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늙은 창녀의 노래
[페이지] F01
극단 완자무늬 95년 가을
양희경의 모노드라마
늙은 창녀의 노래
송기원 작
김태수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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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손님, 들어가도 될께라우? 예, 그럼 실례하겄구만이라우.
오메, 여태까장 그렇게 서
계셨든게라우? 하기사 손님 맘을 알 것 같구만이라우. 꼬딱지만한 방도
그렇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이부자리도 그렇고, 무신 정내미가
붙을거이요? 됩데 만정이
떨어졌겄지라우. 그래도 우짤 것이요? 진밤 새신담서 밤새도록 서 있을 수만은
없응께 그만 이 쪽으로
앉으시요. 아매도 이 쪽이 멩색은 아랫목일 거이요.
참, 손님, 주제 넘게 손님한테
한 가지 여쭤보고 잡은 것이 있는디, 괜찮겠능게라우? 뭣이냐고라우?
글씨요, 별 건 아니구만이라우. 그래도 손님 얼굴을 봉께 멜갑시
궁금해지만이라우. 뭣이냐먼, 그랑께,
왜 해필이면 손님이 나같이 나이 묵은 여자를 찾는다요? 찾으면 안된다는 것이 아니고라우.
젊고 이쁜
아가씨들을 놔두고 해필이면 나이 묵은 여자를 찾응께 한번 해본 소리여라우.
대답하기 에로우시면
대답 안해도 괜찮구만이라우. 손님은 손님 나름대로 무신 사정이 있겄지라우.
손님이 난처한 표정을 하싱께 나가 공연시
죄송하구만이라우. 사실은 여그 주인 할마시가 날 데러와서,
생기긴 멀쩡허게 생겠는디 나이 묵은 여자를 찾는담서,
그건 무신 변태여? 하고 묻질 않겄소? 오메,
나가 한 소리가 아니고 주인 할마시가 한 소리랑께요. 또 설사 손님이 변태먼
대수다요? 설마한들 나럴
죽이기야 할라고라우. 아녀라우, 손님을 변태로 믿는다능 거이 아니고, 됩데 손님 얼굴을 봉께 안심이
돼야서 나가 농담 잠 했어라우.
저어, 손님이 아무래도 객지분 같은디, 나가 틀렛능게라우? 우찌께
알았냐고라우? 그거이사 손님이
말씀하시는 걸 보고 알았제라우. 사투리도 안쓰고, 힛빠리 골목에
대해서도 잘 몰른 걸 봉께 여그
사람이 아닌갑이다 하고 짐작한 거제라우. 그란디 우짠 일로 이
아랫녁까지 오셌다요? 무신 사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디, 근다고 맘 펜하게 놀로 댕기는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오메,
나가 첨 보는 손님한테 벨 걸 다 물어보요잉?
간첩은 아닝께
안심해라고라우? 오메, 나는 참말로 그런 뜻이 아니었구만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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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을 그렇게 들었다면
미안하구만이라우. 나가 벨로 말이 많은 펜은 아닌디, 손님한테는 요상하게
궁금증이 생게서 그랬소. 뭔지 몰르게 손님은 다른
손님들하고는 잠 달러라우. 요런 디 댕길 분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라우. 요런 디가 우째서 그러냐고라우?
하기사 올 사람 따로 있고 못올 사람 따로
있을랍디요만은, 그래도 손님이 보다시피 여그가 어디 사람 살
뎁디여?
아니, 나 말은 그런말이 아니구만이라우. 뭐이냐, 긍께, 여그는 나 같이
몸포는 여자나 또 그런
여자를 찾어오는 손님들이나 참마로 밑바닥 중에서도 밑바닥 사람들뿐잉께
하는 소리여라우. 사람이
좋고 나쁘고 그런 말이 아니었어라우. 나도 잘 모르제만 아가씨하고 한 번 노는 디 꽃값을 오천원 받는
디는 전국에서도 여그밖에 없다등만요. 오천원도 어디 다 꽃값인게라우? 거그서도 방값
지하고 또
소개비 지하고 그러면 반밖에 안 될 거이요.
술이라우? 술이야 쬐깜씩은 하지라우. 인자
봉께 손님 기분파요잉. 뭣이냐, 이런데와서 술 사다
잡술라고 그라는 손님들도 벨라 없어라우. 기냥
아가씨들하고 자기 바쁘제 언제 술 사다 마시고 어쩌고
할 정신이나 있간디라우. 그라먼 쬐끔난 지달리시요.
손님, 안주가
빈빈찮아서 깡술 잡수시는 거이나 마찬가질 텐디요잉. 요 앞 가게에서 땅콩하고 오징어
잠 잤어라우. 무신 진안주 잠 마련하면 좋을 텐디
이런데서 구할 수가 있어야제라우.
뭣이라우? 나만 있으면 된다고라우?
오메, 손님은 우찌게 말씀도 듣기 좋게 잘 하신다요?
말씀만이라도 고맙구만이라우. 이왕에 손님이 나 같은 것을 그렇게 듣기 좋게 칭찬해 주셌응께 나가 그
대답으로 한 잔 올릴라요.
자, 내 잔 한 잔 받으시요. 오메 나도 주신다고라우.
이렇게 손님하고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싱께 멜갑시
기분이 이상해지만이라우. 뭣이냐, 손님을 오래
전부터 알았던 그런 기분이랑께요. 그라고 여그
가슴패기가 잠 간질거린 것 같고라우. 술이 좋기는
좋구만이라우. 나도 아까 손님이 장승모냥 멀뚱하게 서계신 것을
봉께 맘이 안좋았었는디라우. 이런 디
와서 나 같이 나이 묵은 여자를 찾응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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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뭐인가 놈 몰르는 사연이 있는 분이 분명한디라우.
기냥 나 같은 것하고도 놀다가 보먼
쬐깜이라도 손님 기분이 풀릴랑가 모르겄소. 자,
지가 한 잔 드릴 텡께 쭈욱 잡수시고 맘에 맺힌 일
같은 것은 훌훌잊어뿌시요.
내 나이가 멧살이냐고라우? 마흔 하나여라우.
나이가 너무 많아서 실망하셌소? 오메,
동갑이라고라우? 손님은
그렇게 안봤는디 나이보다는 영 젊게 보이요. 이런 디 있는 여자들 중에서
나가
나이가 젤로 많냐고라우? 아녀라우. 오메, 손님이 보시기에 우짤지
모르제만 나는 그래도
그렇게까장 늙은 펜에 끼지는 않어라우. 여그 있는 여자들 중에서 쉰 여덟 묵은 할무니도 있소. 그랑께
이 힛빠리골목에는 나 같이 나이 묵은 여자들이 한 오십 명은 될 거이요, 그라고 그런 여자들 중에서
가정이
있는 유부녀들도 있구만이라우.
오메, 왜 그렇게 놀란 얼굴을 하신다요? 유부녀들이 왜 나오냐고라우?
아니, 손님은 참말로 몰라서
물으시는 게라우? 긍께 옛날부터 목구녕이 포도청이라고 안합디여. 굶어죽을 수
없응께 할 수 없이
나오는 거제라우. 그런 여자들은 집에다가는 공장에 밤일하러 댕긴다고 그란다등만요.
나보고
이런 디 있을 것 같지 않다고라우? 설마 술 쬐깜 잡수시고 벌써 취하신것은 아니제라우?
말씀만이라도 고맙제만 이런 디서 생활한 지 이십년이 넘소. 놀라셌지라우? 말이 이십년이제, 요즈음
곰곰이
돌이케 보면, 참말로 무신 꿈 같어라우. 그것도 긴 꿈이 아니고, 뭐시냐. 꾸벅꾸벅 졸다가
한소끔 딱 꾼 그런 꿈같은디 그거이 이십년이랑께요.
이십년 동안 나는 한 번도 여그를
떠나본 적이 없소. 글다봉께 나는 안직도 바깥 시상이 우찌게
생겠고, 우찌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라우. 사람들이 거짓말이라고 그랄 것이요만 나는 참말로 여그서
손님 받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몰르고 살아왔어라우. 나는 자랑은 아니요만 지금까지 몸 포는 일
외에는
누구를 속에 본적도 없고 해꼬지해본 적도 없구만이라우. 나가
이런 이약을 항께 못
믿겄지라우? 믿는다고라우? 설마하니 진담은 아니시지라우? 아니, 진담이 아니라도
고맙구만이라우.
말이 나왔응께 말이지라우. 빈대도 낯짝이 있다고, 나이 들어서까장 이런 디 나올랑게 스스로도 사람
같지가 않소. 맘 잡고 안나올라고 해도, 남들모냥 남펜이 있소? 자석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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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방에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보먼 인생이 기냥 허전해서 겐딜 수가 없어라우. 돈도 돈이제만---.
딴 것이
있당께요. 징허제만 겔국은 여그가 바로 나를 밥 믹에 살레준 덴께. 이런 디도 사람이 사는
디라고 정이
들었든갑서라우.
나이 마흔이 넘응께
이런 징헌 디도 정이 들어라우.
열여덟살짜지
처녀가
남자가 뭔지도 모르고 들어와
오메, 이십년이 넘었구만이라우.
꼭 돈 뗌시 그란달
것도 없이
손님들이 모다 남 같지 않아서
안즉까장 여그를 못 떠나라우.
썩은 몸뚱어리도
좋다고
탐허는 손님들이
인자는 참마로 살붙이 같어라우.
가만 있어라,
인자 봉께 손님이 참 간살맛소잉. 왜냐고라우? 슬금슬금 술 멕에놓고 벨수런 소리를
다하게 만등께 그라제라우. 그라고
봉께 손님 앞에서 이렇게 속맘을 털어놓고 이약을 하는 거이 아매도
손님이 첨일 거이요. 손님이 내말에
장단을 맞치는 바람에 나가 그만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괜한
것까지
나불거렛소.
오메, 손님. 그거이 무슨 베락 맞을 소리다요? 아무리 놈 듣기 좋은 소리를 하드라도 골라서 하시제,
그런
말은 하늘이 들을까 무섭구만이라우. 시상에 몸 포는 요자보고 당신처럼 곱고 참허게 산 사람도
없다고 하먼,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여자가 있을 게라우? 아무리 바보천치라도 귀가 간지럽다고 폴짝
뛸 거이요. 손님도 인자 봉께 참말로 승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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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구만이라우.
아니, 그라먼 나보고 참말로 손님 말을 믿어란 말이요? 나가 그처럼
바보 천치로 보이요?
아녀라우. 아녀라우. 그런 것은 아녀라우. 손님이 나한테 공연시 거짓말하고 그럴
분처럼 보이지는
않구만이라우. 나 같은 천한 여자한테 뭘 얻어묵것다고 손님이 속에도 없는 말을 할 거이요. 그렇제만
너무 얼척이 없어서 안그라요? 참말 이제 그런 말은 마흔이 넘도록 살먼서 첨 들어봤소.
인자 봉께 손님은
여그 잘 댕기는 따른 손님들과는 많이 달르구만이라우. 나가 이런 소리를 해서
쓸랑가 못쓸랑가 모르겄소만,
손님은 뭐이냐, 말씀하는 것도 그렇고 또 맘 씀씀이도 그렇고, 남보다는
높은 공부를 한 분
같어라우. 긍께 왜 사람들이 속된 말로 하는, 그 뭐이냐, 가방끈이 질다고
그라든가, 하야튼 대핵교 공부같은 거이 높은 공부가 아니겄소? 그랗제만 아까 손님이 하신
말씀은
지가 안들은 걸로 할라요. 요모조모로 생각해봐도, 오메, 이날이때것 몸만
폼서 살아온 여자보고,
당신처럼 곱고 참허게 산 사람도 없다는 그런 말은 할 소리가 아니제라우.
아무리
나가 못배왔지만 그것은 알것구만이라우. 나한테는 손님이 됩데 욕처럼 들리는디오, 물론
손님이
나한테 욕할라고 한 소리가 아니단 것은 알제만, 한펜으로 나도 내 꼬라지를
몰르는 것이
아닌디 무작정 손님 말씀에 놀아날수는 없제라우.
지금까장은 손님을 좋게만 봤는디 그것도
아니갑서러우. 뭐인지는 잘 몰를겄제만 손님이 잠 무서운
생각이 든당께요. 참말로 요상하요잉.
손님한테 그 말을 듣고난께로 뜬금없이 풀다리에 힘이 쭉
빠져불면서 무신
가심애피라도 걸린 것모냥 가심이 울렁울렁 한디요. 우짠 일이까잉. 술은 얼매
마시지도 않었응께 술땀시 그란것은 아닌디, 안그런다 안그런다 함서도 아무래도
나가 손님 말에
놀아난 모냥이요.
그라고 보먼 나도 곱고 이쁜 시절이 아조 없지는
않제라우. 나한테도 그런 시절이 있기는 있었소.
나이를 묵어서 늙어강께 그란지 몰라도 요새는 꿈에 자주 고향을 보요. 그라먼
꿈속에서는 반다시 나는
열여덟살짜리 숫처녀로 나타는디 꿈속에서도 나가 그렇게 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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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쁠 수가
없어라우.
이왕 손님한테 보일 디 못보일 디 없이 미친년 속가랭이모냥 까발게 부렀응께 말이제만, 요새는 꿈꿀
때 말고도
열여덟살 처녀적 나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난단 말이요. 나가 안직은 망녕 들 나이도 아닌디
그라요.
말 꺼내기에도
참 부끄러운 이약이요만은 손님을 받다보먼 자석 같은 떠꺼머리 총각들도 있어라우.
그런 총각들을 손님으로
받고 있다보면 우짠지 아요? 나도 뜬금없이 총각들하고 똑 같은 숫처녀가 된
것모냥 수집어 함시롱 난중에는 얼굴까장 빨개진단
말이요.
열아홉, 스무살짜리 떠꺼머리 손님이
아짐씨 함시롱 달라들면은
오메, 벌
받을 소리제만
나가 꼭 그만한 나이의 숫처녀 같어라우.
뭣이냐, 보리밭 속에서 하늘이 빙빙
돌고
종달새가 지지배배 지지배배 울어쌓고
보리까시라기는 가심이며 귓볼을 찔러대고---
나이가 묵응께 이런 것까장 헛보인단 말이요.
손님 생각에도 나가 아무래도 지 정신이 아니제라우? 그렇지 않다고라우?
그렇지 않다먼 정신 말짱한
년이 우찌게 그런 헛것까장 볼 꺼이요.
오메, 나가 부럽다고라우?
시상에 부러울 거이 없어서 그런 거이 부럽단 말이요? 아무래도 나가
손님을 잘못 본
모냥이어라우. 인자사 손님이 왜 요런 데까장 찾어왔능가 알것도 같소. 그라고 봉께
손님도 어딘가 허한
디가 있는 것 같어라우. 이런 이약을 해서 참말로 죄송허요만 우째 그런 생각이
등만요. 안그렇다먼 우찌게 나가
부러울 거이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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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라우?
손님, 혹시 무신 사업에 실패라도
하셌소? 안그라먼 가족하고 무신 생이별이라도 하셌거나, 그것도
아니먼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실연이라등가 그런 거리아도 당하신 게라우? 차라리 그런 거이라도
당했으면 좋겄다고라우? 참말로
손님은 알다가도 모르겄소잉. 우찌게 보먼 가심이 텅텅 비어있는
허깨비 같고--- 뭐인지
몰르제만 손님도 하여튼 시상을 쉽게 살아온 분은 아닌 것 같소.
자, 손님, 내 술 한잔 받으시요. 생각 같아서는
나가 가진 것을 다 드레서라도, 뭐이냐, 손님 허한
디를 메꽈주고 잡소만, 그것도 맘 뿐이제라우. 가진 거이라곤
썩은 몸뚱어리 뿐임서, 지 꼴은 모르고,
손님이 그렇게 허한 구석을 보잉께 언감생심으로 그런 맘도 안드요?
손님모양 맘이 허해서 떠도는 사람을 보먼
한잔 술에 스무 해 전 내 열여덟을 담아주고 싶어라우.
차갑게
식어뿐 젖가심 저 깊이
그때의 보리밭 이랑에서, 처음 가심을 열어
손님모냥 허한 맘을 채와주고
싶어라우.
오메, 우짜까잉. 손님이 이무롭게 대항께. 나가 그만 숭한 꼴을
보예뿌렀소. 손님이 허한 얼굴을
항께 나도 덩달아 맘이 약해져갖고 눈물을
보옜구만이라우. 이런일이 한번도 없었는디 나가 오늘
실수를 많이 항만요.
괜찮다고라우? 오메, 손님만 괜찮다고 될랍디여? 우선 나가 부끄러운디요. 술
한잔 주신다고라우? 야우,
오늘밤에는 우짠 일인지 술도 널름널름 잘 넘어가고 맛잇구만이라우. 이왕에
마시능 거, 인자부터는 나가 실수하는 것도
모다 술탓으로 돌레뿔라요. 낯 두껍다고 속으로 욕이나
허지 마시요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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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손님 앞에서 눈물을 보이능 봉께 나도 인자 늙기는 늙었는 갑서라우. 그만큼 맘이 약해졌는
갑제라우. 꿈에 자꼬 고향이 보이고------ 왜, 한번 다녀오제 그러냐고라우?
안되라우. 안되라우. 나가 인두껍을 쓴
이상 고향에는 못 가요. 오메, 우리 아부지 엄니 가심에 못을
박어놓고, 인자사 나가 우찌게 고향엘 갈 꺼에요?
안되지라우. 지금까장 이십년이 넘도록 나가 이를
악물고 겐데냄시롱 고향에 안가고 참아냈는디 인자서 뭘라고
갈 거이요? 이 모냥, 이 꼴로는 절대로
고향에는 안갈라요. 글제만 나가 언젠가는 꼭 고향을 가고
말 거이요, 하문이라우. 나가 죽어서라도
기연시 고향에는 가고 말 거이요. 허제만 시방은 아녀라우.
손님은
고향이 어디요? 뭣이라우? 고향이 없다고라우? 에이, 그런 말씀 마시요. 시상에 고향이 없는
사람이 어딨다요? 긍께 너무
어레서 고향을 떠나갖고 고향이라고 해봤자 암도 아는 사람이 없다고라우?
그라먼 부모형제는 어디서 사시는 게라우? 부모형제가
없다고라우? 오메, 나가 암것도 몰르고 실수를
했구만이라우. 나는 다 계신 줄
알고 물었는디, 나가 공연시 손님 아픈디를 거드린 모냥이요.
괜찮다고라우? 그래도
우짠지 나 맘이 안좋구만이라우.
인자 봉께 손님도 참 외로운 분이구만요. 고향이 없단 말도 하시게
생겠구만이라우. 고향이란 거이
무신 산천구겡이 아니라먼 일가친척도 한나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고향이 우찌게 고향일 거이요?
차라리 타향보다 못하겠제라우. 시상에 살다봉께 그런 일도 있구만요잉. 그랑께 손님이나
나나 고향이
없는 펜이 되야뿌렀구만이라우. 나는 고향이 있제만 살아서는 찾아갈 수가
업응께로 고향이 없고,
손님은 손님대로 찾아가봤자 반게줄 사람도 없응께 차라리
없다능거이 낫겄고--- 자, 손님, 지가
특벨한 맘으로 술 한잔 드릴라요.
꽃값 오천원으로
손님이 나를 사먼
내 고향 들샘머리 복사꽃으로 나는 손님을 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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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도
나도 잃어뿐 거그
그렇제만 차마 죽어서라도 돌아갈 거그
오막살이 지붕 우에 저녁별
돋아나먼
우리 함께 복사꽃으로 피어날 거그
꿈에 참 많이도 고향을 봤지라우.근디 꿈만 꾸먼 꼭 고향은
봄이어라우. 아매도 나가 고향을 떠날 때
봄이어서 그란 모냥이요. 참꽃은 참꽃대로 온 산에 발갛게 타고, 논에는
자운영이 무신 공단이불모냥
질펀하게 깔레서 분홍빛으로 피어나는디, 저 아래 바다 쪽으로는
유채꽃들이 덩달아 피어서, 오메,
밤에도 마치 횃불을 킨 것맨키롬
환했어라우. 글다가 꽃들이 한끄번에 벙글어져서, 살구나무,
앵두나무, 복송나무, 배나무,
사꾸라나무, 그렇게 나무란 나무에 모다 꽃이 피어갖고 마침내 꽃사태가
나먼. 오메, 가심이여, 멀리서
색깔만 봐도 가심부터 우선 벌렁벌렁 뛰놀던 그 환한 꽃들이 시방도
눈에 선하요.
그라먼 해종일 동무들끼리 대소쿠리 한나씩 들고 산에 들어 나가 살았지라우.
오메, 캐도 캐도
지천으로 깔레 있던 그 야들야들한 것들, 아이고, 야들야들한 것들이 어디 나물 뿐이었간디요?
말만한
큰애기들이 부끄러운지 몰르고 아그들모냥 삐비도 뽑아묵고, 찔레순도 꺾어묵음시롱 공연시
그놈의
환한 꽃색깔에 가심에 바람이 들어갖고 밤낮없이 몰려 댕김시롱
총각들 숭을 봤는디, 그때 그
가이내들, 영임이, 끝순이, 양순이, 막례,
순자--- 지끔 생각하먼 그 가이내들이 바로 나물보다 더
야들야들했지라우.
어디
야들야들하기만 했간디요. 심들도 좋아서 일들은 또 얼매나 잘했든디라우. 산에 가면 참꽃은
참꽃대로
입가생이가 벌겋게 따묵음시롱도 솔가리나 갈퀴낭구는 낭구대로 머릿짐으로 한 짐씩 해갖고
내려오고, 밤이먼 한 방에
모여서 수틀을 붙들고 앉아 모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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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학을
날라올리고 또 원앙을 짝지여줬지라우. 그람서
안작 논일이 시작되기 전에는
하지감자모종이며 꼬치모종에서 부텀 봄남새 들
씨 뿌리는 밭일에까장 매달리기도 했지라우. 그렇게
흙을 만지다보먼, 삼동 내내 얼었던 흙이 풀레갖고 거그서 나는 흙냄새는 무신
생콩 비린내 비슷함시롱
쇠여물 냄새도 쬐깜 섞인 것 같어갖고, 그거이 얼매나 상큼했간디요.
긍께 겔국은 쩌런 거이
바로 사람 사는 거인디, 그때는 그럴 몰랐어라우. 동무들이 봄바람이 나갖고
한나썩 둘썩 서울이랑 부산같은 대처로 나가서
방직공장이랑 신발공장에 댕김서 돈을 많이 번당께 나도
덩달아 보따리를 싸갖고 집을 나온거이 이렇게 되야뿌렀소.
손님, 용서하시요, 긍께 나가 아까참에 말 안합디여. 인자부터는 실수하는 것을
보다 술탓으로
돌린다고라우. 안울라고 하는 디도 고향 이약을 하다봉께 그만
참을 수가 없구만이라우. 참말로
살다봉께 이렇게 손님한테 고향이약을 함시롱
울 때도 다 있소잉. 그래도 울다봉께 가심은 쬐깜
시언하구만이라우.
왜
방직공장에 안가고 일로 오게 되얏냐고라우? 인자 참말로 벨 이약까장 다 나오요잉?
손님은 꼭 그런
이약까장 시시콜콜하게 들어야쓰겄소? 안해도 괜찮다고라우? 하기사 못할 것도
없제라우.
집에서 도망나와갖고 서울로 갈라고 송정리역에서 기차를 지달리고 있는디 점잖하게 생긴
아자씨가
나한테 오등만 말을 겁디다.
서울로 취직하러 가는 길이제?
나는 너무 놀래갖고 눈을
화등짝만하게 만듬서 그 아자씨한테 되물었지라우.
오메, 아자씨가 우찌게 그거를 안다요?
처녀 얼굴에 그렇게
써졌는디, 그걸 몰르겄어? 누가 봐도 금방 알겄구만.
오메, 아자씨. 그 말이 참말인게라우?
안그러먼 나가
우찌게 알겄어? 점쟁이도 아닌디.
그 점잖은 아자씨는 나가 아자씨 말에 당황헤서 우짤 줄 몰릉께 방긋이 웃등만 목소리를
낯췌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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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야 돼야. 처녀같이 순진한 여자를 노리는 나쁜 사람들이 서울 뿐만
아니고 여그 역전에서부텀
쫘악 깔랬단 말이여. 쩌그 저 사람들 잠 봐. 저 사람들도 처녀같이 순진한 여자를 노리고
있응께.
그 아자씨가 나 귀에다 속삼임서 역 광장 한 쪽을 갈치는디, 거그는 나가 보기에도
깡패같이 생긴
사람들이 서서 나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지를 않겄소? 나가 겁이 나서
그 점잖은 아자씨한테 바짝
달라붙응께, 그 아자씨가 다시 귀엣말을 합디다.
저 사람들은 여차직하먼 처녀도
강제로 끌고가부러. 여그서 실패하면 서울까장 따라가서 잡어간당께.
저 사람들이 설치고 나서먼 말게줄 사람도 없어.
저 사람들은 여그 순겡들도 맘대로 못 건드린당께.
근디 아무래도 저 사람들이 처녀를 노리는 눈치여. 힐끗 힐끗
여그를 훔쳐보는 모냥이 심상치 않은디?
저 사람들이 처녀를 끌고가면 어디로 데꼬간지 대충 이약은 들었제?
야우,
그라제만, 아자씨,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우찌게 끌고간다요?
허허, 처녀는 참말로 순진하네. 저 사람들이 기냥 나쁜
사람들인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끌고가서
술집이나 몸 포는 디다 폴아묵는 사람들잉께 나쁜 사람들이제. 글고 처녀가 왜 죄가
없어?
오메, 아자씨. 나가 뭔죄가 있다고 그라요?
처녀는 시방 집에서 몰래 도망 나왔제? 그것도
죄는 죄여. 저 사람들은 처녀가 집에서 도망나왔다는
것도 다 알고 있을 거란 말이여.
오메, 아자씨. 그라먼 나는
우짜먼 좋을 게라우?
나가 심장이 콩알맨키롬 오그라들어갖고 오돌오돌 떵게 그
아자씨가 손바닥으로 가만이 내 등을
토악거레 줍디다.
그래도 처녀가 복이 있어갖고
나같은 사람을 만난 거여. 저 사람들도 나한티는 꿈쩍 못항께. 나가
뭐이냐면 청소년 선도위원이여. 처녀는 청소년
선도위원이 뭔지 몰르제?
야우, 몰르겄구만이라우.
몰르겄제. 거시기, 청소년 선도위원이 뭐이냐하먼, 바로
처녀모냥 몰래 집에서 나온 소
[페이지] 012
년소녀들이 나쁜 사람들한티 잡헤가그나
아니면 스스로 나쁜 질로 가는것을 막아주는 사람이여.
그래갖고 좋은 디 취직시케주고, 뭐이냐,
착하게 살도록 선도하는 사람이다 이거여. 인자 알것는가?
아자씨, 그라먼 아자씨가 나도 취직을 시케주실 수 있단
말이요?
하믄, 아, 그거이 바로 선도위원이 하는 일인디. 취직도 일반 사람들이 허는 그런 허술한디가 아니고
말이여.
처녀가 공부를 더 하고잡다먼 야간 고등핵교를 다닐 수 있게꼬롬 큰 공장 같은
디서부터
보자집 가정부 자리까장 처녀가 원하는디로 취직을 시킬 수가 있당께. 근디 처녀는 학교 댕기기는 잠
늦은 것 같은디, 그래, 공부를 더 하고잡어? 안하고 잡어?
더, 더 하고잡어라우.
나
말에 그 점잖게 생긴 아저씨가 멧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잘되았담서 나를 데꼬 역전 근방에
식당으로
데꼬가서, 뭐이냐, 냉멘을 사줍디다. 그때 나는 태어나서 첨으로 냉멘을 묵었는디, 오메,
맛나등거! 나쁜 사람들한테 붙잡헤 갈가봐서 가심이 두근반서근반 함서도 속아지 없이 냉멘이 그렇게
맛납디다.
나가 그렇게 냉멘을 맛나게 묵응께 아자씨가 냉멘을 한 그럭 더 시케줘서 염치좋게 국물가장
한나도 안냉기고 다 무것소. 시방도 그 냉멘만
생각하면 입에 군침이 돈단께요.
그라고 나서 아자씨는 역전에 있든 나쁜
사람들을 따돌래야 한담서, 그랄라먼 우선 서울하고
반대짝으로 가야한다고 목포로 가는 기차를
탑디다. 저녁 무렵에 기차를 탔는디 목포에 내링께 깜깜한
밤이 되야뿌렀습디다. 그 아자씨가
오늘은 너무 늦어서 암디도 못가고 쬐깜 있으먼 통행금지가
시작된께로
암디서라도 하룻밤을 보내야한담서 나를 역전앞에 있는 골목으로 데꼬가덜
않겄소?
꼬불꼬불하게 생긴 골목을 이리 돌고 쩌리 돔서 한참을 가등만 그
아자씨는 어떤 여관으로 마치
자기집에 온대끼 혼자서 불쑥 들어가뿌러라우.
그때까장도
나는 아무것도 눈치를 못채고 그 아자씨
뒷꽁무니만 강아지새끼맨롬 쫄래쫄래
따라갔지라우. 근디 여관엘 들어강께 여그저그서 방문이 열리등만 그 아자씨한테
한
[페이지] 013
마디썩 안 체를 안 하요? 뭣이냐, 어이, 김씨, 오늘도
푼짱 한나 했구만, 그란 사람도 있고, 또,
하야튼 김씨는 알아줘야 해, 한번 나갔다하먼 공치는 날이
없응께. 그란 사람도 있는디, 그 아자씨는
실실 웃음서 이사람들아 농담 하덜말어. 오늘도 나가 존 일 하느라고
얼매나 심들었는디, 이 사람들이
쓸데없는 소릴 허고 있네. 공연시 다 된 밥에 코 빠뜨리지 말고 참겐들
말어, 그렇게 말대꾸를 허들
않겄소? 오메, 근디 나넌 그런 말을 들음서도 그 말이 뭔말인지 몰랐당께요.
다만 그 아자씨가 여그
사람들허고 친하게 말을 주고 받는 거이 죄깜 이상했제만, 그 아자씨가 여그 사람들하고 한통속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라우.
난중에 알고봉께 그 아자씨는 여그서 흔히 허는 말로 푼짱네다바이라고,
그랑께 나 같은 처녀들
꾀야오는 전문가였어라우. 그때 그 아자씨를 따라 들어온 골목이 바로 이 골목이요.
지끔도 그 아자씨를 원망하냐고라우? 아녀라우. 아녀라우. 나넌 이날이때것 그 아자씨를 원망해본
적이
없소. 사람이 참 요상해라우. 뭘로 보나 나는 그 아자씨를 원망하고 미워해야 맞는디,
금메,
그거이 아녀라우. 긍께 나가 그 아자씨를 따라 여그 골목에 첨 들어온 날도 그라요. 바로 그날
여관
골방에서 나가 그 아자씨한테 처녀를 뺏긴 셈인디라우. 참말로 요상시럽제만 그 아자씨가 밉덜 않더란
말이요.
나가 그 아자씨를 따라 골방에 들어가서, 아까참에 손님맨치롬 멀뚱하게
서 있응께, 그 아자씨가
나보고, 밤새도록 그렇게 서있을 거이냐먼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자라고
그랍디다. 나가 기냥 옷을
입은 채로 다리만 살그머니 이불 속에 넣응께 그 아자씨가
나를 잡아 댕게갖고 이불을 덮어줌서,
자기가 지켜줄 텡께 아무 걱정하덜 말고 잠이나
자라고 나 등을 토닥거레 주등만요. 글고는 술이나
마세야겄담서 밖으로 나가등만 조끔 있다가 참말로 술을
사갖고 왔습디다. 글등만 암말도 않고 혼자서
술을 묻음서 우짜다 나하고 눈이 마주치먼 빙긋이
웃고는 다시 술을 묵고 그랍디다. 그렇게 그
아자씨가 술을 묵는 것을 보다가 그만 나도 몰르게
잠이 들어 뿌렀소.
엄마나 지났으까, 뭐이 이상해서 눈을 떠봉께 그 아자씨가 내옷을 베끼고 있습디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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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아자씨, 하고, 나가 소리를 질를라 그랑께 그 아자씨가 손으로 나 입을 막등만요.
난중에 차차
알게 될 거이다. 지끔은 암시랑 말고 나 허는 디로 냅둬라. 그거이 니 신상에 이로와야.
지끔 니가 나 말을 안들으먼
딴 디로 끌레가는디, 거그가먼 니는 반빙신이 되야뿌러야. 무신 말인지
알겄나?
왜 그란지
몰르겄소만은, 그때 나는 아자씨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거랬소. 이상시럽게도 그 아자씨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모냥 여겨지더랑께요. 그때까장 나는 암것도 몰르고 있었는디, 그란디도
불구하고 아자씨 말을 안들으먼 안될 것 같더란 말이요. 우찌게 보먼 아매도 그 아자씨 눈 땀시 그렇게
순수허게 아자씨
말을 따랐는지도 몰르겄소. 눈이 어째서 그랬냐고라우? 나를 내레다보는 그 아저씨
눈이 참말로 그렇게
안타까와 보일 수가 없었어라우. 그 아자씨 눈을 보고, 나는 아자씨가 하는 대로
잽둬뿌렀소. 그렇게 나는 몸을 망친 셈이요,
그 아자씨는 나가 처년중 알고는 한숨을 쉬등마요.
진즉에 니가 참말로 처년줄만 알았음사 나가 니를
일로 데꼬오들 않았어야. 따른 디로 보낼 수도
있었는디------
난중에 알고봉께 그 아자씨 말이
참말이었어라우. 그 아자씨가 처녀를 꾀어와서 말을 안들으먼, 여그
있는 다른 패거리들한티 넘기는디, 그 쪽으로
넘어가먼 젊은 남정네들 서너 명이서 반죽음시케부는
모냥입디다. 그렇게 되먼 그 처녀는 한동안 여자 구실도 못해라우.
그만큼 지독허게 당하는 갑습디다.
글고봉께 지금 생각해도 나가 속창아리가 없는 년이어라우. 그
골방에서 아자씨하고 꼬박 사흘을
함께 지냈는디 난중에 헤여질 때 안헤여질라고 나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왔소.
아녀라우. 정이 들고 말 것도 없고라우. 그때는 앞으로 나가 우찌게 될지도 죄깜은 알게 된께 그
아자씨하고 헤여지기가 더 겁이나서 그랬을 거이요. 그렇제만 함께 지낸 사흘동안 그 아자씨가 싫지는
않았어라우. 우찌게
되았든지간에 나한티는 그 아자씨가 첫남자가 아닌게라우?
오메, 나 말이 우습소? 아녀라우. 우습기도 하겄제라우.
그랑께 나가 미리 속창아리 없는 년이라고
안합디여? 이왕 말이 나왔응께 말이요만, 이런 디 있음서도 나가 딱 한번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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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이란 것을 해봤는디 그 사람이 누군증이나 아요? 바로 그 아저씨였어라우. 이해가
안돼시제라우?
아니, 첨부텀 그 아자씨를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구만이라우. 나가 여그서 산지
십년 남짓 됐을까,
그럴 무렵일 거이만요. 그 당시 나넌 이런 디도 십년 넘게 있다봉께 이 골목 안에서 어느 정도 지반도
잡고, 그만치 자유로왔구만이라우. 그만 둘라먼 언제든지 그만 둘 수도 있을 때였소. 그때 그 아자씨가
오랜만에 이 골목에 다시
왔어라우.
긍께 그 아자씨가 그때 무신 일 땀시 징역을 살고 나왔을 거인디, 아매도 히로뽕인가 뭐인가를 하다
들케갖고 잡헤갔다가 막 나온 참이였을 거이요. 근디 그 아자씨가 한마디로 사람꼴이 아니등만요. 한
몇년 안본
새에 폭삭 늙어갖고, 궁끼가 흘르는디, 뭣이냐, 거렁뱅이가 따로 없더랑께요. 옛날에사 그
아자씨가 풍채 하나만은
그럴 듯했소. 그 아자씨가 점잔은 빼먼서 국민학교 교장선상님이라먼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교장선상님으로 믿고, 또
어디 회사 사장이라먼 영락없이 사장으로 믿었어라우. 그만한
인물이 있응께 이런디서 아가씨들을 꾀야오는 푼장 네다바이도
했겄제라우.
그 아자씨가 나모냥 처녀를 꾀다가 여그저그 폴아묵은 거이 어디
한둘일거이요만은, 그래도 워낙
사람이 맣이 상해갖고 궁상을 떵께, 여그 사람들이 암도 안쳐다봐라우.
야우, 그 얼굴로는 더 이상
푼장 네다바이도 못하제라우. 그런 걸 하는 사람은, 뭣이냐, 아무나 얼굴만 척 보고도
그 사람을 기냥
미더불만치 인품도 있어야 하고 풍채도 좋아야 하는디라우. 그 아자씨는 인자 막말로 거렁뱅이도 그런
상거렁뱅이가 없는디, 여그서 누가 그 아자씨를 반겨줄 거이요. 그 아자씨한테 속아서 여그
들어온
아가씨들 중에서는, 됩데 드러내놓고 박대를 함서 꼬소하다고 손꾸락질 하는 아가씨들도 있던디요.
첨에는 나도
기냥 그 아자씨가 짠한 맘밖에는 없었어라우. 그래서 그 아자씨한티 옷 한벌 사다리고
식당으로 모세다가
진지 한 끼 대접하고 그랬구만이라우. 근디 그 아자씨가 밥상에 함께 올른 쇠주로
반주를 하다말고
눈물을 글썽글썽해갖고 십년 전에 이약을 안하요? 뭣이냐, 진즉에 나가 처년 줄
알았음사 나를 이런디로 안데꼬오고 따른 디로 빼돌릴 수도 있었단 이약을 하는디. 마치 어지께 일어난
일모냥 또렛하게 기역하고
있더란 말요.
[페이지] 016
이녁이 한 일 중에서도 가장 가심이 아펐등 거이 나였담서 말이여라우.
그 아자씨가 기냥 밥 한끼 얻어묵음서 하는 빈말이 아닙디다. 우짜다가 그 아자씨 얼굴을
봉께,
오메, 가심이여, 다 늙은 중늙은이가 질질 울고있는디 나는 기냥 가심이 터져불것
같었구만이라우.
나는 그만 못겐디고 그 아자씨 품에 얼굴을 묻고 통곡을 해뿌렀소.
렇게 통곡을
하는디,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한정없이 쏟아집디다. 그라고 울다봉께 문득 나가
오늘같은 날을 바라고 십년 동안 살아왔는 게비다 싶음서, 나는 그 아자씨를 놓치먼 안되겄다는 맘이
듭디다. 왜 그랬냐고라우? 오메, 그것도 몰르겄소? 나모냥
천한 년을 십년이 넘게 안잊어뿔고
생각해주는 것만 해도 어딘디, 거그다가
나 땀시 눈물을 흘릴 사람이 시상에 그 아자씨 말고 또
있을랍디여?
그렇게 움서 나는 아자씨를 붙들고 통사정을 했소. 나 펭생에 딱
한번 소원잉께, 나하고 단
한달만이라도 살림을 하자고라우. 나도 남들모냥 남펜이라고 불러보고, 그렇게 남펜이란
사람한테 삼시
세끼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또 그렇게 애기도 나고잡다고 함서라우. 그 아자씨가 막상 갈대도 없는디
호박이 넌출째 굴러왔겄제라우. 근디도 그 아자씨는 승낙하기 전에 한 가지 못을 박습디다.
자네는 시방 나가 유부남인중
암서 한 소리여? 몰르고 한 소리여?
나가 유부남이먼 우짜고 홀애비먼 우짜냐고, 그런 거이사 암시랑도 않다고
그랑께.
난중에 딴소리 하는 것은 아니제? 나가 발걸음을 안해서 그렇제
이래뵈도 가정이 있는 몸이시.
마누라야 그렇다쳐도 다 큰 자석들이 있는디, 자네 땀시 가정파탄을 일으킬 수는
없네.
이러들 않겄소?
그래갖고 나넌 그 아자씨랑, 아니 인자부터는 그 인사라고
그래야겄소잉, 바로 그 인사랑 살림이란
것을 채랬소. 살림이라야 뭐이 있겄소? 여그서 가까운 디에 달랑
방 한칸 얻어갖고, 참말로 솥단지
하나에 밥숟가락 두 개부텀 시작했제라우. 우스개말로 몸 포는 생활을 십년을 해봤자 남는 것은
떨어진
빤스 서너 벌이라고들 합디다만은 그래도 한 십년 꼬박 여그서 몸만 폴고 살다봉께 돈이 잠 모타져서
살림 밑천은 쬐깜 있었제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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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림을 채링께 사람들이 다들 나보고
미쳤다고 그랍디다. 뭣한 사람은 나한테 대놓고, 아니
저렇게 허깨비만 남은 사람을 남펜으로 델다났다가 난중에 초상 칠라냐고
그라기도 했제만, 오메, 나사
사람들이 미친년이라고 손꾸락질 하던말던, 꿀단지라도 들에논 것모냥 재밌기만
한디 우짤 거이요?
기냥 한종일 암것도 안묵어도 배고픈 중도 몰르겄고, 밤에 잠을 잘 때도
나가 시방 잠을 자고 있는
거인지 깨어있는 거인지 몰를 지경으로 좋았소. 첨에는
참말로 나가 내 살도 꼬집어보고, 옆에서
잠들어 있는 그 인사를 공연시 흔들어 깨와보기도 하고
그랬소.
아녀라우, 아녀라우. 그 인사가 그렇게 좋았다기 보담은 딴 것이 있었을 거이요. 뭣이냐, 긍께, 왜,
나가 아까참에 말한 것모냥, 그런 거이 있덜 안하요? 긍께 나가 시상에 태어나갖고 한번도 사람답게
살어보덜 못허고, 몸 포는 여자가 되았다가 죽는갑다 싶었는디, 인자 나도 남들모냥 몸을 안 폴아도
저녁마담 나를 안어주고 나보고 마누라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있당거이, 오메, 당장에
죽어도 한이
었겄는디, 우찌게 안좋아하고 베기겄소?
살림을 채린 담부터는 나는 몸을 포는 대신에
펨푸 노릇을 하고, 여그 와서 진밤 자는 손님들한테
김밥이랑 박카스랑 폼시롱 입에 풀칠을
했어라우. 그 인사도 첨에는 나한테 참말로 안침맞게 잘해
줍디다. 그 인사사 나는 첨부터 기둥서방
비슷하게 알았응께 돈 한푼 안벌어다 줘도 암시랑 않고, 기냥
소일꺼리 내기람사 노름 밑천도
대주고 그람서 지냈소. 그렇게 참말로 무신 꿈겔같은 시간이
흘러갔느디, 그라다 봉께, 오메, 나같은 것도 떠억하니 애기를 배덜 안겄소?
나사 막상 애기까장
뱅께로 시상에 여한이 없습디다.
근디 이 인사는 그거이 아니드랑께요. 첨에는
참말로 애기를 나야하겄냐먼서 쭈빗쭈빗 하등만, 나가
뭔일이 있어도 기연시 날 거이라고 항께, 그 인사가
차츰 드러내놓고 싫은 소리를 해라우. 글등만
하루는 애기를 띠어라고 함서 손찌검까장 하들 않겄소?
나가 매를 맞음서도, 죽었으먼 죽었제 애기는
못띤다고 항께. 그 인사가 자기든 애기든 둘
중에 한나를 택하라서 막말을 합디다. 나는 눈 한나
깜짝않고 대꾸했소. 애기를 택하겄다고라우.
나가 그랑께 그 인사가 또 나한티 손찌검을 함서, 오메,
인자는 참말로 나 가심에 못을 박읍디다.
[페이지]
018
야, 이년아 니가 새끼를 낳는 거이나 좋제만. 그 씨는 내 거인디.
그 새끼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그럴거이냐? 잉, 뭐라고 그럴 거여?
뭐라고 하긴 누가 뭐이라고 한단
말이여라우?
아니, 니년이 참말로 몰라서 하는 소리여?
야우, 나는 몰르겄소. 나가 내 새끼를 낳는디 도대체
누가 뭐라고 한단 말인게라우?
허허, 이년 보소, 꼭 내 입으로 말하게 맹글고 있네. 야, 이년아, 니가
새기를 나먼 바로 사람들이
그 새끼를 보고 똥갈보 새끼라고 그럴 것 아녀? 니년이사 똥갈봉께 우짤 수 없이 그렇다치고, 나가
뭔
죄를 졌다고 이 나이에 똥갈보 새끼를 둬야겠냐?
그 인사가 그렇게 나 가심에 못을 박는 말을 해도
나는 암말도 않고 참아냈소. 나가 그렇게 나강께
그 인사가 안되겄다 싶었능갑습디다. 하루는 골목을
돌아댕김서 손님 방마등 감밥이랑 박카스를 폴고
밤늦게 집에 와봉께 그 인사가 없어라우. 방안이 어지럽헤져 있고 그
인사 옷도 안보예서 얼렁 옷장을
열어봉께 이녁옷은 다 없어져부렀등만요. 글고 나가 이 담에
애기를 나먼 쓸라고 애먼글먼 모타논
동뭉치도 없어져불고라우.
글고도 나는 애기를 띠지
않았어라우. 사람들한티 수없이 미친년 소리를 들음서도 기연시 애기를
낳기로 했제라우.
그 인사야 나가 첨부터 나한테 오래 있을거이라고는 생각 안했응께,
그렇게
가부렀다고 벨라 서운하도 안했소. 나는 애기만 있으먼 된께. 그때 누가 나보고 니
목심을 내놀래?
아니먼 애기를 내놀래? 하고 물었으먼 나는 서슴없이 나
목심을 가져가라고 그랬을 거이요. 그
인사말대로 내 애기가 난중에 크먼서 똥갈보새끼라고 욕을
듣는다 해도 그런 거이사 한나도 중요하덜
않았소.
나는 암것도 못배운 무식한 년이지만 그때
비로소 안 것이 있어라우. 이 시상에 왜 여자가 있는중
아시요? 남자들 좋아라고,
남자 땀시 여자가 있는 거이 아니드랑께요. 남자야
씨만 뿌리먼
그만이고라우. 시상에 여자가 있는 것은 바로 애기를 낳으라고 있는
거이요. 바로 애기를 갖어봉께
포도시 알겄등만이요. 그라다 봉께 맨날 남자들 밑에
깔레서 무신 수채구녕모냥 남자들 그거이나
받어내던 더럽디 더러운 내 몸뚱어리도
난생 첨으로 소중하게 여겨지는디, 오메 왜 나가 진작에
이런것을 몰랐을까
싶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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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기 땜시 나도 바로 그런 여자가 되았는디, 나 목심이 붙어있는
한 우찌게 애기를 띤단 말이요?
애기가 뱃속에서 폴딱 폴딱 뛰노는 거이 느께지먼, 오메, 황홀한 거! 기냥 뭐이냐,
꿈꿀 때면 언제나
고향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참꽃이나 자운영이나 유채맨키롬 천한 나 몸뚱아리까장 벌겋게 혹은 노랗게
꽃물이 들어갖고 가심까장 벌렁벌렁 뛰드란 말이요.
근디, 근디, 그렇게 좋아서,
금자동아, 은자동아, 얼르고 달램서 열 달을 채와 갖고 애기를
낳아봉께---. 시상에 그거이 뭔 일이다요? 애기가, 내 애기가, 죽어갖고 나왔소.
오메,
눈물도, 눈물도 나모냥 많이 흘린 사람도 없을 거인디, 어디
순어있다가 또 나오능가
몰르겄소. 이 나이를 묵어갖고 이렇게 눈물이 많이 나올 줄은
몰랐어라우. 손님, 이왕 손님한테 숭
잽힘서 눈물 뵈였는디, 운 짐에 손님만 괜찮다면 저그 맘속에
응어리가 쬐깜 푸릴 때까장 손님 눈치
안봄서 울고잡은 대로 울어뿔라요. 손님은 몰른 척하고 냅도 뿌시요잉.
애기를 잃어뿐 담에는 멧년간 기냥 반 미쳐서 지냈소. 비만 오면 실성기가 오는디, 오메, 암디서라도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덜 않겄소? 뭐달 때는 깨댕이를 벗고 손님하고 잠잘때도 애기 울음 소리가
들레갖고, 바로 깨댕이를 벗은 채로 애기를 찾는다고 뛰쳐나가기도 했어라우.
오메, 우리 애기가 죽소오. 누가 우리 애기
잠 살레주시요오.
나가 깨댕이를 벗고 이렇게 골목을 뛰어댕기먼 사람들이 나를 잡어다가 묶어놓곤 했제라우.
금메, 지 정신을 채레보면 멀쩡한 낙숫물 소린디, 그걸 자꼬 애기 울음소리로 헛듣드란
말이요.
실성기가 쬐깜만 더 심했어도 여그서 쫓겨나갖고 정신벵원에라도 끌레갔을 거이요.
손님 참말로
고맙구만이라우. 인자 더 이상 손님한테 숭한 꼴은 안보일라요. 긍께 지금 까장 한
이약이
나한티는 사랑 이약이라면 딱 한번 해본 사랑 이약인셈이제라우. 하기사 나같이 천한 여자가
사랑이란 말을
쓸라고 항께 멜갑시 입이 부르트는 것 같소만. 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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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내가 해본 사랑이 누구보다도 순겔한
사랑이었다고라우?
오메, 손님. 인자는 나도 손님한티 막말을 해뿌러야 쓰겄소. 손님, 그거이 무신 구신 씨나락
까묵는
소리다요? 순겔 어쩌고하는 사랑이라고라우? 손님도 인자 봉께 참마로 헹펜없는 사람이요. 손님한테
그런 말을 듣다 봉께 여태까장 손님한테 눈물 콧물 보임서 할말 못할 말 함부로 씨부려댄 나가 됩데
우세스럽소. 오메, 뜬금없이 속까장 니글니글한거!
손님이 그렇게 나 속을 뒤집어 논께, 나도 인자 못
참겠소. 손님, 나가 이십년 동안 여그 있음시롱
멧번이나 성병에 걸렸든 중 아요? 이 열
손꾸락으로 시고, 또 한번 더 꾸불렸다가 시어도 모자렐
거이요. 근디 그런 여자를
바로 코 앞에 두고, 뭐여라우? 순겔한 사랑이라고라우? 사람들이 터진
입으로 뭐이라고 그란다고
그랍디다만은, 손님이 바로 그렇구만이라우.
손님, 나가 너무 심한 말을
해서 기분이 상하셌으면, 따른 아가씨를 불르시요 인자 나도
죄송하다느니 하는 입에 발린 말은 하고잡덜 않구만이라우. 아녀라우. 그건
아녀라우. 나가 어디
손님이 싫고 좋고가 있간디요. 나만 좋다면 손님은
괜찮다고라우? 손님이 너그럽게 나오싱께 나가
멜갑시 속아지 없이 군 것 같어서 손님 뵐 낯이
없구만이라우.
우찌게 생각하면 손님이 나를 위로해주니라고 애써서 그런 소리까장 하셌는디 나가 혼자서 욱해갖고
손님 심정까지 상해드린 거이나 아닌지 몰르겄구만이라우. 아니,
손님은 시방도 나를 그렇게
여긴다고라우? 구랑께 순겔도 사람마등 따르게
생각 할 수 있는 거인디, 손님은 여태까장 살믄서
나같이 술겔하게 사랑한 겡우를 보덜
못했다고라우?
손님도 참 어징간 하시요잉? 우찌게라우? 새삼시럽게 또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번에는 나가
지고 말라요. 손님 좋을 대로 생각하세야제 우짤 거이요?
대신에 나만 손님 말에 안놀아나면
되겄지라우. 나가 아까참에 손님을 잘 보긴 잘 본 모양이요.
왜 나가 안그랍디여? 손님도 뭐인가 속이
허한 분이시라고라우. 아매도 속이 허하다봉께 그런 말씸도 하셌을 거이요.
참,
손님이 자꼬 나보고 부럽다는 둥 순겔하다는 둥 그래쌍께 생각이 나서 하는 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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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은,
요새는 말이여라우, 나보다는 됩데 손님들이 그렇게 이삐게 보일수가 없어라우.
나눈에는
한나같이 숭하그나 나쁜 사람들이 없구만이라우. 그 사람들이 설사 사람을 쥑인 살인쟁이라 하드라도,
나가
좋다고, 내 썩은 몸뚱아리라도 좋다고 갖고 뒹구는 사람을 우찌게 나쁘게 볼 거이요? 글다가봉께
인자는 아무한테라도 정을 주는
거이 한나도 겁나들 않소.
정을 주는 일이 인자는 무섭들 않어라우.
지아비도 자석도
없이
몸 폴아 살어온지 벌써 스무 해!
한번도 맘속 옷고름 푼 적 없이 숱한 밤과 숱한
사나들만
먼 강물모냥 흘러왔다 흘러가고
몰라붙는 개울창의 모랫바닥으로 혼자 누워
있제만
정을 주는 일이 인자는 무섭들 않어라우.
사는 일이 추와서 떠는 손님을
만나면
썩은 몸뚱어리 쩌 깊숙이 살어오는 온기.
끝끝내 맘속 옷고름 풀게 함시롱
몰라붙는
모랫바닥을 적시는 흥건한 온기.
손님, 우짜요? 인자사 나가
손님들이 이삐게 보인단 말을 포도시 이해하시겄소? 손님도
이삐냐고라우? 오메, 손님도 인자 봉께 농담도 잘하시요잉. 아니, 손님이
그렇게 물으시면 나가
뭐이라고 대답할 거이요? 안이삐도 할 수 없이
이삐다고 해야제. 나한티 뜬금없이 부럽다는 둥
순겔하다는 둥, 그래갖고 나를 데꼬 놀라고만 안함사 손님도
참말로 이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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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제라우.
오메, 손님, 이약에 정신이 폴리다봉께 시간
가는중도 몰랐소잉? 열두시가 폴세 넘어부렀구만. 술도
떨어져뿔라라우. 인자 그만 주무셔야겄제라우. 손님, 나 옆으로
오세서 누우시요. 아니, 오시기 전에
불 잠 꺼주실라요? 아녀라우. 불끄고 안끄고 상관은
없소만, 이 나이에 손님한테 볼품없는 살집
보이기가 뭣해서 그라요. 손님한테 이래라 저래라 시케서
미안하요잉.
손님, 쩌그 창문 잠 보시요. 불을 끙게 달이 보잉만요. 오메, 저놈의 달이 참 둥글기도 하요잉. 가만
있어라, 글고 봉께 오늘이 보름날이구만이라우. 손님, 왜 저런 달을 보그나하먼 잊어뿌렀던
것들이
생각날께라우? 그렇게 잊어뿌렀던 것들이 생각나먼, 쩌그 먼 디 언딘가서는 분멩히 누군가가 지금까장
나를 지달리고
있는 것맨키롬 여게진단 말이요.
내 몸뚱어리도 인자는 어떤 의미가 되고잡어라우.
영혼이 아니고 바로
썩은 몸뚱어리 말이여라우.
누구를 사랑한다등가 사랑을 받는다등가 그런 의미가 아니고만이라우.
스스로 한번도
아께본 적이 없는 몸뚱어리제만은, 시방 왜 이리도 소중해진다요?
숨가쁜 어떤 골목에서는 썩은 몸뚱어리마자 없어서, 갈증 땀시
죽어가는 사나가 있을 것만 같어라우.
오메, 손님 이거이 뭔일이다요? 아니, 손님, 지끔 울고 계시제라우?
나는 손님은 따른 손님들하고는
달리 신간이야 펜한 양반으로 여겼등만 그거이
아니었등갑소잉. 가만 있어 보시요. 여그 수건이
있는디, 나가 손님 얼굴을 잠 훔쳐드레도
되겄제라우?
아녀라우, 아녀라우. 뭐이 부끄럽다요? 나는 손님 앞에서
안울었간디요? 그런 소리는 당최하들
마시오. 나는 손님이 나한티 약한 디를 보잉께 됩데 맘이 놓이구만이라우.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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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제 아까참에 손님을 첨 본 순간부터, 뭐이냐, 손님이 아무래도 여그를 자주 드나드는
손님들하고는
달리 데멘데멘해서 정이 안갔어라우. 나가 아까 안그랍디여? 손님은 요런
디 댕길 분 같들 않고,
뭐인가 높은 공부를 한 분같다고라우. 그란디 웅걸 봉께 인자 손님도 훨썩
이무로와져갖고, 참말로 내
손님같구만이라우.
근디, 손님은 뭐이 그렇게 맘이 아프신 게라우? 아까참에 말씸하신 걸 보면
사업에 실패를 보신 것도
아니고 생이별을 하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연을 당하신 것도
아니고------ 뭐이 그렇게 슬프신
게라우? 뭐인지 몰르제만 기냥 이 시상 끝까지 와분 것같다고라우?
오메, 손님은 꼭 손님같은 말만
골라서 하시요잉. 그렇게 아리까리하게 말씸하싱께
나같이 못 배운 년은, 뭐이냐, 손님 말을 잠
풀어드리고잡어도 우찌게 풀어사 쓸지 한나도
몰르겄어라우. 하여간에 손님도 우찌게 보면 겔코 시상을
펜하게 살어온 분은 아니구먼이라우. 무식한 나도 그것은
알겄소.
맘속 맺힌 매듭 풀지를 못해서
밤마둥 헤매제만 돌아갈 디가 없어서
헤어진
사람들은 별빛보담도 아득해서
싸구려 막쇠주에도 취할 수가 없어서
거리에 불빛들이 웬수보담도
짚어서
내딪는 걸음마둥 끝끝내 허방을 짚거든
짓뭉게덱기, 짓붕게덱기, 나라도
기억해라우.
역전 뒤 힛빠리 골목에 누워, 스무 해 동안
아직까장 지달리고 있는 나라도
기억해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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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나가 이 나이가 묵도록 배운 것은 딱 한나밖에
없응께, 손님 마음 푸는 일이사 힘들 거이고,
나는 기냥 몸으로 떼울를라요. 나가 손님 몸을 잠 만제드레도 괜찮겄소? 아니,
손님은 가만이 계시기만
하시요잉. 이렇게 손님 몸을 만지다봉께, 나도 맘이 잠 이상해지요. 이런 말을 해서 우짤지 몰르겄제만
마치
손님하고 나하고 무신 연애라도 하는 것 모냥 맘이 간질간질해지덜 안겄소?
오메, 손님, 나 잠 꽉 껴안아주시요.
야우, 쬐깜만 더요. 뭔일이께라우? 참말로 요상스럽게도 인자
손님보담도 나가 더 가슴이랑 몸뚱어리가 떨레와서 겐딜
수가 없구만이라우. 나가 뜬금없이 왜 이란가
몰르겄소. 오메, 쬐깜만 더 껴안아 주시요.
스무해 동안 암시랑도
않던 몸 포는 일이
피고름 어기덱기 피고름 엉기덱기 몸 포는 일이
낮은 숨겔같은 휘파람같은 손님
땀시
얼척없이 터져뿌는 오늘밤 일이사
펭생에 한 풀리덱기 끝없는 유채꽃밭 속
오메,
손님. 또 헛것들이 보이들 안겄소? 쩌그 참꽃들이랑. 자운영들이랑, 유채꽃들이랑 그것들이 막
보이드란 말이여라우. 글다 봉께 나가 나도
몰르는 새에 또 울어뿌렀소. 손님, 고맙구만이라우. 손님이
이렇게 눈물을 딱어중께 눈물이 더 나는 것 같구만이라우.
참말로 요새는 나가 부쩍 맘이 약해진 모냥이요. 눈물도 흔해지고, 그래갖고 손님들한테 숭한 꼴도
보이고라우.
글고, 우째사 쓸게라우. 나한티는 모든 남자들이 다 똑같어갖고, 한 남자로 여게진단
말이여라우. 아니, 펭소에 알고 지낸 그런 남자가 아니고라우.
기냥 나가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런 남잔디, 뭐이냐, 숨이 헉헉 넘어감서 나를 찾고있는 것
같단 말이요. 그런 남자야, 곰배필이먼 어쩌고,
문댕이먼 어쩌고, 째보면 어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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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요? 참말로 나를 원해서, 나가 없으먼 살아남지도 못하는 남자가 바로
그런 남자겄제라우.
오메, 쩌그 창문에 있는 보름달이 뿌얀 걸 봉께, 나가 아직까장 울고있었든
모냥이요잉.
내 몸뚱어리를 스치고 지나간
그 많은 남자들이
단 한 남자로만
밝아오는
저 환장한 보름달!