으르니 오죽 하겠소? 난 도무지 일하는게 질색이거든--- .

[페이지] 078

싸친과 배우가 말다툼을 하면서 등장.

[1싸친] 망할 자식, 어딜 간다고 그래--- 자식, 갈 곳이나 있어? 여뵈, 영감쟁이, 이 멍텅구리 놈에게 무슨 불을 질렀어? 이 타다 남은 장작 같은 놈에게---

[2배우] 바보 같은 소리 마라--- . 영감님, 말 좀 해주슈. 되지 못한 소리 작작하라고 말이요, 난 갈 테야! 오늘은 나도 일을 해서 벌었어. 도로 청소를 해서 말이지--- . 그리고 보드카는 입에도 안 댔어. 어때? 장하지? 임마. 30까베이까가 있는데도 난 내 얼굴 그대로 아냐?

[3싸친]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말어! 이리 내 봐! 내가 마셔 줄 테니--- . 아니면 노름해서 따먹어 줄까--- .

[4배우] 듣기 싫어! 이건 여비야!

[5루까] (싸친에게) 이봐, 자네는 왜 남의 오장을 뒤집어 놓는 거야.

[6싸친] "나에게 말해다오, 신의 총아인 마법사여. 나의 앞길은 대체 어떻게 될 것인가" (푸시킨의 시구―역주) 를. 내가 졌다, 졌어. 완전히 무일푼인 걸 안 그렇소? 영감, 세상은 재미있는 세상이야. 사기도박 솜씨가 나보다 더 나은 놈이 있으니 말요!

[7루까] 자네는 퍽 재미있는 사람일세--- . 귀여운 사람이야--- .

[8브부노프] 어이, 배우, 이리 좀 와!

배우는 창가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브부노프와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9싸친] 나도 말이오, 영감. 젊었을 때는 이래봬도 꽤 인기가 있었다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럴 듯했단 말야. 그때는 나도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고 춤도 잘 췄고 연극도 했고 사교계에서도 꽤나 유명했어. 사람 웃기기두--- 참 굉장했었지--- .

[페이지] 079

[1루까] 그런데 왜 이렇게 타락해 버렸나?

[2싸친] 영감도 참 호기심이 많구료. 그건 알아서 뭣하려고 그러우?

[3루까] 사람에 대한 일들이 알고 싶어서 그러지--- . 이렇게 당신을 보고 있자니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그만큼 배짱 있고--- 머리 좋은 사람이--- 갑자기 변하다니---

[4싸친] 감옥살이를 했죠! 난 사년 칠개월이나 콩밥을 먹었소. 막상 나와 보니 갈 데가 있어야지.

[5루까] 허허, 참! 감옥에는 또 왜 들어갔나?

[6싸친] 어떤 고약한 놈 때문이었지--- 젊은 혈기로 울컥하는 바람에 그만 그놈을 죽이고 말았소--- . 사기 도박을 배운 것도 감옥에서 였지.

[7루까] 죽이다니, 여자 때문인가?

[8싸친] 피를 갈라 받은 내 누이 일로 그랬지--- .(衁) 그러나 인젠 그만해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는 건 질색이거든--- 게다가 먼 옛날 얘기지--- . 누이도 죽어 버렸어--- . 벌써 구년이나 됐구나--- . 참한 여자였어--- . 내 누이동생이란 애는---

[9루까] 자네는 그래도 아주 좋은 편일세. 세상에는 더, 더 괴로운 사람도 있다네--- . 아까 여기서 떠들어대던 자물쇠장수 말일세---

[10싸친] 끌레시치 말인가?

[11루까] 그래. 할 일이 없다고 떠들어댔어--- . 도무지 암만해도 없다고---

[12싸친] 그러다가 익숙해지고 말 걸--- . 아무렇지도 않게 되지. 나도 지금 아무 일거리도 없으니까---

[13루까] (낮은 목소리로) 보게,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저기 오지 않나?

[페이지] 080

(1―衁) 끌레시치 느릿느릿 등장.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1싸친] 어, 홀애비! 왜 머리는 푹 숙이고 다니나? 뭘 그렇게 생각해?

[2끌레시치] 머리가 터질 지경이야.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고 말야. 연장이 없어--- . 모조리 장례비에 처넣고 말았어.

[3싸친] 내가 좋은 수를 가르쳐 주지. 아무것도 하지 말게. 그리고 이 땅덩어리 위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있으면 돼! 참 쉬운 일일세!

[4끌레시치] 그것도--- 좋겠지--- 난 그저 세상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서 그래--- .

[5싸친] 집어치워! 자네가 가령 개돼지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해서 세상놈들이 눈이나 깜짝할 줄 아나--- (衁) 생각해 보라구. 자네가 벌지 않고 일을 않고--- 그리고 백명, 천명--- 모두 일하지 않는단 말야. 어때? 모두 일을 집어 치우는 거야!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단 말야. 그렇다면 어떻게 되겠나?

[6끌레시치] 모두 굶어 죽겠지--- .

[7루까] (싸친에게) 여보게, 그런 얘긴 은둔자에게나 들려주게! 은둔자라고, 자네 말에 꼭 맞는 무리들이 있지!

[8싸친] 나도 알아--- . 그러나 그 사람들은 결코 멍텅구리가 아냐.

(8-衁) 바실리사 무대 뒤에서 '이 빌어먹을, 남의 것을 빼앗고서, 이년!' 한다. 꼬스뜨일로프의 방 창문에서 나따샤의 비명이 들려온다, '내가 뭘 어쨌다는 거예요? 글쎄 대관절 내가 뭘 어쨌다는 거예요?' 나따샤의 울음 소리 들린다.

[9루까] (걱정스러운 듯이) 나따샤지? 그 애가 울고 있지? 응? 그렇지?

[10바실리사] (무대 뒤에서) 요년! 뻔뻔스럽게! 남의 앞에서 그런 짓을 하고--- 요, 벼락맞을 년!

[페이지] 081

(1―衁) 꼬스뜨일로프의 방에서 떠드는 소리, 와지끈 그릇 깨지는 소리. 그리고 꼬스뜨일로프가 '이년--- 이 화냥년이--- 이 앙큼한 년--- '하는 욕설이 들린다.

[1바실리사] (무대 뒤에서) 가만 있어 봐요, 글쎄 가만 있으라니깐요--- 이년은 내가--- 요렇게, 요렇게---

[2나따샤] (무대뒤에서) 아야! 아야야! 사람 살려요--- .

[3싸친] (창문에 대고 소리친다) 야, 이것들아, 무슨 짓을 하는 거야!

[4루까] (걱정이 돼서 이리저리 허둥거린다) 페페르--- 페페르를 불러와야지--- 이거 큰일 났군! 여러분--- 여러분들---

[5배우] (뛰어나가며) 내가--- 내가 뛰어가서 불러올게--- .

[6브부노프] 저것들은 요즘 걸핏하면 저 애한테 손찌검이야--- .

[7싸친] 영감, 갑시다--- . 가서 증인이 됩시다.

[8루까] (싸친을 따라가며) 나 같은 게 증인이 되면 뭘 해! 빨리 페페르가 와야지--- .

[9나따샤] (무대 뒤에서) 언니가--- 아아, 언니가--- 바, 바 비실리---

[10브부노프] 입을 틀어 막았구나. 가서 보고 와야지--- .

꼬스뜨일로프네 방의 소동은 차차 가라앉아 멀어져 간다. 방에서 밖으로 나간 모양이다. '거기 서'하는 꼬스뜨일로프의 외침 소리가 들리고, 이어 '꽝'하고 문닫히는 소리. 그 소리가 도边처럼 모든 소리를 끊어 버린다. 무대는 조용해진다. 저녁 어둠이 깃든다.

[11끌레시치] (소동에도 불구하고 썰매에 걸터앉아 손을 씩씩 비비고 있다. 그러다가 뭣인가를 중얼중얼하는데, 조금씩 들리게 된다)

[페이지] 082

그러니까 어쩌라는 거지? 살아야 하잖아--- (큰 소리로) 살려면 몸 담을 곳이 있어야지--- . 안 그래? 한데. 그게 없단 말야--- . 알몸 하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인젠 더 의지할 곳도 없다--- . 아주 이제는 내버려진 몸이다. (고개를 수그리고 천천히 나간다. 몇 초 동안 기분 나쁜 정? 공장의 기적 소리. 잠시 후 빈터 근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와 혼잡한 음향. 그것이 차차 높아지며 가까워진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분간할 수 있게 된다)

[1바실리사] (무대 뒤에서) 내 동생 내가 때리는데 당신네가 무슨 참견이야--- .

[2꼬스뜨일로프] (무대 뒤에서) 네 놈이 무슨 참견이야?

[3바실리사] (무대 뒤에서) 전과자인 주제에--- .

[4싸친] (무대 뒤에서) 페페르를 불러, 빨리--- 어이 죠프, 한 대 갈겨 줘!

(4―衁) 경찰의 호각 소리.

[5타타르인] (무대로 나온다. 오른 손에 붕대를 감고 있다) 어디 그런법있오? 대낮에 사람을 죽이다니.

애꾸눈 죠프 급히 나타난다, 뒤따라 경찰인 메드베제프도 등장.

[6죠프] 개놈의 새끼. 나도 한 대 갈겨 줬어!

[7메드베제프] 네게 사람을 칠 권리가 있나? 이놈아!

[8타타르인] 그럼 당신은 당신 직무가 뭐야?

[9메드베제프] (노동자를 쫓아가며) 이놈아? 게 있어. 호각을 이리내!

[10꼬스뜨일로프] (무대로 달려 나온다) 아브람! 저놈들 잡아라! 사람을 죽였어--- .

[페이지] 083

(1―衁) 모퉁이에서 끄바쉬냐와 나스쨔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옷이 엉망이 된 나따샤를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다. 그 뒤에서 싸친이, 아직도 두손을 쳐들고 동생을 때리려는 바실리사를 말리느라고 뒤걸음치며 나온다.

[1바실리사] 요년! 요년! 요 개 같은 년!

[2싸친] (바실리사에세) 그만두지 못하겠니? 이 개 같은 것아!

[3바실리사] 듣기 싫어, 이 전과자 놈아! 죽기 아니면 살기다. 차라리 이년을 발기발기 찢어서---

[4끄바쉬냐] (나따샤를 옆으로 데리고 간다) 이이구, 그만두라니까. 인젠 그만해둬요. 왜 그런 난폭한 짓을 해요.

[5메드베제프] (또 들어와 싸친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이놈! 잡았다!

[6싸친] 어이, 죠프! 이 새끼들을 좀 두들겨 패 줘! 페페르--- 페페르---

모두들 붉은 벽돌담 옆 통로에서 한덩어리가 되어 싸운다. 나따샤는 오른쪽으로 옮겨져서 목재더미 위에 올려 앉혀진다.

[7페페르] (모퉁이에서 달려나와 격렬한 몸짓으로 모두들을 밀어 젖힌다) 나따샤는 어디 있지, 나따샤! (꼬스뜨일로프를 보고) 야, 이놈의 새끼---

[8꼬스뜨일로프] (모퉁이 뒤에 숨는다) 아브람! 페페르를 잡아라--- 어어이, 모두 날 좀 거들어 줘! 이 도둑놈--- 날강도---

[9페페르] 무슨 개수작이야--- . 늙은 잡놈의 새끼! (힘껏 꼬스뜨일로프를 때린다. 꼬스뜨일로프는 넘어져서 상반신만을 모퉁이에서 무대에 내놓고 있다. 페페르는 나따샤가 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페이지] 084

[1바실리사] 페페르를 때려 줘요! 모두 저 도둑놈을 때려 줘.

[2싸친] 페페르가 뭐 잘못했어?

[3메드베제프] (싸친에게 호통친다) 주제넘게 네 놈이 무슨 참견이야--- . 이건 집안 싸움이란 말이다. 그런데 나서긴 왜 나서!

[4페페르] (나따샤에게) 어떻게 됐어! 무엇으로 너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어--- . 식칼로 그랬나?

[5끄바쉬냐] 아유 끔찍해, 세상에 그런 짐승이 어딨겠어! 글쎄, 이 애 발등에 끓는 물을 퍼부었단니까--- .

[6나스쨔] 사모바르를 뒤집어 씌웠지 뭐야--- .

[7타타르인] 그건 실수로 그랬는지 모르지. 확실한 것을 조사해 봐야--- 함부로 떠버리는 게 아냐.

[8나따샤] (거의 정신을 잃고) 페페르--- 데려가 줘--- 나 좀 숨겨 줘--- .

[9바실리사] 어머나, 모두들 이것 봐요. 이리 와 봐요, 죽었어! 맞아 죽었어--- .

(9―衁) 모두 길가에 넘어진 꼬스뜨일로프 주변에 모여 든다. 군중 속에서 브부노프가 빠져 나와 페페르 곁으로 간다.

[10브부노프] (작은 소리로) 페페르! 영감이 --- 그만 뻗어 버렸어!

[11페페르]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브부노프의 얼굴을 쳐다본다) 마차를 불러와. 나따샤를 병원으로 데려 갈 테야. 비용? 비용은 내가 낼 테야.

[12브부노프] 그게 아냐. 주인 녀석이 누구한테 맞아 죽었어.

무대의 소란은 모닥불에 물을 끼엊은 듯 조용해진다. 나직하게 외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E) ' 정말이야?' '이거 큰일났는데--- '

[페이지] 085

'이걸 어떡한다?' '가세, 이 사람. 에잇, 빌어먹을.' '어물어물하다가는 안되겠는데--- ' '어서 가세, 경찰이 오가 전에.' '군중이 점점 작아진다. 계속 자리를 뜨는 사람들. 브부노프, 타타르인, 나스쨔, 끄바쉬냐가 꼬스뜨일로프의 시체가 있는데로 달려간다.

[1바실리사] (땅바닥에서 일어나며, 마치 자랑스럽기라도 한 듯이 외친다) 맞아 죽었어! 우리 영감을--- 저기 저놈이 죽였단 말야! 페페르가 죽였어. 내가 똑똑히 봤어! 여러분, 내가 봤단 말이 예요! 페페르, 그래도 경찰에 안 갈테야?

[2페페르] (나따샤에게서 물러 선다) 뭣이 어쩌고 어째? 어디 보자, 비켜, 비켜! (시체를 노려본다. 바실리사에게) 어때! 속 시원하지. (시체를 발로 찬다.) 드디어 뒈졌군, 망할 놈의 영감쟁이! 네 소원대로 말이다.(衁) 이왕이면 너도 죽여줄까? (바실리사에게 덤비려고 한다. 싸친과 죠프가 재빨리 붙든다. 바실리사는 골목으로 숨어버린다)

[3싸친] 정신차려! 왜 이래?

[4죠프] 어어어--- 어디로 날을 테야.

[5바실리사] (다시 나타나며) 페페르, 기분은 어때? 버둥거려 봤자 다 틀렸어--- . 경찰에 가야 할 걸? 아브람 아저씨--- 어서 호각을 부세요!

[6메드베제프] 그 호각을 뺏겼단 말이야. 에잇, 빌어먹을---

[7알료쉬까] 흥, 여기 있지? (호각을 분다. 메드베제프 뒤를 따른다)

[8싸친] (페페르를 나따샤 쪽으로 데려가면서) 페페르, 겁낼 것 없어! 싸움질 끝에 죽인 것은 큰 죄가 안되는 거야--- .

[9바실리사] 페페르를 놓치지 말아요! 범인이예요--- . 내가 똑똑히 봤으니까요!

[10싸친] 나도 서너변 갈겼어--- . 그따위 새끼. 죽이면 어때! 나를 증인으로 불러, 알겠나? 페페르--- .

[페이지] 086

[1페페르] 난 구태여 변명을 안 하겠어--- . 그러나 저 바실리사만은 꼭 끌고 들어가야 해! 저년은 이것이 소원이었거든--- . 남편을 죽이라고 늘 선동을 했단 말야--- . 꼬셨단 말야--- .

[2나따샤] (갑자기 소리친다) 아아--- 인제야 알았다! 그렇군요, 페페르! 여러분, 내 말을 들어 주세요. 두 사람을 공모자예요! 이건 둘이서 짜고 한 일이예요! 그렇죠, 페페르? 당신이 아까 나한테 한 얘기도--- 우리 언니는 이이의 정부예요--- . 다들 알고 계시죠? 소문이 쫙 퍼져 있는 걸요--- . 두 사람은 공모자예요! 언니가 남편을 죽이라고 이 사람에게 선동을 한 거예요. 남편이 방해가 되니까--- . 그리고 나도 방해가 되니까--- . 이렇게 병신을 만든 거예요.

[3페페르] 나따샤, 그게 무슨 소리야--- . 무슨 말을 하는 거야!

[4싸친] 정말 무슨 소리야? 에잇, 망할---

[5바실리사] 거짓말이야. 모두 거짓말이야.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 페페르가 죽인 것이야. 저놈이 혼자서 죽인 것이야.

[6나따샤] 아냐. 둘이 서로 짜고 한 짓이야.

[7싸친] 하― 이건 아닌데--- 이봐, 페페르, 정신차려. 까딱 잘못하면 죽는 판이야.

[8죠프] 도대체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이거 큰일났잖아!

[9페페르] 나따샤! 너 제정신으로 그런 소릴 하고 있나! 내가 저년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10싸친] 저 친구 말이 옳아, 나따샤, 글쎄--- 생각 좀 해 보라구!

[11바실리사] 제 남편을 죽였습니다. 서장님--- 페페르라는 도둑놈이--- 범인은 저놈입니다. 네, 서장님! 제가 봤습니다. 다들 보았지요.

[12나따샤] (거의 무의식적으로 몸부림치며) 여러분--- 내 언니와 페페르 시켜서--- 저기, 저 벼락맞을 사내를 새서방으로 꾀어서--- 둘이 한 짓이예요! 둘 다 잡아서--- 벌을 주세요. 감옥으로 데려 가세요--- . 나도 함께 묶어 줘요--- 나도 감옥에 처넣어 주세요--- . 나도 감옥에---

[페이지] 087

제 1막과 같은 무대. 그러나 페페르의 방은 벌써 없어지고 말았다. 끌레시치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페페르의 방이었던 모퉁이에는 침대가 놓여있다. 그 뒤에 타타르인이 누워 몸을 움직이면서 신음을 하고 있으며 끌레시치는 테이블 저쪽에 앉아서 때때로 손풍금의 조음을 맞추며 그것을 수선하고 있다. 테이블 다른 쪽에는 싸친, 남작, 나스쨔가 앉아 있고 그 앞에는 보드카 한 병, 맥주병 셋, 그리고 큼직한 혹빵 조각 하나가 놓여 있다. 배우는 페치카 위에서 이편저편으로 몸을 움직이며 기침을 하고 있다. 때는 밤. 무대는 테이블 가운데에 놓여 있는 한 개의 램프불로 비추어지고 있다. (E) 창밖에서는 바람소리가 난다.

[1끌레시치] 그래--- 그 영감은 싸움통에 없어지고 말았어--- .

[2남작] 경찰이 오니까 달아났단 말이야--- 마치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거든--- .

[3싸친] 도둑이 제 발 저리다구 죄지은 놈은 대게 그렇게 도망가 버리는 법이야--- .

[4나스쨔] 그래도 퍽 좋은 노인네였어--- . 당신들이야 사람들 축에 드나? 당신들은 인간축에도 못 끼는 찌꺼기야.

[5남작] (보드카를 마신다) 아가씨,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6싸친] 정말 재미있는 늙은이였어--- . 그래 그래, 나스쨔가 아주 홀딱 반했었지--- .

[7나스쨔] 그럼요, 반하기도 하고 사랑도 했어요. 그 노인네는 뭐든지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어--- .

[8싸친] (웃으면서) 말하자면, 그 늙은이는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지.

[9남작] (웃으면서) 시원 섭섭하다. 이 말인가--- .

[페이지] 088

[1끌레시치] 그 사람은 참 인자한 노인네였어. 네놈들에게는 인정이라는게 손톱만치도 없단 말이야--- .

[2싸친] 만일 인정이 있다면 그게 네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

[3끌레시치] 인정은 그만두고래두 날 너무 학대나 말어라--- .

[4타타르인] (침대에 걸터 앉아서 그의 아픈 손을 앞뒤로 어린아이 얼르듯이 흔들고 있다) 참 좋은 영감이었어--- . 마음속에 도덕을 가지구 있었으니까--- 마음속에 도덕을 가지구 있는 사람은 선인(善人) 이야! 그것이 없는 놈은--- 그만 마지막이야--- .

[5남작] 무슨 도덕이야? 공작(公雀)

[6타타르인] 그거 몰라소 물어?--- 도덕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 무슨 도덕인지 네가 잘 알지 않어--- .

[6남작] 흠, 그래서?

[8타타르인] 사람을 학대하지 말라. 이것도 도덕이지!

[9싸친] 러시아에서는 그걸 징계령(懲戒令) 이라구 말하지--- .

[10남작] 또 부칙(附則) 으로서는 시담재판처벌령(示談裁判處罰令) 이지.

[11타타르인] 코―란에는 이렇게 써있지--- . 코―란은 도덕일지어다--- 영혼은 코―란일지어다--- 이거 거짓말 아니야.

[12끌레시치] (손풍금을 시험하며) 이런 우라질, 아직 픽픽 소리가 나네--- . 그건 그렇구, 공작 말이 옳아--- . 사람은 도덕을 지키고 성경말씀을 믿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돼--- 정말---

[13싸친] 그렇다고 고대로 한번 살어 보렴--- .

[14남작] 어디 해보시지--- .

[15타타르인] 마호메트는 코―란을 주고 자, 이것이 도덕이로다 그 속에 써있는데로 행할 지어다 했지만 얼마 안돼 새로운 시대가 닥쳐올 거야--- 그리구 코―란만으로는 충분치 못한 시대가--- 그거구 그때는 또 그 시대에 맞는 도덕이 생길 거야--- . 시대에 따라서 알맞는 도덕이 생기는 것이야--- .

[페이지] 089

[1싸친] 그럴 듯해--- . 즉 그 시대에 와서 처벌령이 생겼단 말이지--- . 하지만 그건 괘씸한 도덕인데--- 너무 심해.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진 않은걸--- .

[2나스쨔] (컵으로 테이블을 친다) 대체 어째서--- (衁) 어째서 난 이런데서--- 당신들과 같이 살고 있어야 하나? 난 어디 먼데라도 가버렸으면 좋겠어. (遁) 세계의 끝까지라도--- 정처없이---

[3남작] 구두도 없이 맨발로, 아가씨?

[4나스쨔] 맨발 아니라 벌거숭이면 어때? 네 발루 기어가두 좋아!

[5남작] 그 꼴 참 보기 좋을 걸. 귀부인이--- 제 발로 기어가신다니---

[6나스쨔] (衁) 암, 기어가구말구요. 난 당신의 그 말상만 안 보게 되는 것만해도 좋아--- .(遁) 아― 난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다 싫어졌어. 이 세상두--- 사람두---

[7싸친] 갈 테면 가라--- 가는 김에 저 배우놈 제발 데리고 가, 그 자식도 떠나간다 떠나간다 하고 있으니까--- . 자식도 정 떨어지지--- 이 땅 끝에서 한 반나절쯤 걸어가면 오르가논을 고치는 병원이 있는줄 알고 있단 말이야--- .

[8배우] (페치카 위에서 머리를 쑥 내밀고) 오르가니즘이야, 이 못난 자식아!

[9싸친] 알콜 중독에 걸린 오르가논 말이야--- .

[10배우] 그렇다, 그는 떠나가고야 말 것이다--- 두고 봐!

[11남작] 그라니, 누군가 각하?

[12배우] 어르신네야!

[13남작] 메르시 여신의 종이여--- 아차, 뭐래더라? 그 비극의 여신은--- 그게 뭐더라?

[14배두] 뮤우즈야, 이 밥통아! 여신이 다 뭐야--- 뮤우즈라는 거야!

[페이지] 090

[1싸친] 라헤시스--- 헤라--- 아프로디테--- 아트로포스--- 뭐가 뭔지 알게 뭐야. 이게 다 그 영감쟁이가 저 배우 녀석한테 나쁜 지혜를 가르쳐 준 탓이야--- 안 그런가? 남작.

[2남작] 그 영감쟁인 얼간이야.

[3배우] 네놈들은 까막눈이야! 야만인이야! 인정머리 없는 무도한 놈들! 두고봐라, 그는 가 버리고 말 테니! '고민하는 인간들이여! 먹고 마실지어다.'--- 이런 말이 베란제의 시속에 있지--- . 옳은 말이야. 그는 반드시 그 땅을 찾아낼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말이야--- 아무것도 없는 곳을---

[4남작]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고 각하?

[5배우] 아무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야--- . '이 구덩이야말로--- 이몸이 묻힐 무덤--- 이 몸은 죽는 것이다. 병들고 시들은 이 몸은' 그런데 자네들은 뭣 때문에 살고 있는 거야? 뭣때문이야?

[6남작] 이것 봐, 왕(王) 인지 천잰진 모르지만 그렇게 개짓듯 짖지 말어--- .

[7배우] 수작말어. 못 짖을 건 어디 있어!

[8나스쨔] (테이블에서 머리를 들고 높이 흔들며) 실컷 짖어 주세요--- 귀가 뚫어지도록 들려 주세요!

[9남작] 여! 아가씨! 그건 또 무슨 말씀이야?

[10싸친] 내버려둬, 남작! 모른 척 해둬! 맘대루 깍깍거리게 내버려둬--- 대갈통이 터지든 골이 빠지든 알게 뭐야! 영감말마따나 남한테 방해만 놓지 말어--- 사실이지, 이게 다 그 영감쟁이가, 그 늙어 빠진 누룩 같은 영감쟁이가 우리들 마음을 부걱부걱 들끓게 만들어 논 때문이야.

[11끌레시치] 그놈의 영감쟁이는 딴 사람들을 모두 유혹해 놓곤--- 그 갈 바를 가르쳐 주지 않았어--- .

[페이지] 091

[1남작] 그 놈의 영감은 사기꾼이야--- .

[2나스쨔] 거짓말 말아요! 당신이야말로 사기꾼 아니고 뭐야!

[3남작] 잠자코 있어, 아가씨--- .

[4끌레시치] 그 영감은 진실이란 걸 싫어했어--- . 이 진실이란 것에 대해선 대단히 반대를 했었지. 그것은 옳은 말이지도 모르거든--- 여기에 무슨 진실이 있어? 진실이 없다고 살지 못하진 않거든. 저 공작을 봐--- 일을 하다가 손을 다치지 않었어? 아무래도 잘라버리지 않으면 안될 거야--- 이것이 진실이야!

[5싸친] (주먹으로 테이블을 친다) 잔말 말어! 네놈들은 모두 개새끼야! 돼지새끼야! 영감을 가지구 어쩌니 저쩌니 말 말어! (약간 부드러운 말투로) 이봐, 남작--- 네놈이 제일 틀렸어. 네놈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밤낮 입만 까고 있단 말이야--- . 그 영감은 사기꾼이 아니야! 진실이 어떻다구? 인간--- 그것이 뭣보다 진실이야! 영감은 그것을 알고 있었어--- . 너희놈들은 그걸 알지 못하거든--- 벽돌장만도 못한 등신들이야. 난 그 영감을 잘 알고 있어. 하긴 영감은 거짓말을 했지--- . 하지만 그 거짓말은 우릴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야--- . 남을 동정해 주기 때문에 거짓말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거든--- 난 그런 걸 잘 알어! 책에도 써있어. 묘하게 애를 써가며 남이 희망을 가지도록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거짓말에두 여러 가지가 있거든. 사람 마음에 위안을 주는 거짓말도 있고 마음을 너그럽게 만드는 거짓말도 있거든--- 또 노동자가 손을 다쳤을 때에 그 아픔을 호소하는 거짓말도 있을게고--- 굶주려 죽어 가는 자를 악당으로 만드는 거짓말도 있거든--- (衁) 거짓말에야 내 환하지! 마음이 약한 놈과 남의 생피를 빨아먹고 살고 있는 놈들에겐 거짓말이란 뭣보다도 필요한 것이야--- . 거짓말은 그따위 놈들에게 용기를 나게 하고--- 편들어 주고 또 따뜻이 껴안아 주거든--- (遁) 그러나 제 스스로 제 몸을

[페이지] 092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나 남의 이마에 흐르는 땀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거짓말이란 전혀 소용없는 거야. 그러니까 거짓말이란 노예와 군주의 종교야--- . 진실은--- 자유로운 인간의 신(神) 이거든!

[1남작] 부라보! 굉장한 말을 하는데! 대찬성이다! 너 제법 신사 같은 소릴 하는구나!

[2싸친] 신사래두 불한당 같은 소리만 하구 있는 세상이야. 불한당이래두 때로는 신사 같은 말도 더러 할 수 있지 않나--- . 난 웬만한 건 거진 다 잊어버렸지만 아직도 조금은 생각나는 것이 있거든! 그 영감말이야? 참 그 영감은 똑똑한 놈이야. 녹슬은 동전에다 유산을 부은 듯이 내 맘에 충동을 줬단 말야--- .(衁) 자, 그 영감의 건강을 위해서 마시자! 한잔 부어라! (나스쨔 맥주 한 잔을 따라준다. 싸친 웃으면서) (遁) 그 영감은 자기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야. 뭣들 보든 남의 것이 아닌 자기 눈으로 보거든--- 내가 한번 그 영감에게 '영감님, 사람은 뭣때문에 살고 있을까요?' 이렇게 물었지--- . (루까의 동작과 음성을 흉내내며) '사람말이냐? 그야 여보게,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낳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게지. 이를테면 여기에 목수 여러 사람이 있다고 하세. 모두 천한 놈들 뿐이란 말야--- . 그래 그 중에서 목수 하나가 나왔는데 그게 또 이 세상에 한 번도 그만한 사람은 나온 일이 없을 만한 명수(名手) 로, 그와 어깨를 겨눌 사람을 하나도 없단 말이야. 그래 그 목수가 다른 목수에게 자기의 기술을 가르쳐 주거든--- . 그러면 목공업이 단번에 20년이나 진보를 하게 되지 않겠나? 비단 이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마찬가지거든--- . 자물쇠장수든 구두수선장이든 그밖에 다른 직공이든--- 또는 농부든지 또는 지주 어르신네든---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게 아니야. 결국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위해서 살고 있는 셈이란

[페이지] 093

말이지! 몇백년 또는 그보다 더 오랜 생애를 모두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낳기 위해서 살고 있는 거야.' (鑁) (나스쨔는 물끄러미 싸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끌레시치는 손풍금을 고치다 말고 말없이 듣고 있다. 남작은 머리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조용히 책상을 두들기고 있다. 배우는 페치카에서 머리를 내밀고 살그머니 침대를 두들기고 내려올려고 하고 있다. 싸친은 다시 말을 계속한다) (鱁) 영감은 다시 말을 이어 '사람은 모두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낳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일세! 그러니까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든 간에 존경해야만 돼--- .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또 뭣 때문에 태어났는지--- 또 어떤 일을 할지--- 그런건 우리들로서는 모르는 일이거든--- . 하지만 틀림없이 우리들에게 복을 끼치고 우리들에게 어떤 이익을 줄지 누가 알겠나! 그러니까 특별히 어린아이들을 존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조그만 어린 아이들에게는 자유로운 천지(天地) 가 필요한 거야! 애들이 자라나는 것을 짓눌러서는 안 돼--. 애들을 존경해야만 해.' (빙그레 웃으며 오랜 침묵)

[1남작] (뭣을 깊게 생각하는 듯이) 음,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낳기 위해서라! 그러구보니 난 우리 집안 일이 생각난다--- . 예카테리나 시대부터 내려오는 가문이야. 귀족이구--- 무관이야--- 불란서에서 온 귀화인야. 러시아 조정을 받드는 동안에 점점 지위가 높아졌어. 니콜라이 1세때는 우리 할아버지 되는 귀스타브 도뵐이라는 사람이 제일 높은 지위를 차지했었지--- 게다가 집에는 재산이 많었고--- 또 몇백 명이나 되는 농노가 있었고--- 그리고 말이라든지 요리인이라든지--- 굉장했었지.

[2나스쨔] 거짓말 말어! 얼토단토 않게!

[3남작] (벌떡 일어서며) 뭐 어째? 또 한번 말해 봐!

[4나스쨔] 거짓말이란 말이야!

[5남작] (악을 쓴다) (衁) 저택이 모스크바에도 뻬쩨르부르그에두

[페이지] 094

있구, 사륜마차, (遁) 가문이 새겨진 사륜마차도 있었단 말이야!

[1나스쨔] 거짓말 말어!

[2남작] 닥쳐! 몇십 명이나 되는 하인도 있었어!

[3나스쨔] (조소하는 얼굴로) 없었어. 있긴 뭐가 있었어!

[4남작] 죽여 버린다!

[5나스쨔] (도망갈 준비를 하면서) 사륜마차가 있긴 뭐가 있어!

[6싸친] 그만해둬, 나스쨔. 놈을 그렇게 약올리지 말어!

[7남작] 어디 보자, 이 화냥년--- . 우리 할아버지는---

[8나스쨔] 네까진 게 할아버지가 다 있어? 아무 것도 없으면서---

싸친 껄껄대고 웃는다.

[9남작] (분노에 못 이겨 펄썩 주저앉는다) 여봐, 싸친, 저 계집년한테 알아듣도록 일러주게--- 아니, 자네조차 웃고 있는가? 글쎄 자네조차--- 내 말을 믿지 않는단 말인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절망적으로 부르짖는다) 정말이야, 제―기럴!

[10나스쨔] (승리나 한 듯이 웃으며) 자, 터졌다! 암만 얘기해두 자기 말을 곧이 들어주지 않을 때 어떤 맘이 되는지 인제 알었지?

[11끌레시치] (테이블 앞으로 돌아오며) 난 또 한바탕 쌈이 벌어지나 했네--- .

[12타타르인] 허, 지질이두 못났다, 참---

[13남작] 난--- 난 그렇게 조롱 받을 사람이 아니야! 내게는 훌륭한 증거와 서류가 있어!

[14싸친] 그런 건 집어쳐 버려! 할아버지의 사륜마차 따위는 일찌감치 잊어버려! 암만 생각한들 옛날 사륜마차에 탈 수야 있겠니?

[15남작] 그렇지만 조것들이 싱글대고 있지 않어.

[16나스쨔] 어떻게 웃고 있나 말 좀 해 보지!

[페이지] 095

[1싸친] 그야 웃었겠지. 이 계집애라구 너만 못할 건 없지 않어. 그야 저 계집애는 옛날부터 사륜마차나 할아버지는 커녕, 어쩌면 애비, 에미조차 다 없을지도 모르지--- . 그러나 아무튼 너만 못하진 않어.

[2남작] (마음을 진정하고) 빌어먹을 자식! 넌 이상하게 사물을 냉정하게 본단 말야. 그런데 난 아무래도 천성이 그렇질 못해.

[3싸친] 그렇게 만들면 되는 거야. 그게 어려운 거야? (사이) 얘, 나스쨔! 너 요새 병원에 가니?

[4나스쨔] 뭘 하러?

[5싸친] 뭘 하러라니, 나따샤한테 말이야.

[6나스쨔] 무슨 소리야! 이제와서 벌써 옛날에 퇴원을 했어요. 나오자마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아요. 암만 찾아도 없어.

[7싸친] 그럼 나오는 길로 바로 꺼졌군.

[8끌레시치] 누가 죄를 뒤집어 쓸지 구경거리야. 페페르가 바실리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울지 바실리사가 페페르한테 죄를 뒤집어씌울지.

[9나스쨔] 그야 바실리사가 이기지, 여간 불여우래야지--- . 그러니 아무래도 페페르가 징역을 살게 될 걸

[10 싸친] 쌈하다 죽인거니까 금고면 될 거야.

[11나스쨔] 아이, 분해! 아주 징역이나 가 버렸으면 깨소금 맛일 걸, 당신들도 모두 징역사릴 보냈으면 속이 시원하겠어--- 구덩이에다 쓰레기 넣듯 말이야.

[12싸친] (놀란 듯이) 뭐라고 짖어대! 미쳤니?

[13남작] 건방진 소릴 까봐, 뺨싸대길 후려갈길 테니!

[14나스쨔] 갈겨 봐요! 털끝만치라두 건드려 봐!

[15남작] 아, 그럼 못 갈길 줄 알어!

[16싸친] 관둬, 내버려둬--- . '남을 학대치 말라'고 했어. 이거 암만해도 그 영감 생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는 걸. (웃는다) 남을 학대치 말라!--- 만일 단 한번이라두 남의 학대를

[페이지] 096

받는다면 가만두지 않어---

[1남작] (나스쨔에게) 잘 알아둬! 난 너따위하구 한패가 될 사람은 아니니까--- 알겠지?

[2나스쨔] 흥, 뭣이 어째? 딱두하지. 넌--- 너는--- 내 덕에 살구 있지 않어? 능금 덕택으로 사는 능금버러지처럼--- (남자들 모두 웃는다)

[3끌레시치] 에잇, 못생긴 년! 그래 넌 어여쁜 능금이다.

[4남작] 기가 맥혀 화두 안 나네--- 저따위를 데리고.

[5나스쨔] 흥, 웃어? 아무리 속이려 해도 소용없어! 모두들 우습지도 않으면서!

[6배우] (음울하게) 저젓들 때려눕혀 버려!

[7나스쨔] 맘대루 된다면--- 그저--- 한꺼번에, (테이블 위에서 술잔을 들어 마룻바닥에 던져 깨뜨리며) 요렇게!

[8타타르인] 뭣때문에 그릇을 깨뜨려?

[9남작] (일어나며) 어디 보자! 내 요년을 한번 혼을 내줘야지!

[10나스쨔] (도망가며) 맘대루 하라지!

[11싸친] (여자 뒤에서) 대강해 둬, 누굴 또 들볶을라구 이래, 왜 그러는 거야?

[12나스쨔] 이 새끼! 일찌감치 뒈져라, 이 새끼야! (퇴장)

[13배우] (음울하게) 아―멘!

[14타타르인] 기가맥혀, 러시아 계집년들이란 도무지 틀렸거든--- 손 댈 수 없는 심술쟁이들 뿐이야. 타타르 여자들은 저렇지 않어. 도덕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15끌레시치] (손풍금을 쳐보며) 자, 됐다! 그런데 임자가 와야지--- 또 취한 모양이로군.

[16싸친] 자, 술이나 들어!

[17끌레시치] 이거 고맙네 근데 고만 잘 시간인데---

[18싸친] 어때? 인젠 여기 좀 익숙해졌나?

[페이지] 097

[1끌레시치] (한 잔을 마시고 침대로 간다) 아무렇지도 않어. 이렇게 되고 보니, 어디든지 사람은 있단 말이야--- 처음엔 서툴렀지만 차차 알고 보니 역시 모두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됐어--- 인젠 아무렇지도 않어---

(2-衁) 타타르인 침대 위에 무엇을 펴놓고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를 드린다.

[2남작] (싸친에게) 저것 봐!

[3싸친] 내버려두게, 녀석 쓸모있는 놈이야--- 훼방놓지 말아! (크게 웃는다) 오늘은 내 맘이 유난히 얌전한 걸--- 어떻게 된 셈이냐?

[4남작] 자네야 한 잔 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사람이 좋지. 똑똑하구---

[5싸친] 난 술만 먹으면--- 세상만사가 경치게 좋아지거든. 흥, 저놈은 기도를 하고 있나? 기특한 놈이로군! 사람이란 신앙심을 가지든 안 가지든 상관없어. 제맘 내키는 대로 거든!

인간은--- 자유거든--- 어디까지나 제 일을 제가 처리해 나가고 있거든--- 신앙을 가지든 말든, 사랑을 하든, 생각을 하든, 인간이란 제각기 제 할 일을 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인간은 자유야--- . 인간은 진실이야! 그러나 대체 인간이란 뭐야! 그건 너라든지, 나라든지, 또는 저것들이라든지, 이런 손톱만한 게 아니야. 그건 너두, 저것들두, 루까 영감두, 나폴레옹두, 모하메트두, 모―두를 함께 모은 거야. (공중에 사람 형체의 윤곽을 그린다) (衁) 알겠나? 인간이란 이렇게 큰 거야. 모―든 것의 시초와 모―든 것의 종말이 이 속에 포함돼 있거든--- 모―든 것이 다 인간 속에 있는 거야. 모―든 것이 다 사람을 위해서 있는 거야.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인간이 있을 뿐이고--- 그밖의 것들은 모두 인간의 손이나 머리로 만들어진 거야. 인―간! 굉장하지! 제법 거만하게 들리지 않느냐 말이야. 인―간! 인간이란

[페이지] 098

본래부터가 가엾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존경해야 할 성질의 것이야--- . 가장 동정합네 하구 남에게 모욕을 줘서는 안 돼. 존경하지 않으면 안 돼. (鑁) 어때, 남작!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 축배를 들자! 자기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의 마음이란 참으로 유괘하거든--- 난 전과자다--- 살인한 놈야. 사기도박도 한다--- 내가 거리를 지나가면 굉장한 불한당이나 지나가는 줄 아는지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들 본단 말이야--- 피해가면서, 등 뒤에서 바라보고 섰거든, 그리곤 변변치 못한--- 뻥쟁이--- 네놈은 왜 노동을 하지 않는 거야--- 노동을 하라고! 뭐때문에 노동을 해! 배불리 먹자구?(鱁) (껄껄 웃는다) 난 도대체 배부르게 먹을려는 놈이 제일 싫거든--- 그따위 짓을 해서 무슨 소용이야. 그렇지 않나, 남작! 아무 소용없어--- .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야--- . 인간은 부풀어 오른 밥통보다는 훨씬 고상한 거야.

[1남작] (머리를 흔든다) 넌 제법 이치를 잘 따진단 말야--- (衁) 나쁘지 않은 일이야--- 그걸루 맘이 풀릴 수 있단 말이지--- . 허지만 난 그렇질 못해--- . (주위를 돌아보고 다시 말을 계속한다) 여보게 친구, 난 때때로 무서워진단 말이야--- 알겠어? 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면 맥이 탁 풀려버리거든--- .

[2싸친]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못난 자식, 인간에게 무서운 건 아무것도 없어.

[3남작] 들어 보란 말이야. 철이 난 후로는--- 내 머리 속에는 언제든지 안개가 끼어 있는 것 같어. 내 신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도무지 몰랐어. 내 일생은 그저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기만 한 것 같이 생각돼--- 왜? 몰라!--- 난 공부도 했어. 귀족 학교의 제복도 입었어--- . 허지만 뭣을 배웠는지 하나두 남은 것이 없어--- 모르겠어--- 그리고 난 장가를 들었어---

[페이지] 099

연미복을 입었지. 그리고는 잠옷도 입었어. 몹쓸 여자를 떠맡았어--- 뭐하려고? 모를 일이야. 그리고는 있는 대로 홀딱 써버렸어--- . 그리고는 너절한 회색 헌 윗도리를 입고 누―런 바지를 입었어--- . 그런데 난 어떻게 해서 이렇게까지 몰락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야. 그 뒤에 난 관청 일을 보게 됐어--- . 그리곤 공금을 소비했어. (衁) 죄수복을 입게 되었지--- 그리곤 그대로 여기로 왔단 말이야--- 그야말로 꿈이야--- 뭐, 우스운 얘기야.

[1싸친] 우습긴 뭐가 우스워--- 쓸데없는 소리지.

[2남작] 그렇지--- 나두 쓸데없다구 생각하고 있어. 허지만 나두 무슨 목적이 있어서 태어났을 테지--- 그렇지 않은가?

[3싸친] (웃으면서) 그야 그럴 테지. 사람은 자기보다 훌륭한 사람을 낳기 위해서 태어나는 거야.

[4남작] (머리를 흔든다) 그렇다--- 그래, 틀림없이 그럴 꺼야. 그런데 나스쨔란 년, 기어이 도망가고 말았어--- . 어디 가 숨었는지 찾아봐야지. 아무래두 그 계집은--- (퇴장) (사이)

[5배우] 여봐- 타타르, (사이) 전하, 각하, (타타르인, 배우에게 고개를 돌린다) 날 위해서 기도 좀 해 주게.

[6타타르인] 뭐야?

[7배우] (조금 더 작은 소리로) 기도 해 주--- 게. 내 몫으루.

[8타타르인] (잠시 말없이 있다가) 네가 기도 드리렴.

[9배우] (별안간 페치카에서 기어내려와 테이블 위에 떨리는 손으로 보드카를 한잔 따라 마시고 황급히 문간으로 퇴장) 난 그만 간다!

[10싸친] 얘! 이봐! 얼간아! 어딜 가는 거야? (체, 하고 혀를 찬다)

(10―衁) 솜 든 여자용 자켓을 입은 메드베제프가 끌레시치와 브부노프와 함께 등장. 두 사람 다 얼큰하게 취해 있다. 브부노프의 한 쪽 손에는 만두봉지, 또 한 손에는 마른 청어를 들고 있고 겨드랑이엔 보드카 병을 끼고 윗도리 주머니에도 한 병이 들어 있다.

[페이지] 100

[1메드베제프] 낙타는--- 당나귀의 일종이야, 그저 귀가 없을 뿐이지.

[2브부노프] 좀 그만두게--- 자네두 당나귀의 일종이지 뭐야.

[3메드베제프] 낙타에겐 귀가 하나두 없거든--- 그러니까 코루 듣는단 말야---

[4브부노프] 야! 친구! 난 자넬 찾으려구 술집으로 식당으로 찾아다녔네--- . 이 병을 좀 꺼내주게, 두 손 다 쓸 수가 없어.

[5싸친] 만두를 책상에 놓으렴--- 그럼 한 손은 쓰게 될테니.

[6브부노프] 아, 그렇군! 넌 참--- (메드베제프에게) 들었나? 이 법률가야--- 이 녀석은 참 약삭빠른 녀석이야.

[7메드베제프] 도둑놈들은 다 그렇지. 난 옛날부터 알고 있어--- 약삭 빠르지 않고는 영업이 안 되거든. 보통 사람같으면야 얼간이래두 상관없지만 소매치기, 꽃제비한테는 약은 꾀가 필요하거든--- 그런데 지금하던 낙타얘기 말이야--- 그건 네가 틀렸어. 낙타는 사람을 태우는 동물이야--- (衁) 뿔이 없어--- 이빨두 없구---

[8브부누프] 이 껄짜패들이 모두 어디 가 쳐박혔어? 한 놈두 없지? 야! 모두들 나와 봐--- . (遁) 오늘은 내가 한턱 낼 테니. 누구야? 그 구석에 쳐백혔는건--- .

[9싸친] 이 등신아, 당장 써버리기야?

[10브부노프] 뻔하지 뭘 그래. 오까짓 밑천을 모아 뭐하느냐 말이야--- 죠프! 대체 조프는 어딜 갔어?

[11끌레시치] (가까이 오면서) 그 녀석은 없나?---

[12브부노프] 우우우-르르르 부르떡 부류류--- 떠류류부, 부류류--- 마셔라! 먹어라! 머릴 들어! 모두들 맘껏 들어 주게! 난 그러는 게 좋더라! 이 사람들 내가 부자라면--- 공짜 술집을 낼 테야!--- 그렇지--- 악대와 합창대를 데려오구--- 언제든지 오너라! 맘껏 마셔라! 먹어라! 들어라! 영혼을 깨끗이

[페이지] 101

씻어라--- 돈없는 가난한 녀석들만 오너라--- 돈 안드는 술집으로--- . 싸친, 그렇게 되면 내가 너에게 전 재산의 반을 나눠줄 텐데 말이다--- . 자, 이 밑천 반만 받아 주게--- 받어 줘.

[1싸친] 아주 다 내놔!

[2브부노프] 다 내놔라? 밑천을 다 내라--- 주구말구. 자, 1루블--- 또 1루블, 50까베이까가 둘--- 인제 그만이다.

[3싸친] 근사하다. 내게 맡겨두면 틀림없지--- 이걸루 잃은 걸 도루 찾어와야지--- .

[4메드베제프] 내가 증인이다--- 넌 저 녀석한테 돈을 보관해 달라고 위탁을 했단 말이지. 그런데 얼마지?

[5브부노프] 오! 너야. 네놈은 --- 낙타야--- 우리들 사이에 증인이 다 무슨 소용이야.

[6알료쉬까] (맨발로 들어온다) 친구들! 이렇게 발이 젖었단 말이야.

[7브부노프] 자, 아주 적시는 김에 목까지 적셔라--- 그럼 위아래가 다 축축 얼큰할 테니--- 그놈 참 귀엽거든. 노래두 잘 해--- 악기도 잘 켜--- 참 똑똑하거든--- 허지만 마시진 마라, 너무 지나치겐 말이야--- 술은 신상에 해로우니까--- 친구, 너무 마시면 대단히 해롭단 말이야.

[8알료쉬까] 당신이야 그렇겠지, (衁) 매일 술 한 잔 해야만 사람값을 하는 사람이야. 끌레시치! 손풍금은 고쳤나? (노래하며 춤춘다) 이 내 몸이 이같이 곱지 않으면 교모(敎母) 가 그렇게는 사랑 않겠지. 난 왼통 꽁꽁 얼었어. 에이, 추워!

[9메드베제프] 응, 그런데 그 교모란 대체 누구란 말이야?

[10브부노프] 얘, 이 녀석아! 인젠 그 버르쟁이 좀 집어쳐라--- . 너같은 녀석은 알 필요가 없어--- 너는 인젠 경찰이 아니고 미역국이야. 경찰도 아니고 큰아버지도 아니야.

[페이지] 102

[1알료쉬까] 그저 큰어머니의 남편일 뿐이야.

[2브부노프] 네 조카딸은 하나는 감옥에 있구 또 하나는 죽어가구 있어.

[3메드베제프] (거만하게) 그건 거짓말이야. 걔는 죽어가구 있지 않어! 행방불명이지---

[4싸친] (껄껄대고 웃는다)

[5브부노프] 마찬가지지, 이 사람아. 조카 없는 사람은--- 큰아버지가 아니거든.

[6알료쉬까] '각하! 교모에겐 돈이 있어도 나에겐 한푼 없지요. 그 대신 어디까지나 나는 받는 사람이라오.' 아이 추워!

(6-衁) 죠프 등장, 이때부터 막이 내릴 때까지 3~4인의 남녀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서 신음한다.

[7죠프] 브부노프, 왜 도망을 친거야?

[8브부노프] 자, 이리 와 앉게. 이 사람 한 마디 부르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어때?

[9타타르인] 지금은 밤중야--- 잠잘 때야--- 노래할 테면 낮에들 해!

[10싸친] 부르게 내버려두게, 각하! 자네두 일루 오게나--- .

[11타타르인] '부르게 내버려두게' 라구? 시끄러워 견딜 수 있어야지---

[12브부노프] (타타르인 쪽으로 가며) 각하, 손은 어떻게 됐나? 수술을 했나?

[13타타르인] 수술을 하다니 될 말인가? 좀 더 형편을 봐야 한대. 아마 잘라내지 않아두 괜찮을 모양야--- . 손은 돌이나 무쇠로 된게 아니야. 잘라낼려고 들면 잠깐이지.

[14죠프] 너두 신수가 불길한 놈이다--- . 한 손을 잘라내면 넌 정말

[페이지] 103

죽을 거야. 우리들 밑천이라곤 팔과 어깨뿐 아닌가? 팔이 없어지면 그만 죽는거나 마찬가지야--- . 자, 이리 와 보드카나 한 잔 하게--- 생각하면 뭘 하나---

[1끄바쉬냐] (등장) 아아- 다들 모였군--- . 참 날씨도 퍽 춥지--- . 진눈깨비가 쏟아져서 그 춥기란--- 우리 나으리 여기 오셨나? 여보, 서장 나으리!

[2메드베제프] 여기 있어!

[3끄바쉬냐] 저런,내 자켓을 또 입구 있구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옳지, 또 한 잔 했구려--- 어떻게 된 셈요?

[4메드베제프] 브부노프--- 의 생일이 돼서--- 게다가 날두 차구--- 질퍽거려서---

[5끄바쉬냐] 날 봐요, 진눈깨비가 와서! 그만두고 어서 가 잠이나 자요!

[6메드베제프] (부엌으로 퇴장) 자라구? 그것두 좋지! 같이 잘 시간이 됐는 걸 (퇴장)

[7싸친] 저 친구한테 왜 그리 못살게 구는 거야?

[8끄바쉬냐] 그럭허는 게 제일이죠. 난 장난으로 살림을 차린 게 아니니까. (衁) 저이는 저래봬도 군인다운 성격을 가진 분이야. 당신들처럼 그저 깡팬 아니란 말야. 난 여자니까 당신들 같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살 수 있어요? 누구한테 의지할 사람이 있어야지--- . 그런데두 저인 또 술을 마시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

[9싸친] 영감을 얻는데 해필 저것이야? 잘못 골랐는 걸.

[10끄바쉬냐] 천만에요. 그래두 저인 좋은 사람이예요. 우선, 당신 같으면 나하구 살자고 할 테유? 설사 산다구 하더라도 열흘두 못 갈 걸--- . 투전이나 해서 내 겁데기꺼정 다 뺏겨갈 걸--- .

[11사친] (소리 높여 웃는다) 옳은 말이야. 자네가 팔아먹을 걸!

[12끄바쉬냐] 그걸 그렇다구 하구--- 알료쉬까!

[페이지] 104

[1알료쉬까] 왜?

[2끄바쉬냐] 그런데 넌 내 말을 뭐라고 풍기구 댕겼어?

[3알료쉬까] 나말이요? 이말 저말 다 했지. 그저 대답할 꺼리는 다 했지. 예편네라고--- 아주 지독한 예편네라고 했지--- 고기하구 기름하구 뼈다구하구 해서 삼십 관도 넘어 된다구--- 그러구 뇌골이라고는 한 돈쯤도 못된다고

[4끄바쉬냐] 거짓말 말어! 난 훌륭한 뇌골을 가지구 있어--- . 너 어째서 내가 우리 영감을 두들겨 팬다고 풍기고 댕기니?

[5알료쉬까] 당신이 영감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하길래 때리는 거나 마찬가지로 알았지요.

[6끄바쉬냐] (웃는다) 망할 자식! 왜 남의 집 흉을 모조리 풍기구 댕겨? 그런 말을 하니 그인들 속이 좋겠니?--- 안 먹던 술을 또 먹―기 시작한 것두 너가 한 소리가 귀에 거슬린 까닭이야--- .

[7알료쉬까] 그러고 보니, 암탉까지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빈말은 아니로군!

싸친과 끌레시치, 소리쳐 웃는다.

[8끄바쉬냐] 수작은 잘한다. 대체 넌 어디서 생겨난 자식이야! 어떻게 생겨먹은 녀석이야?

[9알료쉬까] 훌륭하신 분이지. 잘 났다구 소문이 자자한 분이시여. 마음먹은 거쳐놓고 못하는 일은 하나도 없는 사람이야.

[10브부노프] (타타르인 침대 옆에서) 자, 일어나! 아무튼 오늘은 자게 놔두지 않을 테니까. 신나게 한번 때려 부시자, 밤새도록. 어때? 죠프!

[11죠프] 때려 부신다? 좋구 말구.

[12알료쉬까] 난 한 곡조 뜯지!

[페이지] 105

[1싸친] 그럼 난 듣겠네.

[2타타르인] (미소를 띠며) 에라! 경을 칠. 따라라, 마시자! '놀자, 놀자, 절씨구! 놀자, 인생 한 번 죽어지면 그만이다.'

[3브부노프] 싸친, 이 사람에게 한 잔 따라 주게. 죠프, 앉어. 아! 여보게들, 사람이 흥이 나게 살려면 그거 얼마 안 들거든. 나를 봐라! 나 같은 건 몇 잔 안 먹었어두 이렇게 기쁘거든. 죠프, 자, 시작해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노래를. 나두 하지. 그리구 맘껏 울어 보자!

[4죠프] (노래한다) 해가 뜨나 해가 지나

[5브부노프] (받아서) 감옥 속은 어둡구나.

이때 문이 갑자기 열리며, 남작 문턱에 서서 외친다.

[6남작] 이보게들--- 이봐! 빨리 와! 빨리들 나와! 바깥 마당에서--- 배우가--- 목을 매달았어! (일동이 침묵. 남작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남작 뒤에서 나스쨔가 나타난다. 눈을 크게 부릅뜨며 천천히 테이블 쪽으로 걷는다)

[7싸친] (조그맣게) 못난 자식! 한참 신나는 판에 잡쳤네---

-막-

'희곡 공감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 창녀의 노래  (0) 2006.08.07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  (0) 2006.03.22
북어대가리  (0) 2006.03.15
사천 사는 착한 사람  (0) 2006.03.12
용띠 위에 개띠  (0) 2006.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